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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23일 월요일

휴대폰 메모에서 발견한 나 #1

휴대폰 메모장을 뒤적이다. 때때로 일상 속으로 스며든 상념의 단편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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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페이퍼로 꾸며보다]

휴대폰 메모장 #1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과거와 미래도 없었다.
시공을 초월한 무한과 영원 속에 나는 떠 있었다.
그리고 우주 전체가 큰숨을 쉬었다가 내뱉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주의 호흡 하나하나가 신이라고 생각했다.
새긴 날:2008년 9월 25일(목) 오후 8시 36분

§ 저자가 누구였지? 내 글은 아닌 듯한데? 이차크 벤토프였나? 프리초프 카프라였나? 기억이 미아가 됐나보다……. 헌데, 야밤에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새겨둔 걸까?


구글에서 찾은 웰페이퍼의 원본 이미지 두 장(저작권은 누군가에게 있겠죠. 하나는 NASA 것)





2009년 3월 12일 목요일

안개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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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서
                            - 소니 作

실체는 보이지도, 볼 수도 없었다.
안개 자욱한 별세계(別世界)의 꽃들의,

안개 속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시간은 안개 속에 갖혀
전율하며 끝없이 헤매일 뿐
안개 속에서의 시간은
여름 날 말벌의 현기증

세상살이도 그러하거니
바른 길도, 비상구도 없었다.
다만, 길 찾는 나그네
몇몇과 나그네 기다리는
망부석들만 있을 뿐이었다.
길 떠나 나그네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고
기다림에 지친 이들은
안개 속에 묻혔다.

정지된 시간
닫혀진 공간
안개 나라에서 본 것은
떠도는 영혼과 기다림에 지쳐
돌이 된 망부석 뿐이었다.
안개 나라에서는
돌아오는 자도 반기는 자도 없었다.

흐릿한 안개 너머로 너울거리던 것은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아련한 것은 그곳에서 나는
나그네였을까?
망부석이었을까?

안개 자욱한 별세계(別世界)에
점·점이 바람에 너울거리는
안개꽃을 닮은 사람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이는
그들에게서 나의
이면(裏面)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2009년 2월 17일 화요일

시간이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는 것이다

시간이 가는 것이 아니었어.
너와 나, 우리가 가는 거였지.
시간은 항시 우리 곁에 있는 것이었어.

공간과 시간은 항시 우리 주위에 머물러 있는 거였어.
이 곳에서 저 곳으로 공간을 옮겨다니듯이
이 시간에서 저 시간으로 옮겨가는 것이었어.

우리의 사념(邪念)이 파 놓은 함정에 빠져서 착각하고 있었던 것 뿐이야.
시간이 흐른다고, 그 시간이 우리를 늙게 하고,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그렇게 착각하며 살고 있었지.

태초에 시간과 공간은 하나였다고 하잖아.
시공간(연속체)이라는 것은 시간이 공간과 융합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기도 해.
시간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알려면 공간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면 시간 또한 저절로 알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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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량(부피와 무게)을 가진 한 물질이 있다고 해봐.
그 물질은 분명히 공간 속에서만 물질일 수 있어.
다시 말하자면 공간이 없다면 물질도 없게 되는 것이지.

빛은 질량(부피와 무게)이 없어.
질량이 없는 것을 공간 속에 붙잡아 둘 수는 없는 것이지.
그래서 시간이 빛을 붙잡아 두는 거야.

우리는 모두 빛으로부터 온 존재들이야.
만약에 태초에 빛이 없었다면
우리도, 우리를 둘러 싼 공간도, 우리 주위에 머무르는 빛을 함유한 시간도 사라져 버리는 것이지.

태초에 빅뱅으로 인해, 혹은 그 분*의 말씀으로 인해 세상이 시작되었다고 하잖아.
사실상 이 두 가지 표현은 똑같은 뜻이야.
그 분의 말씀으로 세상이 시작됐다는 말이나, 빅뱅이 세상의 시작이었다는 말은 똑같은 말이지.

오늘날 과학과 종교가 대립하는 까닭은 '하나'라는 것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지.
'하나'라는 것의 의미를 깨달은 자는 모든 것을 알게 되고,
그 '하나'의 의미를 모르는 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지.
우리는 모두 '하나'에서 시작된 존재들이지.
착각하기 쉽지만 '너'와 '나'라는 구분은 무의미한 거야.
'너'와 '나'라는 구분은 사회적, 제도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 놓은 가치체계(=시스템)일 뿐인 거야.

우리는 전부 '하나'야
너와 나, 공간과 물질, 시간과 빛, 시간과 공간.
이 모든 것은 태초엔 전부  '하나'였어.
'자아와 타자'라는 이분법은 전부 거짓이야.
이분법적 착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영원히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지.
진정으로 이분법적 착각에서 벗어나면 세상의 실상이 보여.
우린 이미 완성된 존재이지.
A라는 사람은 A 자체로 완성되었고,
A가 가진 건 I와도 연결되어 있고,
I가 가진 건 A와도 연결되어 있어.

단세포에서 고등생명체로 진화됐다는 관념은 엉터리야.
태초에 우주 만물은 이미 모든 것을 내포한 씨앗 상태로 시작된 거야.
진화란 없는 거야. 창조란 없는 거야.
진화와 창조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의식의 착각일 뿐이야.

내가 생각하는 창조란 일반적인 의식 속의 창조의 개념이 전혀 아니야.
창조란 '탄생-분화-파괴'가 하나의 완전한 원형 사이클을 이루며 돌아가는 시스템을 의미하는 거야.

탄생이란 달리 말하면 분화이기도 하고 파괴이기도 한 것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한 것이야.
분화란 달리 말하면 탄생이기도 하고 파괴이기도 한 것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한 것이야.
파괴란 달리 말하면 탄생이기도 하고 분화이기도 한 것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한 것이야.
개체와 전체가 똑같은 힘에 의해 사이클을 이루며 돌아가는 것이지.

一始無始라고 천부경은 운을 떼고 있지.
하나가 시작됨이란 무가 시작됨이라.
하나의 시작은 무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태초가 시작되기 위해 먼저 '무라는 그릇'이 준비되어 있었지.
무라는 그릇이 준비되자 그 그릇에 '하나'가 생겨났지.

태초에 빛이 있었다. 그 빛은 말씀이었다. 그 빛은 이름이었다.
우리는 모두 빛에서 비롯된 존재들이지.
그 빛은 빅뱅의 빛이자, 말씀의 빛이요, 무라 호명하는 그릇에 완전한 형질로 준비된 빛이었어.
그 분은 무라는 이름의 그릇이야.
그래서 우리는 무에서 와서 다시 무로 환원하는 존재들이지.
우리는 있기도 하고 동시에 없기도 한 존재들이지.
'있다'는 말은 '없다'는 말과 동격이지.
'있음(유)'의 근원은 '없음(무)'이니.

빛의 성질이 입자이기도 하고 파동이기도 한 것은 빛은 입자와 파동을 함께 갖추고 있기 때문이지.
빛은 그 분께서 만들어두신 완전체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입자로 환원되기도 하고 파동으로 환원되기도 하지.
우린 모두 빛에서 만들어져 나온 완전체들이지.

신을 믿는다는 말은 엉터리야.
신을 부정한다는 말도 엉터이야.
우리 자체가 신이요.
신 자체가 무이기 때문이지.
'무(없음)'라는 상태를 어찌 믿으며, '무(없음)'라는 상태를 어찌 부정한다는 말인가.

신을 믿는 자는 자신을 믿는 자요.
신을 부정하는 자는 자신을 부정하는 자요.
신은 무이니, 우리가 믿거나 말거나 항시 무일지니.

시간이 가는 게 아니라
너와 나, 우리가 가는 거였어

'무'로 다시 되돌아가기 위해 우리가 가는 거였어.
모든 것은 '무'로 환원하는 과정일 뿐이었어.

삶이란 신(神)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둔 빛으로 가는 지름길이었어.
'빛'에서 나서 다시 '빛'으로 가는 것이었어.


[ 주석 ]
* 그 분

- 기독교의 신이라고 해도 되고, 우주를 우주이게 한 힘 혹은 체계라고 불러도 결국은 같은 의미임. 그 힘이라고 불러도 무방함.


살짝 열린 창문 너머로
저 멀리 어렴풋이 깜빡이며 별이 나를 내려다 본다.
티스토리에 거의 한달만에 글을 끄적이며…

2007년 7월 14일 토요일

우주 속의 나, 내 속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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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속의 나, 내 속의 우주
作 : 소니
- 2003년 2월 13일 오후 3시 9분 


우리는 모두 우주 속에 속한 모래알
한 톨의 모래알 속엔 우주가 있네
팽창하는 우주 속에 갖혀 있는 나
내 속에 스며 있는 또 하나의 우주

어쩌면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는 클라인 병(甁)일지도 몰라
어쩌면 우주와 나는 함께 맞물려 있는 클라인 병(甁)일지도 몰라

적분과 미분의 틈에 갖혀 있는 혼돈된 우리네 인생

시간과 공간은 없는 것인지도 몰라

공간이 한정된 것이라면
공간 저 너머에는 어떤 눈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까?

시간이 제한된 것이라면
시간의 종말에는 무엇이 우릴 맞이하고 있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공간을 끝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시간을 셀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神이라는 절대자가 형상을 가진 그 무엇이라면 神은
어쩌면 우주 전체가 아닐런지....

그 속에 속한 저 무수한 별들은
어쩌면 神의 세포이며, 핵이며, 전자가 아닐런지....

만일 神이 무형상의 그 무엇이라면 神은
어쩌면 우리 자신 속의 어딘가에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닐런지....

어쩌면 神은 시공 복합체일지도 모르지....

시간과 공간을 합쳐 놓으면 무엇이 될까?

인지할 수 없는 먼 옛날
빅뱅이 일어나기 바로 그 이전까지 시공은 하나였다는데,
우리는 어느 누구도 사유할 수 없다.

시공이 합쳐진 상황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만일 어느 먼 후일 神이 시공의 틈바구니에서 뛰쳐나와
나 여기 있노라! 하면
참 우스울 것 같다.
참 우스운 형상일 것 같다.

가끔 時, 空, 神 에 대한
가 없는 의문에도 휩싸여 느껴보자!
내 속에서 나를 흔드는 목소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한번쯤은 고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