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19일 일요일

SF 칼럼 전체 목차

SF 칼럼 전체 목차를 준비하며……
  • 제 티스토리에 게재중인 [SF 칼럼]의 전체 목차가 완성됐습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아래 목차대로 진행할 겁니다.
  • 총 7장 56절의 칼럼으로 마련했습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번외)
  • 중간에 시간이 나면 SF와 관련된 용어사전(SF 및 과학)과 인명사전(SF작가 및 과학자)을 따로 포스팅 하겠지만 아래 목차와는 별개로 올리는 것입니다.
  • 칼럼은 1주 혹은 2주에 하나씩 올릴 예정입니다.(제 사정상 한달에 하나씩 올릴 수도 한주에 두개씩 올릴 수도 있습니다. 포스팅 날짜는 랜덤입니다. ^^)
  • 처음엔 40개 정도의 제목을 정해놨었는데, 이번에 6회 칼럼을 작성하려고 준비하던 중에 목차를 다시 살펴보니 중간중간 블랙홀처럼 훵한 구멍이 언듯언듯 보이더군요. 그 구멍을 메우다 보니 칼럼이 56회로 늘어났습니다. 칼럼 쓸 생각은 하지 않고 자꾸 분량만 늘이고 있네요. ^^ㆀ 뭐 하나씩 써 나가면 언젠가는 완성되겠죠.
  • 그 동안 골머리 싸매고 고민하던 일이 마무리 됐습니다. 하여, 다음 주 부터는 6회 칼럼부터 꾸준히 써내려갈 겁니다.
  • ※ 본 칼럼이 완성되면, 제가 직접 PDF와 HWP 파일로 각각 준비해서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니 어렵사리 긁어가실 필요 없습니다. 무료로 배포한다고 해서 글의 저작권을 포기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그럴 분들은 안 계시겠지만 상업적 사용(단행본 출판물에 게재, 혹은 잡지에 게재 등등)은 절대로 금합니다. 저도 다른 분의 글들을 이곳저곳에서 많이 차용해서 쓰고 있는 글이라, 상업적으로 사용하시다가 걸리셔도 저는 책임 안 지겠습니다. 블로그에 옮겨가는 것도 현재 금지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Text로 보기

2009년 4월 14일 화요일

청맹과니

청맹과니 [靑盲--]
1 겉으로 보기에는 눈이 멀쩡하나 앞을 보지 못하는 눈. 또는 그런 사람. ≒청맹·당달봉사.
2 사리에 밝지 못하여 눈을 뜨고도 사물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르키는 우리말이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메모리 최적화 보다는 우리들 생각의 최적화가 먼저 필요한 시대이다.

요즘 컴퓨터가 많이 느려져서 일명 메모리 청소해준다는 프로그램들의 기능을 구글신님께 여쭤봤습니다.

메모리 부족남 : 저기 구글신님 '메모리 최적화 프로그램'이 진짜로 메모리 최적화가 되나요?
구글신님1 : 그런 것 없다! 메모리 많이 잡아 먹는 프로그램 껐다가 다시 켜라!
구글신님2 : 윈도우즈를 며칠씩 계속 돌리고 있다면 때때로 Ctrl+Alt+Delete 로그오프하거라!
메모리 부족남 : 컴퓨터로 서버 돌리는데요? 이럴 때 어찌하나요?
구글신님3 : 그거는 간단하다. 메모리 용량 더 큰 걸로 사다가 바꿔 끼워라!
메모리 부족남 : 넹! 구글신님 감사하와요. ㅠㅠ


메모리를 최적화해 준다는 프로그램들은 한마디로 말하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겁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답은 나옵니다.
만일 진짜로, 참말로, 진실로 실시간으로 메모리 반환이 되고 부팅 후 처음으로 프로그램을 돌렸을 때 처럼 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그 프로그램을 왜 M$의 빌 게이츠 황제님께서 여태껏 안 사들일까요? 혹은 왜 자신의 프로그래머 군단에게 왜 비슷하게 개발하라는 칙령을 안 내렸을까요? 빌 황제님의 생각의 속도는 거의 광속이라던데... 돈 벌이에 관한 한...

메모리 최적화, 한마디로 그런 건 없다는 겁니다.
기계 부품 조합형의 현재의 꼼뿌따 시스템(현재의 2진수 데이터 단위로 구동되는 시스템)에서는 꿈(≒환상)속 이야기라는 겁니다.
양자 컴퓨터 시스템(먼 미래의 큐비트 qubit 데이터 단위로 구동되는 시스템)이 구축되는 먼 미래에나 가능한 이야기일 겁니다.

'설명은 단순한 것일수록 뛰어나다' 『오캄의 면도날』이란 진리를 잊지마시길...

메모리 최적화 보다는 우리들 생각의 최적화가 먼저 필요한 시대입니다.
 
온갖 쓰레기로 난잡한 웹 세계에서 자신에게 진짜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는 방법이 정말로 있다면

  1. 남의 글과 의미를 귀여겨 잘 듣는 것입니다.
  2. 그 정보가 진정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인가 재검정한다.
  3. 정보들을 조합하고 가공한 후엔 꼭 자기화의 과정을 거친다. (아무리 잘 정리된 정보라도 자신의 생각이 스며들지 않으면 자신의 지식이 안된다.)
  4. 시류에 맞추어 정보를 주기별로 업데이트 한다.
  5. 더 이상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득보다는 해로운 점이 많은 정보라고 판단되는 시점이 되면 그 정보는 쓰레기통으로 옮긴다.
  6. 생각의 쓰레기통에 넣은 정보를 전(全) 시대에 쓰이는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본다.(경험에 의하면 생각의 쓰레기통엔 그냥 쓰레기만 있는 건 아니더라!)

※ 새로움이란 항시 옛 것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잊지 않는다. (온고이지신)
우주의 최초 3분간에서 우주의 최후 3분간까지 그 중간 시간대에 존재하는 우주의 모든 정보는 재가공품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질이건 사념이건 이 우주 내의 모든 물상들은 가공의 순환 사이클에 의해 되풀이되는 것이다.

 『우주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움은 없다.』

그 이유는 神이라는 절대존재가 새롭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신은 퇴물일지도 모른다. -.-;
나는 신을 모른다. 다만, 신을 만나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그 분을 만나서 묻고 싶을 뿐이다. 이딴 세상 왜 만들었어요? 변하지 않는 세상 따위 왜 만들었는지 묻고 싶을 뿐! 불만 없는 것이 아니라 담배도 없다(담배 떨어졌다). ^^ㅋ

신은 진정 자신이 할 일을 안 하고 있는 것 같다.
신이 할 일은 그의 전지전능을 실시간으로 양자암호화해서 인간의 머리 속으로 실시간 양자복제해주는 일이다. 신이 그런 일을 한다면 인간이 항시 실시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고, 그러한 거듭남은 神 자신의 거듭남도 되는 것 아닐까?

대체 신은 왜 그런 중요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일까?
혹여,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데, 필자 같은 메모리 딸리는 청맹과니들은 이해를 못해서 못 받아들이거나, 버퍼링 중이거나, 렉 걸려서 버벅대고 있는 건 아닐까?

신이시여!
당신의 능력이 진정 전지전능이라면 제 생각의 메모리 좀 증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고맙다의 어원 ←클릭)

그분 : 네가 진정 나를 믿느냐?
필자 : 네~엥! 믿는다니깐요?
그분 : 이 넘아! 네가 진정 나를 믿는다면 메모리는 자동으로 증설되게 해뒀다.
필자 : 넹? 그게 무신 말씀이신지??? ㅠㅠ

양자 컴퓨터

양자 컴퓨터 : quantum computer

양자 컴퓨터는 원자 이하의 차원에서, 입자의 움직임에 기반을 두고 계산이 수행되는 컴퓨터이다. 이러한 컴퓨터가 개발된다면, 이전의 그 어느 컴퓨터보다 더 빠르게 연산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처리 능력의 가파른 상승은 양자 컴퓨터 내의 데이터 단위가 기존의 이진수 기반의 컴퓨터와는 달리, 한번에 하나 이상의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사상에서는 컴퓨터가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각각의 생각들은 비록 그것들이 동일한 입자에서 일어나더라도 서로에게 독립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엔지니어들은 양자 컴퓨터 내의 기본적인 데이터 단위를 표현하기 위하여 큐비트(qubit)라는 용어를 고안해 냈다. 큐비트는 기본적으로 동시에 여러 개의 값들을 갖는 비트이다. 이 배경에 있는 이론은 개별 입자들이 여러 개의 장소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양자 역학 이론만큼이나 이상야릇한 것이다. 큐비트가 어떻게 여러 개의 상태에서 존재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하나의 방편으로, 큐비트는 각각이 고(논리 1) 또는 저(논리 0)가 될 수 있는 두 개 이상의 상 또는 차원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큐비트가 두 개의 상을 가지고 있다면 동시에 4개의 서로 다른 상태, 즉 00, 01, 10, 그리고 11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만약 세 개의 상을 가지고 있다면 000에서 111에 이르는 8개의 서로 다른 상태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양자 컴퓨터는 특히 다음과 같은 분야에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호의 해독
통계 분석
큰 수의 인수 분해
이론 물리학 문제의 해결
많은 변수들이 개입된 최적화 문제의 해결
 
이 분야의 연구개발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상당 시간동안 적절한 방법에 반응하는 입자를 얻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아주 근소한 장애만 있어도 양자 방식으로 일하던 컴퓨터가 작동을 멈추고 "한번에 단 한가지의 생각만을 하는" 일반적인 컴퓨터의 상태로 되돌아가 버리게 된다. 약간 벗어난 전자기장이나 물리적 움직임 또는 아주 작은 방전조차도, 이러한 과정을 분열시키기에 충분하다.
 

Stanford-Berkeley-MIT-IBM NMR 양자 컴퓨터 프로젝트 웹사이트에 좀더 자세한 내용이 제공됩니다.

[출처] 텀즈 http://www.terms.co.kr/quantumcomputer.htm

고맙다의 어원

고맙다의 어원
‘고맙다’의 어원 ‘고마’는 ‘신’ 또는 ‘신령’을 지칭하는데. 즉 ‘고마’의 형용사인 ‘고맙다’는 사람 이상의 존재에 대한 외경의 표현이며, 동사형 ‘고마워하다’는 ‘공경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글쓴이 : 천소영 교수(수원대 국문과, 〈우리말의 속살〉에서)

오캄의 면도날

오캄의 면도날 (Ockham's razor, 오캄의 면도칼)
'불필요한 다수성(Plurality)을 가정해서는 안된다(Pluralitas non est ponenda sine neccesitate)'. 이것은 중세 영국의 철학자이자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수도사였던, 윌리엄 오브 오캄(William of Ockham, ca.1285-1349)의 말이다.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다른 많은 수도사 처럼, 윌리엄은 청빈주의자(minimalist)로서 청빈한 인생을 보냈고, 또 성프란시스코와 같이,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교황과 논쟁을 시도했다. 윌리엄은 교황 요한12세에 의해 파문되었다. 그는 교황 요한을 이단이라는 논문을 써서 반론했다. (역주 : Plurality를 정확하게 번역할 수 없어서 다수성이라고 번역했습니다. )

중세 철학의 일반적인 원리인, 오캄의 면도칼은, 오캄 오브 윌리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원리를 윌리엄이 빈번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영원히 붙게 되었다. 현대의 우리들이 그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을 수도사인 윌리엄이 기뻐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무신론자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 반론을 할 때, 신의 존재를 가정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오캄의 면도칼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어떤 일이든 간에 형이상학적 존재를 추가로 논의에 개입시키지 않고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윌리엄이 '불필요한 다수성의 원리(the principle of unnecessary plurality)'를 사용한것은, 중세판 초능력(psi)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면, 피에르 아벨라르(Peter Abelard, 역주 : 프랑스의 철학가이며 신학자로 11세기 말에서 12세기에 활약했다.)의 '명제집 해설(Commentary on the Sentences)'의 제2권에서, 그는 '높은 등급의 천사는 낮은 등급의 천사보다 더 적을 것을 통해서 지식을 얻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깊은 고찰을 하고 있다. (역주 : 천사는 모두 9단계로 이루어져 있다.)그는 '불필요하게 다수성을 제시해서는 안된다'는 원리에 맞추어, 이 문제의 답이 '그렇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자연이 완전하면 할수록' 자연이 움직이는데 필요한 것들도 적어진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을 인용하고 있다. 이 원리는, 무신론자가 진화론을 선호하고 신-창조주의 가정을 부정하는데 지금까지 사용되어왔다. 즉, 만약 전능한 신이 우주를 창조하였다면, 우주와 그 구성요소는, 더욱 단순해야 한다. 하지만 윌리엄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연 신학(自然神學 natural theology)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자연신학은, 신을 이해하는데 오직 추론만을 사용하며, 계시신학은 이것과 반대로 성서학적인 계시에 기초하고 있다. 오캄 오브 윌리암에 의하면, 신이라는 개념은 명백한 경험이나 추론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이 신에 대해서 아는 것은 모두 계시에 기초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신학의 근거는 신앙에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오캄의 면도칼을 정신세계 전부를 제거하는데 사용했지만, 오캄은 신앙고백서까지 '절약의 원리(principle of parsimony)'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힐 필요가있을 것 같다. 만약 그가 신앙고백까지 오캄의 면도칼을 사용했다면, 그는 존 톨랜드(神秘가 없는 기독교(Christianity not mysterious),1696)와 같은 소시니안(Socinian)이 되어, 삼위일체론이나 그리스도의 양면성(역주 : 신이면서 인간임)을 하나로 정리했을 지도 모른다.

오캄은 철학의 청빈주의자로서, 당시 인기 있던 실재론(realism)에 반대하여, 유명론(nominalism)을 제창했다. 즉, 그는 보편(universals)이 마음의 밖에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즉, 보편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개개의 사람이나 사물의 특성을 가리키는데 사용되는 명칭을 말한다. 실재론자는, 개개의 물체와 그것에 대한 우리들의 개념의 배후에는 보편이라는 것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캄은 이것을 너무 지나친 반복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들은 무엇을 설명하든, 보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유명론과 실재론, 어떠한 입장이든, 소크라테스는 한 사람의 인간존재며, 또 소크라테스에 대한 관념을 나타낸다. 실재론자에 있어는, 또한 소크라테스의 인간성이나 동물성 등이 존재 하는 것이 된다. 즉, 소크라테스에 관한 성격 전부는, 각각 '실재(reality)' ,'보편' 혹은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형이,eidos)가 있는 것이 된다. 윌리엄은 보편론적 세계관이라 불리는 이러한 다의적 세계에 회의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논리나 인식론, 형이상학에도 불필요하다. 그러면 왜 이러한 불필요한 다수성(plurality)을 가정하는가? 물론, 플라톤이나 실재론자가 옳을 지도 모른다. 현실의 각각 물체의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모델의 보편적 실체들, 즉 이데아로 이루어진 세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각의 사상이나 개념이나 지식을 설명하는데, 이러한 것을 전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과잉이며, 형이상학적으로도 인식론적으로도 불필요한 짐인 것이다.

죠지 버클리 주교는 물질적 존재(material substance)를 불피요한 다수성이라고 간주하고 오캄의 면도칼을 사용해서 제거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버클리에 따르면, 무엇을 설명하든 간에,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마음과 개념뿐이다. 그러나 버클리는 이 면도칼을 조금은 선택적으로 사용했다. 그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신의 존재를 가정할 필요성이 있었다. 주관적인 관념론자는, 신을 제거하기 위해서 면도칼을 사용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유아론(唯我論, solipsism)에 귀착한다. 유아론에서는 자기자신과 자기자신의 생각만 존재하거나, 혹은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이 두가지뿐이라고 한다. 이것과는 반대로, 유물론자는 마음을 제거하는데 면도칼을 사용할 것이다. 우리들은 두뇌의 다의성(plurality of brains)과 의식의 다의성(plurality of minds)을 함께 가정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역주 : 죠지 버클리는 관념론자이며 물질주의에 대해서 반대했다. 유심론자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가지이며 하나는 실제론이고 다른 하나는 관념론이다.)

오캄의 면도칼은, 절약의 원리(principle of parsimony)라고도 불려진다. 최근에는 '설명은 단순한 것일수록 뛰어나다', '불필요한 가정을 추가하지 마라' 등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어쨌든, 오캄의 면도칼은 존재론 밖에서도 빈번하게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과학철학자는 정확한 정도가 비슷한 가설이 여러개 있을 경우, 가장 적합한 가설을 골라 내는데 오캄의 면도칼을 사용한다. 어떠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가정을 할 경우, 불필요하게 복잡한 가정을 세워서는 안된다. 폰 데니켄이 옳을지도 모른다. 즉, 지구밖의 생명체가 고대 지구인에게 예술이나 기술을 가르쳐 주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대인의 기술이나 예술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우주인의 방문을 가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왜 불필요한 복잡한 가정을 만드는가? 또, 많은 사람이 하는 것처럼, 꼭 필요한 가정만 만들어야 된다.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는데 에테르를 가정할 수는 있지만, 굳이 에테르가 필요하지는 않다. 그럼, 왜 근거가 희박한 에테르를 일부러 가정하는 것인가?

올리버 호움즈(Oliver W.Holmes)와 제롬 프랭크(Jerome Frank) 는 '법(the Law)'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때 오캄의 면도칼을 사용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세상에는 오직 사법적 판단만 있으며, 각각의 판결과 그 판결을 합쳐서 법률이 형성되는 것 뿐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 유명한 법률가는 혼동스럽게도, 자신들의 관점을 법률 유명론(legal nominalism)이 아니라 법률 존재론(legal realism)이라고 칭하고 있다. 좀 더 문제를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다.

오캄의 면도칼은 단순성의 원리(the principle of simplicity)라고도 불리워지므로, 일부 창조론자 는, 오캄의 면도칼을 이용해서 진화론보다 창조론이 옳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신이 모든것을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복잡한 구조로 설명하는 진화론보다, 훨씬 단순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오캄의 면도칼은 '단순한'  가정이 더 좋은 가정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오캄의 면도칼은, 현명하지 못한 대중에게는 대단히 무딘 면도칼이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예산 삭감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적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더 많은 돈을 들인다면 낭비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오캄의 면도칼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가정"이라는 단어를 제거함으로써, 오캄의 면도칼을 오캄의 면도칼의 원리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것은 숫자가 적다는 말은 양이 적다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오캄은 가정(assumption)을 줄이자는 것이지, 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원래, 이 원리는 완전성이란 것은 곧 간결성이라는 개념과 관련이 있다. 이 개념은, 우리들이 중세나 고대그리스인 등과 공유하는, 형이상학적 편견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들도 그들처럼, 원리 그 자체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물론자에게 있어, 이원론자는 불필요한 다수성을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원론자에게서는, 정신과 육체를 가정하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다. 무신론자에게서는 신과 초자연적 세계를 전제로 하는것은 불필요한 다수성이다. 하지만, 유신론자에게는, 신의존재는 꼭 필요한 것이다. 다른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아마, 폰 데니켄에게는, 아마 사실을 설명하는데 외계인을 가정하는 것이 필수적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우주인은 불필요한 다수성이다. 결국에는, 오캄의 면도칼은, 아마 무신론자에겐 신이 불필요 하고, 유신론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이 원리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편, 오캄의 면도칼이 믿기 어려운 설명과 확실해 보이는 설명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에는 확실해 보이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라면, 이 원리는 불필요하다. 이것은 보통,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원리가 진짜 청빈주의자(minimalist)의 원리라면, 환원론적인 일수록 더욱 좋은 것이 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검약의 원리는 오캄의 전기톱이라고 부르는게 어울린다. 왜냐하면, 이것의 주요한 사용 목적은 실재론을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번역 : toshijun
출처 : http://www.rathinker.co.kr/skeptic/occam.html

2009년 4월 10일 금요일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 본 글은 잘못 받아들이면 기분이 상당히 나빠질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 2040년과 2080년 동아시아 지도라고라? |


얼마 전부터 웹에 떠돌고 있는 2040년의 동아시아 지도이다. 그냥 웃자고 만든 지도인지, 누군가 예언 운운하며 갈겨놓은 지도인지 진위 여부 까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진위가 어떻건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이 지도를 보며 기분 좋다고 웃어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더라! 참 한심하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
중국이란 나라를 몰라도 어쩜 그렇게도 모르냐?
일본이 우리나라에 복속될 만큼 만만한 나란 줄 아냐?
필자도 한국인이라, 역사적인 측면에선 중국과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 감정이 곱지는 않다.
하지만, 저런 건 정말 아니잖냐!
대체 어떤 인간이 어떤 마음으로 휘갈겨놓은 지도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봐도 정신이 올바른 사람 같진 않다.
아니, 인간의 내면 속에 깃든 추잡스런 감성이 역겨울 뿐이다.

|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
국경이 사라진 세상
국가라는 단위가 하나로 통합된 세상
민족관이 없어진 세상
언어가 하나로 통일된 세상
그런 세상이 도래하길 바랄 뿐입니다.

인간의 한심스런 독점욕, 정복욕, 호전적 기질에 똥물을 끼얹고 싶을 뿐!
문명과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감성지수는 아직도 원시인 수준인가 봅니다.
간디가 왜 비폭력으로 명성을 얻었는지 이해가 갑니다. 간디는 정말 대단한 성자이셨던 듯. 예수님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요.
독점, 정복, 호전성 같은 저급한 감성을 고급의 지성으로 승화시킬 줄 아셨던 분들이셨으니.

저딴 지도 나부랭이 그린 화상이나, 저딴 걸 보고 기분 좋다고 므흣해대는 화상들이나 제가 보기엔 오십보백보네요. 유토피아의 도래, 에덴의 부활을 꿈꾸는 필자 같은 부류는 덜 떨어진 정신이 이상한 녀석 취급이나 받고, 저딴 걸 보고도 비판력이 안 생기는 화상들과,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국가관 민족관이 투철하면 좋은 사람 취급 받는 이 웃기지도 않는 세상.

잊지 말라!
국가가 있기 전에
민족이 있기 전에
사람이 먼저다.
인류애 없는 국가관, 민족관은 뒷골목 양아치를 나와바리 싸움질하는 것이랑 똑같은 근성이란 걸 인식하고 살자!

중국도 먹고, 사할린도 먹고, 일본도 복속시키면 저절로 행복해지냐?
그런 세상이 너희들이 바라는 새 세상이더냐?
아~ 왜 그냥 전세계지도를 COREA로 통합해버리지 그랬냐!
아래 지도 어떠냐? 어캐 좋냐? 기분 째지냐?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찌질한 근성을 지닌 화상들을 위해 본좌가 제작해봤다. 어캐 흡족하냐? -.-+]

| 후세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올바른 사고부터 해야한다 |
지금 이 시대는 인육하던 시대도 아니고, 혈맹으로 똘똘 뭉쳐서 약탈질하던 시대도 아니다. 21세기다. 전세계가 일일생활권인 세상이란 말이다.
대체 언제까지 약탈질하던 저급한 옛 기억을 안 버리고 살껴?

결혼해서 자식 낳아 기르면서 '친구하고 사이좋게 지내라', '어려운 사람과 도우며 살라'는 말을 하며 양심의 가책 안 느끼려면 자신부터 그렇게 살아야 한다. 충고를 하려면 자신이 올바른 생각으로 살아야지 충고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저딴 지도 보면서 기분 좋아지고 그러면서, 뭔 자식들에게 인성교육씩이나 하고 그러냐? 안 부끄럽냐? -.-+

대중이 생각한다고 해서 언제나 옳은 생각은 아니라고 본다.
대중의 보편적인 생각은 잘못 풀리면 집단이기주의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내것 지키고 싶다고, 그게 잘못된 거냐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만, 네게 흉기를 들여대고 정당한 네 것을 빼앗으려 들면 당연히 지켜내야한다.(이것도 문제가 많긴 하지만 다음에 다시 풀어보고 일단 넘어가자.)

필자가 말하는 건 국가주의, 민족주의, 호전성 같은 사고방식은 자칫 잘못하면 정신의 흉기가 되기 쉽상이라는 것이다.그런 감성들이 무력과 부합하면 그게 바로 전쟁으로 이어지는 거다. 규모가 커지고 더 잔악무도해진다는 차이만 있지 뒷골목 양아치들 나와바리 싸움질이랑 차이가 없다.

2차세계대전 때 독일, 이태리, 일본이 저지른 만행이 증명하고 있다.
지금에 와선 미국이 자칭 경찰국가라는 미명아래 행하는 짓거리들도 양아치 짓에 지나지 않는다. 경찰국가는 개뿔, 깡패국가다. 힘 있다고 함부로 휘두르며 나와바리 넓히고 싶다는 거지... 힘이란 건 제 꼴릴 때 함부로 휘두르기 위해서 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부족한 사람 돕기 위해 기르는 것 아니더냐?
아마도 우리들 양심의 교과서엔 그렇게 새겨져 있지 싶은데!

역사를 바로 잡는 노력은 해야겠지만,
화풀이식의 저딴 지도는 그리지도 말고 보더라도 기분 좋아질 것도 없다!
저딴 것 보고 기분 좋아라 하는 화상들 보면 같은 한국인으로서 쪽 팔린다.
제발 국가주의, 민족주의에서 벗어나길 기원할 뿐이다.
저딴 말도 안 되는 상상이나 하고 있으면 미래의 역사가 제대로 쓰여지겠냐?


국경이 사라진 세상
국가라는 단위가 하나로 통합된 세상
민족관이 없어진 세상
언어가 하나로 통일된 세상
그런 세상이 도래하길 바랄 뿐입니다.

※ 이 글은 인간 내면 속에 깃든 더럽고 추잡한 근성에게 전하는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