2008년 8월 17일 일요일

SF 칼럼 [3]:가능성의 한계(3)-하이퍼스페이스(초공간)과 투명인간


SF 칼럼 [3]:가능성의 한계(3)-하이퍼스페이스(초공간)과 투명인간
이 우주를 초광속(FTL)으로 달리는 것이 무리라고는 하지만, 혹시 가까운 길을 통해 갈 수가 있을는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우주를 빠져나가 공간/시간의 비밀의 뒷길을 여행하고, 그리고 출발지점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진 우리들의 우주의 어딘가에 되돌아 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하이퍼스페이스주⑴란 그러한 가까운 길이 사용되는 <또다른 공간>을 말하는 SF 용어이다. 이 용어는 존 W. 캠벨의 단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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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기계 The Mightiest Machine(1934)≫에서 최초로 발명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그뒤 수백명의 작가들에 의해 도용되어 왔다. 오늘날에는 하이퍼스페이스는, SF의 표준장비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항성에 여행할 때 발생되는 까다로운 문제는 모두 해결되고 있다.

그러나 하이퍼스페이스를 지름길로 가는 것이 이 우주내를 초광속으로 여행하는 것과는 생각컨데 사정이 다르다라고는 하더라도 그것이 상대론과 인과율에 저촉되는 점에서는 다른 것이 없다. 광선이 A에서 B까지의 지점을 가기보다도 단시간에 두 지점 사이를 항행한다는 단순한 사건 자체가 인과율을 범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우선은 덮어 두기로 하고, 하이퍼스페이스란 실로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어떻게 보면 하이퍼스페이스란, 우리의 3차원 공간이 어떤 수단으로 접혀지고, 채워 넣어진 (마치 2차원의 종이를 뭉쳐 3차원의 공 속에 넣은 것과 같은) 고차원 공간과 같은 것이다. 그 종이가 우주의 지도라고 한다면 그 종이를 접음으로써 지도의 다른 부분이 닿기 때문에 지도상으로 멀리 떨어진 두 개의 항성이 서로 가까와지게 된다. 이 지도 위에 벌레는 별에서 별까지 지도 위를 기어다닐 필요는 없다. 구김살이 잡혀짐으로써 항성이 3차원적으로(2차원이 아니라) 접근한 지점에서 뛰어 옮아갈 수 있는 셈이다. 로버트 하인라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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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맨 존스 Starman Jones(1953)≫에 나오는 우주선은 우주의 어느 지점에서 4차원의 하이퍼스페이스를 지나 3차원 공간의 주름살(눈에는 보이지 않는다)에 의해 가까와진 <머나먼> 다른 지점으로 뛰어 옮아간다. 그렇다면 그 지름길을 통과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서 이 우주를 탈출하면 좋은 것일까? 이를 위해서는 이 우주에서 가능한 모든 방향에 대해 직각방향으로 움직여야만 되는 모양이다. 즉, 그것은 영화 스크린의 2차원상(像)이 갑자기 방안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보다도 일반적인 하이퍼스페이스에 대한 견해는, 이 우주보다는 훨씬 작은, 어느 한 점을 보더라도 이 우주의 하나의 점과 대응하고 있는 것과 같은 <문 한장을 사이에 둔 우주>와 같은 것이다. 수학자들은 이를 <1대1>사상(射像)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하이퍼스페이스는 이 우주 속에 있으면서 우리가 방문할 수 있는 조그마한 지도와도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즉, 우리는 부산에서 지도에 <부산>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지점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서울>이라고 표시된 지점까지 걸어가 그곳에서 다시 진짜 서울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곤란한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 지도속에 하이퍼스페이스가 들어가냐 하는 점이다.


이런 종류의 예는 프레데릭 폴 Frederick Pohl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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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제작자들 The Mapmakers [Alternating Currents(1956)에 수록된 단편(Galaxy Science Fiction 잡지1955년 7월호에 최초 수록)]≫에 나오는데, 이 소설에는 매우 논리적 표현이기는 하지만 지도상에서 1cm 정도 위치가 틀렸기 때문에 우주선은 예정한 목적지보다도 수백만 광년이나 떨어진 정상적인 우주로 되돌아와 버린다. 하이퍼스페이스 여행이 그렇게 간단하다는 보증은 아무 곳에도 없다. 밥 쇼우 Bob Shaw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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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걷다 Night Walk(1967)≫에서는, 하이퍼스페이스의 우주가 수학자의 악몽이라고 할 수 있는 매우 복잡한 형태를 하고 있다. 그래서 경험이 없는 여행자는 결국 이 우주의 완전히 엉터리 지점에 닿게 되어 두 번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더욱 우울해지는 것은 조지 R.R. 마틴 George RR Martin의 짧은 단편, ≪초아속 (FTA, 1974)≫인데, 이 소설에서는 인간이 하이퍼스페이스에 들어가는데 성공하지만, 결국 그것이 지름길이 아님을 알게 된다. 실상 그곳이 지름길이라는 것은 단순한 희망적인 관측에 불과하다. 이 작품에서는 이런 것이 오히려 우회하는 것이 되고 만다.

이같은 아이디어는 모두가 허구이지만 사실은 이보다 더 앞선 과학적인 이론은 이미 있다. 현대 양자물리학에 의하면, 우주의 구성물질이란 장(場, field)의 양자(量子)로 불리는 보편적인 존재 속의 잔물결에 지나지 않는다. 양자(陽子), 중성자, 전자…… 모든 것은 <공허한 공간>의 요동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가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같은 잔물결의 안정된 형태인 것이다. 만약 충분한 에너지가 있다면 <무(無)>에서 물질을 만들 수도 있다. 이에 합당한 상황하에서는 높은 에너지의 감마선이 전자와 양전자(반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시적인 규모로 보는 한 공허한 공간이란, 지금까지 과학이 생각해 온 것과 같은 조용한 것도, <허무한> 것도 아니다. 진공처럼 보이는 것도 <실제로는> 에너지의 요동으로 거품이 일면서 진동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공허한 공간인 불과 1cm3에는 약 109kg의 질량과 같은 양의 에너지가 채워진 것이 된다.(고작 1그램의 질량전환으로 20메가톤 이상의 에너지가 방출되는 것을 상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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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품과 같은 우주구조로부터 도출된 결과 가운데 하나는 우주 밖을 달려 우주의 다른 부분에 이어져 있는 길이 수 cm의 작은 관(管)과도 같은 <벌레 먹은 구멍>이 수없이 많다는 점이다. 이같은 견해를 주도하는 과학자인 존 A. 호일러는 벌레 먹은 구멍은 초공간을 빠져나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SF에서 <하이퍼스페이스>로 불리는 것과 매우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이론은 더욱더 앞서 가고 있다. 그같은 미소한 <양자>인 벌레 먹은 구멍은 우주의 모든 부분이 다른 모든 부분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벌레 먹은 구멍이라는 말은 오히려 다른 뜻으로, 즉 회전하는 블랙 홀 Black Hole의 중심에 있는 통과가능한 지대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상하게도 상대론과 인과율의 법칙은 이같은 벌레 먹은 구멍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지름길을 거치는 것이 인과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같은 지름길이 존재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초공간의 벌레 먹은 구멍은 초미시적인 것이며, ≪스타트랙 Star Trek, Alan Dean Foster, 1980≫과 같은 거대한 우주선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벌레 먹은 구멍을 확대시킨다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전자(電子)조차도 그 벌레 먹은 구멍을 헤치며 지나가기에는 100억의 제곱 정도로 너무나도 큰 것이다. 그러나 벌레 먹은 구멍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거나 적어도 우주 어느 곳에든 순간적인 전화선을 끄는 것은 아마 가능할 것이다.


투명인간의 수수께끼
① 기술(공학)적인 면에서의 투명인간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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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투명인간이 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투명하다는 사실만으로는 진정한 의미에서 투명인간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투명한 것을 둘러싼 굴절률(屈折率)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투명인간이라는 것은 약간 과학적인 엄밀성이 결여되어 있다. 예를 들어, 투명한 유리컵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눈에 보인다는 점에서 보아도 알 수 있다. 투명하다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되기에는 불충분한 점이 있다. 이런 점에서 허버트 조지 웰즈 H. G. WELLS≪The Invisible Man 보이지 않는 인간:A Grotesque Romance (1897) - (국내엔 '투명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고 있다)≫은 문자 그대로 보이지 않는 인간인 것이다.

유리컵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세공물(細工物)을 완전히 투명하게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컵의 유리속에 남아 있는 기포(氣泡)도 문제가 되고 세공상의 열처리 과정에서 오는 불균형으로 인한 비뚤어짐 또한 문제가 된다. 이렇듯이 현대의 공학 및 기술적인 면에서는 아직도 투명인간은 요원한 일인 것 같다. 개인적인 판단으론 투명인간은 인간의식 차원에서나 가능한 일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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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스페이스를 SF에서는 흔히 4차원 세계의 일부분으로 보고 있다. 영화 ≪4차원 사나이 4D Man (1959)≫에서 만일 과학자인 로버트 런싱이 벽을 지나갈 때는 항상 4차원으로 들어가야만 되는 것이라면 어째서 그의 모습이 우리에게 보이는 것인가? 더욱 기이한 것은 영화에서 인파들을 헤쳐 걸을 때마다 사람들은 나이들어 죽는 한편 그는 젊어지는 점이다. 이는 과학적으로는 전혀 미지의 효과이다.


② 물리학과 투명인간
아래는 K. C. 콜의「우주의 구멍」에 한 파트인 "행동하는 무"의 전문(全文)이다. 더 이상의 부수적인 설명을 달 필요가 없으리만치 이번 칼럼의 주제와 안성맞춤으로 부합되는 글이라 여기에 책 소개도 할 겸 올려봅니다.(나중에 PDF문서로 묶어서 배포할 때는 빼거나 혹은 요약정리만 해서 첨부할 예정입니다.)

행동하는 무
원자는 99.99퍼센트 이상이 빈 공간이지만, 나는 벽을 뚫고 지나가지 못한다.
- 레더먼 「신의 입자(The God Particle)」중에서

벽을 생각해 보자. 아무 벽이나 좋다. 벽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벽은 거의 대부분이 빈 공간이다. 모든 원자는 가운데에 작은 핵이 있고, 광대한 공간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으며, 가장자리에 덧없는 전자들이 있다. 자신이 들어가본 가장 큰 실내공간을 생각해 보자. 체육관이어도 좋고 대성당이어도 좋다. 한가운데에 콩이 하나 있다고 상상하자. 이것이 핵이다. 전자들은 바깥쪽 벽 주위를 돌아다닌다. 실제로 벽은 거의 텅 비어 있다.

당신의 몸도 마찬가지다. 작은 핵들이 있고, 전자들이 돌아다니고, 대부분이 빈 공간이다. 대부분이 비어 있는 두 물체가 부딪치면, 그것들이 음파나 은하처럼 서로 통과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벽과 사람은 차갑게 서로를 멈춰 세운다. 벽 속의 빈 공간에 있는 그 무엇이 사람 몸의 빈 공간과 섞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짧게 대답하면 다음과 같다. 공간은 비어 있지 않다. 우리가 빈 공간이라고 생각한 곳에는 강력한 영향력이 충만해 있다. 사실, 빈 공간을 채우는 힘의 기하학적 구조를 우리는 물질이라고 말한다. 이 대답은 비록 짧지만 그 안에는 길고 흥미로운 역사가 있다.

공간의 기하학적 구조가 바로 물질이라는 생각은 최소한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플라톤은 원소들이 본질적으로 기하학적인 모양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물은 십이면체, 공기는 정팔면체, 불은 피라미드(정사면체), 땅은 정육면체다. 땅은 정육면체이기 때문에 단단하고 움직이지 않는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불이 다른 것을 상하게 하는 이유는 피라미드처럼 뾰족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와 몇몇 사람들도 이 생각을 조금 바꾸어 사용했다. 빈 공간을 믿지 않았던 데카르트는 모든 공간이 일종의 희박한 물질로 채워져 있으며, 이것은 보통의 물질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지지만 극도로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이 희박한 물질이 때때로 웅덩이에 고여서 만들어진 것이 '물질'이다. 물질의 형태는 그 모양에 달려 있다. 달리 말하면 데카르트에게는 물질과 빈 공간의 구분이 없다. 실체는 한 가지이며, 이것이 여러 가지 형태로 주조된다. 무는 순전히 압축의 힘에 의해 유가 된다.

이런 생각이 바로 물리학이 되지는 않았지만, 19세기의 위대한 실험가 패러데이는 이것을 과학사상 가장 근본적인 생각으로 발전시켰다. 물질에서 중요한 것은 입자가 아니다. 입자는 단지 여러 가지 힘들이 흘러나오는 수도꼭지에 불과하다. 물질의 덩어리는 점처럼 작은 구멍에서 분출하는 물줄기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입자는 물줄기를 뿜는 수도꼭지일 뿐이다. 패러데이는 "무엇이 가장 궁극적인 실체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입자보다 입자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더 궁극적인 실체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해서 입자들 사이의 공간이 중요해졌다. 앰허스트 대학의 물리학자 자종(A. Zajonc)이 말했듯이, "물질이 아니라 힘이 세계의 진정한 존재이다. 우주의 모든 곳에 충만해 있는 것은 에테르가 아니라 힘이다. 물질의 점(원자)들은 그 중심에서 퍼져나와 우주 전체를 엮어짜는 수많은 역선(力線)들의 교차점일 뿐이다."
[출처] K. C. 콜「우주의 구멍(The Hole in the Universe, 해냄 출판사)」(p97~p98)

주석 註釋
주⑴
하이퍼스페이스
hyperspace, 초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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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온갖 환상과 자유로운 상상의 응집물인 하이퍼스페이스를 통해 답답하고 밋밋한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다. 지난 100년간 3차원 공간을 뛰어넘으려고 시도되었던 수많은 소설과 영화, 미술작품들이 이런 사실을 입증한다. ‘하이퍼스페이스’란 용어도 존 캠벨이 1934년에 쓴 단편소설 [가장 강한 기계(The Mightiest Machine)]에서 처음 사용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이퍼스페이스 개념이 한낱 공상이나 자유분방한 사고에 머물지 않는다. 수많은 수학자, 철학자, 과학자, 신학자들이 하이퍼스페이스를 자신들의 진지한 연구나 신앙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사용해왔다.

위대한 과학자들의 하이퍼스페이스 서핑
칸트는 만약 신이 ‘중력이 거리의 세제곱에 반비례하여 퍼지는 세계를 만들었다면 공간은 4차원이 되었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4차원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고, 19세기 독일의 물리학자 헬름홀츠는 정확한 입력 데이터만 있다면 인간의 뇌로 4차원을 시각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독일의 기하학자 리만은 전기와 자기, 중력은 모두 우리의 3차원 우주가 보이지 않는 네 번째 차원에서 굽어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믿었다. 굽은 공간에 대한 이 시나리오는 훗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구축하는 기초가 되었다. 물론 아인슈타인 자신도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시간과 공간을 서로 결합되어 있는 ‘시공간’ 4차원 연속체로 묘사한다.

일부 신학자들은 우주에는 이 세상과 천국과 지옥의 세 가지 평행 공간이 있다고 설명했다. 신학자 아서 윌링크(Arthur Willink)는 하느님은 이 세 공간 바깥에 존재하며 무한 차원의 공간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카를 하임(Karl Heim)은 [기독교 신앙과 자연과학(Christian Faith and Natural Science)]이라는 책에서 더 높은 차원이 지닌 의미에 대해 강조했다. 우리 몸이 더 높은 4차원 존재의 3차원 단면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펼친 철학자도 다수 있다.

4차원에 대한 부정과 두려움들 - 키메라보다 존재가능성이 희박한 자연 속의 괴물
유클리드는 어떤 물체도 선, 평면, 입체를 뛰어넘어 네 개의 차원을 가질 수 없다고 믿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수직선의 논증을 통해 4차원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더 나아가 영국의 유명 수학자 존 월리스(John Wallis)는 4차원을 ‘키메라나 켄타우로스보다 존재가능성이 희박한 자연 속의 괴물’이라 불렀다. 많은 수학자들이 이 새로운 기하학적 개념을 ‘병리학적’이라거나 ‘괴물’이라고 본 것이다.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오늘날 수학과 물리학 분야에 혁명을 일으켰던 프랙탈 구조 역시 과거에는 전율의 대상으로 간주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대과학 속의 하이퍼스페이스
원자와 전자에서 블랙홀에 이르기까지 과학의 역사는 우리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개념들을 받아들여온 역사이다. 에드워드 캐스너와 제임스 뉴먼이 ≪수학과 상상력≫이라는 책에서 언급했듯이 “원시인이 바퀴나 창유리를 상상하려면 우리가 4차원을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능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의 한계가 어떤 것이건 간에 4차원 기하학은 지금도 이미 수학과 물리학에서 필수적인 부분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이퍼스페이스에 관한 현대의 다양한 이론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시공간 외에 다른 차원들의 존재를 시사한다. 전체 우주는 실제로 더 높은 차원의 공간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가장 최근의 이론 중에는 우주가 10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초끈이론’과 초대칭 개념에 의존하는 ‘M 이론’ 같은 것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현대 물리학자들이 물질과 우주모형을 만드는 데 여분의 공간차원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출처]「하이퍼스페이스」- 클리퍼드 피코버(저)
【참고어】
하이퍼스페이스(초공간) ㆍ
작가 소개 (가나다)순
+ 존 W. 캠벨 | John Wood Jr. Campbell (1910 ~ 1971) [상세 정보]
필명: Don A. Stuart, Karl Van Campen, Arthur McCann

캠벨은 MIT와 Duke대에서 물리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그의 첫 소설은 그가 MIT에서 학생이었을 때 출판되었으며 첫 등단은 Amazing Stories였었다. 그는 Arcot, Morey와 Wade 시리즈로 인하여 galatic epics(은하영웅물?)에 있어서 Edward E.Smith의 주된 라이벌이 되었다. 그는 후에 Don A.Stuart라는 필명으로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벗어나 문체를 좀 더 문학에 가깝게 바꾸었다.

1927년에 캠벨은 Astounding Stories의 편집장로 지명되었으며, 이름이 Analog로 바뀌고 캠벨 자신이 죽을 때까지 계속 편집장으로 남아있었다. 편집장으로서 그는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 레스터 델 레이, 시어도어 스터전, A.E.반 보그트등과 같은 작가들을 발굴해냈다. 그는 또한 많은 고전 SF 아이디어의 근원이기도 했다. 아시모트는 캠벨과 함께 로봇의 삼대 원칙을 만들었다.

캠벨은 Astounding의 자매지인 팬터지 잡지 Unknown의 편집도 하였다. Unknown을 통해 팬터지는 이상한 이야기들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장르를 구성하였다. Unknown은 전시 종이 부족으로 인하여 미처 팬터지가 자라기도 전에 발간을 중단하게 되었다.

+ 앨런 딘 포스터 | Alan Dean Foster (1946 ~ ) [상세 정보]
앨런 D. 포스터는 스스로 변신하는 기계 생명체를 다룬 영화 트랜스포머 Transformers의 저자이기도 하다. 포스터는 진 로덴베리(Gene Roddenberry)가 주축이 되어 1975년에 영화판 스타트렉의 기본 줄거리를 공개모집한 공모에 당선되어 스타트랙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포스터의 원안(줄거리)이 드디어 스타트렉 영화판 1편으로 탄생하게 된다. 잘 아시다시피 TOS 시리즈의 첫 영화판이기도 한 ≪스타트랙 1: 모션 픽처 (Star Trek 1: The Motion Picture, 1976)≫였다. 또한 포스터는 TAS(Star Trek: The Animated Series) 각 에피소드의 각색자이기도 하다. 포스터는 영화 <블랙 홀 The Black Hole>과 <에일리언 Alien>을 소설로 만드는 일을 했던 신진 SF 작가였다.
참고 - 서적, 웹사이트
- 세계 백과 대도전
- K. C. 콜「우주의 구멍(The Hole in the Universe, 해냄 출판사)」
- 인터넷 이곳저곳
+ 더 읽어야 할 책
본 칼럼에서는 글이 중구난방이 될 것을 우려하여 참고하지 않았지만, 아래의 서적은 'SF에서의 공상(상상력)' 및 '현대물리학의 흐름' 두마리 토끼를 모두 얻을 수 있는 양서들입니다. 굳이 SF팬이 아니거나, 물리학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더라도 교양을 쌓는 차원에서라도 읽어두면 좋을 것 같아서 추천드립니다. 현대물리학에 대한 교양서적을 좀 더 추천드리고는 싶지만, 일단 이번 칼럼과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는 서적만 소개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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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치오 가쿠>의 『초공간(절판)』,『평행우주』
- <샤이먼 싱>의『빅뱅』
- <브라이언 그린>의『엘러건트 유니버스』, 『우주의 구조』
다음 SF 칼럼 [4] 가능성의 한계(4):순시 전달(瞬時傳達)과 외계와의 소통


+ 본 SF 칼럼은 40여회 분량으로 실을 예정입니다.
+ 짜투리 시간 쪼개서 작성하는 것이라서 주기적으로 올리지는 못할 겁니다. 되는 대로 쓰고 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 전문적인 SF 칼럼니스트 만큼의 깊이는 없겠지만, 나름대로 기획해서 성심성의껏 올려보겠습니다. 많은 격려바랍니다. ^^
※ 이 칼럼은 퍼다 나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엮인 글 |
2008/07/22 - [SF 칼럼] - SF 칼럼 [2]:가능성의 한계(2)-초광속(超光速)과 상대성이론의 상관 관계에 대한 소고
2007/10/15 - [SF 칼럼] - SF 칼럼 [1]:가능성의 한계(1)-SF(에스에프)에서의 공상과학

2008년 8월 16일 토요일

사이코패스

사이코패스 Psychopath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않는 매우 폭력적이고, 비열한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를 의미한다.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이기주의의 극단을 달리는 인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표적으로 살인범 유영철정남규 등이 있다. 그들은 PCL-R 검사에서 40점 만점에 32점 이상의 점수를 받았다.

2008년 8월 15일 금요일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라 로슈푸코의 잠언과 성찰


+ 새로 번역된 완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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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511 - 라로슈푸코의 잠언과 성찰
원제목:Reflexions ou Sentences et Maxime Morales 
지은이: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
옮긴이:강주헌
출판사:나무생각
출간일:2003-04-14
책정가:9,500원
책크기:양장본 | 190*125mm
페이지:252쪽
ISBN(13자리):9788988344637


+ 소장 중인 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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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인간성에 대하여:라 로슈푸코 '잠언'
지은이:라 로슈푸코 La Rouchefoucauld
편역자:박서예
출판사:동천사
출간일:1988년 2월 15일
책정가:1,000원


| 들어가며 |
20대 초반에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빼들은 책 속에 있던 아래의 구절 때문에 이 책을 구입했었다. 대학을 다닐 무렵부터 나의 행복관은 소시민의 삶이었고, 나의 행복에 대한 생각과 너무도 닮아 있는 구절에 필 받아서 냉큼 구입해서 근 2년 동안을 품 안에 품고 다니던 책이었다.

48.『지고의 행복은 취미에 속하는 것이지 사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손에 넣으면 사람은 그것으로써 행복한 것이지, 남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고 해서 행복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88년 판본 p17)』

4세기의 시간을 뛰어 넘어 내 가슴에도 파문을 일으키던 로슈푸코의 구구절절 옳은 말씀들. 때로는 눈시울을 붉혔고, 때로는 맘 속에 활화산이 터질 듯한 때도 있었지…….

돈 9,500원 투자하면 세상과 그 세상을 일궈나가는 인간군상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면서……. 구판본 구할 수 있는 분들은 구판본이 비록 초록본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괜찮으니 추천드립니다. 하지만 구판본은 구할 수 없을 듯, 20년이나 된 책이니…….
+ 저는 나무생각 출판사와 하등의 관계가 없음을 밝혀둡니다.

| 책소개 |
17세기 프랑스에 살았던 라 로슈푸코의 잠언집.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효한 경구와 통찰을 만날 수 있다. 복잡한 음모와 연애, 야심이 판치던 프랑스 궁정생활을 경험한 지은이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들을 간결한 어휘로 풀어놓는다.

라 로슈푸코는 모랄리스트로서 인간을 반성함에 있어, 개념적 사유를 따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있을 수 있는 인간을 그렸다. 일상생활의 경험을 단편적으로 기술한 처세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 책 속에서 |
사물을 정확히 관찰하기 위해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하듯이 교제에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고유한 관점을 갖고 있고, 다른 사람도 그런 관점에서 자신을 보아주길 원한다. 우리가 지나치게 가까이에서 관찰되는 것을 원치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어떤 경우도 당신의 진실된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본문 222족 중에서


| 지은이 소개 |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 (Francois de La Rochefoucauld)
1613년 파리에서 태어나 청장년기를 음모와 야심이 판치는 전장과 궁전에서 보내며 파란만장한 반생을 보냈다. 정치계에 염증을 느끼고 40대 후반부터는 살롱을 출입하며 사색과 저술 활동으로 만년을 보냈다. 지은 책으로 1665년에 집필한 <잠언과 성찰>이 있다.


| 추천글 |
<잠언과 성찰>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다. - 볼테르


| 목차(완역본) |
잠언편
1~504

성찰편
1. 취향에 대하여
2. 교제에 대하여
3. 외관과 태도에 대하여
4. 대화에 대하여
5. 거짓에 대하여
6. 사랑과 바다에 대하여
7. 질투의 불확실성에 대하여
8. 사랑과 삶에 대하여
9. 은퇴에 대하여
역자 후기


경고:아래 'more..'는 육두문자(욕)와 평범하지 않은 의식이 넘쳐나는 글이니 감안하시고 펼치십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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