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26일 금요일

사이비 영성단체 붓다필드(신동아 기사)


사진 (사기파문을 일으킨 붓다필드의 '게이트' 모습)


[신동아]
지난해(2007년) 11월, 낯선 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김 박사님이시죠? 선생님이 3년 전 ‘신동아’에 게이트를 소개한 글을 읽은 사람입니다.”
“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암만 봐도 사기 같은데요. 혹시 이후 그를 검증한 적이 있나 해서요.”
“있습니다만, 어떤 이유에서 그를 사기꾼으로 판단했습니까.”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여제자를 성추행하고 돈을 엄청 밝힌다는 것, 그리고 수련법은 가르치지 않고 말장난만 계속한다는데요.”
“혹시 선생님도 피해를 당하셨나요?”
“아니, 전 그렇지 않습니다만, 과연 스승으로 모셔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어서….”
“미련 없이 벗어나십시오. 본질과 영성의 메커니즘을 지식으로 수련한 사람입니다. 아울러 영적인 수련은 해본 적도 없고, ‘신비’를 내세워 돈을 밝히니 빨리 나오셔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밖에도 그를 추종하던 많은 사람으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과연 그가 도인이냐, 아니면 도인 흉내를 내는 것이냐고.

필자는 3년 전 ‘신동아’(2005년 4월호)에 붓다필드라는 수련단체의 지도자를 소개한 적이 있다. 기사 제목은 ‘장풍, 축지법, 유체이탈…대(大)도인 아니면 대(大)사기꾼?’이었고 부제는 ‘기인(奇人) 게이트와의 만남’이었다. 수련에 대한 일반인의 목마름을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소개했다.


+ 전문직, 지도층 인사 많아
그 글이 나간 뒤 주변의 여러 도반으로부터 게이트가 ‘대사기꾼’에 가깝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후 몇 달간 정밀하게 추적한 결과 도인의 흉내를 낸 흠많은 지도자였음을 알게 됐다. 당시 필자의 글을 읽고 붓다필드에 가입한 순수한 구도자들에게 엎드려 사죄하고, 아울러 ‘신동아’ 측에도 깊은 사과를 드린다. 나 자신의 구도 욕심으로 순수한 구도자들의 눈을 멀게 한 그 부끄러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마는….

인간의 소외된 영혼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종교이고 또 하나는 수행이다. 어느 것을 택하더라도 목적은 안심입명(安心立命)이다. 즉 삶에 있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죽음에 있어서 명에 따른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집단 공동체 의식이 유별나게 강한 탓에 종교인이 많고 영성을 추구하는 수행도 집단적인 성격을 띤다. 사이비 종교와 수련단체가 난무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이비 종교의 문제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므로 논외로 하고, 웰빙과 단(丹), 선(禪), 요가 열풍에 힘입어 급속히 번창하고 있는 각종 수련단체의 사이비적 행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어느 단체가 사이비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교리, 지도자, 신도라는 3가지 구성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상식을 벗어난 면이 있다면 일단 의심하고 볼 일이다.

이제 게이트를 비롯한 사이비 수련단체 교주의 행태를 고발함으로써 나 자신이 수련사기를 당한 창피함을 만천하에 드러내고자 한다.

붓다필드(Buddha Field)는 2002년 ‘젠풀’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로 출발한 마음수련단체다. 도(道)를 사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어느 사업가가 수억원을 들여 개설했는데, ‘신비의 질문답변’ 코너를 통해 게이트(Gate)라는 아이디를 쓰는 신모씨가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당시 한국에 막 알려지기 시작한 유럽의 신지학(神智學)을 공부하고 서구의 브라더후드와 UFO에 심취한 그는 인류의 기원과 종교적 성향에 대한 참신한 풀이로 사이트를 방문한 젊은이들로부터 ‘마스터’란 칭호를 얻는다. 이후 오프라인에서 30여 명으로 첫 모임을 가진 후 구도를 목적으로 하는 순수 수련단체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다.

고만고만하게 불교식 자각공부를 하던 붓다필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유명 인사들이 회원으로 들어오면서부터 고급 수련단체로 떠올랐다. 고위직 판·검사 등 법조인, 교수, 기업가, 군 장성 등이 전면에 포진하면서 의사·한의사, 변호사 등의 전문직 종사자와 공무원들이 잇따라 문을 두드렸다. 특히 기(氣) 치료에 관심 많은 한의사가 많다. 5년간 70여 명의 한의사가 회원으로 가입했다.

+ 900명이 넘는 ‘붓다’
2005년 필자의 ‘신동아’ 기고 이후 교세가 더욱 커져 신도가 7000여 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도자인 게이트는 사이비 교주의 전형적 행태를 드러내 헌금 요구와 여제자 성추행, 도박을 일삼았다. 심지어는 빙의령(憑依靈)을 퇴치한다며 환자를 치료하다가 실정법상 중범죄에 해당되는 행위까지 저질렀다.

초기의 추종자로서 모임 확장의 일등공신인 김○○은 이를 보다 못해 최근 양심선언을 하고 지도자에게 그만두자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미 인지부조화의 정신마비 상태로 들어선 지도자는 오히려 그를 ‘빨갱이’로 매도하면서 단체 유지에 혈안이 돼 있는 실정이다.

붓다필드는 말 그대로 붓다, 즉 깨달은 자들의 광장이다. 회원은 때가 되면 견성(見性) 인가를 받는다. 스승인 게이트로부터 ‘깨달은 자’라고 인정받는 것으로, 특별한 절차는 없다. 그저 게이트가 붓다필드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인가’를 공지하면 끝이다.

2002년 12월 첫 견성자가 탄생했다. 이듬해 3월 2호 견성자가 나왔는데, 그가 바로 최근 양심고백을 한 김○○다. 견성자 수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2003년 7월까지 30명이 견성 인가를 받았는데, 2007년 12월엔 한꺼번에 110명의 견성자가 쏟아져 나왔다. 붓다필드가 그간 배출한 총 견성자 수는 900명이 넘는다.

견성 인가는 돈으로 연결된다. 견성 인가를 받은 사람에게 모금책이 접근해 ‘감사헌금’을 권유한다. 1000만원이 기본이다. 내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냈다.

다음은 그간 붓다필드의 2인자로 활약해온 김○○가 폭로한 내용이다. 그는 게이트의 비서실장 노릇을 하며 붓다필드의 재정을 관리해왔다.

유체이탈을 자유자재로 하고 우주의 대마스터다.

전생에는 이집트의 신으로까지 추앙받았던 아몬이시었고 우주의 끝을 넘어 차원의 신비를 꿰뚫고 있기 때문에 내가 병이 걸리더라도 귀신처럼 낫게 해주실 수 있는 분이다.

무릎연골이 다 파열될 정도로 젊은 시절 극한의 수행을 하신 분이기 때문에 신선을 만나 위대한 가르침을 받고, 그것을 다시 세상에 전하기 위해 이곳에 오셨다.

한마디로 전지전능하시고, 자비의 화신이기 때문에 그를 존경하고 따른다. 그런 스승을 나의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게이트의 대표저서인 ‘신비의 문’ 표지
(혹여 어디선가 눈에 띄더라도 책장을 들추지 마시길 권함.)


+ “아들 수면제 먹여 재우고 나오라”
이런 스승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을 보며 세상 사람들이 혀를 차며 ‘사이비 맞군!’ 해도 우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정도로 대단한 프라이드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 스승, 우리 단체는 정말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건강하고 진실된 단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의 모든 믿음이 다 거짓이고 꾸며진 일이고 만들어진 이야기라면, 스승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그렇다면 나의 믿음은 무엇을 근거로 생겨난 것인가? 그 믿음을 지탱시켜준 진실이 다 거짓이라면 어떻게 될까.

신선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고 신선문이라는 단체에서 이것저것 들은 이야기를 조합해 만들어낸 이야기라면? 무릎이 안 좋은 것이 치열한 수행 때문이 아니라 군대에서 부상당한 탓이라면? 신선사부에게 받은 ‘금당’이라는 호가 부산 동래구에 사는 한 수련단체, 신선문의 지도자에게 받은 법명이라면? (게이트의 대표 저서인) ‘신비의 문’의 내용이 ‘신성학회’ 시절 이일우씨한테 배운 브라더후드 가르침의 짝퉁이라면? 10년 넘게 브로커 생활을 하다가 붓다필드를 시작한 동기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을 정도로 도탄에 빠진 가정경제를 위한 것이었다면? “초월하려는 의식을 붙잡기 위해 가장 탐욕적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스승의 고백이 그저 육체의 욕망에 충실한 극도의 이기주의의 표출이라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제자들에게 “내가 편해야 지구가 편하고 내가 행복해야 법문도 나오고 가르침도 펼 수 있기에 나를 기쁘게 해다오” 하며 접근했다면? 여제자에게 “너는 반드시 스승과의 사랑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속삭이며 그 제자의 애인이던 남자 제자를 서울을 떠나게 만든 후 “나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붓다)필드도 때려치우고 가르침도 때려치우고 히말라야로 들어가버리겠다”고 협박했다면? 그리고 결국 그 여제자의 마음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면? 서울에 가 있는 제자의 아내에게 음란한 메일을 보내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수면제 먹이고 재운 후 즐기자”는 전화를 하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의 믿음은 많이 흔들릴 것이고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을 통해, 믿음을 통해, 신념을 통해, 신앙을 통해 우리는 존재를 던질 수 있다. 그것을 통해 나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는 것이고 신념은 어떤 공통적인 사실에 근거해 이루어진다.

저는 무조건 당신을 믿는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어떤 믿음에 대한 근거가 반드시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 근거가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지고, 스승에 대한 신앙이 송두리째 뽑힐 사건이 발생한다면(기독교인들에게 외계인의 방문 같은 경우겠지만) 우리들의 사랑과 믿음과 신앙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 뉴질랜드 카지노의 VIP
그의 천박한 행태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1. 아들 치료 핑계로 거액 챙겨
그 회원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분이었다. 이런 인사가 붓다필드에 들어오면 어떻게 해서든 돈을 빼내려 한다. 마침 이분의 아들이 오래전부터 몸이 불편했다. 이런 경우 게이트에게는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치료 빙자 사기가 그것이다. 암암리에 형성된 게이트의 치료능력에 대한 제자들의 환상 덕분에 이분은 (게이트가) 아들을 치료해줄 것이라고 믿게 됐고, 아들은 게이트가 있는 뉴질랜드 센터에 1년 넘도록 머무르게 됐다.

하지만 정작 게이트의 치료행위는 거의 없었고 그의 제자들이 기 치료와 운동만을 시켰을 뿐이다. 호전이 되기는커녕 현재 그의 아들은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뉴질랜드 센터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일부 회원들이 구타와 성추행을 당했음이 아들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는 것이다. 치료 명목으로 이분에게 가져간 돈만 1억3000만원. 그 외에도 그는 2억원 상당의 주식을 대여해줘 치명적인 물적 피해를 보았다. 현재 경찰서에 게이트를 사기로 고소한 상태다.

2. 연구 성과 빌미로 거액 사취
게이트와 오랜 기간 애증의 관계에 있는 K대 화학과 C교수는 초전도체 연구의 전문가였다. 게이트는 그에게 도력(道力)으로 노벨상을 받게 해준다면서 10여 년간 착취했다. 집안의 고전 유물을 넘기도록 해 헐값에 팔아 유흥비로 탕진하는가 하면 주변 동료에게도 빚을 내도록 하여 가로챘다. 이후 그에게서 거액의 자금을 받아내 뉴질랜드로 도주한다.

결국 이 일로 고소를 당해 기소중지 됐다. 나중에 고소금액만큼 신도들로부터 모금, 변제한 후에야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명문 집안 출신인 C교수는 게이트와의 악연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3. 유족 위로금으로 카지노 도박
그밖에 암 치료를 기대했던 게이트의 제자들 중 여러 명이 이미 사망했다. 충청도의 초기 제자인 ○○은 위암에 걸려 주변 의사들이 입원치료를 권했으나 암이 아니라는 게이트의 말만 믿다가 치료시기를 놓쳤다. 더욱 몹쓸 짓은 이렇게 죽은 사람을 위해 모금을 하라고 지시한 다음 수천만원이 모이자 이 돈을 유족에게 전달하기는커녕 카지노 도박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이 얘기를 최근에야 전해 들은 그의 유족은 어이가 없어 “세상에 망자를 가지고 장난을 치나”라는 말을 남기고 그의 곁을 떠났다. 또한 ○○대 한의대생들에게 인간의 몸과 기에 대한 의통을 열어준다며 수천만원을 요구했다. 부모를 통해 3500만원을 빌려준 어느 학생은 현재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게이트는 뉴질랜드 최대 도시인 오클랜드에 있는 스카이시티 카지노의 최고 VIP다. 직업도 없는 그가 어떻게 카지노의 최고 귀빈이 됐을까. 답은 뻔하다. 한국 제자들의 회비와 암암리에 보내주는 거액의 헌금이 모두 카지노의 슬롯머신에 쏟아부어진 것이다. 뉴질랜드 센터를 짓겠다, 스포츠카 사달라, 집을 사겠다 등의 명목으로 제자들에게 걷은 엄청난 목돈이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다. 측근의 증언에 따르면 중독증세가 심할 때는 아침, 저녁, 새벽을 가리지 않고 카지노에 출입한다고 한다.


+ 여제자들의 ‘커밍아웃’
나 자신이 구도자로서 10여 년간 겪어본 바로는 어떠한 사회적 지위에 있던 사람이건 수련에 관해서는 유치원 수준이란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의 교육이 일생을 좌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도 입문자들에게는 초기의 가르침이 매우 중요하다.

필자 자신이 5개월가량 게이트의 수련이론에 빠진 일이 있다. 오로지 나만 보라, 남을 분별하거나 시시비비를 따지지 말라, 영혼의 성장이 지구에서의 마지막 여정이다, 행동하는 법문이 최고의 보시다, 기(氣)라는 마음의 상념을 깊이 연구해 보라 등.

불교식 법문과 기독교적 사랑, 신비학적 이야기에 인류의 미래와 라즈니쉬류의 깨달음을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세계인 선도와 결합시켜 자신만의 사상체계를 설파하는 모습이 그럴듯해 보였다. 의문은 질문과 답변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 질문 자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수행자의 자세론은 대도인이라는 느낌을 줄 만했다.

하지만 3개월간 추적한 결과, 아니었다. 그가 자신의 스승이라고 내세운 사람들은 그를 아예 제자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의 이론을 정밀하게 따져보니 신비학적 전승과 무협지, 불교, 선도 이론을 인내천 사상에 결합시킨 짜깁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 단체의 몇몇 주요 인물에게 “아닌 것 같다”고 얘기해줬지만, 마이동풍이었다. 그가 소개한 고급 수행이론과 몇 가지 도술(엄밀히 말하면 마술)은 신도들을 열광케 하기에 충분했으니….

정말 부끄러웠다. 창피의 수준을 넘어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하지만 ‘대통령도 사기꾼에게 속는데…’ 하고 위안하면서, 인도 철학자 카르비의 명언을 새기며 나 자신을 성숙시키는 계기로 삼았다.

“속이려들지 말고 언제든지 속을 준비를 하십시오. 속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남을 속이면 모든 것을 잃습니다.”

3년 전 붓다필드를 조용히 떠나면서 이 단체가 과연 얼마나 지속될까 의문이었다. 신도들로부터 거둔 돈을 오로지 사치와 노름으로 탕진하는 교주의 타락한 사생활, 돈 있어 보이는 새로운 신도들에게 정성을 들여 ‘깨달음 장사’를 하는 사이비적 행태가 오래갈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단체 확장의 일등공신이던 사람이 죄책감을 못 이겨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비리를 폭로하자 여제자들이 ‘커밍아웃’을 시작했다. 지금은 와해 수순을 밟고 있다.

왜 이런 단체나 교단이 횡행할까. 영성을 추구하는 인간이 원래의 자리에 대해 너무나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에 기대는 객관적 종교와 더불어 나 자신을 탐구하는 주관적 수행은 영성 추구의 양대 축이다. 수천년간 정치권력과 민중으로부터 검증을 당해온 종교는 논외로 하고(여기에도 사이비가 많다), 주관적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계에도 드디어 사이비 시대가 열린 느낌이다. 이유를 살펴보자.


+ 수요와 공급의 법칙
우선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도를 열렬히 추구하는 사람이 많기에 그들을 모으려면 고급이론과 실력이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하나의 기업형 단체가 설립되면 그에 기생해 공범의식으로 뭉치고 운명을 같이할 추종자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다음으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도를 삶의 새로운 돌파구로 삼아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 초능력이나 사주관상, 의통과 도통으로 남들 앞에 우뚝 서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불치와 난치, 고질병에 걸린 환자들에게는 수행이 현대의학을 대체하는 새로운 치료법으로 다가간다. 또 사회적으로 성공했더라도 궁극적인 존재 이유를 모르는 허전함에 기댈 장소를 찾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새로운 건강법으로도 각광 받는다. 수행은 바야흐로 문화의 비주류에서 주류로 옮겨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이비 단체가 만들어지고 사이비 교주가 탄생한다. 정신세계를 갈구하는 순수한 이들에게 오물을 뒤집어쓰도록 유도한다.

문화란 무엇인가. 삶의 형태가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되는 모든 것을 이르는 말이다. 주거방식과 음식, 화장실 등 기본적인 삶의 방식이 진화해온 모든 것이 문화다. 그리고 개인과 사회, 국가와 인류가 자신을 드러내는 양식이다. 그래서 문화에는 시시비비가 없으며 옳고 그름이 없다. 오로지 한 문화에 종속된 주관적 잣대가 있을 뿐, 객관성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어떤 문화든 나름의 이유가 있고 삶의 형태를 드러내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수련문화만큼은 잣대와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왜냐. 이는 삶의 형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 죽음 저 너머까지를 포용하는 무한대성을 갖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방향성이 있어야 하고 엄밀성이 내재돼야 하며 정확성이 있어야 한다. 원래의 존재 너머에 있는 본질―대자유라 해도 좋고 사랑이라 해도 무방하고 무(無)와 허(虛)라고 해도 괜찮은―그것을 향해 가는 길은 삶의 형태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것은 철저하게 개인의 문제이며 어떠한 권위도 필요치 않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자신을 높은 영적인 세계로 이끌어줄 어떤 권위 있는 사람이나 권위 있는 분위기를 찾는다. 그들은 누군가가 엄청난 힘이나 기적을 발휘해 자신들을 영원한 자유의 나라로 데려다 주길 바라고 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단체를 만들고 교리에 매이며 교주를 우상화하는 것이다. 이런 천박한 수련문화는 결코 개인을 변화시키거나 깨달음을 줄 수 없다. 또 다른 새장 속의 새가 돼 스스로를 구속하기 때문이다.

1992년, 내가 수련을 처음 접했을 때 주변의 친구들이 묻는 질문은 비슷했다.

“손에서 장풍 나오냐?”
“공중부양으로 방방 뜨겠네?”
“초능력 생기면 주식종목 좀 알려주라.”
“몸에 그렇게 좋다면서?”

아마 일반인이 생각하는 기와 도에 대한 인식 수준은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금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신과 영혼에 대한 지혜를 인간의 의식에 집어넣은 철학쯤으로 이해한다.

기와 도를 찾는 사람들은 기존의 사상과 철학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간 본성의 영역을 탐구하는 깨달음의 가치를 인정하고 공유하기를 원한다. 수련단체가 60여 개에 이르고 한번이라도 수련을 접해본 사람이 300만명을 웃돈다는 사실은 분명 문화의 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 현모양처가 교주의 다섯째 아내로
하지만 고도의 정신세계가 몇몇 사이비성을 띤 단체나 교주 탓에 천박한 문화로 변질되고 그에 따른 피해자가 양산되는 것은 머지않아 큰 사회문제로 떠오를 수 있다. 필자도 속리산과 지리산에서 도사인 체하는 교주 두어 명을 모셔 본 경험이 있다. 그들의 논리가 하도 그럴듯해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접근했다가 최면 비슷하게 끌려들어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기성을 알게 됐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아무리 도반들에게 말해주어도 믿지 않는 것이 더 신기했다. 덕택에 인간의 믿음에 대한 공부를 더 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는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 국내의 샤머니즘적 수련문화는 신비주의와 영지주의, 애니미즘과 고등종교가 체계 없이 뒤섞인 것으로 난법(亂法)으로 얼룩져 있다.

#사례 1
“일제시대 군인들이 감춰놓은 엄청난 보물이 남해 어느 섬에 있다. 내가 유체이탈로 그 곳을 보니, 10년 후에 찾으라는 계시가 있었다. 내 곁에만 있으면 일인당 500억원은 가져갈 것이다.”

사이비 교주의 이 말을 믿고 그의 아내가 된 사람이 다섯이다. 그중엔 명문 여고와 여대를 나와 아들 딸 잘 낳아 기르던 현모양처도 있다. 그는 가정을 버리고 교주의 부인이 됐다. 그것도 다섯째 부인으로. 남편이 아무리 애원하고 하소연해도 여자는 결코 돌아오지 않았다.

#사례 2
“우리 단체는 산에서 알몸으로 정기를 받고 마음 수련을 한다. 하루 4시간만 자고 좌선을 통해 우주와 내가 하나 되는 수련을 한다. 세상의 재물과 명예는 헛된 것이니 좋은 곳에 쓰기 위해 하나로 합하자. 내가 좋은 곳에 쓰겠다.”

세 명의 여자 신도와 가정을 가진 남자가 알몸으로 통정하다 보니 가정이 깨지고 고소고발사태를 빚었으며 삶이 엉망으로 되고 말았다.

#사례 3
“우주의 대 마스터로 자처하는 스승님께 질문 드립니다.

1. 유부녀에게 음란 메일을 보내 “함께 자자”고 하면서, “아들 때문에 못 간다”고 하자 “수면제 먹여놓고 나오라”고 한 것도 깨달음의 형태입니까?

2. 당신 아들을 치료해줄 테니 억대의 돈을 빌려달라고 해놓고 갚지 않아 고소당한 것이 재물과 명예는 뜬구름이라고 그렇게 강조한 이유입니까?

3. 수련센터를 짓기 위해 수억대의 성금을 거둬 카지노 노름으로 다 날린 것이 우주의 마스터가 하는 행동입니까?

4. 제자가 암으로 죽자 유족의 생활자금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돈을 긁어모아 모금액 전부를 카지노에서 날려버린 것이 스승의 권위입니까?

5. 이런 사실에 대해 물어봤다고 해서 ‘카르마의 역습’이니 ‘영혼의 자살’이니 하면서 저주와 협박을 퍼붓는 것이 스승의 도리입니까?”

#사례 4
A(65)씨가 대자연의 기와 우주의 원기를 통합한 에너지로 인간의 정신을 정화한다며 수련단체를 창시한 것은 1979년. 그는 추종자를 모아 단체를 설립했고 기 치료사 행세까지 했다.

A씨가 한창 교세를 확장하던 시기인 1994년에는 B씨가, 1992년에는 C씨(여)가 각각 회원으로 가입했고, 이들은 모임의 간부로 활동하며 A씨와 가까이 지냈다. A씨는 1995년 B씨에게 “당신 동생의 정신분열증을 낫게 해주고 당신 사업도 번창하게 해주겠다. 모임 발전을 위해 회관을 건립해야 하니 당신이 헌금을 하고 물심양면으로 도우면 모든 게 잘될 것이다”라고 속여 수년간 모두 5억5680여만원을 받아 가로챘다.

그는 같은 해 C씨에게도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당신은 57세에 죽게 돼 있고 아들 2명은 박수무당이 된다. 그러나 아무 생각 말고 이유도 묻지 말고 시키는 대로 복종하면 모든 액운을 없애주겠다”며 3550만원을 받아 챙겼다.

B씨와 C씨는 2001년 A씨를 형사 고소했으며 결국 A씨는 사기죄로 2003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는 병자를 치유하고 운명을 바꾸거나 영원히 죽지 않게 해줄 절대자라고 믿게 하고, 자신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큰 재앙을 당할 것이라고 속여 이에 현혹된 원고가 돈을 지출한 사실이 인정된다”라고 밝혔다.

위의 사례들은 ‘영적 잡것’이 도사를 가장해 착취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더 이상 뿌리를 내리기 전에, 피해자가 더 생기기 전에 법의 이름으로 심판할 필요가 있다.


+ 플라시보 효과
그밖에도 무수한 사례가 있다. 그야말로 책 수십권 분량이다. 사기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떠나 수요가 공급을 창조한다는 자본주의 법칙이 수련에서도 어김없이 들어맞는다. 도 닦음이 하나의 상품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도라는 상품에 현혹돼 마구잡이로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그 유형을 공개함으로써 그들이 꿈에서 깨어나길 바라는 사람이 어찌 나 하나뿐이랴.

도에 대한 수요자 대부분은 건강과 신비주의, 초능력, 전생에 관심이 많고,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크고 현실계에서 도피처를 찾는 사람들이다. 엄밀하게 말해 욕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큰 욕심을 가진 사람들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나 자신이 그랬으니까.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게 마련. 공급자는 수요자의 심리를 간파해 자신을 구원자나 메시아로 포장해 도를 팔아먹는다. 종교적 신앙의 문제는 조금 다르지만, 수련과 도 닦음에 대한 포장은 이성으로 능히 판단할 수 있는데도 무지한 사람들은 그대로 속고 있다. 아니, 자신이 자신을 속이는 것을 알려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속이는 유형으로는 대략 다음의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건강. 현대의학은 치료의학으로서 자리매김했지만, 수련은 예방의학의 가치를 지닌다. 그런데 의학 중에서도 최고의 의학은 마음의 문제에 접근한 심성의학이다. 아쉽게도 현대의학이 물질에 기초를 둔 뉴턴의 기계론에만 매달린 나머지 질병의 원인을 소홀히 한 탓에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기 치료다. 소리 치료, 명상 치유, 색채 치료, 향기요법 등이 이 분야에 속한다.

이를 물리학의 관점에서는 만물 생성의 기초인 파동, 즉 떨림에 의한 물질론에 기초를 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파동의 고급 영역대는 인간 의식의 고(高)진동에 의한 영역이다. 따라서 신경성으로 이름 붙은 모든 질병은 심성의학으로 불리는 내면의 감정치료가 가능하다. 이를 악용해 사이비 기 치료사가 등장하고 불법 의료행위가 판을 치며 잡도사가 등장하는 것이다.

현대의학이 손대지 못하는 불치, 난치, 고질병에 걸린 환자나 그 가족이 영험한 도사를 찾는 심정을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해서 나았다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또한 실제로 나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고친 걸 모르고 있다. 즉 명성 있는 도사의 기를 받으면 몸이 낫는다는 강력한 믿음이 병을 고친 것이다. 실제로 지르르 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가짜약으로 치유되는 플라시보 효과가 기 치료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를 전이하는 것은 누구나 약간의 수련으로 가능하다. 생명에너지의 본질은 파동으로서 사람에게 전기적 감각으로 다가온다. 예민한 사람은 일주일 정도의 수련만으로도 전기적 감각을 느낀다. 그것이 기의 전이로 나타나는 것이다.

둘째는 신비주의다. 신비를 팔아먹는 교주나 그에 매료된 신도 이야기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영혼, 조상신, 천도재 따위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문제다. 더 웃기는 것은 고귀한 영적 존재, 샴발라의 대사, 우주의식과의 메시지 등을 진짜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다. 1947년 이후 UFO 연구자들이 제시한, 갖가지 진화된 의식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굉장한 포장술로 현대과학과 결합했다. 학문적 연구나 재미로 심취하는 사람이야 문제가 없지만,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을 상대로 신비적 천민자본주의를 실험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다.

절대의식이 저급한 파동으로 물질육체를 만들었다는 논리는 수천년 전부터 전해온 수련계의 상식이다. 따라서 고급 진동에 의한 영적 존재는 직관과 명상으로 체험해야 한다는 사이비의 주장은 수련이론과 딱 맞아떨어진다. 거기에 덧붙여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 녹아 있는 샤머니즘적 유일신 사상과 결합된 갖가지 환상은 수련이 아닌 무당파의 일루미네이션(빛의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 신비주의 예를 들어보자.
1.
지구에는 영적으로 상승된 존재 144명이 있는데, 전 지구인의 영혼 진화를 위해 더 높은 곳에 가지 않고 머물러 있다. 나는 그들과 수시로 교류하며 깨달음을 전파하는 사람이다.

2. 티베트 포탈라 궁의 지하 6층 이하에 지구인의 영혼을 관리하는 존재들이 있다. 내가 유체이탈로 가끔 드나드는데, 미국의 초능력자들이 방해해서 더 이상은 못 가보았다.

3. UFO는 사실이다. 고도로 진화한 영적 존재는 지구라는 식민지에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놓고 죽음이라는 정화과정을 스스로 만들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하여 의식으로 비행체를 만들어 지구인의 파장에 맞추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UFO다.

4. 인간이 저급한 이유는 자신의 진동수를 높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명상으로써만 가능한데, 고급 진동이 오면 자신을 빛으로 바꿀 수 있다. 그걸 초탈이라고 하며 나와 함께 있으면 언제든지 초탈이 가능하다.

그밖에도 많은 신비적 설명을 접할 수 있다. 원래 인간은 한계를 지닌 채 살아가야 하므로 불교식 자각과 신비학적 서구사상을 결합하면 재미가 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는 옛 할머니들의 구전동화같이 우리를 흠뻑 취하게 만든다. 여기에 종교적 구원이나 심판, 독특한 수행법을 가미하면 우습게도 이를 확신하는 추종자가 수천명에 이르게 된다. 교주의 마각이 드러나도 여전히 따르는 신도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신념체계가 얼마나 위대한지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 마술과 도술의 혼합
인간은 어떤 신비도 스스로의 힘으로 체험할 수 있다. 우주의 소리를 듣는 것도, 영혼의 존재도, 성령이 임하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만들어내는 까닭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간의 두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즉 상상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체험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현대 스포츠에서 말하는 이미지 트레이닝, 예지몽이라 하 는 미래 예언, 고급 수행자의 심상화 수련법이 다 이런 범주에 든다. 따라서 어떤 신비주의도 인간의 고유한 능력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교주는 결코 탄생할 수 없다. 신도가 교주를 만드는 것이지 교주가 신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는 초능력이다. 염력(念力), 염동(念動), 염사(念寫)에 장풍, 축지, 투시, 유체이탈, 공중부양…. 가장 흔한 것이 스푼 벤딩(숟가락 구부리기)이다. 아울러 인체 투시와 질병 부위 맞추기 등도 신도들을 혹하게 만드는 종목이다. 중국 기공사들은 물질의 성질을 바꿔버리기도 한다.

이 분야는 마술과 도술을 혼합한 것이다. 기초 초능력인 스푼 벤딩이나 염력에 의한 자석 돌리기, 바람개비 돌리기 등은 일반인도 몇 주만 배우면 할 수 있다. 투시도 강력한 염원으로 고정관념을 벗어나 할 수 있다는 확신과 절실함이 있으면 가능하다. 연습방법도 있다. 유체이탈이란 것도 어느 정도의 단전호흡 능력만 있으면 쉽게 체험할 수 있다. 안 된다고 하는 본인의 의심이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필자도 위에 제시한 몇 가지 초능력을 체험한 바 있다. 함께 수련하는 몇몇 도반에게 요령을 가르쳐주자 다들 해냈다. 하지만 이런 능력은 수련자에게 큰 의미가 없다. 의식의 변화와 더 큰 자각에 아무런 효험이 없다. 단지 그 덕분에 수련의 재미를 느낀다는 점과 앞으로 더 많은 체험을 하게 될 거라는 기대 외에는.

문제는 수련과 상관없는 마술로 초능력을 펼쳐 보이는 경우 많은 사람이 속는다는 사실이다. 염력으로 자석을 움직이는 사람의 손톱 안에는 지남철 가루가 숨겨져 있다. 손가락으로 기를 뿜어내는 사람은 사전에 유황가루를 태운 물질을 손끝에 발라놓는다. 숟가락을 구부릴 때는 사전에 열처리를 한다. 바람개비를 장풍으로 돌리는 사람은 대류현상을 이용한 과학 지식에 밝은 사람이다. 종이로 젓가락을 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손끝으로 자르는 것이다. 대못을 박는 능력은 무른 송판을 사전에 준비할 때 가능하다. 멀리 떨어진 맥주병을 장풍으로 쓰러뜨리는 경우 탁자 밑에 스프링이 마련돼 있다.

점술산업 규모가 4조원을 웃돈다는 보고가 있다. 사주와 명리, 풍수와 수맥 등 보이지 않는 세계가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관한다는 논리는 동양의 전통사상과 맞닿아 있다. 대선후보의 조상 산소 이장, 재벌의 양택풍수, 환자의 수맥진단이 다 거기서 비롯된 것이다.

엄밀히 말해 보이지 않는 기의 세계는 미래과학이다. 하지만 전체와의 조화, 존재하는 모든 것에 이롭게 되어야 함에도 개인의 기복으로만 치닫는 게 문제다. 이에 따른 피해가 얼마나 크면 “반풍수 집안 망친다”는 속담까지 생겨났겠는가.


+ 현실 도피로서의 수련문화
사이비는 인간의 약한 마음을 철저하게 파고든다. 사이비뿐 아니라 고등종교를 표방하는 단체도 이런 장난을 꽤 한다. 영혼의 구원과 심판, 영가의 구천지옥 같은 단어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천도재 한 번에 수천만원을 받는 단체도 있다. 지하철과 길거리에서 조상신의 영험을 들먹이며 호객하는 단체도 많다. 심지어 대학에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들락거린다.

필자의 수련 경험에 비춰 인간의식의 진동수는 마치 라디오 주파수같이 영역대를 달리한다. 즉 영혼의 진동수는 삶의 진동수와는 다른 영역대인 것이다. 그것이 몸에 거주할 때는 구분 없이 동시에 작용하지만 일단 육체라는 공간을 벗어나면 자유로운 의식상태가 된다. 원혼이라는 강력한 집착의식의 영혼은 어느 한 곳에 머물며 조종하는 파일럿이 아니다. 혹 스스로의 의식을 자유롭게 만든 어느 도인이 있어 그 영혼과 교신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육체에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니다. 나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믿음이 나의 의식에 에너지를 부여하여 그렇게 되는 것이다. 즉 내가 그렇다고 믿는 순간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인간 능력의 무한대를 말하는 것이다. 내 의식의 믿음에 따라 모든 것을 창조하기도 파괴하기도 한다. 따라서 천도재 효과나 풍수와 수맥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 나름대로의 영향이 미치게 된다. 대상에게 믿음을 투사하는 순간 그 대상이 에너지를 갖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아는 사람은 결코 점술산업에 투자하지 않는다.

수련이나 신앙은 삶의 공허함을 달래는 데 제격이다. 내가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열심히 살아도 잘 풀리지 않는 현실은 업보와 카르마의 핑계거리가 된다. 조그마한 일에도 감사하라는 가르침은 내 자신의 방어기제를 작동하는 데 좋은 구실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무책임한 논리는 범죄를 합리화하기에 이른다. 삶에 대한 건전한 가치관과 철학의 부재가 원인이다. 어쩌면 천박한 수련과 저급한 신앙이 현실의 도피처를 찾는 사람에게 좋은 구실을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 사이비 판별법 9가지
사이비로 판명된 단체의 옹호자들이 스승 혹은 교주를 내세우는 논리가 기가 막혔다. 자신이 그를 추종하는 것은 그의 사생활과는 상관이 없으며, 오직 그의 가르침을 수용할 뿐 그 외는 알 바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물론 내면의 방어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 눈앞에 드러나는 진실도 외면하는 것이다. 직시가 아닌 회피의 논리만 내세우는 것이다.

단언컨대 수행은 논리가 아니다. 지식도 아니다. 하지만 논리와 지식은 수행의 재료로서 필요하다. 회피가 아니라 도전과 응전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내가 스승으로 모시는 사람이 정법을 가르치는지, 아니면 기나 도를 이용한 천민상업주의를 지향하는지는 다음의 기준에 비춰보면 알 수 있다. ‘의식혁명’의 저자로 유명한 데이비드 홉킨스 박사의 주장이다.

1. 돈이 중요하다고 가르치며 그 돈이 지도자 개인의 용돈으로 쓰인다.

2. 가르침보다는 지도자에 대한 선물과 아첨, 개인적인 충성심이 난무한다.

3. 지도자의 이름만 올려도 요란한 감탄, 존경을 마구 쏟아내며 비판이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은 엄금된다.

4.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 특별한 존재, 예를 들어 우주의식이 성장된 대 마스터라든지 외계의 진화한 의식, 상제님 등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5. 고귀한 영적 존재가 지도자에게 미래의 대재앙이나 닥쳐올 운명을 알려주고 지도자만이 그들과 소통하는 면허증이 있다고(득도했다고) 주장한다.

6. 자신은 수행으로 높은 진동수를 획득해 전생을 볼 줄 알며, 이로 인해 카르마의 보복을 피해야 하는 특별한 의식이나 수련, 보시를 주문한다.

7. 지도자가 속임수를 쓴 사실을 알게 돼도 깊은 뜻이 있어 그랬다거나 제자들 공부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그런 것이라고 미화한다.

8. 조직 자체가 순수하지 못하고 일정한 지위가 정해져 있다. 서열이 올라가려면 반드시 돈이나 여성의 경우 몸이 요구된다.

9. 가르침에서 취할 점은 많으나 중간 관리자에 의한 왜곡과 착취가 횡행한다.


+ 결론
한국 수련문화의 천박함과 상업주의는 경계해야 할 수위에 이르렀다. 곳곳에 출몰하는 사이비 단체들 때문에 고도의 정신행위가 저급한 미신으로 전락하는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전래의 수련문화는 선비정신의 산물로 미래의 과학이자 풍류의 실천철학이었다. 교주를 탓할 게 아니다. 토양이 있어야 만물이 생성하듯, 사이비에 심취하는 자들이 교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무엇이든 하고 싶어 한다. 인간은 그렇게 하도록 허용받았다는 것이 동서양 선지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삶이나 수련의 여정은 각자가 선택한 대로 흘러간다. 그런데 허용의 본질은 사랑이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얄팍한 수련으로 세상에 해악을 끼친다면 존재의 여정은 진화가 아닌 퇴보다.

사이비 수련단체에서 자기합리화에 여념이 없는 도반들은 데카르트의 다음 격언을 새겨보길 권고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의심을 품고 접근해보라. 진리라 이름하는 모든 교리에 역설적인 생각을 만들어보라. 그 생각의 너머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탐구로 들어가보라. 그래서 자신을 있게 한 존재 그 자체를 숙고해보라.”

그래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글쓴이:김종업 한국정신과학학회 이사 up4983@hanmail.net


[ 나가며 ]
한 달 전 쯤 도서관에 가서 종교 관련 책을 뒤적이다가 '신비의 문'이라는 책이 눈에 띄어서 훑어 본 적이 있다. 예전부터 '영성', '영지', '구루', '개벽', '신비'와 같은 일상적이지 않은 단어에 혹하는 기질이 있다보니 '신비의 문'이라는 책을 본 순간 책 주변에서 아우라가 나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열람실 소파에 앉자 훑어 읽기 시작했다. 중간 정도 쯤 훑자 미묘한 느낌이 들어서 일단 책을 덮었다. 원체 '영성', '영지' 관련 글을 많이 읽어왔던터라, '비슷하지만 아닌 것(사이비)' 같은 느낌이 들었나보다. 일단 접고, 대출 받아와 집에서 차분하게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사흘 간 2번을 정독했다. 아니나 다를까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쓸데없는 잡설일 뿐이었다.

새벽에 모기의 날개짓 소리에 지쳐서 일찍 잠에서 깨어나 10여분 만에 모기뇬 -.-; 때려잡고, 인터넷서핑 중에 위의 '신동아' 기사를 접했다. '게이트'라는 잡놈 부류도 부류지만, 어처구니 없는 말장난에 휘둘리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도 아직도 이곳저곳에서 넘쳐난다는 것이 참! 그러하다…….

얼마 전 'PD 수첩'에서 '법연원'에 제기된 의혹에 대해 방영한 적이 있다. 한 때 지하철에서, 길거리 무료 가판대에서, 심지어 우리집 우편함에서 까지 가끔 보이던 '법연원' 관련 체험 수기 책자들. 그 당시엔 사회에 이슈화 되기 전이라, 관심도 안 갖고 바로 버렸었는데……. 'PD 수첩'을 보고 나니 미혹한 자들을 끌기 위한 홍보책자였군.

어제 저녁 서핑하다가 EBS에서 올해 4월에 방영한 '사이언톨로지, 할리우드 스타들의 이상한 종교 (원제:Scientology And Me, BBC)' 다큐를 뒤늦게 보았다. 예전부터 '사이언톨로지와 톰 크루즈'에 대한 웹 기사를 간간히 접하긴 했지만, 그다지 큰 관심은 없었는데, 다큐에서 밝히기로는 사이언톨로지 신도수가 벌써 800만명을 넘어섰단다. 86년인가? 사이언톨로지의 창시자인 교주 '론 허버트'가 죽은 후, 2대 교주가 바통을 이어받았고, 톰 크루즈가 현재 교단 내에서 두 번째 실세란다. 어쩌면 3대 교주는 늙은 톰 크루즈가 해 먹을지도 모르겠다. 심증적으로 느끼기에 톰 크루즈가 비명횡사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3대 교주가 될 것 같다. 다행인지 아직 국내엔 '사이언톨로지' 신도가 아직 한명도 없단다. 아마도 '사이언톨로지'교단이 아직 한국시장엔 관심이 없나보다. 한국의 극렬한 종교분위기를 몰라서일까? 아니면 '라엘리안 무브먼트'가 한국에서 그다지 큰 재미를 못 보고 있다는 실정을 첩보를 통해 알고서 포기한 것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중에라도 국내에 '사이언톨로지'가 잠입하면 또 한 번 사회가 한바탕 시끄러워질 우려가 다분해보인다.

'사이비'가 창궐하는 시대는 살기 힘든 시대라던데, 지금 이 시대가 살기가 참 힘든 세월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사이비' 간단한 구별법
위 기사에 장황하게 여러가지 있지만 아래 두 가지만 머리 속에 심어두고 다니면 어디 가서 사기당할 일 없다.
1. 이 핑계 저 핑계로 돈을 자꾸 들먹인다. (신도가 빚 졌냐?)
2. 돈 없으면 몸으로 때우라고 독촉한다. (신도가 호구냐?)


일부지만 목사, 스님이라는 간판을 달고 사이비 짓거리를 아주 내 놓고 하는 자들로 인해 개신교, 불교 등의 정통종교 아니, 종교 자체를 안 좋게 보는 풍조마저 만연하는 세월이다.

이 세상은 호불호가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와 같은 것이다. 멀쩡한 톱니로만 멀쩡하게 돌아가면 가장 좋은 일이겠지만, 좋았던 톱니도 풍파를 겪다보면 이도 나가고 마모도 되고 그런 것이다. 이 나가고, 마모 심한 톱니는 새 것으로 바꾸면 될 것 같지만, 그게 바꿀래야 바꿀 수가 없는 분야도 더러 있다. 종교라는 것도 어쩌면 그 분야 중 하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든다.

문드러져서 갖다버려야할 건
'톱니라는 유형이 아니라 그 톱니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2008년 9월 11일 목요일

SF 칼럼 [4]:가능성의 한계(4)-순시전달(瞬時傳達)과 외계와의 소통


SF 칼럼 [4]:가능성의 한계(4)-순시전달(瞬時傳達)과 외계와의 소통
들어가기 전에
+ 칼럼의 제목인 순시전달(瞬時傳達:순간통신, 순간송수신, 순간전달 등은 같은 의미)은 풀어쓰면 ‘초광속 실시간 통신’
+ SF나 양자물리학에서의 “순간이동(瞬間移動=공간이동, Teleportation)”은 물질을 양자 암호화(quantum cryptography, 양자얽힘이 어쩌고 저쩌고…)해서 목적지로 복사(전송)하고 원본은 파괴되는 개념.

+ 순간이동(공간이동)에 대해서 쉽게 설명해 놓은 책으로는 ≪스타트렉의 물리학 (로렌스 M. 크라우스 著)≫이 있다. 스타트랙(SF)에서 제안하는 순간이동과 양자물리학에서의 순간이동의 차이점을 알고 싶은 분은 책의 “제5장 원자냐, 비트냐?(p93~p115-구판본, p113~p144-신판본)”와 아래의 페이지를 참조하면 될 것입니다.
다른 참조 페이지:p156, p174, p195 (구판본의 페이지임)

+ EBS의 기획 포럼 프로그램인 “미래포럼 2050”에서 2008년 4월 중순에 『순간이동 현실가능성은?(제8회, 2008년 4월 19일 방영)』이란 제목으로 다룬 적이 있다. 관심 있는 분은 <EBS 미래포럼 2050 (무료)> 홈페이지로 접속하셔서 감상하십시오.(※ EBS는 회원가입 후에 동영상 감상이 가능함.)

※ 도서 ≪스타트렉의 물리학 (로렌스 M. 크라우스 著)≫과 영상『순간이동 현실가능성은?(제8회, 2008년 4월 19일 방영)』 이 두 가지를 보고나면 스타트랙에 등장하는 순간이동장치의 맹점을 알게 될 것이고, 현실 과학과 SF적 아이디어의 차이점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게 될 겁니다.

SF에서의 순시전달은 물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정보만을 보내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현실적인 규정을 피하려는 것이다.

이를테면 여기 한 가지 매우 간단한 FTL(Faster Than Light, 초광속) 통신기의 안(案)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것은 몇 광년이든 무방한 길이를 가진 강체(剛體)의 막대이다. 이 막대는 강체이여서 이쪽 끝 가까이를 밀면 그 막대 전체가 동시에 움직이는데 밀거나 끌어당기는 신호에 따라 순간적으로 별에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터무니없는 얘기다. 완전한 강체의 막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밀 때마다 그 에너지는 관(管) 속을 달리는 음파처럼 막대를 따라 광속보다도 훨씬 느리게 전진하는 것이다.

또다른 비슷한 안(案)도 있다. 몇 광년이나 되는 길이의 막대 두 개를 우주에 나란히 세워 사용하는 것이다. 먼저 지구쪽의 끝을 접촉시켜 두 개의 막대를 극히 작은 각도로 교차시킨 후 저쪽 막대앞이 몇 센티 떨어져 있도록 한다. 여기서 한쪽 막대를 옆으로 움직이면 그것은 다른 한쪽의 막대 위를 미끄러지면서 매우 단시간내에 건너편의 막대끝이 접촉하여 지구쪽 막대끝도 수센티미터 떨어지게 된다.(그림은 추후에 보강함.) 이렇게 하여 짧은 시간동안에 질량이나 에너지를 초광속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가 막대를 따라 몇 광년을 여행한 것이 된다. 즉, 막대가 접촉되는 점이 지구에서 훨씬 떨어진 저편 끝까지 사뭇 이동해 가는 셈이다. 이는 정보전달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일까? 실상 이에 대한 대답은 단적으로 <NO>이다. 제임스 블리쉬 James Blish의 몇 가지 소설에 나오는 <울트라 웨이브 커뮤니케이션(초광파 통신기)>와 같은 이런 종류의 장치인 전자기판(電磁氣版)이라고도 할 수 있는 보다 정교하고 기묘한 장치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간과되고 있는 것은 두 개의 막대가 접촉된 곳이 초광속으로 전진하기 전에 막대의 가로이동(橫移動)은 이미 시작돼 있지 않으면 안되는 점이다. 그러므로 저편 막대의 끝에서는 이미 <신호>가 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한 그 신호외의 정보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알고 있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이에 관한 것을 <무의미한 초광속신호>라 말하고 있다. 달을 향해 레이저를 휘두르면 빛나는 점은 달의 표면을 FTL 속도로 움직인다. 그러나 이 점은 월면의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아무런 정보도 가져다 주지 않는 것이다.

초광속으로 정보만을 보내는 것으로써 상대론과 인과율을 또한 회피하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곤란한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모든 FTL 메시지는 관측자의 입장에 따라서는 그것이 보내지기 전에 이미 도착한 것으로 보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의 우주관은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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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에 나오는 순시전달기 가운데 매우 그럴 듯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어슐러 K. 르 귄SF Readers Wiki<앤시블(ansible, 초광속통신기[FTL communicator])>주⑴과 제임스 블리쉬의 <디랙 전송기(Dirac Transmitter)>가 그것이다. 앤시블은 르 귄의 몇 가지 작품에 등장하는데, 이를 발명한 것은 ≪빼앗긴 자들 The Dispossessed (1974)≫의 주인공인 물리학자 쉐백이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대체할 이론으로 제시된 것인데,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특수한 경우로서 내포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마치, 뉴턴의 운동법칙:아인슈타인 이론의 특수한 경우와 비견되는 것이다. 즉, 광속 혹은 광속에 근접한 속도에서는 뉴턴의 운동법칙은 쓸모없게 되어 버리지만, 광속보다도 훨씬 느린 경우에는 완전히 유효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인과율의 문제는 <동시성>(실제로는 메시지가 하나의 통신기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면서 그처럼 보일 뿐이다.)이라는 개념을 제기 함으로써 회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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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블리쉬 James Blish는 ≪시간의 5점성 Quincunx of Time (1973)≫*에서 앤시블과는 다른 안(案)을 제시하고 있다. <디랙 전송기(Dirac Transmitter:실재 물리학자인 폴 디랙과 관련시켜 이름지어졌다.)>에서 보내지는 메시지는 과거, 현재, 미래를 불문하고 모든 디랙 수용기로 포착할 수 있다. 이 블리쉬의 세계에서는 미래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불변인 것이므로 원인이 있기 전에 결과가 있다는 것(인과율 역전현상)과 같은 역설은 사라져 버리게 된다. 다시 말하면 결정론적 세계인 것이다(만약 탄환이 표적에 명중한다면 손가락은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 그곳에서는 이같은 하나의 사상(事象)이 또다른 원인이냐 아니냐의 여부에 대한 논의는 이미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된다. 그 대신 결정론적인 우주에서는 모든 사상이 단단한 수정의 원자처럼 고정되어 있으며, 따라서 어떤 순서로도 보고 갈 수가 있는 것이다.).
* ≪시간의 5점성 Quincunx of Time (1973)≫은 장편(掌篇) ≪비프 Beep (1954)≫의 확장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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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게도 현대의 양자물리학은 결정론에 대해 반대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결정론적 세계에서는 우리가 내리는 어떤 결단이든 무엇인가를 바꾸게 하는 힘은 없다. 즉,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은 정해진대로만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에서는 모든 우주는 우리가 내릴 결단의 창조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양자물리학에서는 우주 자체가 우리가 결단을 내림으로써 된 창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형태는 관측되기 전까지는 어떤 사상이나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관측함으로써 그 사상을 변화시킨다. 무엇인가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물체를 겨냥하여 광자(光子)주⑵를 반사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 광자의 충격이 물체의 운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 물체가 축구공처럼 클 때 변화는 눈에 띨 만한 것은 못된다. 그러나 물체가 전자처럼 작을 때는 한개의 광자가 충돌하는 것만으로도 물체의 진로는 크게 바뀌게 된다. 이같은 사고의 흐름에 기반하여 1927년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불확정성원리(不確定性原理, Uncertainty principle)>주⑶가 탄생하게 됐다. 불확정성원리란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양자역학의 (미시적인) 세계에서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는 원리이다.

결국 입자의 위치와 속도는 어느 한쪽이 측정되지 않으면(동시에 양쪽을 측정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어느 한쪽도 실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입자는 아마도 그곳에 존재할 것으로 예측되는 희미한 <확률함수>로서 공간에 퍼져 있다. 우리가 측정했을 때에 한해서만 그 확률파(確率波)는 붕괴되어 일순간만 고체입자로서 활동한다. 그러면 이것을 FTL전달자에 연결시키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예컨대 동시에 발생하여 반대방향으로 가는 두 개의 입자에 관한 <확률함수>를 다루는 실험을 생각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는 한쪽 입자를 측정함에 따라 또다른 한쪽의 입자상태를 추정할 수 있다. 양자물리학의 작용으로 이렇듯 가까운 쪽 입자의 무엇을 측정할 것이냐에 대한 선택에 따라 일순간에 먼 곳의 입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약간의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이같은 실험은 1972년에 처음으로 이루어졌으며(아래 그림 참조: 이후에 추가 예정), 그리고 1981년 파리에서 그 결과가 추인되었다. 만약 이 결과가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아마도 <벌레 구멍> 또는 무엇인가를 통해서겠지만, 한쌍으로된 입자 사이에 초광속전송이 있게 된다. 이 상대론은 물론 이같은 루트에 의해 효과적인 정보를 보내기란 불가능한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런데 양자물리학자는 원인과 결과문제에 대해 때때로 오만한 태도를 취한다. 미국의 물리학자 헨리 스타프 Henry P. Stapp는, ≪초광속 전달은 필연적인가? Are Superluminal Connections Necessary?(1977)≫라는 논문에서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양자현상은 정보가 반드시 고전적인 사고방식을 따르지 않는 작용을 하는데 대해서 일단은 증거를 갖추고 있다. 정보가 초광파적(빛보다 빨리)으로 운반된다는 생각은 선험적(先驗的)으로 불합리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같은 종류의 실험과 이론은 매혹적인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다른 우주에 대한 가능성마저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시인의 심안(心眼)으로 바라본 세상이 양자물리의 세계와 어떻게 닿아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는 작고하신 김춘수 시인의 <꽃>을 읊조리며,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경계선상에서 불안해 하는 마음을 추수려봅니다. ^^

  꽃    김춘수(金春洙, 1922~ 2004 작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1952년 作

주석 註釋
주⑴
앤시블(ansible)
정식명칭:Ansible FTL Communicator(Faster Than Light Communication device: 초광속 통신기)

앤시블(ansible)의 어원
앤시블(ansible)은 answerable(답할 수 있는)에서 파생됐다고 어슐러 르 귄이 언명한 바 있다.

앤시블(ansible)은 어슐러 K. 르 귄의 '헤인 우주' 시리즈*의 첫 작품인 ≪로캐넌의 세계 Rocannon's World (1966)≫에서 처음으로 사용됐고, ≪빼앗긴 자들 The Dispossessed (1974)≫에서 도입됐으며, ≪어둠의 왼손 The Left Hand of Darkness (1969)≫과 ≪세계는 숲이라는 단어 The Word for World is Forest (1976)≫ 등의 작품에서 등장한다.

앤시블(ansible)은 르 귄의 소설 ≪빼앗긴 자들≫의 주인공인 아나레스의 과학자 쉐벡에 의해 처음으로 발명되었다.
르 귄은 냉전시대를 토대로 한 SF ≪빼앗긴 자들≫에서 앤시블의 탄생을 다루었다. 앤시블은 공산 사회인 ‘아나레스’에서 자본주의 사회인 ‘우라스’로 망명한 수학자 쉐벡의 공식을 토대로 생겨난 기계다. 엄청난 이득을 챙길 수 있는 공식을 두고 암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쉐벡은 전파를 통해 모두에게 자신의 공식을 공개한다. E=mc² 공식이 원자탄으로 이어졌듯, 간단한 수식으로 이루어진 쉐벡의 공식은 르 귄이 그려낸 헤인(Hain) 우주 시리즈의 핵심인 앤시블의 토대가 된다. 앤시블은 현재 알려진 물리학으로는 말이 되지 않지만(어떤 정보도 광속보다 빠를 수 없다!) 소설적으로 매우 편리한 설정임에 틀림없다.
[박스글 출처] 월간 판타스틱 홈페이지

앤시블은 르 귄의 '헤인 시리즈'에 등장하는 통신장치(송신기)로써, 상대성 이론(빛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물체의 시간보다 느리게 간다)을 극복하여 수십만 광년 떨어진 지점에서도 실시간 통신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치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초광속 통신기기'라고 보면 된다. 원리는 송신기 중 한쪽을 어느 정도의 질량을 가진 행성상에 고정시킨 후 나머지 한쪽을 자유로이 가지고 다님으로써, 어떠한 지점에서도 두 군데에서 동시에 메시지의 교환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앤시블은 ≪빼앗긴 자들≫의 주인공인 과학자 쉐벡에 의해 처음으로 발명된 이후, 르 귄의 헤인시리즈에 등장하고, 미국 SF작가 OSC (Orson Scott Card, 오슨 스콧 카드)는 그의 엔더(Ender)시리즈에서 차용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얼굴없는 작가 듀나의 ≪대리전≫*과 유명한 판타지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의 작가인 이영도씨의 SF단편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하여≫"에서‘앤시블’의 개념을 차용하기도 했다.
* ≪대리전≫은 원작은 단편이었고, 2006년 중편으로 개작되어 작품집이 출판됨

* '헤인(Hain) 우주' 시리즈란?
헤인 시리즈란 전미 SF·판타지 작가 협회가 선정한 '그랜드 마스터'이자 전미 도서상, 휴고 상, 네뷸러 상 수상 작가인 르 귄의 대표적 연작 소설을 지칭한다.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닌 수많은 세계들이 공존하는 가상의 '헤인 우주'를 배경으로 사십 년에 걸쳐 집필된 이 시리즈는 오늘 우리 세계를 비추는 문명 비판적 통찰을 담고 있다.

≪대리전≫에서의 앤시블의 응용
듀나는 ≪대리전≫에서 ‘앤시블’이라는 장치를 도입, 우주여행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했다. 앤시블은 어슐러 르 귄의 소설에 등장하는 장치로, 아무리 먼 거리에 있어도 실시간으로 통신이 가능한 통신기다. 여행은 힘들지만 채팅과 접속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듀나의 ≪대리전≫은 이 앤시블을 이용하여 실제 여행은 하지 않고 정신만을 현지의 다른 육체에 다운로드하여 먼 행성의 관광을 즐긴다는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박스글 출처] 월간 판타스틱 홈페이지

주⑵
광자(光子)
광자(Photon, 빛입자):빛을 구성하는 입자

주⑶
불확정성원리(不確定性原理, Uncertainty principle)
불확정성원리는 우리가 아원자(亞原子)*의 세계를 깊이 파고 들면 들수록 자연상의 어느 한 부분 또는 다른 부분이 모호해지는 지경에 도달하며 그 부분을 다시 분명하게 하면 또 다른 부분이 모호해진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마치 카메라로 움직이는 그림을 조정하려는 것과 같다. 마지막으로 촛점을 맞추고 나서 보면, 그 사진의 오른쪽이 선명해지고 왼쪽은 완전히 초점을 잃어버리게 된다. 사진 왼쪽에 초점을 맞추려고 애를 쓰면 오른쪽이 희뿌옇게 되기 시작하여 상황은 뒤바뀌어 버리게 된다.

이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면 사진의 양쪽이 알아 볼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오기는 하지만 최초에 있던 그 흐림을 제거할 방법이 없게 된다. 불확정성원리의 원형에 따르면 사진의 오른쪽은 움직이는 입자의 공간적 위치와 상응한다. 그런데 사진의 왼쪽은 그 운동량과 상응하게 된다. 이처럼 움직이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 불확정성원리의 핵심이다.

이 성질의 어느 하나를 정확하게 결정하려고 하면 할수록 다른 것을 점차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가령 입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밝히게 되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 운동량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만일 입자의 운동량을 정확하게 결정하면 위치를 알아낼 방법이 없다.

* 아원자(亞原子)란? 원자보다 작은 구성요소들. 즉, 원자핵이나 전자등을 말한다. 원자 이하의 미시세계에서는 만유인력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전자기력, 핵력들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되면 기존의 거시세계적인 상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들이 벌어진다. 따라서 그러한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정립된 것이 양자역학이다.

【참고어】
광자불확정성원리아원자
작가 소개 (가나다)순
+ 어슐러 K. 르귄 | Ursula K. Le Guin (1929 ~ ) [상세 정보] -
1929년 저명한 인류학자 알프레드 크로버와 동화작가 디어도어 크로버 사이에서 태어났다. 래드클리프 칼리지를 졸업하고, 콜롬비아대학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학을 전공했으며, 풀브라이트에서 프랑스 역사학자인 찰스 르귄을 만나 결혼했다.1962년 시간여행을 다룬 로맨틱한 단편소설「파리의 4월」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현재까지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자의 저작은 물론 판타지와 SF가 중심이긴 하지만 그 외에도 에세이, 어린이책, 비평, 시에 이르는 폭넓은 세계를 아우르고 있으며, SF 문단만이 아니라 미국 문학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인류학과 심리학의 영향을 받아, 휴고 상과 네뷸러 상을 동시에 수상한 대표작「어둠의 왼손」이나「빼앗긴 자들」의 경우에서 보이듯 단순히 외계라는 이름의 세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환경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문화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 일종의 사고 실험과 같은 느낌마저 준다. 저자는 많은 상을 탔는데, 십여 차례 휴고 상, 네뷸러 상을 수상했으며, 그 외에도 세계 환상문학상, 카프카 상, 필그림 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다.

+ 폴 디랙 | Paul Adrian Maurice Dirac (1902 ~ 1984) [상세 정보]
폴 에이드리언 모리스 디랙(Paul Adrian Maurice Dirac, 1902년 8월 8일 - 1984년 10월 20일)은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이다. 양자 역학을 탄생시킨 사람 중의 하나이다.

1933년 에어빈 슈뢰딩거와 함께 "원자 이론의 새로운 형식의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1932년부터 1936년까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루카스 석좌 교수를 역임했다. 그의 이름을 따서 주는 상인 디랙 메달은 국제 이론 물리 센터(ICTP) 이론 물리학자들에게 주는 상이다.

그가 워낙 말수가 적었다는 것을 가리켜 디랙이란 단위를 정했는데, 1 디랙은 한 시간에 한 마디를 내뱉는다는 단위이다.(출처: 마틴 가드너, ≪양손잡이 자연세계 The New Ambidextrous Universe≫, 과학세대 옮김, 까치, 1993)
※ 말 수 적은 건 저도 디랙과 견줄만 하군요! 근데, 물리학은…… ^^ㆀ

+ 제임스 블리쉬 | James (Benjamin) Blish (1921 ~ 1975) [상세 정보]
제임스 블리쉬는 1942년 microbiology에서 학사를 받았다. 세계 2차 대전이 터지자 블리쉬는 졸업 후 참전하여 1944년까지 medical technician으로 종군하였다. 전쟁 후 콜롬비아 대학에서 2년 있었는데, 이 시기에 Futurians에 가입했다. 그의 아내이자 에이전트인 Virginia Kidd도 Futurians의 멤버였었다. 학업을 끝낸 뒤 블리쉬는 문학계에 뛰어들었으나 시간이 나면 언제든지 SF의 나래를 펼쳤다고 한다.

블리쉬는 1968년 영국으로 이주했으며, StarTrek 11 서문에 그의 주소를 영국으로 쓰기 시작했다. 말년에 그는 StarTrek 각본과 단편 모두에 있어서 중심 작가였었다. 그의 다른 취미는 고양이, 음악 콘서트, 아마추어 연극, 비행이었다.

- ≪양심의 문제 A Case of Conscience (1958)≫로 1959년 휴고상 장편부문 수상.
- 동명의 단편 소설은 뒤늦게 1953년 레트로휴고상 (2004년 시상)을 탔음.

SF에 있어서의 제임스 블리쉬(James Blish - William Athling, Jr.의 가명)의 업적은 많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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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저서 ≪양심의 문제 A Case of Conscience (1953년 초판, 1958년 개정확장판)≫를 통해서 원죄의 개념에 의해 초래된 딜레마에 기초를 둔 철학적, 신학적 주제를 흥미롭게 다루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의 구성은 대단히 지성적인 파충류가 살고 있는 행성을 탐구하기 위해 보내진 예수회 생물학자가 중심이 되어 있다. 그 생물학자는 파충류들의 매우 순수한 도덕적 천성 때문에 생긴 인간성에 대한 특이한 심리학적 위협이 행성의 파괴를 정당화할 수 있는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이 역설 뒤에 있는 논리가 블리쉬가 조심스럽게 전개시킨 성격묘사의 문맥에서는 강렬하고 설득력이 있다.

블리쉬는 또 SF 4부작으로도 유명하다. 이 4부작은 통칭 <우주 도시(Cities in Flight:공중도시)>라 불리는데, 여기에는≪지구인, 고향에 오다 Earthman, Come Home≫, ≪별을 가진 사람들 They Shall Have Stars≫, ≪시간의 승리 The Triumph of Time≫, ≪별을 위한 삶 A Life for the Stars≫이 포함되어 있다. 이 소설들에서 사건과 배경의 전개는 매우 광대하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개념은 모든 도시들-우주선뿐만이 아니라-이 "spindizzy field"로 알려진 반중력을 이용한 동력에 의해 은하 간의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고] 멋진 신세계 회지(1호) 'SF의 역사(정직한 옮김)'

참고 - 서적, 웹사이트
- 세계 백과 대도전
+ 인터넷
- http://www.seoprise.com/
- http://sfcave.kr/
- 위키페디아 (국내)
- 월간 판타스틱
- 그외 이곳저곳
+ 더 읽어야 할 책과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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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달링 著> 『불가능한 도약, 공간이동 (Telportation : The Impossible Leap)』
- <로렌스 M. 크라우스> 『스타트렉의 물리학』
- <EBS 미래포럼 2050> 『제8회 순간이동 현실가능성은? (2008-04-16)』
다음 SF 칼럼 [5] 가능성의 한계(5): ▷ 우주의 시초


+ 본 SF 칼럼은 40여회 분량으로 실을 예정입니다.
+ 짜투리 시간 쪼개서 작성하는 것이라서 주기적으로 올리지는 못할 겁니다. 되는 대로 쓰고 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 전문적인 SF 칼럼니스트 만큼의 깊이는 없겠지만, 나름대로 기획해서 성심성의껏 올려보겠습니다. 많은 격려바랍니다. ^^
※ 이 칼럼은 퍼다 나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2008년 9월 9일 화요일

깊디깊은 슬픔에는 눈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조차 없다. - 무라카미 하루키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30

깊디깊은 슬픔에는 눈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조차 없다.
나는 슬픔을 견딜 수 없어서 소리를 내어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 수가 없었다.
눈물을 흘리기에는 너무나 나이를 먹었고 너무나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이 세계에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슬픔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깊은 슬픔이 눈물마저도 빼앗아가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고
혹시라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그런 슬픔은 다른 어떤 형태로도 바뀌어지지 않고,
다만 한 줄기 바람도 불어오지 않는 밤에 내리는 눈처럼
그냥 마음에 조용히 쌓여가는 그런 애달픈 것이다.
조용히 쌓이는 눈은 슬프다.

지금보다 훨씬 더 젊었을 때 나는 그런 슬픔을 어떻게 해서든지 언어로 표현해 보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아무에게도 전달할 수 없었고
심지어 나 자신에게 조차도 전할 수 없어서 그만 단념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언어를 폐쇄시키고 나의 마음을 굳게 닫아 버렸다.

- 무라카미 하루키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