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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22일 토요일

지금 이 세계는 실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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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도서]

보이는 세계는 진짜일까? - SF영화로 보는 철학의 물음들 ∥ 조용현 (지은이) | 우물이있는집
이성. 진리. 역사 | 원제 Reason, Truth and History ∥ 힐러리 퍼트넘 (지은이), 김효명 (옮긴이) | 민음사
나무 | 원제 L'Arbre des Possibles ∥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은이), 뫼비우스(그림), 이세욱 (옮긴이) | 열린책들

| 들어가며 |

20세기가 저물어갈 무렵 영화사에 한 획을 긋는 SF 액션 영화가 한 편 나왔다.
전세계 수 많은 사람들이 관람한 워쇼스키(앤디, 래리) 형제 감독이 내 놓은 매트릭스이다.
시리즈 전편을 아울러 이 시리즈 처럼 호평과 혹평이 난무하는 영화도 드물지 싶다.
영화의 흥행과 평에 대한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니, 이 문제는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다시 포스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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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매트릭스 시리즈는 철학자 힐러리 퍼트넘의 저서 "이성·진리·역사"에 나오는 사상에 철학적 근간을 두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 1장에 실려 있는 "통 속의 뇌 Brains in a vat"이라는 논문에 스며 있는 분석철학(퍼트넘의 철학을 '내재적 실재론*'이라고 함)이 그 근저이다.

"통 속의 뇌"에 대한 간추린 얘기는 일전에 좀 깊게 다룬 적이 있으니 페이지 아래의 태그를 참조하면 될 것이다.

프랑스의 소설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집인 「나무」에 보면 "완전한 은둔자"라는 단편소설이 한 편 실려있는데, 이 단편도 힐러리 퍼트넘의 "통속의 뇌"에 철학적 근저를 두고 있다.

"완전한 은둔자"의 내용을 짧게 피력하자면 이렇다.
구스타브 루블레라는 의학박사가 있는데, 언젠가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들려줬던 말(「네 안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그러했다. 네가 하는 일은 그저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배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이 마치 불교의 화두처럼 그의 머리 속을 떠돌다가 진짜로 뇌만을 남겨두고, 수 대를 이어서 '생각의 바다'속을 헤매이며, 생각만 하다가 그의 뇌가 그만  …… (스포일러성 문구라서 생략함) 되어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어찌보면 허무의 극치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이 소설을 처음 접한 사람은 그 아이디어가 너무 쇼킹해서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겠지만,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나, 철학서를 많이 접해 본 사람들은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도 그럴것이 "완전한 은둔자"는 힐러리 퍼트넘의 "통 속의 뇌"의 소설 패러디판이라고 보면 되기 때문이다.

한 철학자가 "상념의 바다" 속을 떠돌다 건져 올린 진주 같은 관념이 전세계인의 감동을 일궈낸 영화로 탈바꿈하기도 하고, 소설로 모습을 바꿔 우리들 곁에 친숙한 모습으로 다가온 것을 보면 새삼 세상을 바꾸는 것은 자본의 흐름도 아니고, 대단한 예술가의 예술 작품도 아니라, 힐러리 퍼트넘이나 완전한 은둔자 소설의 구스타브 루블레 처럼 책상머리에 가만히 앉자서 생각의 바다 속을 부유하는 철학자들이라는 생각이들기도 한다.


| 이 세계는 실재하는가? |
이 세계가 실재하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수 있을까? 물질문명의 황금기라고 해도 누구 하나 반박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시대에 이런 질문은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얘기거나 봉창두드리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잘 살아왔고, 잘 살고있고, 틀림없이 앞으로도 잘 살 것이다.

'실재'에 대한 문제의 근원을 캐 들어가면 그 근원이랄 수 있는 큰 뿌리를 몇몇 개 발견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철학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현대에도 지대한 영향을 알게 모르게 미치고 있는 이름과 맞부딪히게 되는데, 플라톤 Plato이란 인물이며,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실재'에 대한 단 하나의 문제로 평생을 고민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볼수 있다. 플라톤 핵심 사상인 '이데아 론'이 바로 지금 얘기할 화두인 '실재'에 대한 사상의 원뿌리이다. 플라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는 서양철학의 전반을 안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영국의 철학자인 화이트헤드는 "서양의 2000년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라고 말했으며, 시인 에머슨은 "철학은 플라톤이고, 플라톤은 철학" 이라 평하였다).

- 이 세상은 그림자다!? : 플라톤의 이데아(Idea) 론과 매트릭스의 가상현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플라톤 사상의 정수 精髓)다. 이데아론을 한마디로 압축하기는 힘들지만, 굳이 줄여서 설명하자면,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Idea)는 근본적으로 영원불변하고 비물질적인 본질이고, 우리가 보고 감각하는 현실적, 시각적 대상들은 단지 이데아의 조악한 모사이거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를 깊이 있게 본 사람은 위의 밑줄 친 부분이 예사로 보이진 않을 것이다. 밑줄 친 부분을 영화 매트릭스적으로 환원해서 다시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우리가 보고 감각하는 현실적, 시각적 대상들은 단지 매트릭스가 만들어 놓은 가상현실 프로그램일 뿐이다.

영화 매트릭스 1탄에서 이데아론이 극명하게 그려진 부분이 있다.
매트릭스가 제공한 기나긴 꿈속 세상에서 네오를 끄집어낸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현실과 매트릭스가 만들어 둔 가상의 세계와의 차이점을 얘기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매트릭스의 개념을 설명한 부분이니 집고 넘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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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어스:이게 '컨스트럭트'일세. 로딩 프로그램이지. 뭐든지 로드(load)할 수 있어. 옷이든, 장비든, 무기든…… 훈련 시뮬레이션이든 필요한 건 모두 다.

네오:프로그램 안이라구요?

모피어스:그렇게 믿기가 힘든가? 자네 옷도 바뀌었고, 머리와 몸의 구멍도 없어. 머리 모양도 다르고. 지금 자네의 모습은 '잉여 자기 이미지'란 거야.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을 디지털화한 거지.

네오:진짜가 아닌가요?

모피어스:진짜가 뭔데? 정의를 어떻게 내려? 촉각이나 후각, 미각, 시각을 뜻하는 거라면 '진짜'란 두뇌가 해석하는 전자 신호에 불과해. 이게 자네가 아는 세상이야. 바로 20세기 말의 모습이지. 이젠 매트릭스라는 신경 상호작용 시뮬레이션의 일부로만 존재하지. 자넨 꿈나라에서 살았었네 네오. 이 세계가 오늘날의 세계야. 환영하네. 여기가 진실의…… 사막이네. 우리도 확실히는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인류는 21세기 초의 어느 시점엔가 스스로 경탄하며 AI의 탄생을 한마음으로 축하했다는 거야.

네오:AI라면……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모피어스:기계들을 대량 생산해낸 단일 자의식이었지. 우리와 그들(AI에 기반을 둔 기계) 중 누가 먼저 공격했는진 몰라. 다만 인류가 하늘을 불태운 건 확실해. 당시의 기계들은 태양력에 의존했고, 에너지의 원천인 태양이 없으면 그들은 멸망할 거라고 믿었지. 인류는 생존을 위해 기계에 의존해 왔어. 운명이란 모순적일 때가 많아. 인체는 120볼트 건전지 이상의 전기를 발생하고 체열은 2만 5천 BTU가 넘어. 기계들은 핵융합과 결합하여 필요한 에너지를 얻었지. 끝도 없이 널린 벌판이야 . 인간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재배되는 거지. 나도 오랫동안 믿지 못 했어. 그러다가 직접 본 거야 죽은 자를 액화시켜 산 자에게 주입하는 걸. 끔찍하리만치 정확한 기계들을 보면서 난 명백한 진실을 깨달았지.
매트릭스가 뭘까? 통제야. 매트릭스는 컴퓨터가 만든 꿈의 세계야. 우릴 통제하기 위한 거지. 인간을 이것(건전지)으로 만들려고…….

네오: 아냐! 믿을 수 없어. 불가능해!

모피어스:믿기 쉽다고는 안 했어. 진실이라고만 했지.

네오:그만 해! 나가고 싶어! 나가게 해 줘!

트리니티:진정해, 네오.

네오
:빨리 뽑아! 뽑아 버려……. 날 만지지 마, 저리 가! 난 안 믿어! 안 믿는다구! 안 믿어

사이퍼:미쳐 가요.

모피어스
:숨을 쉬어, 어서!

… (네오가 기절한 후, 장면 전환) …

네오:다시 돌아갈 순 없죠?

모피어스:그래. 돌아갈 수 있다면 가겠나? ……
(39:31 ~ 44:43)


-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
동굴의 우상은 원래 플라톤이 자기 학설을 설명하기 위하여 말한 유명한 동굴의 비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그의 대화편 중 '국가'편의 제7장에 소크라테스와 그라우콘이라는 젊은 학도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화의 형식으로 나오고 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몇 사람의 죄수들이 있는데, 그들은 어린시절부터 그 곳에서 발과 목에 사슬에 묶여서 머리를 뒤로 돌릴 수조차 없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그 죄수들은 단지 그들의 전방에 존재하는 벽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죄수가 사슬이 풀리어 우선 동굴 안에서, 죄수들이 참이라고 바라보았던 벽면의 그림자가 거짓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사람은 동굴 밖으로 나아가 드디어는 햇빛의 실물 세계를 바라보게 되고 종국적으로는 해 그 자체를 바라보고 모든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예언자적 사명을 가지고 다시 그 암흑의 동굴속으로 들어와 동료였던 죄수들에게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세계가 모두 그림자의 그림자도 안 되는 형편없는 허위라는 것을 역설하지만, 죄수들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고, 나중에는 그들의 사슬을 풀고 그들을 동굴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는 그를 쳐 죽여버리는 결말로 끝나버린다. 이 유명한 동굴의 비유는 플라톤이 동굴속의 암흑의 세계를 인간의 감각적 인식의 세계 즉 그림자와 같은 환영의 세계라고 보고 동굴 밖의 광명(빛)의 세계를 예지계, 실재계, 즉 이데아 세계라고 보아 인간의 감각인식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려고 든 비유이다.」(출처:김용옥, 1987, 『중고생을 위한 철학강의』, 통나무, 230-231)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는 하나의 가짜상, 즉 본질적인 모습을 따라한 것에 불과하고 햇빛 아래에서의 모습이 실제 세계 즉, 이데아라는 것이다. 그러나 햇빛속의 모습 또한 진정한 이데아의 가짜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이런식으로 플라톤은 이데아와 감각적 인식의 세계를 구별하고 이데아가 여러개의 층으로 나뉘어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 이데아의 층은 피라미드처럼 나뉘어서 아래의 이데아는 가장 본질적이고 포괄적인 최상의 이데아를 향해 나아간다고 봤다.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에서 보듯이 '인식'이란 것은 지극히 상대적이란 사실을 알수 있다. 동굴에 갖혀서 지내던 때는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가 당연히 본질이었지만, 그 동굴의 테두리 바깥에서 바라보게 된 사람은 그동안 자신이 바라봐왔던 세상은 사실은 본질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듯이, 우리가 현실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현상계도 사실은 더 큰 테두리에 둘러싸인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 플라톤의 동굴의 우상의 비유를 적용하면, 우리의 감각 기관을 통해서 알고 있는 현실이라는 현상계는 사실 컴퓨터가 만들어둔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이며 가상현실 즉 꿈속 세상인 것이다.

만약 모피어스의 말이 사실이고, 우리가 감각의 인식을 통해서 알고 있는 이 세계가 영화 매트릭스 속에 그려져 있듯이 일종의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의해 구축된 꿈속이라면, 혹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와 같이 무언가 알수 없는 테두리 속에 갖힌 그림자에 불과하다면 당신은 빨간약을 먹고 진실이나 이데아의 세상을 알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파란약을 선택해서 모든 것을 잊고 다시 꿈속의 일상이나 동굴속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가?

'인식'이란 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의지의 힘으로 얼마든지 또다른 세상(그게 이데아든 또다른 무엇이라고 호명하든)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의지의 힘으로 현실의 테두리 바깥의 또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혹은 그런 방법이 발견이 되긴 한 것일까? 만일 방법이 있다면 빨간약을 집어 삼킬 용기가 있는가? 난 한 번 끝까지 가 보기로 한다. 가는 거야~  


| 이 세상은 진짜로 매트릭스인가? |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우연히 이데아의 세계를 보게 된 죄수의 결말은 죽임을 당한 비극으로 끝났다. 현실세계에서도 죽임을 당할까?

禪수행을 통해, 혹은 인도의 요가 수행을 통해, 또는 알수 없는 힘에 의해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어의심치 않는 현상계가 사실은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은 죽음(육의 죽음이 아닌 의식 혹은 인식의 죽음)을 당하는 것일까?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 때문에 죽임을 당하거나 자살했다는 사람에 대한 소식은 아직 접해본 적이 없다.

매트릭스에서 빨간약을 먹고, 현실(이라고 얘기하는)에 돌아왔던 사이퍼는 동료를 팔아서 다시 매트릭스 속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만일 당신이 어느날 깨달음을 얻고서 이 현실이 사실은 이데아의 그림자라는 것을 알았거나, 혹은 신이 꾸는 꿈속 이야기거나, 아무튼 '나'라고 믿어왔던 자아가 허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면 당신은 계속 이 매트릭스 속에서 꾸역꾸역 삶이 계속 되길 희망하는가?


|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보는 실재론 |
이 글을 쓰다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며칠 전 '우부메의 여름'이라는 일본 영화를 보다가 영화의 한 씬에서 양자역학에서 보는 실재론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이 글이 문득 떠올라서 일단 붙혀둔다. 영화에 나오는 양자역학에 대한 얘기가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긴 하지만, 앞으로 이 글을 연결해나갈 제재가 될 듯하여 맛보기로 붙혀두기로 했다.


양자역학적 관점에서의 실재론에 대한 깊은 얘기는 차후에 이어가기로 한다.
(첨부일 : 2008/11/12/23:58:10)

아직 정리가 덜 돼서 여기 까지만 새겨둠.
계속…….


정리가 끝나는 시점에 덧글 금지를 풀겠습니다. 정리중인 글에 덧글 달리면 안될 것 같아서 덧글 금지해뒀습니다.



여기에 소개된 책 한권 정도는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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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관련서적]

- 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나 - 매트릭스의 철학 매트릭스의 과학 ∥ 글렌 예페스 (엮은이), 민병직, 이수영 (옮긴이) | 굿모닝미디어
-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 슬라보예 지젝, 윌리엄 어윈 (지은이), 이운경 (옮긴이) | 한문화
- 매트릭스, 사이버스페이스 그리고 선 ∥ 오윤희 (지은이) | 호미
- 음악과 매트릭스 ∥ 윤성원 (지은이) | 세종출판사(이길안)
- 철학으로 매트릭스 읽기 ∥ 김범인, 김시천, 박영욱, 심혜련, 이영의, 이정우, 조광제 (지은이) | 이룸

2007년 5월 15일 화요일

이성, 진리, 역사:힐러리 퍼트넘

이성 진리 역사 표지
이성, 진리, 역사 - 현대사상의 모험 9
원제목 : REASON, TRUTH AND HISTORY
지은이 : 힐러리 퍼트넘
옮긴이 : 김효명
출판사 : 민음사
책정가 : 18,000원
책정보 : 2002-08-08 | 374쪽 | 양장 | ISBN 8937416093



| 리뷰 |
현대 영미 철학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 철학자 힐러리 퍼트넘의 주저. 수학, 물리학, 언어학 등 기초 학문들을 오가며 철학의 근본 문제를 파헤치는, 분석 철학의 고전이며, 합리성의 정체를 다양한 철학적 논변을 통해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데이비드슨D. Davidson, 크립키S. Kripke, 설J. Searle, 김재권*, 더밋M. Dummett과 함께 현대 영미 철학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철학자로 손꼽히는 힐러리 퍼트넘의 주저『이성ㆍ진리ㆍ역사』로, 옥스퍼드 출판부와의 정식 계약을 거쳐 새로이 편집, 교정하여 출간된 것이다.

수학, 물리학, 언어학 등 기초 학문들을 오가며 철학의 근본 문제를 파헤치는, 분석 철학의 고전 이 책의 저자 퍼트넘은 일찍이 과학 철학자 라이헨바흐H. Reichenbach로부터 물리학과 과학 철학을 배웠고, 20세기 미국의 대표적 철학자인 콰인W. V. O. Quine으로부터 수리 논리, 수학 기초론 등을 배웠다. 그리고 MIT의 촘스키N. Chomsky, UCLA의 카르납R. Carnap, 몬터규R. Montague 등과 같은 미국의 지도급 언어 철학자 내지는 분석 철학자들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이처럼 수학, 물리학, 언어학 등의 기초 학문 분야에서의 기본 훈련을 거쳤기 때문에 저자의 철학적 시야는 남달리 깊고 넓다고 할 수 있으며, 전통적인 여러 철학적 문제들에 접근하는 방식과 시각도 새롭다. 예를 들면 심리 철학 분야에서의 기능주의functionalism, 언어 철학 분야에서의 직접 지시direct reference 이론, 양자론에 대한 양자 논리적 접근 방법 등의 이론적 깊이를 통해 저자는 <합리성>에서 비롯되는 서구 철학의 근본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이론적 관심을 도덕, 정치, 역사 등의 실천과 관련된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킨다.

<내재적 실재론>을 통한 현대 철학의 위기 타개
이 책에서 저자는 합리성의 정체를 다양한 철학적 논변을 통해 밝히고 있다. <합리성>은 철학의 근본 문제들을 설정하고 해결하는 데 있어서 서구인들이 전통적으로 하나의 보편적 기준으로 삼아온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서양 철학은 합리성에 연관된 문제들을 항상 대립적, 이분법적 방식으로 다루어왔다. 이런 사고의 경직화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철학적 대화나 토의는 불가능했고, 심지어 철학 자체의 존립마저 위협받게 되었다. 서양 철학에 있어서, 철학의 존립에 대한 위협은 바로 합리성에 대한 위협과 통한다.

저자는 바로 이 점을 현대 철학의 위기로 간주하고 있다. 고전적 회의주의나 현대의 문화적 상대주의가 출현하게 된 역사적 동기를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결코 그들과 운명을 같이할 수 없었던 저자는 이 위기가 어떻게든 극복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인간의 고질적인 이분법적 사고의 뿌리부터 파헤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철학적 문제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고, 합리성의 정체를 묻는 근본적인 문제도 새로운 시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저자가 <형이상학적 실재론 아니면 전체적 상대주의>라는 이분법에 만족하지 않고 제3의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이 이른바 <내재적 실재론> 또는 <내재적 상대주의>라는 입장이다. 내재적 실재론에 의하면 진리란 실재 또는 사실과의 대응으로 간주될 수 없다. 오히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판가름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이른바 <합리적 수용 가능성rational acceptability>의 기준이다. 즉 합리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진리가 결정된다. 그렇다고 해서 합리적 수용 가능성이라는 기준이 진리를 단순히 상대적인 것으로 전락시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합리적 수용 가능성이라는 기준은 비상대적인 진리의 개념을 합리적 탐구의 이상(理想)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내재적 실재론의 입장은 말하자면 합리적 탐구를 위한 모종의 기준이 있다는 뜻이지 <어떤 것이든 좋다>는 식의 무기준적 상대주의와는 다르다는 뜻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형이상학적 실재론에서 말하는 단일한 세계, 즉 우리들의 믿음들이 참이라면 그 믿음들에 그대로 일치될 통일된 세계를 설정하지 않고서도 진리를 합리적 탐구의 이상으로 삼을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믿을 필요가 있는 세계는 우리의 합리적 탐구에 대하여 <외적으로 externally> 있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으로internally> 있는 세계이다. 따라서 단 하나의 세계, 단 하나의 진리만 있다는 생각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여러 가지 다양한 탐구가 있을 수 있고, 다양한 탐구에서 사물을 바라다보는 우리의 시각도 다양함에 따라 세계도 다양하고 진리도 다양하다는 것이 내재적 실재론의 기본 입장이다.

퍼트넘은 이러한 논의를 또한 도덕과 가치의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시키고 있다. 그는 합리성이라는 것이 과학에만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라고 본다. 도덕적 진리도 과학적 진리와 마찬가지로 합리성에 바탕을 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퍼트넘에 의하면 합리성의 개념이 그 근원에 있어서는 인간의 번영, 즉 도덕과 가치라는 전체적인 개념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 따라서 퍼트넘은 과연 무엇이 인간의 번영을 가져다줄지를 규정해 주는 초역사적이고 범문화적인 도덕 원리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시인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도덕과 가치의 문제도 단순히 각 문화에 상대적으로 생긴 현상에 불과하고 따라서 극히 우연적이고 인습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상대주의적 도덕관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에서 추구하는 진리가 합리적인 과학적 탐구의 이상이라고 한다면, 합리적인 도덕적 탐구에 있어서도 이상이 있다고 가정할 수 있으며, 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는 도덕적 진리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퍼트넘의 입장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이성과 진리의 초역사성만 강조하는 것도, 그리고 그 정반대로 이성과 진리의 역사성만 강조하는 것도 사물과 세계를 정확하게 보지 못한다는 것이 퍼트넘의 주장의 요지이다. 퍼트넘이 본 인간의 이성과 진리는 초월적 의미와 내재적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퍼트넘은 만약 이성과 진리의 초월성, 즉 초역사성을 간과한다면 푸코M. Foucault의 문화적 상대주의, 쿤T. S. Kuhn이나 파이어아벤트P. Feyerabend의 상대주의적 과학관, 벤담J. Bentham의 도덕적 상대주의 등과 같은 잘못된 이론에 빠지기 쉬우며, 또 그 정반대로 이성과 진리의 내재성을 망각한다면, 즉 이성과 진리가 항상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과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이상 언어, 검증 원리 등과 같은 고정된 기준에 얽매여 있는 실증주의자들의 철학적 환상에 빠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 통 속의 뇌 Brains in a vat |
힐러리 퍼트넘의 '통 속의 뇌' 는 현상계에 대한 회의론을 부각시킴으로써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을 현대적으로 검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영화 매트릭스의 사상적 버팀목이 되기도 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 - 완전한 은둔자 장을 읽어보세요.
어떤 사악한 과학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는 한 사람의 뇌를 육체에서 분리하여 이 뇌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줄 영양액이 담긴 통 속에 옮겨 담았다. 뇌의 각 신경 조직은 초과학적 컴퓨터에 연결되고, 이 컴퓨터는 뇌에 전기적 자극을 주어 우리의 감각 경험과 똑같은 질적 정보를 준다. 그 사람(뇌)의 입장에선 환경, 각종 사물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존재하고 또한 완벽히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모든 것은 컴퓨터와 신경 세포 간의 전기적 자극의 결과일 뿐이다.

통 속의 뇌
컴퓨터는 그 사람이 손을 들어 올리려 한다면 손이 올려지는 느낌을 줄 수도, 그리고 이를 시각 정보를 통해 보이도록 할 수도 있다. 게다가 그 사악한 과학자는 프로그램을 변형시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과학자가 원하는 어떠한 상황이나 사건을 경험하도록 할 수도 있으며, 뇌수술을 하였다는 기억을 삭제하여 그 사람이 원래는 이런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 자체를 깨닫지 못하도록 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의자에 앉아 '어떤 사악한 과학자가 사람들의 뇌를 떼네어 뇌를 계속 살아 움직이게 할 영양분이 담긴 통 속에 집어 넣고 이런저런 조작을 한다' 는 재미있으면서도 불합리한 가정을 기술한 글을 읽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제 우리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사실은 통 속에 들어 있는 두뇌라고 가정해 보자. 어쩌면, 사악한 과학자조차도 존재하지 않고 단지 통을 생산하고 두뇌들을 관리하는 기계가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이 기계는 우리로 하여금 개별적이지 않고 집단적인 환각을 일으키도록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사람에게 이야기를 한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나의 말이 상대의 귀에 음파로써 다다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입과 혀가 없고 상대에게는 귀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말을 내뱉을 때 나의 뇌에서 발생한 전기 신호가 컴퓨터로 전달되고 컴퓨터는 이를 인식하여 나의 뇌에는 나 자신의 음성과 입의 움직임 같은 '말을 한다는 느낌' 을, 상대의 뇌에는 음성 신호와 말을 하는 나의 모습 같은 '말을 듣는다는 느낌' 을 전달하게 된다.

이런 경우 어떤 의미에서는 상대와 나는 실제로 의사 소통을 한다고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의사 소통의 메커니즘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 지라도, 결과적으론 내가 상대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상대에게 전달되고 있으며 상대는 나의 말을 듣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 속의 뇌' 의 인식론적, 존재론적 위상은 어떻게 되는가.
나는 통 속의 뇌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자신에게 몸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이 세계가 실재하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내가 알고 있는 진리들은 진정 참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나 자신은, 실제로 '존재' 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 저자 소개 |
힐러리 퍼트넘
힐러리 퍼트넘 Hilary Putnam
지은이 힐러리 퍼트넘은 1926년에 태어났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촘스키와 우정을 나누며 독일 문학과 어학 및 언어학에 열중했고, 하버드 대학 철학과 대학원으로 진학해 그곳에서 1년 동안 머물면서 콰인W.V.O.Quine으로부터 현대 논리학을 배웠다. 그후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로스앤젤레스)으로 옮겨가서 지도 교수 라이헨바흐H.Reichenbach로부터 과학 철학을 배웠으며, 1951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노스웨스턴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에서 강의했으며, MIT에서 과학 철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미국철학회 동부 지구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1965년 이후엔 하버드 대학 철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 저서 -
Philospohy of Logic(1971), Mathematics, Matter and Method(1975), Mind, Language and Reality(1975), Meaning and the Moral Science(1978), Realism and Reason(1983), The Many Faces of Realism(1987), Representation and Reality(1988), Realsim With a Human Face(1990), Renewing Philosophy(1992), Words and Life(1994), Pragmatism: An Open Question(1995), The Threefold Cord: Mind, Body and World(2000) 등의 저서가 있다.

| 목차 |
- 옮긴이 서문
- 저자 서문

1장 통속의 두뇌
2장 지시의 문제
3장 두 개의 철학적 관점
4장 정신과 신체
5장 합리성의 두 개념
6장 사실과 가치
7장 이성과 역사
8장 합리성의 현대적 해석에 끼친 과학의 영향
9장 가치, 사실 그리고 인식

- 부록
- 옮긴이 해제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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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권
수반이론(심물 수반론, Psychophysical Supervenience - 심적인 속성과 물리적 속성과의 관계를 해석하는데 새로운 지평을 연 이론)으로 유명하신 세계가 인정한 분석철학자이십니다. 이전의 현대 분석철학의 흐름이었던 ‘심신 동일론’, ‘기능주의’ 등을 비판하며 나온 것이 심물(혹은 신) 수반론이라는 겁니다. 자세한 소개는 현대 분석철학쪽 공부를 좀 깊이 있게 해봐야 알 수 있는 내용이라 이 정도로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