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23일 월요일

휴대폰 메모에서 발견한 나 #1

휴대폰 메모장을 뒤적이다. 때때로 일상 속으로 스며든 상념의 단편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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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페이퍼로 꾸며보다]

휴대폰 메모장 #1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과거와 미래도 없었다.
시공을 초월한 무한과 영원 속에 나는 떠 있었다.
그리고 우주 전체가 큰숨을 쉬었다가 내뱉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주의 호흡 하나하나가 신이라고 생각했다.
새긴 날:2008년 9월 25일(목) 오후 8시 36분

§ 저자가 누구였지? 내 글은 아닌 듯한데? 이차크 벤토프였나? 프리초프 카프라였나? 기억이 미아가 됐나보다……. 헌데, 야밤에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새겨둔 걸까?


구글에서 찾은 웰페이퍼의 원본 이미지 두 장(저작권은 누군가에게 있겠죠. 하나는 NASA 것)





2009년 3월 18일 수요일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시즌 19

PDA용 동영상 입니다.
클럽박스의 PDA 전용 영화관 http://clubbox.co.kr/june586 에 가입하시고 다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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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19


Bob Ross - The Joy of Painting 시리즈 19 - 각 회 완성도 캡춰 화면
각 그림을 클릭하시면 실제사이즈로 볼 수 있습니다. 13회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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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편 [Snowfall Mag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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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편 [Quiet Mountain L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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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편 [Final Embers Of Sun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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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편 [Snowy M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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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편 [CamperS H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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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편 [Waterfall In The Woo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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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편 [Covered Bridge O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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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편 [Scenic Sec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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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편 [Ebb T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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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편 [After The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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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편 [Winter Eleg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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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편 [EveningS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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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편 [Valley Of Tranquility]
인코딩 툴 : 바닥
사이즈 : 320 x 240
화질 비트레이트 : 264~360사이
2Pass : Y
즐감하세요.^^

2009년 3월 16일 월요일

화성에서 사는 대통령 금성에서 사는 국민

※ 아랫 글은 어느 사이트 유머란에 있는 글이다.
제목:남자와 여자의 대화
띠리리리~ 띠리리리~ 따르르르릉~~

남자 「여보세요~~ 」
여자 「오빠 자동차 시동이 안 걸려」
남자 「그래? 배터리 나간거 아냐? 라이트는 켜져?」
여자 「어제까지는 제대로 됐는데. 왜 갑자기 시동이 안 걸리지?」
남자 「엔진 트러블이면 곤란한데. 일단 배터리 문제인가부터 확인해 봐. 라이트는 들어와?」
여자 「아이 참, 나 오늘 OO까지 가야되는데! 차 없으면 안 되는데...」
남자 「그거 큰일이네. 어때? 라이트는 켜져?」
여자 「아! 분명히 어제 탔을 때는 괜찮았는데, 히잉. 이 고물차! 이럴 줄 알았으면 차 안 바꾸는건데!」
남자 「라이트는 켜져? 안 켜지는거야?」
여자 「O시에 약속이니까 아직 시간은 있지만, 걸어서 가기에는 넘 멀어~」
남자 「그래. 그런데 라이트는 어때? 켜져?」
여자 「응? 미안, 잘 안 들렸어」
남자 「아, 뭐, 라이트는 켜져?」
여자 「왜?」
남자 「아, 시동 안 걸리는 거 아니야? 배터리 나가서 그러는 걸 수도 있으니까」
여자 「무슨 말이야?」
남자 「응?」
여자 「에?」
남자 「자동차 배터리 나갔을 수도 있으니까, 그거 확인부터 해보자구. 라이트 켜 봐」
여자 「그게 왜? 배터리 방전됐으면 라이트 안 켜지잖아?」
남자 「아니, 그러니까. 그걸 알아보려는 거니까 라이트 좀 켜 봐」
여자 「혹시 지금 화내고 있는 거야?」
남자 「아니 별로 화 안 났어」
여자 「화내고 있잖아. 왜 화 내?」
남자 「그러니까, 화 안 났다고」
여자 「뭐 내가 잘못했어? 말하면 사과할께」
남자 「괜찮아. 화 안 났어. 괜찮아, 괜찮으니까」
여자 「뭐가 괜찮은데?」
남자 「휴~ 아냐 배터리 말한거야」
여자 「차 이야기하는거야?」
남자 「아 그래, 차 이야기」
여자 「지금 차가 중요해? 」

위 글은 혹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읽고 지은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소통의 부재에 따른 짧은 부조리극.

| 화성에서 사는 대통령 금성에서 사는 국민 |
긁어 온 유머(?)를 기본 줄기로 해서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서, 너스레를 떨어볼까 하고「화성에서 사는 대통령 금성에서 사는 국민」 이라는 제목을 붙혔다. 한참을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단 한 줄의 제목 속에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이  전부 농축되어 있다고 여겨져서 더 이상의 너스레는 떨지않기로 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화룡점정한 느낌이다.

2009년 3월 14일 토요일

개미와 베짱이와 행복

| 행복에 대하여……. |

+ 행복해지고 싶은가?
그대가 정녕 행복해지고 싶다면
밥벌이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간만 쓰고
나머지 시간은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행복의 조건은 이것 외엔 아무것도 없다.
[윗 글은 누구였는지 잊었지만 어느 저명한 분의 말씀이었던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서 새겨 둔다. 홍세화 선생이었던가?? 음, 역시 기억력이 자꾸 감퇴되는 걸 보니 늙고 있는거야…….]

혹시 아직도 (남보다)많은 돈을 소유하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가?

그 착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대가 불치병에 걸리거나,
그대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성큼 다가와 있을 때,
그대에게 돈 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문득 느낄 때,
그대는 뒤늦게 깨닫게 될 것이다.
돈은 행복과는 아무 관계도 없었다는 것을.

바보 머저리 되지 않으려면 천민자본주의가 만들어 둔 기형적인 행복관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옛말에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있다.
천민자본주의의 전형적인 의식이다.

굳이 개처럼 벌지 않고도 정승처럼 살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주는 것이 교육과 교육자의 몫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왜 굳이 정승처럼 쓸려고 하는가? 서민으로 살면 큰 일이라도 나는가?
스스로에게 떳떳하면 됐지. 왜 굳이 남에게 폼나게 보이기 위해 정승 씩이나 되어야 한단 말인가?
모두가 정승처럼 살 필요도 없고, 모두가 정승이 될 수도 없고, 모두가 정승 같은 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다.

적게 벌어도 밥굶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하며 살수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인 것이다.
노후 걱정 때문에 돈 모으고, 자식 위해 재테크하고, 남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잠 안자가며 돈벌고... 그러다보면 황혼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나중에 정년퇴직 후에, 나중에 시간나면 하면 되지 않느냐...
웃기지 말라! 어느 누구의 인생에나 그런 널널한 시간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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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미가 좋아? 베짱이가 좋아?
놀고 먹는 베짱이가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즐기지 못하고 일만하는 개미는 더 문제가 많은 것이다.

이솝우화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가진 자와 지배층이 하위층을 부려먹기 위한 아주 유용한 본보기용 교재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인생을 살아가다 부딪히는 제반 문제는 전부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다. 이건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그러므로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느냐도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필자는 베짱이도 되고 싶지 않았지만 일만 해대는 개미는 더더욱 되고 싶지 않았다.

너무 뒤늦게 깨달은 것이지만, 학교라는 곳에선 암묵적으로 일개미들을 대량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고…….
잘 먹고 잘 살기만하면 자동으로 행복해지디?
웃기고 있네. 하품난다 -.-+


| 학교란 대체 우리에게 무엇인가? |

우리에게 학교라는 시설은 경쟁해서 이기지 않으면 남보다 잘살 수 없다는 말도 안되는 억측으로 뒤범벅된 내면적인 전쟁터이고, 급우는 더이상 친구가 아니라 가장 가깝게 있는 '적'이다. 이런 의식은 필자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30여년 전 아니, 멀게는 우리의 선배들 시절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쩌면 그렇게나 일관성이 있는 지 신기할 따름이다.

『쓸만한 부존자원이라곤 없는 나라. 그래서 인적자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나라』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논리적 오류에 근거한 억측 혹은 핑계거리가 어느 누군가의 꼴통 속에서 처음 나온 것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과연 인적자원만 있는 나라라고 해서 꼭 서로 경쟁해서 이겨야만 살아남는 것일까? 서로 도우며 공존할 수 있는 방안도 있지 않았을까? 현대 사회가 왜 굳이 경쟁 사회가 됐을까? 경쟁 사회라는 의식의 출발점 자체가 잘못된 출발점이 아니었을까? 나타난 현상(사실)이 그렇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그 현상에 따라서 가야만 하는 것일까? 왜 대안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지난 날 맑스와 엥겔스가 이미 공존의 방안을 모색하고 그들의 생각을 실현하려고 노력해왔다는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그들의 인류공존의 방안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들이 꿈꾸던 유토피아적 이상사회의 이념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인류의 보편적 인식이 이론에 따를 만큼 성숙해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며, 인류공존에 대한 보편적 의식이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이루지 않는다면 맑스가 꿈꾸던 인류공존의 르네상스는 말 뜻 그대로 「유토피아적 환상」에 머물 수 밖엔 없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귀착일 것이다.

+ 경쟁의식의 뿌리는 무엇일까?
혹시 경쟁의식도 멀게는 다위니즘의 '도태', '자연선택'라는 의식이 내면에 각인된 결과가 아니었을까? 다윈은 왜 공생이라는 훌륭한 관점은 생각하지 못하고 표면적으로 드러난 '도태',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생명 현상을 바라보게 됐을까? 어쩌면 이건 다윈의 의식의 착오이기 이전에 인류의 머리 속에 있는 '사고의 오류'는 아니었을까? 정말 꼭 이겨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일까? 과연 생명계라는 것이 싸우고 이기는 시스템으로만 유지되어 온 것일까?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보면 경쟁도 분명히 있지만 전혀 다른 종이면서도 공생하며 살아가는 생명체들도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자연계에는 경쟁과 공생. 두 가지 시스템이 항시 함께 있어왔는데, 왜 굳이 경쟁시키려는 의식만이 지배적인 것일까? 인류의식의 한계일까? 아니면 공생공존보다는 경쟁이 쉬운 길로 보이기에 선택한 것일까? 과연 공생공존보다 경쟁이 쉬운 길일까?

+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경쟁의식!
경쟁은 어쩌면 두려움이 그 근원일지도 모를 일이다. 뭐가 그렇게 두려운 것일까?
죽음, 기아, DNA속에 각인된 종족보존 본능 때문인가? 무엇이 됐건 경쟁은 더럽고 추잡스럽고 저급한 의식일 뿐이다. 자자손손 대대로 먹을 걸 벌어놓고도 모자라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거둬 들인다. 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걷어들이는지 자신들도 잊어버린 채 그냥 습관적으로 혹은 욕망의 노예가 되어 거둬들이고 있는 건 아닌가? 자신에게 남는 것을 사회에 환원할 줄 모르는 자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바보 머저리들이다. 앞 날이 어찌 될지 몰라서 꿰차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미 우리의 앞 날은 전부 예정되어 있다. 잘난 인간이나 못난 인간이나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전부 모조리 싸그리 죽는다. 죽음이라는 앞 날은 생명있는 모든 것들에게 예정되어 있는 자연의 약속이다. 당신이나 사랑하는 당신의 자식이나 우리 모두의 후손들은 전부 죽음이라는 불치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느 땐가는 당신이 걸머지고 있는 그 물질이, 돈이 당신 자손의 어느 대에서는 반드시 사회로 환원되게 돼 있다(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리라). 어차피 영원하지도 않을 물질, 몇 대 더 연결되면 무얼 한단 말이냐? 그 욕망의 연결에 무슨 특별한 의미라도 있단 말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정말 한심스럽지 않은가.

이미 지나간 옛 영화지만 필자의 집안도 평양에서 내노라 하는 갑부였다. 하지만 일제시대와 육이오 동란, 1,4후퇴라는 역사의 흐름을 거치며 지금은 서민 그 자체이다. 불과 100년도 안 된 예전에는 한 지방의 유지였는데, 지금은 서민이라니.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상위 2%라는 고위층에 속했다가 서민으로 전락한 것이다. 물질이란 그런 것이다.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허망하디 허망한 것이다(부자 3대 못 간다).

+ 경쟁이라는 내면의 괴물
경쟁. 이런 더럽고 천한 의식, 짓밟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전제조건하에 세상에선 악행이 저질러지고 있다. 이 전제조건의 저변엔 위정자와 지배층의 경제부흥이라는 의식이 조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의식을 나오게 한 기반은 살려는 욕구였을 것이다. 침략당하고 지배당하고 착취당하며 살아 온 역사의식이 비정상적으로 변질되어서 경쟁에서 이겨내야 한다는 잘못된 비상구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치욕의 일제시대에서 벗어나, 육이오 동란을 거치며 우리 민족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시대의 선각자 분들의 의식(그 시대 대중의 보편의식과도 맞닿아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이 그 시대가 부른 당연지사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척박한 시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역사의식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자본주의와 성급하게 결탁하고 변질되어서 '경쟁의식이라는 내면의 괴물'을 키워낸 것은 아니었을까. 이 괴물이 변질되고 부폐되어서 IMF, 황금만능, 권력남용, 갖가지 좋지 않은 사회 현상 등으로 고름이 터지 듯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괴물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천민자본주의 의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될 의식일 것이다. 지금으로선 어느 누구도 올바른 비상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의 보편의식이 환골탈태를 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 학교의 기능이 어쩌다가 지식경쟁만하는 전쟁터가 되어 버렸을까?

도대체 이 나라가 어쩌다가 이런 천한 교육정책으로 전락해버렸을까?
누구의 잘못인가? 정치인들만의 잘못이라고 손가락질 하지 말자!

우리들 각자 내면 속에 깃든 천민의식이 천민교육을 만들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외면하지 말자!

서로가 함께 공존할 생각은 않고, 친구고 이웃이고 전부 짓밟고 나 부터 살고 보자는 저급한 의식을 버리지 않는 한 이 아비규환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현대 사회가 나 혼자만 잘 된다고 해서 제대로 굴러가는 시스템인가? 정말 할 소린 아니지만 바보들인가?

당장 쓰레기 치우는 청소부들이 딱 한달만 파업한다고 생각해봐라! 이 세상은 거대한 쓰레기통이 된다. 쓰레기통 지구호! (정신적으로는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 않나?! -.-;)
스스로 잘난 줄 착각에 빠진 정규직 사무직 분들, 공장에서 물건 만드는 분들이 2,3개월만 일손을 멈추면 당신들은 그 2,3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어진다. 바로 백수되는 거다.
집안에서 일하는 주부들이 단 일주일만 파업한다고 생각해보라. 집안은 분리 수거도 안 되는 쓰레기통이 되고 만다.
…… 더 이상의 예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족속들이다. 현대 사회인은 모조리 타인과 맞물려져야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톱니바퀴와 같다.
현대 인류문명은 톱니바퀴문명이다. 그 톱니바퀴 가운데 단 하나만 잘못 돼도 원활하게 움직일 수 없는 시스템이다.
스스로 잘났다고 착각에 빠진 족속은 자신 보다 못 나고 가진 것 없는 자를 비웃고 손가락질 해대지만, 그 비웃음과 손가락질은 결국은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하는 짓이나 진배없다.

+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진실

이런 생각의 부스러기들은 필자가 굳이 이렇게 성토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 내면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기생충을 스스로 죽일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을 뿐이리라.
몸 안의 기생충은 가만히 두면 저절로 소멸하지 않는다.
약을 먹어서라도 죽여야 하는 것이다.
정신의 기생충을 박멸하는 약은 이미 당신 속에, 그리고 내 속에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이미 그 분께서 준비해두셨다.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 회상
돌이켜 생각해보면 중학교 이래로 어느 선생님도 공존의 미덕에 대해서 진심으로 상기시켜 준 분은 단 한 분도 없었다. 전부 『네 옆의 친구는 친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쟁상대이다. 사람은 경쟁할 대상이 있으면 더욱 힘을 낼수 있는 것이다.』라는 의식만을 주입시켜줬다. 그 의식이 '교사지침서'에 적혀있는 교육부의 지침이었는지, 선생님들 개개인의 의식이었는지는 나로서는 확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근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의식이 내 머리 속에 각인되던 때마다 온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던 그 스멀스멀한 느낌은 지워지지 않는다. 기분 더럽다!

이 세상 그래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기나 한 걸까? 세상이 이 모양 이 꼴로 돌아가는데도 나만 행복하면 그 뿐이라 생각하는가? 혼자서만 잘 살믄 뭔 재민겨! 네 이웃, 네 친구, 네 형제자매, 넓게는 인류 모두가 함께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은 정말 애초에 그 분께서 준비해두지 않은 것일까? 만일 정말로 '공존'이 인간에겐 사치라면, 그래서 에덴 동산도 유토피아도 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면, 나 같은 경쟁을 싫어하는 부류는 다윈의 생각대로 자연선택에 의해 '도태'되어야 마땅한 족속이 되는 것인가…….


+ 줄이며

도무지 생각의 끝이 보이지 않아서 너스레는 그만 떨어야 할 것 같다. 난 아무래도 내가 소망하는 평범한 서민으로 살긴 틀린 것 같다. 무슨 잡된 생각이 이리도 많이 드는 지, 나 원참!
아무래도 블로그 제목을 '화룡점정'이 아니라 '망상백과'정도로 바꿔야 할 듯…….

2009년 3월 12일 목요일

안개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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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서
                            - 소니 作

실체는 보이지도, 볼 수도 없었다.
안개 자욱한 별세계(別世界)의 꽃들의,

안개 속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시간은 안개 속에 갖혀
전율하며 끝없이 헤매일 뿐
안개 속에서의 시간은
여름 날 말벌의 현기증

세상살이도 그러하거니
바른 길도, 비상구도 없었다.
다만, 길 찾는 나그네
몇몇과 나그네 기다리는
망부석들만 있을 뿐이었다.
길 떠나 나그네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고
기다림에 지친 이들은
안개 속에 묻혔다.

정지된 시간
닫혀진 공간
안개 나라에서 본 것은
떠도는 영혼과 기다림에 지쳐
돌이 된 망부석 뿐이었다.
안개 나라에서는
돌아오는 자도 반기는 자도 없었다.

흐릿한 안개 너머로 너울거리던 것은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아련한 것은 그곳에서 나는
나그네였을까?
망부석이었을까?

안개 자욱한 별세계(別世界)에
점·점이 바람에 너울거리는
안개꽃을 닮은 사람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이는
그들에게서 나의
이면(裏面)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2009년 2월 17일 화요일

시간이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는 것이다

시간이 가는 것이 아니었어.
너와 나, 우리가 가는 거였지.
시간은 항시 우리 곁에 있는 것이었어.

공간과 시간은 항시 우리 주위에 머물러 있는 거였어.
이 곳에서 저 곳으로 공간을 옮겨다니듯이
이 시간에서 저 시간으로 옮겨가는 것이었어.

우리의 사념(邪念)이 파 놓은 함정에 빠져서 착각하고 있었던 것 뿐이야.
시간이 흐른다고, 그 시간이 우리를 늙게 하고,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그렇게 착각하며 살고 있었지.

태초에 시간과 공간은 하나였다고 하잖아.
시공간(연속체)이라는 것은 시간이 공간과 융합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기도 해.
시간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알려면 공간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면 시간 또한 저절로 알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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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량(부피와 무게)을 가진 한 물질이 있다고 해봐.
그 물질은 분명히 공간 속에서만 물질일 수 있어.
다시 말하자면 공간이 없다면 물질도 없게 되는 것이지.

빛은 질량(부피와 무게)이 없어.
질량이 없는 것을 공간 속에 붙잡아 둘 수는 없는 것이지.
그래서 시간이 빛을 붙잡아 두는 거야.

우리는 모두 빛으로부터 온 존재들이야.
만약에 태초에 빛이 없었다면
우리도, 우리를 둘러 싼 공간도, 우리 주위에 머무르는 빛을 함유한 시간도 사라져 버리는 것이지.

태초에 빅뱅으로 인해, 혹은 그 분*의 말씀으로 인해 세상이 시작되었다고 하잖아.
사실상 이 두 가지 표현은 똑같은 뜻이야.
그 분의 말씀으로 세상이 시작됐다는 말이나, 빅뱅이 세상의 시작이었다는 말은 똑같은 말이지.

오늘날 과학과 종교가 대립하는 까닭은 '하나'라는 것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지.
'하나'라는 것의 의미를 깨달은 자는 모든 것을 알게 되고,
그 '하나'의 의미를 모르는 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지.
우리는 모두 '하나'에서 시작된 존재들이지.
착각하기 쉽지만 '너'와 '나'라는 구분은 무의미한 거야.
'너'와 '나'라는 구분은 사회적, 제도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 놓은 가치체계(=시스템)일 뿐인 거야.

우리는 전부 '하나'야
너와 나, 공간과 물질, 시간과 빛, 시간과 공간.
이 모든 것은 태초엔 전부  '하나'였어.
'자아와 타자'라는 이분법은 전부 거짓이야.
이분법적 착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영원히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지.
진정으로 이분법적 착각에서 벗어나면 세상의 실상이 보여.
우린 이미 완성된 존재이지.
A라는 사람은 A 자체로 완성되었고,
A가 가진 건 I와도 연결되어 있고,
I가 가진 건 A와도 연결되어 있어.

단세포에서 고등생명체로 진화됐다는 관념은 엉터리야.
태초에 우주 만물은 이미 모든 것을 내포한 씨앗 상태로 시작된 거야.
진화란 없는 거야. 창조란 없는 거야.
진화와 창조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의식의 착각일 뿐이야.

내가 생각하는 창조란 일반적인 의식 속의 창조의 개념이 전혀 아니야.
창조란 '탄생-분화-파괴'가 하나의 완전한 원형 사이클을 이루며 돌아가는 시스템을 의미하는 거야.

탄생이란 달리 말하면 분화이기도 하고 파괴이기도 한 것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한 것이야.
분화란 달리 말하면 탄생이기도 하고 파괴이기도 한 것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한 것이야.
파괴란 달리 말하면 탄생이기도 하고 분화이기도 한 것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한 것이야.
개체와 전체가 똑같은 힘에 의해 사이클을 이루며 돌아가는 것이지.

一始無始라고 천부경은 운을 떼고 있지.
하나가 시작됨이란 무가 시작됨이라.
하나의 시작은 무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태초가 시작되기 위해 먼저 '무라는 그릇'이 준비되어 있었지.
무라는 그릇이 준비되자 그 그릇에 '하나'가 생겨났지.

태초에 빛이 있었다. 그 빛은 말씀이었다. 그 빛은 이름이었다.
우리는 모두 빛에서 비롯된 존재들이지.
그 빛은 빅뱅의 빛이자, 말씀의 빛이요, 무라 호명하는 그릇에 완전한 형질로 준비된 빛이었어.
그 분은 무라는 이름의 그릇이야.
그래서 우리는 무에서 와서 다시 무로 환원하는 존재들이지.
우리는 있기도 하고 동시에 없기도 한 존재들이지.
'있다'는 말은 '없다'는 말과 동격이지.
'있음(유)'의 근원은 '없음(무)'이니.

빛의 성질이 입자이기도 하고 파동이기도 한 것은 빛은 입자와 파동을 함께 갖추고 있기 때문이지.
빛은 그 분께서 만들어두신 완전체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입자로 환원되기도 하고 파동으로 환원되기도 하지.
우린 모두 빛에서 만들어져 나온 완전체들이지.

신을 믿는다는 말은 엉터리야.
신을 부정한다는 말도 엉터이야.
우리 자체가 신이요.
신 자체가 무이기 때문이지.
'무(없음)'라는 상태를 어찌 믿으며, '무(없음)'라는 상태를 어찌 부정한다는 말인가.

신을 믿는 자는 자신을 믿는 자요.
신을 부정하는 자는 자신을 부정하는 자요.
신은 무이니, 우리가 믿거나 말거나 항시 무일지니.

시간이 가는 게 아니라
너와 나, 우리가 가는 거였어

'무'로 다시 되돌아가기 위해 우리가 가는 거였어.
모든 것은 '무'로 환원하는 과정일 뿐이었어.

삶이란 신(神)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둔 빛으로 가는 지름길이었어.
'빛'에서 나서 다시 '빛'으로 가는 것이었어.


[ 주석 ]
* 그 분

- 기독교의 신이라고 해도 되고, 우주를 우주이게 한 힘 혹은 체계라고 불러도 결국은 같은 의미임. 그 힘이라고 불러도 무방함.


살짝 열린 창문 너머로
저 멀리 어렴풋이 깜빡이며 별이 나를 내려다 본다.
티스토리에 거의 한달만에 글을 끄적이며…

2009년 1월 23일 금요일

월간 사이언스와 보낸 추억의 그날들

월간 사이언스 창간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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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사이언스 1982년 창간호 표지

ㆍ영문명:The Newsmagazine of Science
ㆍ발행처:사이언스
ㆍ발행인:이성구
ㆍ발행일:1982년 5월 1일
ㆍ가격:2,900원
ㆍ분류:컴퓨터과학
ㆍ간별:월간지
ㆍ폐간:1989년 7월호 (통권 제86호)


| 잡지 소개 |
+ 월간 사이언스는 1982년 5월호로 창간되어 1989년 7월호 (통권 제86호)까지 발행되고 느닷없이 폐간한 비운의 과학잡지. 사이언스가 유가 과학잡지의 명맥을 유지하며 1년 6개월 후, 과학동아(창간 1983.11)가 후발주자로 들어왔고, 그후 월간 뉴턴(1985.2)이 유가 과학지의 대열에 가세하며 과학잡지는 그야말로 춘추 전국시대를 방불케 했다. 그 당시 줄줄이 사탕처럼 쏟아져 나오는 과학잡지의 홍수 (홍수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속에서 대체 어떤 걸 봐야하나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나는 '월간 사이언스'에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후발 주자들은 지질면에서는 기존의 '월간 사이언스'를 능가하며, 차츰 기사의 질적인 면에서도 바짝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그후 좋은 지질과 화려한 그래픽을 내세우며 쫓아오는 후발 주자들의 물량공세에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은 폐간이라는 비운의 잡지가 되고 말았다.

'월간 사이언스'가 폐간 되고 난 후, 다른 과학잡지를 잠시 봤지만, 왠지 '월간 사이언스'만의 다양한 영역과 깊이 있는 기사를 자주 접할 수 없어서 얼마 후 과학잡지와는 영원히 빠이빠이를 했었다.

+ 중간에 '87년 4월호가 발간 중단된 후, 다음호와 합본되어서 간행월수(87개월)에 비해 통권호수(86호)가 하나 적음.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도서관, 연세대도서관에서 공히 82년 5월호 - 89년 7월호까지 구매)

+ 이 글을 포스팅하기 위해 검색하던 중에 발견한 글인데, '월간 사이언스'가 미국의 과학(+SF) 잡지인 옴니(Omni, '78~'95)와 파퓰러 미케닉(Popular Mechanics) 등등 해외 과학잡지의 기사를 그냥 가져다 실었다는 뒷담화가 있음. 한마디로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고 불법도용했다는 뭐 그런 말! 80년대 초중반에 우리나라가 국제 저작권에 관심이나 있었나? 모르긴 몰라도 번역출판은 불법이 당연시 되던 사회풍조였을 듯……. 물론 저작권 꼬박꼬박 물어가며 출판한 곳도 더러는 있었겠지만…….


| '80년대를 풍미했던 3대 과학잡지의 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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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3대 과학 잡지 서지 정보


| 과학·잡지·회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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科學世界 창간호 표지
어린시절 우리집 다락방에 '과학세계(科學世界-창간 1958년 7월 1일)'라는 60년대 과학잡지가 몇 권 굴러다니고 있었다. 우리 집안에 과학자도 없는데, 그 시절에 누가 과학잡지를 보고 있었을까? 불가사의로군. 선친께서 책을 가까이 하시던 분이셨으니, 아마도 선친께서 보시던 유물일지도……. 아무튼 국민학교 6학년 시절 다락에 올라가 보물이라도 찾으려고 했는지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묵은 곰팡내나고 먼지 수묵히 쌓인 짐들 틈에서 우연히 발견했는데, 그때 당시만 해도 한자를 거의 몰랐던 때라 표지에 한자로 큼직하게 박힌 '科學世界'라고 적힌 잡지를 펼쳐들자, 안에는 한자가 더 많이 늘어서서 사열이라도 받는지 어쨌는지 참 많았던 기억이 난다. 속에 있는 사진과 그림, 도표도 흑백 일쑤였고, 기사들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그 잡지의 어떤 면이 나를 매혹시켰는지 몰라도 그 잡지를 거의 10여년을 보관해두고는 한 번씩 꺼내 훑어보던 기억이 있다. 한참의 세월이 지나고 어느 날 문득 떠올라서 찾아보니 이사 중에 누군가 버렸는지 보이지 않아서 한순간 참 아쉬웠다.

어린시절부터 이상하리만치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데 큰 영향을 미친 원인들 중 하나가 아마도 그 과학잡지를 발견하고 읽었던 탓이 아니었을까도 싶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과학에 여전히 관심이 많았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구입한 현미경(이래봤자, 거의 장난감 수준이었지만)으로 이것저것 참 많이도 들여다보고, 역시나 장난감 수준의 천체망원경도 구입해서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을 바라보며 천문학자가 되겠다는 소망을 품으며 열심히 탐구생활을 하던 그 시절, 당시 우리나라에 전무했던 과학전문잡지가 창간되었다기에 매달 용돈 쪼개 모아서 사들이기 시작한 잡지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월간 사이언스'였다.

지금 2,900원이래야 제대로 된 점심 식사 한끼도 해결할 수 없는 금액이지만, 80년대 초중반 까지만 해도 대단한 금액이었지 싶다. 고등학교 시절 아침에 등교하기 전에 엄니가 손에 쥐어주시던 하루 용돈이 300백원~5백원 정도였던 듯하다.(30여년 전이라 기억이 가물대네;;) 아무튼 그 용돈으로 점심식사와 군것질 꺼리를 해결했으니, 지금 물가로 계산해서 그때 돈 2,900백원이란 돈은 상당한 액수가 아니었나 싶다. 요즘이야 고등학생들 알바 뛸 수 있는 업종이 많지만,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알바란게 새벽 신문배달, 우유배달 정도였지 싶다. 월간 잡지 한권 가격 2,900원이 고등학생에게 왜 큰 돈일까? '월간 사이언스'가 발행되기 딱 1년 전인 '81년 4월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라는 거의 500페이지 짜리 책을 샀는데, 정가가 3,700원 이었다. 500여 페이지 짜리 단행본 한권 가격이 3,700원 이었던 시절에 100여 페이지 남짓의 월간지 정가가 2,900백원이었으니 상단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용돈을 쪼개 쓰고 모아야 겨우 잡지 한권 살수 있는 정도 였으니, 새벽 신문 배달을 하지 않았으면 아마 과학잡지 구독은 꿈도 못 꿨을 듯 싶다.

그렇게도 과학에 열성이었는데 왜 난 과학자가 안 됐을까? 왜지? 왤까나? 음…… 이것도 어쩌면 내 인생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창간호에 마침 '우주의 7대 불가사의'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다. 아래에 맛보기로 짧게 소개한다. 일러스트만 화려했지, 내용은 별것도 아닌 내용이지만;…….


| 내용 맛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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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Dunn의 '우주여행 일곱개의 불가사의(不可思儀)
+ 1979년 12월 옴니(Omni) 지에 'The Seven Wonders of the Universe(우주여행 일곱개의 불가사의)'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Philip Dunn*(필립 던)의 기사.
- 지구에 7대 불가사의가 있듯이 우주에도 그런 불가사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으로 그려낸 이야기.

* 필립 던 PHILIP DUNN은 1946년 생의 현존하는 작가로 'The Seven Wonders of the Universe (1979) 외에도 'The Day Volman Died (1981년)'등의 단편이 알려져 있다. 다작을 한 전업 SF 작가는 아니며, 단편 몇 편 낸 작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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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가 아주 그냥 죽여~ 줘요~~~ ^^;


| 목차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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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목차가 페이지 순서가 아님. 기사본말체일까?

| 차례 | - 페이지 순
발행인이 드리는 말씀(7)
사이언스 뉴스(8)
전략특집1/과학한국의 첨단산업/유전공학/생명의 연금술(14)
전략특집1/과학한국의 첨단산업/1.창조농업<설동섭>(16)
전략특집1/과학한국의 첨단산업/2.인터페론<김승수>(22)
대우주의 문은 활짝 열리려나/특별기획/OPEN계획(28)
콜롬비아호 그늘에 가려진 ESA의 아리안(36)
우주를 향한 NASA 꿈의 설계(38)
우주여행 일곱개의 불가사의(40)
우주의 신비 태양계<신경진>(46)
신.해체공법/초고층 빌딩도 순식간에...(52)
R&D 여성/국립환경연구소 김선자(58)
기념리포트/찰즈 다윈 사거 100년/진화론의 위기는 정말인가(62)
전략특집2/과학한국의 첨단산업/일렉트로닉스의 혁명 반도체(68)
전략특집2/과학한국의 첨단산업/실리콘 스파이(80)
인류의 마지막 보고/심해에 도전한다<김승우>(82)
새기술 새상품(92)
별들의 전쟁은 눈앞에 와있다/레이저 우주무기<조규만>(96)
라이브러리(102)
사이언스 퍼즐(103)
과학,과학자,그리고 인간/아인시타인(104)
다음호 예고(109)
과연 사진기술의 혁명일까/마비카(110)


| 보유 유무 |
월간 사이언스 1982년 창간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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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사이언스 총 발행 권수는 86권이다. 현재 보유 중인 것은 모두 78권이다. 결본 8권. 누군가 빌려 가서 돌려받지 못한 것들인가 봅니다.


| 나가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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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서 깊은 잡지인 내셔널 지오그래픽 National Geographic처럼 우리나라에도 100년이 넘게 장수하는 잡지가 한 권 쯤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참고]
한국잡지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