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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8일 화요일

법정에 선 다윈 (2부작) EBS 다큐-⑩

법정에 선 다윈 (2부작) EBS 다큐-⑩

소 개
제①편:법정에 선 다윈 - 진화론 對 지적설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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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정보 |
방송:3/11 (화) 21:50 ~ 22:40 [EBS 다큐-⑩]
원제:Judgement Day: Intelligent Design on Trial
감독:Gary Johnstone/Joseph McMaster
배급사 및 방송:WGBH, 미국 PBS (2007)

| 줄거리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소도시 도버는 2004년 미 전역을 달군 논쟁의 시발점이었다. 논쟁의 핵심에는 진화론 지지자들과 지적설계론 지지자들의 갈등이 있었고, 이것이 표면화된 계기는 도버 교육위원회의 새로운 과학교육 방침 때문이었다. 도버 교육위원회는 도버 고등학교 과학교사들에게 1분짜리 성명서를 읽어주게 했다. 진화론은 검증된 진실이 아니며,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다른 가설들이 존재하며, 지적설계론이 그 중 하나라는 내용이었다. 과학교사들은 성명서 낭독을 거부했고, 학부모 11명은 도버 교육구와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새로운 과학 교육방침이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천명한 헌법 수정조항 1조를 위반한다는 이유였다. 도버가 둘로 갈라진 가운데 법원은 지적설계론이 과학인지 종교인지를 판단하게 된다.

미국에서 진화론 논쟁이 시작된 건 1925년 진화론을 가르친 테네시주의 과학교사 존 스코프스가 체포되면서부터였다. 스코프스 재판 이후 미국의 과학교과서 출판업자들은 진화론 관련내용을 교과서에서 삭제했고, 이는 수십 년간 미국 과학교육에 타격을 준다. 1987년 미 연방대법원은 창조론 수업을 금지시켰고, 이후 과학교사들은 진화론을 가르쳐왔다. 다윈의 진화론은 1859년 출판된 <종의 기원>에 처음 나타난다. 다윈은 비글호 항해를 통해 수집한 표본들을 바탕으로 자연선택과 진화의 가설을 수립했다. 생물 종들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오랜 기간에 걸친 자연선택을 통해 종들이 분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모든 생명체는 공통 조상을 갖고 있으며, 인간이 유인원에서 진화했다는 것 역시 진화론에 포함된다. 신이 6일만에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 기독교도들에게 진화론은 신성모독이었다. 도버에는 원리주의 성향의 교회가 많고, 이는 진화론 대 지적설계론 논쟁의 배경이 됐다. 원고측은 진화론이 과학적으로 훌륭한 가설임을 증명하기 위해 화석과 염색체의 구조 등의 증거를 제시했다. 모든 과학이론은 가설이며, 진화론은 150년간 각종 연구를 통해 검증돼왔다는 점도 설명했다. 이제 피고측의 차례다. 피고측은 지적설계론도 과학임을 입증할 수 있을까?


제②편:법정에 선 다윈 - 판결,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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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정보 |
방송: 3/12 (수) 21:50 ~ 22:40 [EBS 다큐-⑩]
원제:Judgement Day: Intelligent Design on Trial
감독:Gary Johnstone/Joseph McMaster
배급사 및 방송:WGBH, 미국 PBS (2007)

| 줄거리 |
지적설계론은 유기체들의 구조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진화만으로는 그 복잡성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본다. 지적설계론자들은 모든 생명체가 처음부터 지금과 똑같은 상태로 ‘지적인 힘’에 의해 설계됐다고 주장한다. 피고측 변호사들과 증인단은 박테리아 편모를 지적설계의 증거로 제시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모터로 평가받는 박테리아의 편모 같은 기관이 출현하려면 우연과 자연선택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피고측의 주장이었다. 피고측은 진화론이 인간의 면역체계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원고측은 박테리아 편모가 진화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증거와 진화론을 이용해 면역체계의 기원을 설명하는 논문들을 증거로 제시한다. 또한 도버 교육위원회가 참고도서로 선정한 <판다와 사람>이 창조론을 바탕으로 기획됐으며, 교육위원 몇 명에게 종교적 의도가 있었음을 주장했다.

존스 판사는 지적설계론이 창조론의 재탕이며, 도버 교육위원회는 종교적 의도를 갖고 지적설계론을 도입했다고 판결한다. 진화론이 완벽한 건 아니지만, 과학적 가설이 모든 걸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검증 불가능한 가설을 도입하는 게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판결이었다. 최종판결에 앞서 치러진 교육위원 선거에서 도버 시민들은 지적설계론 반대론자들을 당선시키며 논쟁에 대한 의견을 표명했다. 하지만 판결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도 많다. 존스 판사는 협박 메일을 받았고,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다. 원고측과 피고측 변호사 변호사들은 모두 미국의 진화론 논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오랜 기간 계속될 거라고 전망한다.


종교에 관한 글은 덧글과 트랙백을 막아둡니다. ^^
종교와 과학이 왜 이렇게 싸워야 하는 건지, 일반상식선에서 생각해보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진화론이 허술한 구석이 난무한다하여, 분명히 과학이 아닌 종교적 견지에서 시작된 지적설계론적 창조과학을 학교 생물 시간에 함께 편성해서 가르치자는 일부 창조론자들의 생각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설령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창조주께서 과학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창조하고 생물을 창조하셨다 하더라도 그 과학은 인간의 범주를 넘어 선 과학이지, 결코 인간의 범주에서의 과학이 아닐 것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창조주의 생각을 스스로의 힘으로는 알 수도 없고, 창조주께서 어떤 원리로 생명을 창조하셨는지에 대한 것은 창조의 결과물인 각종 껍데기들만 볼 수 있을 뿐, 진정한 생명 원리는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DNA, 지놈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이바구는 꺼내지 마시길... 그건 인간이 알아낸 것이지, DNA 같은 생명의 말단 요소들 자체가 창조주의 생명 창조의 원리는 아님.) 그렇게 창조주의 생명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창조'라는 말로 규정짓고, 그 창조의 힘을 추앙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과학계는 종교인들이 왜 굳이 지적설계론을 함께 가르치자고 주장하는지 그 마음의 말단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진화론을 옹호하는 원고측은 피고측인 지적설계론자들의 원 뿌리는 창조론자들이였으며, 그들이 학교 생물학 시간을 통해서 종교적 믿음을 가르치려고 든다고 우려하는데, 저는 꼭 그렇게는 보이지 않더군요. 원고측이 무슨 의도를 갖고서 그런 식으로 지적설계론자들의 생각을 몰아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지적설계론자들이 원 뿌리가 창조론자였다고 해서 그들의 생각 전체가 엉터리 주장이라고 단정짓는 분위기던데, 이건 정말 아니라고 여겨지더군요. 진화론자들인 원고들이 주장하고 나서는 진화론의 모순들은 왜 덮어두려고만 하는 건지... 그 깊은 이유야 과학자들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지적설계론자들이 주장하는 지적설계론을 함께 가르치면 사회 전체의 규범이 무너지고, 기준점이 없어진다는 식의 논리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가치 기준점이란 것은 그 기준이 되는 것이 완전해야하는 것입니다. 완전하기에 그것에 대해 의문점을 갖지 않고 따르고 지키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진화론이란 것이 과연 그런 가치 기준점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것인던가요? 진화론은 만고불변의 '법칙'이 아닙니다. 진화론은 생명 탄생의 원리에 대한 검증이 완전하게 되지 않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하나의 이론에 불과할 뿐입니다. 다윈이 '종의 기원'이란 연구서를 발표한 것이 1859년인데, 이론을 세운 이후 150년이란 오랜 세월동안 검증 중인 과학 이론이 진화론 이외에 또 있던가요? 제가 알기론 진화론은 영원히 검증이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더 솔직히 얘기하면 검증이 안 될 것이라고 봅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무한루프처럼 돌고 돌고 돌고... 계속 해서 회돌이만 할 듯합니다.) 백년, 천년 후에 과학적 사고방식을 기반으로 한 또다른 형태의 종교가 탄생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긴 이미 '다위니즘*'이란 말도 있긴 하네요. '논리적인 생각을 기반으로 한 종교' 어찌보면 말도 안 되는 종교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만, 현 과학계의 진화론에 대한 억지스러운 면이 있는 주장들이 세월이 흐르고 흘러 믿음으로 변질되지 않는다고 과연 어느 누가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요?

종교란 것도 어차피 그 처음은 한 사람이나 한 무리들의 억지주장에서 시작되었듯이 말이죠? 종교는 억지주장에서 시작되지 않았다고요? 자신이 종교의 창시자가 아니라면 아무도 알 수 없는 부분입니다. 아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종교의 창시자 자신도 억지주장인지 아닌지 조차도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은 환상이었는데, 그걸 하느님의 현현이다. 알라의 말씀이다.... 라고 자기합리화 내지는 그냥 믿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고요.

종교의 출발점이 이랬거나 저랬거나, 저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기로 했습니다. 예수님이 실제 인물이셨건, 가공의 단체건, 소설이건, 고대 신화의 윤색이건, 우주인이건 그런 피상적인 건 내 알 바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실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과거로 갈 수 있는 '웰즈의 타임머신'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그 이전엔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실제성에 대해서 '계셨다, 아니다. 가상의 인물이다'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종교가 그러하듯 역사 또한 믿음의 대상일 뿐이고,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광의적 의미로 보면, 예수님의 역사성을 믿는다는 것과 동격이라고 봐도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예수님은 2천년 전 유대 땅과 성경 속에 있는 인물이 아니라, 성경을 읽고 묵상 중에 들리는 말씀이십니다. 내 생각이 아니라, 내 속에 계신 말씀! 내 속에서 내게 바른 길을 제시해주시는 말씀! 예수님은 믿는 자의 마음 속에 말씀으로서 재림해 계시다는 재림신관을 정립해가고 있습니다. (신학 공부를 체계적으로 해본 적이 없어서 이런 식의 재림신학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요. 범신론, 만유내재신론류...) 이런 나의 신관을 두고, 일부 사람들은 1.5단이라거나 이단이라거나 신비주의자라고 몰아세울지도 모르겠지만, 믿음이란 내 속에서 발현되는 순간, 이미 기존의 교리와는 아무 상관없이 오로지 나와 신과의 소통일 뿐이라 여깁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근본주의에 입각해서 믿고 따른다 하여, 나 까지도 그 옭매인 틀 안에 갖혀서 함께 가야한다고 보진 않습니다. 왜 그들과 함께 가야하는가에 대한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외롭고, 고통스러워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기로 했습니다. 예수님도 무소의 뿔처럼 외롭게 자신의 믿음에 근거해서 혼자서 가셨습니다.

* 다위니즘 Darwinism
[명사]<생물>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을 바탕으로 진화를 설명하는 학설. 영국의 생물학자 다윈이 주장하였다. ≒다윈설·다윈주의.


| 참고할 자료 |
진화론 옹호측(新) 지적설계론 옹호측(新)
저자:리처드 도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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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데이비드 A. 로버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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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옹호측(舊) 지적설계론 옹호측(舊)
저자:리처드 도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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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마이클 베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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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1 - [영상/다큐멘터리] - 창조과학세미나:김명현 박사
2007/04/29 - [도서/추천도서] - 다윈의 블랙박스:마이클 베히

2007년 4월 29일 일요일

다윈의 블랙박스:마이클 베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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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블랙박스

지은이 : 마이클 베히
출판사 : 풀빛출판사
책정가 : 20,000원
408쪽


[책소개]
-
김영식(kingsi@hosanna.net)

옥스퍼드의 동물행동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저서인 「눈먼 시계공」 제1장에서 생물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생물학은 어떤 목적을 위해 고안(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복잡한 대상에 대한 학문이다."(리처드 도킨스, 「눈먼 시계공」, 민음사(과학세대 역, 1994), p.16)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우선 실제로 생물들은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무신론자가 보기에도 어떤 목적을 위해 설계(고안)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눈먼 시계공」 제2장에서 도킨스는 박쥐가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는 제2장을 쓴 목적이 설계의 환상을 심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그렇다면 왜 도킨스는 설계된 것으로 보이는 것들을 실제로 설계된 것이라고 결론 내리기를 거부하는 것인가? 그것은 도킨스가 보기에 설계라는 가정을 하지 않고 순전히 자연적인 메커니즘만 가지고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도킨스가 말하는 메커니즘은 바로 자연선택-돌연변이 메커니즘이다. 종의 생존에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변이들이 세대를 걸쳐 조금씩 누적되고, 이것이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면 생물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메커니즘이 정말로 모든 생명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면, "생물은 겉으로만 설계된 것처럼 보일 뿐 실제로 설계된 것이 아니다"는 도킨스의 주장은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 리하이 대학의 생화학자인 마이클 베히는 「다윈의 블랙박스」에서 도킨스의 "점진적으로 누적되는" 자연선택-돌연변이 메커니즘으로 설명될 수 없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가진 시스템들이 생물의 생화학 시스템에 매우 많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박테리아의 편모, 섬모, 혈액 응고 메커니즘, 세포 내 운송 시스템, 항원 항체 반응, 그리고 AMP의 생합성이 바로 전통적인 다윈주의가 설명할 수 없는 시스템들이다. 이런 시스템들은 전체 구성요소가 없다면 기능을 갖지 못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 생물의 생존에 큰 위협을 줄 수 있다.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이루는 구성요소들이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서 생겨났다고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5%정도의 구성요소가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갖는 시스템들은 구성요소가 없다면 작동을 하지 못하게 되고, 생존에도 별다른 이익이 없게 된다. 그런 시스템을 갖고 있는 생물은 그렇지 않은 생물들에 비해서 특별히 선택될 이유가 없게 된다. 오히려 불필요한 기관을 만들어 냄으로써 한정된 자원을 낭비하게 되어 그렇지 않은 생물들보다 생존에 불리하게 되어 자연선택에 의해 제거될 수 있다.

베히는 도킨스가 이야기하는 점진적인 방식으로 진화할 수 없는 시스템이 실제로 생물들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였다. 그렇다면 도킨스의 "생물은 설계된 것으로 보이지만, 설계를 가정하지 않고서 자연적인 설명을 제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존재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설계된 것이 아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베히는 더 나아가서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설명하는 연구가 전혀 없었음을 지적한다. 그 동안 진화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놀랍게도 생화학에서 발견되는 환원불가능하게 복잡한 시스템들의 진화에 대해서 제대로 된 연구가 없었다는 것이다. 말로는 진화적인 조망이 아니면 생화학과 같은 학문이 불가능할 것처럼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매우 대담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베히의 책이 나온 후에, 베히의 이런 주장에 반대하며 생화학의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의 진화를 설명한다고 주장되는 많은 논문들의 목록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반대자들이 제시한 이런 논문들의 내용을 실제로 살펴보면, 놀랍게도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의 진화를 설명하는 논문이 없다는 베히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그런 논문들의 반 이상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과 전혀 상관 없는 단순한 DNA 염기서열 비교나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분석한 논문들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분자의 진화를 설명한다는 논문들도 환원불가능한 복잡성하고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거나, 소설과 다를 바가 거의 없는 가상적인 시나리오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서 가장 그럴 듯한 논문조차도 '여러 가지 가상적인 분자 시스템들을 설정해 놓은 후에, 진화가 옳다는 전제하에서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 진화되었어야할텐데, 현재 존재하는 시스템이 가상적인 여러 시스템 중에서 가장 효율적이다'는 내용의 논문이었다. 그 자체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 논문이지만 이 논문을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의 진화를 증거"하는 자료로 사용하게 되면, '진화가 참이라고 전제하면 진화가 참이 된다'는 순환논리에 빠지게 된다.

반대한다면서 내 놓은 자료들이 이런 것들에 불과하다면, 정말로 베히의 주장에 반대되는 자료를 정말로 가지고 있기는 한지 의심스러워지게 된다. 목록은 길게 제시하면서 정작 주제와 관련된 논문이 거의 없다면, 그토록 긴 논문 목록은 직접 논문을 검색해 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비전문가들을 속이기 위한 허세에 불과하다.

「다윈의 블랙박스」는 미국에서 처음 나왔을 때 Nature 나 Science 와 같은 과학적인 저널은 물론이고 Wall Street Journal 과 같은 비교적 대중적인 저널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에서 비평되었다. 그 책의 내용에 대한 평가도 극렬한 찬사에서 격렬한 비난에 이르기까지 극에서 극을 이루었다. 재미있게도 중앙일보의 서평과 동아일보의 서평을 보면, 한국에서도 이 책에 대한 평가가 처음부터 엇갈리고 있다. 앞으로 베히의 책이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분명한 것은 베히의 책은 단순히 창조냐 진화냐 하는 극단적인 이분법적인 논쟁을 넘어선 새로운 조망을 제시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 서평]
첨단 현미경 있었어도 다윈은 진화론을 폈을까
- 중앙일보 (2001년 2월 10일, 조우석 기자)
퀴즈 한토막. "『종의 기원』을 쓴 진화론자 찰스 다윈이 세포의 생물학적 현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있었을까?" 어이없는 질문 같지만, 진화론의 옳고 그름을 판독하는 열쇠를 쥐고 있기도 한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다소 의외일 것이다.

다윈 시절 현미경은 장난감 수준이었고, 따라서 세포에 관한 관찰이 태부족했었으며 생화학적 지식 역시 전무했다.

이를테면 신간『다윈의 블랙박스』 46쪽 대목에 보면 다윈이론의 열렬한 추종자라는 헤켈이 세포를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나온다. "세포란 마치 젤리와 다름없는 단순한 탄소 덩어리 정도가 아닐까?"

이 책의 저자는 진화론의 바로 이 허술한 지점을 맹공략한다.

공략무기는 20세기 후반에 집중적으로 이뤄진 생화학 분야의 최신 지식들.
이 분야 연구에서 대표성을 갖고 있는 저자 베히는 기본적으로 전문서이면서도 상당한 대중적 서술을 취하는 친절을 베푼다.

그럼에도 정독을 해야 따라갈 수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현재 유전공학의 성과가 밝혀낸, '다윈이 미처 몰랐던 블랙박스' 를 결정적으로 열어 보이며 진화론은 근거없다고 못박는다.

매우 논쟁적인 테마인 '진화론 대(對)창조론' 이라고 하는 오래된, 그래서 얼핏 진부해보이는 논쟁에서 뜻밖에도 창조론의 손을 번쩍 들어주고 있다.

문제는 이 책의 내용이 종교적 신념에 따른 논쟁이 아니라 이 시대의 핵심 자연과학의 성과를 등에 업은 생물학적 논쟁이라는 점인데, 결과적으로 진화론을 부정하게 되는 역설이 흥미롭다.

관심이 가는 것은 이 책에서 '창조론' 이라는 기독교 냄새가 물씬 나는 말은 단 한군데도 없다.

대신 생화학의 전문용어인 '지적(知的)설계(intelligent design)' 라는 말을 구사한다.

1991년 이후 등장한 최신 생화학 분야 용어인 이 용어 자체가『다윈의 블랙박스』의 핵심 개념이기도 하다.

다소 거칠게 정리하자면, 세포를 포함한 미시세계에서 이뤄지는 생명현상은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특징으로 한다는 것, 따라서 이런 것은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블랙박스' 이며 이런 시스템은 처음부터 정교한 지적 디자인 작업의 결과일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지적 설계' 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언급을 저자가 피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은 매우 정교하게 서술돼서 복잡한 분자식과 세포에 관한 정보가 들어가 있지만, 복잡한 대목을 성큼성큼 넘어가도 읽기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생명은 신의 작품" … 진화론에 대한 도전
- 동아일보 (2001년 2월 10일, 윤정훈 기자)

‘세포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우연에 의해 진화할 수 있다. 그러나 정교하고 복잡한 시스템을 가진 세포의 탄생은 진화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복잡한 전문 용어를 동원했지만 이 책의 메시지는 간결하다. 즉, 진화의 근본단위라 할 수 있는 세포의 생화학적 시스템은 이를 구성하는 화합물의 우연한 조합으로 만들어질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으로 개념화하고, 이는 전능한 ‘지적설계자’의 손길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생명은 신의 창조물’이란 기독교의 공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도발적인 기획이다.

이 책은 1996년 출간 즉시 기독교 뿌리가 깊은 미국에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철학적인 주장에 그쳤던 창조론 진영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고, 진화론 진영은 이를 논박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했다. 저자는 일약 필립 존슨, 윌리엄 뎀스키와 함께 미국 창조과학의 새 버전인 ‘지적 설계 가설’(ID·Intellctual Design theory)의 3인방에 올랐다.

민감한 사안인 만큼 이 책의 독해와 해석에는 신중한 균형감각이 요구된다. 기존 진화론이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약점을 근거로 진화론 체계 전체를 송두리째 전복할 수 있다는 논의 전개 방식이 불쾌할 수도 있다.

책의 내용에 대한 치명적인 반론은 베히가 세포의 탄생기원을 연구한 무수한 연구논문들을 참고하지 않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창조론자 사냥꾼’의 수장인 리처드 도킨스 같은 학자는 그를 ‘게으른 과학자’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신학계 일부에서도 당장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미스터리의 해답을 신(神)에서 찾는 태도에 이의를 달기도 했다.

이 책을 둘러싸고 ‘보스턴 리뷰’ 등에서 벌어졌던 흥미있는 논쟁은 리처드 도킨스 홈페이지(www.world―of―dawkins.com)에 마련된 패러디사이트 ‘베히의 빈박스’(Behe’s Empty Box)에서 볼 수 있다. 원서 『Darwins Black Box』(Simon & Schuster·1996).


'다위니즘*'은 아직도 진실인가

- 조선일보 (2001년 2월 10일)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이후 자연선택에 의한 돌연변이, 또는 적자생존 논리는 단순한 ‘종의 진화에 대한 설명’ 그 이상의 파급력을 사회에 미쳤다. 20세기의 사람들은 그래서 ‘종의 기원’ 이후 나타난 사회적 제현상을 패러다임의 변화로 해석했다.

이 책은 지난 세기 절대적 위치를 차지해 온 다윈적 패러다임에 대한 도전이다. 그 도전은 ‘종의 기원’ 패러다임이 시작된 바로 그곳, 즉 생물학 또는 생명과학에서 시작되고 있다. 저자 마이클 베히는 다윈의 자연선택론에 대한 심각한 문제제기를 주로 생화학적 정보기원의 관점에서 던지고 있다. 특히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이용, “어떤 생화학적 시스템들은 다윈의 메커니즘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증명한다.

뉴턴의 만유인력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도전받았듯, 20세기 절대진리의 하나였던 다위니즘 또한 새로운 가설의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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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베히 (Michael J. Behe).

1974년, 듀라셀 대학에서 화학으로 학사학위를 받았고, 1978년,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e of Health)에서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거쳐 뉴욕시립대, 퀸스칼리지의 조교수가 되었다.

그후 1985년에 펜실베이니아 베들레헴에 있는 리하이 대학으로 옮겨 현재 생명과학과에서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베히는 9남매의 아버지이며 가톨릭 신자이다.




* 다위니즘 Darwinism
[명사]<생물>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을 바탕으로 진화를 설명하는 학설. 영국의 생물학자 다윈이 주장하였다. ≒다윈설·다윈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