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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8일 수요일

영겁의 꿈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인 1986년 영국의 뉴사이언스 과학잡지는 우주의 모든 별자리를 컴퓨터에 입력시키면 사람 모양을 하고 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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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한 화면)

즉, 사람 모습을 그대로 확대하면 우주의 모습이 되는 것이지요. 정말 신기한 일이죠? 물론 그냥 우연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는 일이지만, 과연 우연으로 생각해버리고 말 일일까요?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인간을 소우주라고 불러왔습니다. 인간은 대우주를 가장 많이 닮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간의 몸 속에 존재합니다.

인간을 이루는 물질은 그 기원을 따라 올라가면 우주 창생시의 기억부터 시작해서 현재 '나'라고 이름 짓는 현재까지의 기억까지 전부 누적되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냐고요? 지금 제가 이렇게 새기고 있네요. ^^ㅋ).
물질이 그러하건데, 정신의 세계는 어떨까요? 정신은 과연 진짜로 우리가 죽으면 죽는 당사자와 함께 영원히 소멸되어 버리는 것일까요?
생각이란 무엇일까요? 뇌과학에서 얘기하듯이 과연 생각이란 것이 뇌 속에서 일어나는 전기화학적 신호에 불과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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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천문학계에서 알아낸 바로는 우주엔 우리 은하와 같은 은하가 1천억여개 정도 있다고 합니다. 관측 데이타를 기준으로 한 계산이니 아마 앞으로 더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1천억개의 은하 안에는 우리 태양과 같은 항성(계)가 또 1천억개쯤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항성계는 그 자식격인 행성을 함께 거느리고 있으며, 각 행성은 또 위성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이런 단순 계산을 하다가 보면 우주엔 물질로 넘쳐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실상 우주의 거의 대부분의 공간은 텅비어 있습니다. 밝혀낸 보통 물질의 총질량은 우주의 총 에너지에 대비하여 계산하면 약 4%(4%의 대부분은 수소와 헬륨이며, 나머지 원소들은 미미하다.) 정도 밖엔 안 되며, 나머지 96%는 22%의 암흑물질(dark matter)과 74%의 암흑에너지(dark energy)라고 부르는 관측되지 않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1천억의 은하와 각각의 은하 속에 있는 1천억의 항성(계) 그리고 항성계 속에 있는 행성과 위성, 혜성과 우주 먼지들... 이렇게 터무니 없이 어마어마한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우주 내의 보통 물질의 총질량은 고작 4%랍니다.

그 중의 한 행성인 지구 속에서 당신과 나라고 구분짓는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시세계에서 바라본 인간군상들은 너무나 미미하고 보잘 것 없어서 공중에 떠도는 먼지 하나 만도 못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보고 느끼고 숨쉬며 살아가는 현상 세계는 그렇게 보잘 것 없고, 미미한 세계가 아닙니다.
오늘도 지구 안에서는 어느 곳에서는 전쟁을 하고 있고, 아마존 밀림의 수 많은 나무들은 반대편에서 전쟁으로 인해 숲이 파괴되고 사람과 생물이 죽어가고 있는 것과는 아무 관계없이 산소를 방출하고 있습니다.
바다 속, 강물 속, 숲 속의 생태계는 인간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짓을 하건 아무 관계없이 먹고 싸우며 생태계의 그 거대한 흐름을 유지해나가고 있습니다.
오래전 그 생태계의 바깥쪽으로 벗어난 인류는 생태계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고 착각하며 환경을 파괴, 개조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길을 걷기 시작한 걸까요?
대체 무엇이 인류를 생태계 밖으로 쫓아낸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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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거시계로 생각을 되돌려봅니다.
우주의 모습이 인간 형상을 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정말 신이라는 절대자가 있어서 그분이 인류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우주 전체의 조감도를 인간형상으로 꾸며 놓은 것이라면 어떨까요?
그렇게 사랑하는 인류가 지금 자행하고 있는 생태계 파괴를 절대자는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사랑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어쩌면 절대자의 눈으로 바라본 인류의 존재감은 먼지와도 같이 부질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언제든 꺼뜨릴 수 있는 존재이기에 그냥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진정 우리 머리 속에서 느껴지는 전지전능한 존재인 神이 계시다면 우리는 정말 조심조심 살아가야 합니다.
한순간 그 신이 입김 한 번 내뿜으면 우리는 일순간에 없었던 존재가 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바람 앞의 등불이 그러하듯이 한 순간 언제 피어올랐는지도 모르게 꺼져버릴 수도 있는 생명이라면, 방종은 그만두고 신이 만들어 둔 '생태계'라는 거대 순환 시스템 속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을 믿으며 살라는 것도 아니고, 신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으니 알아서 기어라는 말도 아닙니다.

어쩌면 신이 자신의 존재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사고시스템을 주입시켜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성을 머리 속 저 깊은 곳에 심어두셨는지도 모릅니다. 만일 제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인간은 어쩌면 멸종은 피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방종스럽게 생활하며 신을 거역하고 신을 부정하는 짓은 그만둬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에 그냥 저절로 존재하게 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신은 하늘에서 어느날 갑자기 뚝 떨어진 존재인 듯 안하무인격으로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그대들은 그대들의 부모님이 안 계셨다면 이 세상에 없는 존재입니다.
부모님도 부모님의 부모님이 안 계셨다면 역시 이 세상에 없는 존재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시초엔 인류의 부모는 남자와 여자 딱 두 사람만이 남습니다.
그 남자와 그 여자를 기독교에선 '아담과 이브'라고 호명하며,
진화론에선 '암수 원숭이* 주1) 한쌍'이랍니다.
(창조, 진화 중 어느 쪽을 믿건 당신 마음입니다. 지금은 창조, 진화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또다시 시간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 여기에 단세포 생물 하나가 갑자기 나타납니다.

다시 시침을 반시계 방향으로 한참을 돌립니다.
저 멀리 눈에 보일 듯 말듯한 한 점 빛이 보입니다.

다시 시침을 반시계 방향으로 조금 더 돌립니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아무것도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물질이 사라지고 세상이 사라지고, 이 우주 자체가 사라진 곳. 시간이 정지된 곳.
그 때 신은 깊디 깊은 영겁의 시간을 잠 속에 빠져들어 있었습니다.

갑자기 신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램수면 상태인가 봅니다.
아하! 신이 영겁의 시간 속에서 이제 막 꿈을 꾸기 시작했나 봅니다.
그 순간
저 멀리 눈에 보일 듯 말듯 한 한 점 빛이 보입니다.
.
.
.
신의 꿈 속에서 어떤 한 사내가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타이핑을 하려는지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은 모습입니다.
영겁의 잠 속에 빠진 신은 마치 자신이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일순간 듭니다.
신이 꾸는 꿈 속의 그 사내는 신이 자신에게 이렇게 타이핑하게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인 1986년 영국의 뉴사이언스 과학잡지는 우주의 모든 별자리를 컴퓨터에 입력시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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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 SF를 꾸며보며…….
신이 영겁의 꿈을 깨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신이 꿈에서 깬 그 세상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신이 꿈에서 깨어나면 어떤 일부터 먼저 시작할까요?

| 너스레 |
기사에서 시작해서 에세이로 그리고 소설적 플롯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런 식의 소설 형식도 있기는 했었죠.
별스럽게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지만, 글을 타이핑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여기까지 쓰게 되네요.
좀 이상스럽기는 하지만 한 편의 짧은 엽편 SF라고 우기기로 합니다. ^^
계속 이어질지 아이디어로 남겨둘지는 아직은 모르겠네요. 작정하고 쓴 게 아니라, 끄적대다보니 플롯이 떠올라서....

| 주석 | (보충 : 오후 2:23 2009-04-21)
* 주1) 원숭이 : 통상 유인원류(Apes) 중 하나라고 두리뭉실하게 표현하지만, 표현만 다를 뿐 원숭이죠.

아래의 삽화는 분자진화적 방법으로 작성한 꼬리없는 원숭이들(Apes 혹은 유인원)의 진화분지도(evolution tree) 입니다. 영장류 연구자들과 인류의 기원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식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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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오랑우탄, 고릴라, 사람, 보노보, 침팬지 입니다.
+ 위쪽 삽화와 삽화에 관한 설명글 출처 : http://hosunson.egloos.com/2270714
원 출처: http://www.nature.com/nature/journal/v421/n6921/full/nature01400.html

[영상 추가] (오후 5:11 2009-04-19)
'우주는 사람의 모습이다' 동영상으로 보기 [새창]

2009년 3월 23일 월요일

휴대폰 메모에서 발견한 나 #1

휴대폰 메모장을 뒤적이다. 때때로 일상 속으로 스며든 상념의 단편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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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페이퍼로 꾸며보다]

휴대폰 메모장 #1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과거와 미래도 없었다.
시공을 초월한 무한과 영원 속에 나는 떠 있었다.
그리고 우주 전체가 큰숨을 쉬었다가 내뱉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주의 호흡 하나하나가 신이라고 생각했다.
새긴 날:2008년 9월 25일(목) 오후 8시 36분

§ 저자가 누구였지? 내 글은 아닌 듯한데? 이차크 벤토프였나? 프리초프 카프라였나? 기억이 미아가 됐나보다……. 헌데, 야밤에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새겨둔 걸까?


구글에서 찾은 웰페이퍼의 원본 이미지 두 장(저작권은 누군가에게 있겠죠. 하나는 NASA 것)





2009년 3월 12일 목요일

안개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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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서
                            - 소니 作

실체는 보이지도, 볼 수도 없었다.
안개 자욱한 별세계(別世界)의 꽃들의,

안개 속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시간은 안개 속에 갖혀
전율하며 끝없이 헤매일 뿐
안개 속에서의 시간은
여름 날 말벌의 현기증

세상살이도 그러하거니
바른 길도, 비상구도 없었다.
다만, 길 찾는 나그네
몇몇과 나그네 기다리는
망부석들만 있을 뿐이었다.
길 떠나 나그네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고
기다림에 지친 이들은
안개 속에 묻혔다.

정지된 시간
닫혀진 공간
안개 나라에서 본 것은
떠도는 영혼과 기다림에 지쳐
돌이 된 망부석 뿐이었다.
안개 나라에서는
돌아오는 자도 반기는 자도 없었다.

흐릿한 안개 너머로 너울거리던 것은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아련한 것은 그곳에서 나는
나그네였을까?
망부석이었을까?

안개 자욱한 별세계(別世界)에
점·점이 바람에 너울거리는
안개꽃을 닮은 사람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이는
그들에게서 나의
이면(裏面)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2009년 2월 17일 화요일

시간이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는 것이다

시간이 가는 것이 아니었어.
너와 나, 우리가 가는 거였지.
시간은 항시 우리 곁에 있는 것이었어.

공간과 시간은 항시 우리 주위에 머물러 있는 거였어.
이 곳에서 저 곳으로 공간을 옮겨다니듯이
이 시간에서 저 시간으로 옮겨가는 것이었어.

우리의 사념(邪念)이 파 놓은 함정에 빠져서 착각하고 있었던 것 뿐이야.
시간이 흐른다고, 그 시간이 우리를 늙게 하고,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그렇게 착각하며 살고 있었지.

태초에 시간과 공간은 하나였다고 하잖아.
시공간(연속체)이라는 것은 시간이 공간과 융합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기도 해.
시간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알려면 공간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면 시간 또한 저절로 알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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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량(부피와 무게)을 가진 한 물질이 있다고 해봐.
그 물질은 분명히 공간 속에서만 물질일 수 있어.
다시 말하자면 공간이 없다면 물질도 없게 되는 것이지.

빛은 질량(부피와 무게)이 없어.
질량이 없는 것을 공간 속에 붙잡아 둘 수는 없는 것이지.
그래서 시간이 빛을 붙잡아 두는 거야.

우리는 모두 빛으로부터 온 존재들이야.
만약에 태초에 빛이 없었다면
우리도, 우리를 둘러 싼 공간도, 우리 주위에 머무르는 빛을 함유한 시간도 사라져 버리는 것이지.

태초에 빅뱅으로 인해, 혹은 그 분*의 말씀으로 인해 세상이 시작되었다고 하잖아.
사실상 이 두 가지 표현은 똑같은 뜻이야.
그 분의 말씀으로 세상이 시작됐다는 말이나, 빅뱅이 세상의 시작이었다는 말은 똑같은 말이지.

오늘날 과학과 종교가 대립하는 까닭은 '하나'라는 것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지.
'하나'라는 것의 의미를 깨달은 자는 모든 것을 알게 되고,
그 '하나'의 의미를 모르는 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지.
우리는 모두 '하나'에서 시작된 존재들이지.
착각하기 쉽지만 '너'와 '나'라는 구분은 무의미한 거야.
'너'와 '나'라는 구분은 사회적, 제도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 놓은 가치체계(=시스템)일 뿐인 거야.

우리는 전부 '하나'야
너와 나, 공간과 물질, 시간과 빛, 시간과 공간.
이 모든 것은 태초엔 전부  '하나'였어.
'자아와 타자'라는 이분법은 전부 거짓이야.
이분법적 착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영원히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지.
진정으로 이분법적 착각에서 벗어나면 세상의 실상이 보여.
우린 이미 완성된 존재이지.
A라는 사람은 A 자체로 완성되었고,
A가 가진 건 I와도 연결되어 있고,
I가 가진 건 A와도 연결되어 있어.

단세포에서 고등생명체로 진화됐다는 관념은 엉터리야.
태초에 우주 만물은 이미 모든 것을 내포한 씨앗 상태로 시작된 거야.
진화란 없는 거야. 창조란 없는 거야.
진화와 창조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의식의 착각일 뿐이야.

내가 생각하는 창조란 일반적인 의식 속의 창조의 개념이 전혀 아니야.
창조란 '탄생-분화-파괴'가 하나의 완전한 원형 사이클을 이루며 돌아가는 시스템을 의미하는 거야.

탄생이란 달리 말하면 분화이기도 하고 파괴이기도 한 것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한 것이야.
분화란 달리 말하면 탄생이기도 하고 파괴이기도 한 것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한 것이야.
파괴란 달리 말하면 탄생이기도 하고 분화이기도 한 것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한 것이야.
개체와 전체가 똑같은 힘에 의해 사이클을 이루며 돌아가는 것이지.

一始無始라고 천부경은 운을 떼고 있지.
하나가 시작됨이란 무가 시작됨이라.
하나의 시작은 무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태초가 시작되기 위해 먼저 '무라는 그릇'이 준비되어 있었지.
무라는 그릇이 준비되자 그 그릇에 '하나'가 생겨났지.

태초에 빛이 있었다. 그 빛은 말씀이었다. 그 빛은 이름이었다.
우리는 모두 빛에서 비롯된 존재들이지.
그 빛은 빅뱅의 빛이자, 말씀의 빛이요, 무라 호명하는 그릇에 완전한 형질로 준비된 빛이었어.
그 분은 무라는 이름의 그릇이야.
그래서 우리는 무에서 와서 다시 무로 환원하는 존재들이지.
우리는 있기도 하고 동시에 없기도 한 존재들이지.
'있다'는 말은 '없다'는 말과 동격이지.
'있음(유)'의 근원은 '없음(무)'이니.

빛의 성질이 입자이기도 하고 파동이기도 한 것은 빛은 입자와 파동을 함께 갖추고 있기 때문이지.
빛은 그 분께서 만들어두신 완전체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입자로 환원되기도 하고 파동으로 환원되기도 하지.
우린 모두 빛에서 만들어져 나온 완전체들이지.

신을 믿는다는 말은 엉터리야.
신을 부정한다는 말도 엉터이야.
우리 자체가 신이요.
신 자체가 무이기 때문이지.
'무(없음)'라는 상태를 어찌 믿으며, '무(없음)'라는 상태를 어찌 부정한다는 말인가.

신을 믿는 자는 자신을 믿는 자요.
신을 부정하는 자는 자신을 부정하는 자요.
신은 무이니, 우리가 믿거나 말거나 항시 무일지니.

시간이 가는 게 아니라
너와 나, 우리가 가는 거였어

'무'로 다시 되돌아가기 위해 우리가 가는 거였어.
모든 것은 '무'로 환원하는 과정일 뿐이었어.

삶이란 신(神)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둔 빛으로 가는 지름길이었어.
'빛'에서 나서 다시 '빛'으로 가는 것이었어.


[ 주석 ]
* 그 분

- 기독교의 신이라고 해도 되고, 우주를 우주이게 한 힘 혹은 체계라고 불러도 결국은 같은 의미임. 그 힘이라고 불러도 무방함.


살짝 열린 창문 너머로
저 멀리 어렴풋이 깜빡이며 별이 나를 내려다 본다.
티스토리에 거의 한달만에 글을 끄적이며…

2008년 11월 21일 금요일

꿈 · 실재 ·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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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꿈은 그것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현실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즉시 꿈의 비실재적인 성질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깨어 있는 현실을 꿈의 현실보다 더 높은 단계의 실재로 간주한다. 명백히 더 실재적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백일몽이나 여러 가지 환각 상태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들은 그것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매우 실재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끝나고 나서 그것을 정상적인 ‘기준’현실과 비교해보면서 우리는 그것을 덜 실재적인 것으로 무시해버린다.…후략… 』
빈스 라우즈, 앤드류 뉴버그, 유진 다킬리(공저)「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Why GOD Won't Go Away)」p221 중에서



윗 글을 유추해보면 꿈이란 시간의 연속선이 영속되지 않고, 한정된 시간 안에서만 현실로 느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어떤 한 사람이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끝없는 잠 속에서 끝없이 꿈을 꾼다면 그 사람에겐 ‘꿈=현실’이란 등식이 성립한다고 봐도 무방한 것 아닐까?

꿈이라는 것을 현실이라는 시간의 연속성이 깨어진 상태라고 가정한다면, 꿈에서 깨어난 상태인 현실이란 것도 어쩌면 시간의 연속성일 뿐인 것은 아닐까?
연속적인 경험을 우리의 뇌는 ‘실재’(한다)라고 결정 짓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실재와 비실재의 차이가 ‘시간’이란 인자뿐이라면 우리의 뇌가 결정한 실재라는 것도 더 넓은 영역(차원)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흔히 깨달았다는 선승이나, 신비체헙을 얘기하는 영지주의자들이 본 ‘실재’라는 개념이 어쩌면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테두리를 한단계 넘어선 또다른 ‘실재’를 경험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일상적인 관념의 세계와는 무관하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틀 안에서는 ‘우주의 끝’이란 개념은 착각에 불과하듯이 우리의 뇌는 현실이라는 틀 안에 갖혀서 ‘실재’를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神이란 물리적 실재계를 넘어선 세계의 존재이다. 우리의 뇌가 인지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내면에 깃들어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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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깨닫는 방식 중에 ‘돈오’라는 것이 있다. ‘돈오(頓悟)’란 갑자기 깨닫는다는 뜻이다.

“찾으려하면 찾지 못할 것이요, 찾으려는 노력 조차 끊긴 찰나, 그 부지불식간에 깨달음이 오듯이”
우리 내면의 神이란 절대자도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내면에서 그 빛을 발하는 것이리라.

2008년 1월 13일 일요일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시간이란 무엇인가?

아침 일찍 도서관에 갈 예정이었다.
날씨가 꾸물꾸물대선지 기분이 한여름 뙤약볕 아래 서 있는 듯 착 가라앉았다. 하릴없이 집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대다보니 짧은 겨울 해가 벌써 서쪽으로 졌는지, 어느새 창 밖이 거뭇거뭇해 보인다.

냉장고 문을 여니, 며칠 전 마시다 남은 'C1'이 보이길래 홀짝대고 있다. 요즘 자주 혼자서 홀짝홀짝… 이러다 술꾼되는 것 아닐까? 하는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걱정이 스치기가 무섭게, '너 이미 고주망태 주태백이야?'라는 핀잔의 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듯하다.

간 밤에 Chronos*(시간)이라는 IMAX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시간속으로 침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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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os(시간) [IMAX]

헬라어에서는 시간을 두 가지 단어로 표현한다. '크로노스 chronos'와 '카이로스 kairos'이다.
'크로노스'는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으로서, 일련의 불연속적인 우연한 사건을 의미하고, '카이로스'는 뭔가의 때가 꽉 찬 시간. 즉 구체적인 사건의 순간, 감정을 느끼는 순간,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의미있는 순간이다. 카이로스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느끼는 절대적인 시간이다.
※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에 대한 정의는 인터넷 문서를 참조함. (* 카이로스와 크로노스)

지난 밤 Chronos라는 다큐를 보며, 마음속으로는 '카이로스 kairos'를 느끼고 있었다. Chronos(시간)라는 다큐를 제작한 제작진이 의도한 것은 '시간'이 빚어내는 무한성과 파괴성 그리고 Chronos(시간)적인 시간의 성질로 인해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허무'의식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허무'의 너머에는 시간의 또 하나의 속성인 '카이로스 kairos'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무'로 돌려버리는 반면, 그 '무'의 너머에는 '구원'의 손길이 우릴 반갑게 영접하고 있지 않을까?

그 옛날 희랍인들은 '크로노스'라는 시간의 영원성 속에 '카이로스'라는 시간의 전환성을 가미할 줄 아는 참으로 멋지고도 유유자적한 사람들이었나보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이런 고민아닌 고민도 시간이 나야할텐데 말이다. 근데 시간은 항상 흐르는 건데, 나는 왜 지금 '고민할 시간까지 마련할까?'하는 한심스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 하! 이거 참 돌고 도는 오리무중 속이로다!

'시간'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알고 싶어서 읽었던 책이 몇 권이며, 인터넷 문서가 분량이 얼마였던가. 하지만, 난 여전히 희랍인의 '시간'에 대한 정의의 틀 안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꾸 이런 '답 없는 질문'만 던지고 있다간 나도 모르는 새 시간에게 먹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먹히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시간아! 너 도대체 뭬냐?'
암울해지려고한다…….

이 티스토리를 처음 개장할 때 블로그 이름과 블로그 이미지가 "시간이란 무엇인가?" 였습니다. 뭐 그렇다는 거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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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관한 도서목록] - 수년 동안 시간의 실체가 궁금해서 읽어왔던 도서 목록입니다.


+ 그외 다수

[그외]
인터넷 문서 약 800페이지 분량 읽음.(정리를 해뒀기에 페이지 수를 대략 알고 있고요.)

[너스레]
누군가가 제게 시간이 뭐냐? 고 물어오면 '모른다.' 딱 이 한 마디로 밖에 답을 못할 것 같습니다.
'고전물리학적 관점의 절대시간, 상대론적 관점의 상대시간'... 뭐 이런 단편적인 지식이야 얘기해줄 수 있지만...

아! 그래서 시간이 뭐냐고? 시간의 실체가 뭐냐니깐? 하고 다시 물어오면,
아마도 난 틀림없이 이렇게 얘기할 것 같아요.

시간... 그게 뭔 줄 알면 내가 神이다 짜샤~ 물어볼 걸 물어봐라...

인간은 어쩌면 근원적인 것의 실체는 영원히 밝혀내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빅뱅 우주론에 의하면 이 우주는 無에서 시작됐다고 하더군요. 태초에 Bang하는 찰라, 물질과 반물질, 암흑물질... 심지어 시간과 공간 까지 분리됐다고 하더이다...
빅뱅우주론은 아무리 봐도 과학이라기 보단 공상과학적인 모티브에 가깝단 생각이 간혹 들더군요. (빅뱅우주론 연구하는 분들이 듣는다면  뺨 맞을 소리겠지만;)

그리고 현 우주의 모든 물질(반물질, 암흑물질, 에너지류는 제외)에서 빈 공간을 뺀 순수한 물질입자의 총합은 0(제로, 영)에 수렴한다고 하더군요.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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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에너지의 실체는 또 뭐래? -.-;

어차피 완벽히 증명도 할 수 없는 현대 우주론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현대 우주론은 이건 뭐 과학이라기 보단 철학으로 들어가니...
과학이 다시 희랍 철학으로 회귀하고 있단 생각이 스칩니다. 거기서 와서 거기로 다시 가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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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nos*(시간) IMAX
: 이 다큐멘터리는 내레이션 없이 음향효과와 영상만으로 이루어진 다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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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4일 토요일

우주 속의 나, 내 속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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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속의 나, 내 속의 우주
作 : 소니
- 2003년 2월 13일 오후 3시 9분 


우리는 모두 우주 속에 속한 모래알
한 톨의 모래알 속엔 우주가 있네
팽창하는 우주 속에 갖혀 있는 나
내 속에 스며 있는 또 하나의 우주

어쩌면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는 클라인 병(甁)일지도 몰라
어쩌면 우주와 나는 함께 맞물려 있는 클라인 병(甁)일지도 몰라

적분과 미분의 틈에 갖혀 있는 혼돈된 우리네 인생

시간과 공간은 없는 것인지도 몰라

공간이 한정된 것이라면
공간 저 너머에는 어떤 눈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까?

시간이 제한된 것이라면
시간의 종말에는 무엇이 우릴 맞이하고 있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공간을 끝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시간을 셀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神이라는 절대자가 형상을 가진 그 무엇이라면 神은
어쩌면 우주 전체가 아닐런지....

그 속에 속한 저 무수한 별들은
어쩌면 神의 세포이며, 핵이며, 전자가 아닐런지....

만일 神이 무형상의 그 무엇이라면 神은
어쩌면 우리 자신 속의 어딘가에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닐런지....

어쩌면 神은 시공 복합체일지도 모르지....

시간과 공간을 합쳐 놓으면 무엇이 될까?

인지할 수 없는 먼 옛날
빅뱅이 일어나기 바로 그 이전까지 시공은 하나였다는데,
우리는 어느 누구도 사유할 수 없다.

시공이 합쳐진 상황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만일 어느 먼 후일 神이 시공의 틈바구니에서 뛰쳐나와
나 여기 있노라! 하면
참 우스울 것 같다.
참 우스운 형상일 것 같다.

가끔 時, 空, 神 에 대한
가 없는 의문에도 휩싸여 느껴보자!
내 속에서 나를 흔드는 목소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한번쯤은 고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