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4일 수요일

인류 멸망 그후 TV시리즈 시즌 1 - Life After People:TV Series - Season 1 (2009)

Life After People:TV Series - Season 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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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클릭하면 히스토리 채널의 『Life After People』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2008년 선보인 히스토리채널의 다큐멘터리 "인류 멸망 그 후(Life After People)"의 인기에 힘입어 TV 시리즈로도 나왔습니다. 현재 Season 1 방영중이며 총 10부작이고, 어제 6월 23일자로 완결됐습니다.

동영상은 국내 웹에서는 7부까지 돌고 있더군요. PDA용은 7편까지 변환해서 클박에 올려뒀습니다. 클박검색기에서 찾으시면 보일 겁니다. 고용량 파일은 알아서 구해 보십시오. 아직 전부는 아니지만 클박에 보이긴 하더군요. 토렌트에서 검색하시면 아마도 7부 이후의 편들도 보일 것이구요.

한글자막은 아직 보이지 않더군요. 매니아적 성향이 있는 다큐멘터리라서 아마도 한글자막은 나오기 힘들지 싶네요. 작년에 먼저 방영한 원작을 보신 분이라면 시청에 크게 지장은 없지 싶습니다.

LIFE AFTER PEOPLE: The Series
begins in the moments after people disappear. As each day, month, and year passes, the fate of a particular environment, city or theme is disclosed. Special effects, combined with interviews from top experts in the fields of engineering, botany, biology, geology, and archeology provide an unforgettable visual journey through the ultimately hypothetical.

As modern metropolises like New York, Los Angeles, Chicago and Washington DC are ravaged by nature; the series exposes the surprising insights about how they function today. Basing this futuristic world on the surprising history of real locations, already abandoned by man, like a century-old shack in the arctic and an abandoned island that was once the most densely populated place on earth are featured in the series.

In every episode, viewers will witness the epic destruction of iconic structures and buildings, from the Sears Tower, Astrodome, and Chrysler Building to the Sistine Chapel - - allowing viewers to learn how they were built and why they were so significant. Big Ben will stop ticking within days; the International Space Station will plummet to earth within a few short years, while historic objects, like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and the mummified remains of King Tutankhamen will remain for decades.

The series will also explore the creatures that might take our place. With humans gone, animals will inherit the places where we once lived. Elephants that escape from the LA zoo will thrive in a region once dominated by their ancestors, the wooly mammoth. Alligators will move into sub-tropical cities like Houston feeding off household pets. Tens of thousands of hogs, domesticated for food, will flourish. In a world without people, new stories of predators, survival and evolution will emerge.

Humans won't be around forever, and now we can see in detail, for the very first time, the world that will be left behind in Life After People: The Series.

Pilot Movie 21 Jan 08 Life After People Season 1
Episode # Prod # Air Date Title Rating
1 1x01 101
21 / Apr / 2009
The Bodies Left Behind N/A
2 1x02 102
28 / Apr / 2009
Outbreak N/A
3 1x03 103
05 / May / 2009
The Capital Retreat N/A
4 1x04 104
12 / May / 2009
Heavy Metal N/A
5 1x05 105
19 / May / 2009
The Invaders N/A
6 1x06 106
26 / May / 2009
Bound and Buried N/A
7 1x07 107
02 / Jun / 2009
Sin City Meltdown N/A
8 1x08 108
09 / Jun / 2009
Armed & Defenseless N/A
9 1x09 109
16 / Jun / 2009
The Road to Nowhere N/A
10 1x10 110
23 / Jun / 2009
Waters of Death 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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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2일 월요일

드레이크 방정식 계산기


드레이크 방정식 계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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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이크 방정식 계산기를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무설치 실행파일입니다.
압축 풀고 바로 실행하면 위와 같은 화면이 나타납니다.
혹시 VBRUN300.DLL 파일을 찾을 수 없다는 에러창이 뜨면 압축파일 안에
동봉한 파일을 Windows/System 폴더에 복사해 넣고 재실행하면 됩니다!!



저는 위에 보이듯이 6.3492라는 수치가 나왔네요.
저도 어지간히 낙관론자인 것 같습니다.
우리 은하에만 통신가능한 지성문명이 6.3개라는 수치가 상당히 낮은 것 같지만, 천문학자들의 관측 추정에 의하면 우주엔 은하계가 약 1천억개가 있다고 하니 6.3개 X 1천억이면, 대략 6천억개의 우주문명이 존재한다는 추정이니! ^^ㅋ

2000년경에 드레이크 박사의 변수에 새로운 변수를 더해 조금 더 개선한 새로운 방정식이 도입되기도 했지만, 그래봤자 어차피 변수 자체가 거의 다 추정치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니, 드레이크 박사의 원래 방정식과 별로 다르지도 않더군요.

아래 설명을 참고해서 자신의 추정치를 계산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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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참고글] - 위의 설명이 미진하다고 여겨지면 아래 문서를 참고하세요.
2007/06/17 - [잡동사니] - 외계 생명체의 가능성과 드레이크 방정식

2009년 5월 26일 화요일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일본영화 (1차 정리분 230편)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일본영화


 1차 정리분 230편
  • 이 목록은 제가 살아오면서 봐왔던 일본영화 600~700편 중에서 선정한 목록입니다.
  • 영화사적으로 한획을 긋는 예전의 유명 감독의 작품은 아직 정리가 덜 되어서 다음에 추가할 예정입니다. (예를들면 구로사와 아키라, 오스 야스지로 등등)
  • 차차 보강해서 300편 정도로 완성할까 합니다.
  • PHP 게시판(본인 제작)과 MySQL을 연동해서 정리한 것입니다.
    - 차후 DB에서 이런저런 목록을 뽑아서 정리해 올릴 예정입니다.
  • 일본문화를 가장 저렴하게 알수 있는 첩경이 영화와 드라마 감상이라 생각됩니다.
  • 가져 가셔서 블로그나 홈피, 카페에 올리셔도 무방합니다. 단, 출처는 밝혀주시길...
  • 1차 정리분 230편 선정 완성한 날 : 2009년 5월 26일 저녁에 소니 새김.

2009년 5월 20일 수요일

SF 칼럼 [6]:가능성의 세계(6)-반물질(反物質)


SF 칼럼 [6]:가능성의 세계(6)-반물질(反物質)
반물질(反物質)주⑴이란 무엇인가?
반입자들로 구성된 물질. 반양성자, 반중성자, 양전자가 모이면 반원자를 만들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반항성이나 반행성, 반생물이 존재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물리학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 중 하나는 물리학 법칙에 의하면 물질과 반물질이 섞여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오직 물질로만 이루어진 우주에 사는 것처럼 보이느냐는 점이다.
우주가 형성되었을 때 반물질도 물질과 함께 만들어졌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물질에서는 플라스 전하(電荷)를 가진 핵 주위를 마이너스 전하를 가진 전자가 돌고 있다. 그러나 반물질에서는 플러스 전하를 가진 반전자(양전자)가 마이너스의 전하를 가진 핵 주위를 돌고 있다.

핵은 모두가 양자(플러스의 전하를 가진)와 중성자(전하를 갖지 않은)로 만들어지고 있다. 따라서 반핵자는 반양자(마이너스의 전하를 가진)와 반중성자를 지니고 있는 것이 된다. 반중성자는 전하를 갖고 있지 않지만, 중성자란 <스핀 spin>과 <바리온수(數)주1)>라는 입자물리학을 기술함에 있어 중요한 두가지 특성이 반대로 되어 있다. 블랙홀 안에서는 성립되지 않는 것 같지만 반응하기 전후의 이 계통의 바리온수의 합계가 바뀌지 않는다는 엄밀한 법칙이 있는 것이다.

중성자(바리온수는 +1)는 양자(바리온수 +1)와 전자(이는 바리온수이 아니라 경립자(經粒子), 즉 레프튼이므로 바리온수는 0)가 될수 있다. 전하의 합계는 제로, 바리온수는 +1로 유지되는 것이다. 이것이 양자를 소멸시킨다고 할 때 그렇듯 쉬운 일은 아니다.

양자나 반양자(바리온수는 -1)는 함께 결합할 수가 있다. 이 두 개의 중립자가 만나면 번쩍하는 불길을 발하여 결합되다가 소멸되며 질량은 고에너지 방사로 바뀌면서 전하와 바리온수는 서로 상쇄된다. 이 과정을 입자 가속기를 사용하여 각 양자를 양자 2개분의 질량분보다 더 큰 에너지로 충돌시킴으로써 실험실 규모에서 역행시킬 수 있다. 여기서 일어나는 반응을 식으로 쓴다면 P+P 반응전 P+P+P+P 반응후 가 된다.
즉 2개의 양자(P)가 3개의 양자와 1개의 반양자(P)로 되는 셈이다. 여기서 바리온 수의 합계는 실험전에는 1+1=2였던 것이 충돌 후에는 1+1+1-1=2 … 역시 2개 그대로이다.

CERN(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럽핵연구기구)과 같은 공동 연구소에서는 더 진전된 실험에 사용하기 위한 반양자가 이 같은 방법으로 흔히 만들어지고 있다(세계에서 가장 최초로 양자와 반양자의 고에너지빔 사이에 충돌이 있었던 것을 1981년초에 CERN에서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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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1981년 CERN에 찍힌 반양자 빔과 양자 빔 사이의 최초의 충돌 입체사진.


반양자와 양전자가 결합되면 그 결과 중성반수소(中性反水素)인 원자가 만들어진다. 이론적으로는 반양자와 반중성자에서 보다 큰 핵을 만들고 그 양쪽에 궤도 양자를 붙임으로써 통상적인 원소와 똑같은 반응을 보여주는 반물질원소의 완전한 방식을 만들 수 있다. 반수소(反水素)인 원자 2개와, 반산소(反酸素) 1개로부터 반수분자(反水分子)가 만들어진다는 식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반수(反水) 1리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그것을 어떤 용기에 넣어둬야 된다는 것인가?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현실은 이러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과학기술적으로 반물질을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CERN에서 지난 2002년 국제 실험팀인 아테나(ATHENA)팀이 유럽핵물리연구소(CERN) 입자가속기를 이용해 반수소(反水素) 5만개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5만개라는 숫자가 커보여도 질량으로 따지면 극히 미미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좀더 효율적인 반물질 생성장치가 등장해 하루에 100만개의 반수소 원자를 만들어 낸다고 가정하더라도, 1g의 반수소를 만들어 내는데는 약 1천6백 조(1012)년이 필요합니다. 이런 엄청나게 느린 속도로는 가까운 미래에 SF에 등장하는 반물질을 이용한 우주선이나 댄 브라운 Dan Brown의 소설 ≪천사와 악마 Angels and Demons (2000)≫에서 등장하는 것과 같은 위력적인 반물질폭탄 등을 실용화시킨다는 것은 힘들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말 그대로 공상 속의 이야기라는 것이다.보충 1)

보충1우주가 한 번 생겨나서 소멸되기까지의 1우주 주기(宇宙週期, 1 cosmos circle [1CC])라고 상정(想定)해 보자. 생명은 우주의 역사(=시간의 역사)적 틀이라는 닫힌계 속에서 생성, 성장, 소멸의 순환 사이클을 반복할 뿐, 그 닫힌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1CC가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제 아무리 우주의 지속력이 길다고 하더라도 1천6백 조(1012)년 이라는 건 상상이 잘 안 되는 숫자이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인류가 우주 종말의 순간까지 살아남는다면 인류의 마지막 인간들이 보게 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밤하늘에 빛나는 마지막 별빛의 모습일까? SF소설에서도 세상의 종말을 그린 작품은 많았다. 아서 C. 클라크 Arthur C. Clarke는 단편 ≪90억 가지 신의 이름 The Nine Billion Names of God (1953)≫에서 「…… 모든 것에는 항상 마지막 때가 있는 법이다. 머리 위 하늘에서 하나 둘씩 별들이 사라져가고 있었다.」라는 종결로 우주 종말의 순간을 섬뜩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 아이작 아시모프 Issac Asimov는 단편 ≪최후의 질문 Nightfall (1941)≫에서 「……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라고 종결하며 새로운 창조를 예시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SF에서 그리는 종말의 날은 많다. 어쩌면 세상의 종말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또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모든 상상 또한 조우에 불과하리라. 인류의 생명력이 제 아무리 길고 질기다 해도 SF에서 그리는 우주항해는 요원한 아주 아주 멀고도 먼 미래의 일이기 때문이다.

반물질이 물질에 닿으면 서로가 소멸된다. 이 양자를 합친 질량은 에너지의 눈부신 폭발로서 해방된다. 핵분열 폭탄의 에너지가 되는 것은 플루토늄(우라늄과 비슷한 방사성 원소) 질량의 최고 0.1%이다. 핵융합 폭탄에서는 이 숫자가 0.5%가 된다. 반물질에서는 이것이 100% 가까이까지 되는 것이다. 하긴 반물질인 경우에는 그 같은 폭발로서 반물질 1킬로그램의 에너지와 그에 상응하는 물질 1킬로그램을 보탠 에너지가 해방되는 것이 되므로 오히려 200%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전자와 양전자, 바리온과 반(反)바리온은 함께 고에너지인 감마선(및 얼마간의 무해한 뉴트리노주))으로 되어 소멸한다. 일반적인 물질에 이 같은 반물질 1킬로그램을 던지면 TNT 4,300만톤에 필적하는 힘으로 폭발한다. 이것은 마치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폭탄 수천개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반물질 단 1킬로그램의 폭발력이 이토록 엄청나다보니 ≪스타 트랙 Star Trek≫에서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는 그 같은 폭발을 제어한 힘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TV시리즈에서는 어떤 식으로 반물질을 만들며 저장하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설명한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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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물질과 반물질이 접촉하면 서로 완전히 소멸한다. 물질 1킬로그램이 반물질 1킬로그램과 결합되면 1메가톤 짜리 TNT 폭탄 43개가 폭발한 것에 해당되는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이 된다. 이 과정이 TV 시리즈인 「스타 트랙 Star Trek」에서는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를 추진시키는 것이라 한다. 엔진실의 엔지니어인 스코티가 언제나 걱정스러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스타 트렉의 오리지널 시리즈인 OST(1966)의 전함인 엔터프라이즈 호에서 광자어뢰를 발사하고 있는 장면. 광자어뢰는 원래 반양자 탄두이다. Image from Trek5.com

초기의 SF작가들은 반물질에 대해 종종 두 가지 과오를 범했었다.
첫번째는 반물질을 마이너스의 질량으로 여겼기 때문에 중력에 의해 끌리거나 밀리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 중 한 가지 예가 E.E.스미스의 ≪그레이 렌즈맨 Gray Lensman≫의 마이너스 구체이다. 만일 이것이 그런 것이라면 반양자의 마이너스 질량/(및 마이너스 에너지)는 만나는 양자의 그것을 상쇄함으로써 나중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2개의 초고에너지와 감마선 입자가 발생하는 것이다(왜 2개냐 하면, 한쪽 방향으로만 폭발할 수 없으므로 운동량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오늘날의 우주론에 따르면, 마이너스 질량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번째는 약간 까다로운 것인데, 예를들면 반수(反水)는 보통 물과 서로 소멸하는 것이므로 철로 만든 용기 속에 넣어 풀 수 있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파괴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소립자와 소립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그것이 어떻게 늘어서 있는가와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반물질을 저장하면 되는 것일까? 저장하거나 대규모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우주 공간이 가장 좋은 장소로 생각된다. 지상에서는 중력 때문에 조만간에 물질과의 파괴적인 접촉을 빚게될 것이다. 유일한 예외는 CERN인데, 이곳에서는 높은 온도로 운동하는 반양자가 <저장고리>속에서 진공 채임버 벽에 닿지 않도록 차단된 상태에서 자장에 의해 가속되어 계속 회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전하를 가진 입자에만 효과가 있다. 예컨데 반중성자 등에 이런 방법은 사용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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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물질 우주선 Seetee Ship(1950)
잭 윌리엄슨 Jack Williamson은 ≪반물질 우주선 Seetee Ship(1950)≫과, ≪반물질 쇼크 Seetee Shock(1949)≫에서 반물질을 다루었는데, 이 <시티>, 즉 <CT>는 반물질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지난날의 SF용어인<반지구>를 뜻하는 것이다. 그곳에 등장하는 병기 가운데 하나로, 중공의 자석 내부에 반물질의 자석이 진공상태에서 약한 자기적 반발력으로 떠 있는 폭탄이라는 것이 있다. 이 폭탄을 떨어뜨리면 충격으로 내부의 자석이 바깥쪽 자석에 충돌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물질의 도구를 사용할 경우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장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인가? 윌리엄슨의 소설에서는 인공적인 중력 조작에 의지하고 있다. 이것도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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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물질 우주선 Seetee Shock(1490)
반물질의 제조도 손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편 자연의 반물질은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다. 이론상으로 우주가 막 태어났을 때 물질과 똑같은 양의 반물질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어쩌면 먼 거리에 있는 은하 속에는 오래 전에 어떤 이유로 말미암아 물질로부터 떨어져 있던 반물질이 만들어진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래리 니븐 Larry Niven의 소설 ≪플랫랜더 Flatlander(1967)≫에서 처럼 언젠가는 다른 은하로부터 떨어져 나온 반물질의 행성을 발견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득히 먼 저편에서 지구에 닿는 우주선(宇宙線) 속에는 때때로 양자와 원자핵까지가 함유되어 있는데 반양자와 반핵자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자연의 반물질은 어느 곳에도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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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랜더 Flatlander(1967)
만일 그렇다면 반물질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가장 명백한 해답으로는, 이론으로 예측되는 바와 같이 모든 물질과 반물질은 우주 창조가 이루어진 최초의 수초 사이에 함께 소멸해 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런 것이라면 어째서 물질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반물질보다도 물질이 더 많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으나, 우리의 우주가 물질이라든가, 별 또는 지적 생명을 지니고 있는 이유는 그런 식이 아니고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최초의 3분간≫의 저자인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가 계산한 결과로 보건대, 물질이 반물질보다도 많았던 경우를 생각할 때는 우주 창조 직후인 인플레이션(inflation, 팽창) 개시부터 0.001초 부터이고 그 찰나의 순간에 입자쪽이 반입자보다도 10억개당 불과 1개의 비율로 많았던 것이 된다. 입자와 반입자가 처음에는 똑같은 비율로 만들어지고 소멸한 후 10억분의 1의 잔유물로 만들어진 것이 현재의 우주라는 셈이다. 다시 말하면 물질과 반물질의 대칭성이 어느 순간 깨어지지 않았다면 현재의 우주는 탄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주 창생에 대한 또다른 주장은 물리학자 M. 골드허버가 1956년에 발표한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창조된 직후에 둘로 나누어졌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 우주와 우리가 관측할 수 없는 반물질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우주가 있다는 것이다.

천체 물리학의 <반물질은 어디로 간 것인가?>라는 의문에 대해서 놀랍게도 SF에서는 전혀 얘기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영국 작가 이안 와트슨은, ≪요나 키트 The Jonah Kit(1975)≫라는 작품에서 반물질은 물질과 반물질이라는 구별의 의미를 가질 수 없는 미니 블랙 홀 속으로 사라져 갔다는 독창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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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개봉한 일본 영화 ≪신의 퍼즐 Gods Puzzle(2008)≫을 보면 우주 창생에 대한 이론물리학적 담화가 아주 재밌게 펼쳐진다. 기회가 되시는 분들은 영화나 동명의 소설을 구해서 보시길 권유하며, 어렵고 머리 아팠던 반물질에 대한 칼럼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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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CERN에 만들어진 거대한 반양자 개장장치. 이곳에서 반양자라는 형태의 반물질이 농축되어 운동량의 산포로 균형이 잡히고, 반물질은 진공관으로 축적된다. 다음 단계에서는 싱크로트론 속에서 양자 빔과 반양자 빔을 정면으로 충돌시켜 2000배의 증감현상이라는 기술을 구사하여 충돌한 입자의 흔적을 사진에 담는다. 이런 원리로 찍은 역사적인 최초의 충돌 사진이 상단의 사진 1)이다.

주석 註釋
주⑴
주석 제목
註)

1. 반물질[反物質, antimatter]
반물질이란 보통의 물질을 구성하는 소립자의 반입자로 구성되는 물질로 정의됩니다. 반입자는 1932년 켈리포니아 공대의 P.M.앤더슨이 윌슨의 안개상자 속에 납의 박판을 넣고 우주선의 비적(飛跡)을 촬영하던 중 양전자(陽電子)를 발견하면서 그 존재가 처음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앤더슨의 발견이 있기 전에 이미 반입자의 존재는 이론적으로 예측되어 왔습니다. 입자의 존재가 처음 예견된 것은 영국의 이론물리학자인  P. A. M. 디랙이 1927년에 발표한 방정식에서 입니다. 아래의 디랙방정식에서 입자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가 음의 값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디랙방정식
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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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 입자가 갖는 에너지
m0 : 입자의 정지질량
c : 광속
p : 입자의 운동량(mv, 여기에서의 m은 정지질량이 아닌 특수상대성이론의 효과에 의해서 증가된 질량. v는 입자의 운동속도)

* 방정식의 우변이 모두 루트안에 있으므로 양과 음의 해가 모두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왜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입자들은 음의 에너지로 떨어지지 않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는 여기상태에서 광자를 방출하면서 에너지가 줄어들고 바닥상태로 떨어집니다. 이 상태가 가장 안정되어 있으므로 원자는 더 이상의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전자가 음의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면 전자는 외부로 광자를 계속 방출하면서 -∞의 에너지를 향해서 계속 떨어져 갈 것이며, 원자는 붕괴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선 이러한 현상이 전혀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다. 디랙은 이것에 대한 해결책으로 파울리의 배타의 원리를 이용했습니다. 모든 입자들이 가질 수 있는 음의 에너지 준위는 모두 채워져 있고, 따라서 현실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입자들은 음의 에너지 준위로 들어갈 자리가 없기 때문에 항상 양의 에너지만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음의 에너지 준위를 채우고 있는 입자들 중 하나가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양의 에너지로 올라오게 되면 그 입자가 존재하던 자리는 빈 공간으로 남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빈 공간이 마치 하나의 입자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빈 공간의 질량은 그곳을 채우고 있던 입자가 양의에너지를 가진 상태와 동일하며, 전하와 스핀방향은 반대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반입자입니다.
출처 : 네이버 오픈백과

2. 바리온:바리온이란, 양자나 중성자와 같은 중입자(重粒子)의 총칭이다.

3. 양자, 양성자(陽性子):중성자와 함께 원자핵의 구성 요소가 되는 소립자의 하나. 질량은 전자의 약 1,800배이고 양전하를 가지며 전기량은 전자와 같다. 원자핵 내의 양성자의 수는 그 원자의 원자 번호를 나타낸다. 기호는 P. ≒ 프로톤(proton).

4. 반양자, 반양성자(反陽性子):소립자의 하나로 양성자의 반대 입자. 스핀과 질량은 양성자와 같지만 음의 전기 소량을 가지며 자기 모멘트의 부호가 반대라는 점에서 양성자와 다르다. 기호는 P(p-bar라고 읽는다). ≒ 반양자, 앤티프로톤(antiproton).
【참고어】
제목
차후 보강.
작가 소개 (가나다)순
+ 한글 이름 | 영문 이름 ( ~ ) [상세 정보]
차후 보강.
참고 - 서적, 웹사이트
- 세계 백과 대도전
- 인터넷 이곳저곳
+ Anti-Matter
1. http://www.studyworld.com/newsite/ReportEssay/Science/Physical%5CAnti-Matter-383068.htm
2. http://www.newuniverse.co.uk/Antimatter.html
3. http://www.newworldencyclopedia.org/entry/Antimatter
+ 더 읽어야 할 책
- <지은이>의 『제목』
차후 보강.
다음 SF 칼럼 [7] 가능성의 세계(7):중력과 반중력


+ 본 SF 칼럼은 56회 분량으로 실을 예정입니다.
+ 짜투리 시간 쪼개서 작성하는 것이라서 주기적으로 올리지는 못할 겁니다. 되는 대로 쓰고 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
+ 전문적인 SF 칼럼니스트 만큼의 깊이는 없겠지만, 나름대로 기획해서 성심성의껏 올려보겠습니다. 많은 격려바랍니다. ^^
※ 이 칼럼은 저의 블로그에 올리고 있는 칼럼입니다. 퍼다 나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2009년 4월 19일 일요일

SF 칼럼 전체 목차

SF 칼럼 전체 목차를 준비하며……
  • 제 티스토리에 게재중인 [SF 칼럼]의 전체 목차가 완성됐습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아래 목차대로 진행할 겁니다.
  • 총 7장 56절의 칼럼으로 마련했습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번외)
  • 중간에 시간이 나면 SF와 관련된 용어사전(SF 및 과학)과 인명사전(SF작가 및 과학자)을 따로 포스팅 하겠지만 아래 목차와는 별개로 올리는 것입니다.
  • 칼럼은 1주 혹은 2주에 하나씩 올릴 예정입니다.(제 사정상 한달에 하나씩 올릴 수도 한주에 두개씩 올릴 수도 있습니다. 포스팅 날짜는 랜덤입니다. ^^)
  • 처음엔 40개 정도의 제목을 정해놨었는데, 이번에 6회 칼럼을 작성하려고 준비하던 중에 목차를 다시 살펴보니 중간중간 블랙홀처럼 훵한 구멍이 언듯언듯 보이더군요. 그 구멍을 메우다 보니 칼럼이 56회로 늘어났습니다. 칼럼 쓸 생각은 하지 않고 자꾸 분량만 늘이고 있네요. ^^ㆀ 뭐 하나씩 써 나가면 언젠가는 완성되겠죠.
  • 그 동안 골머리 싸매고 고민하던 일이 마무리 됐습니다. 하여, 다음 주 부터는 6회 칼럼부터 꾸준히 써내려갈 겁니다.
  • 본 칼럼이 완성되면, 제가 직접 PDF와 HWP 파일로 각각 준비해서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니 어렵사리 긁어가실 필요 없습니다. 무료로 배포한다고 해서 글의 저작권을 포기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그럴 분들은 안 계시겠지만 상업적 사용(단행본 출판물에 게재, 혹은 잡지에 게재 등등)은 절대로 금합니다. 저도 다른 분의 글들을 이곳저곳에서 많이 차용해서 쓰고 있는 글이라, 상업적으로 사용하시다가 걸리셔도 저는 책임 안 지겠습니다. 블로그에 옮겨가는 것도 현재 금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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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14일 화요일

청맹과니

청맹과니 [靑盲--]
1 겉으로 보기에는 눈이 멀쩡하나 앞을 보지 못하는 눈. 또는 그런 사람. ≒청맹·당달봉사.
2 사리에 밝지 못하여 눈을 뜨고도 사물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르키는 우리말이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메모리 최적화 보다는 우리들 생각의 최적화가 먼저 필요한 시대이다.

요즘 컴퓨터가 많이 느려져서 일명 메모리 청소해준다는 프로그램들의 기능을 구글신님께 여쭤봤습니다.

메모리 부족남 : 저기 구글신님 '메모리 최적화 프로그램'이 진짜로 메모리 최적화가 되나요?
구글신님1 : 그런 것 없다! 메모리 많이 잡아 먹는 프로그램 껐다가 다시 켜라!
구글신님2 : 윈도우즈를 며칠씩 계속 돌리고 있다면 때때로 Ctrl+Alt+Delete 로그오프하거라!
메모리 부족남 : 컴퓨터로 서버 돌리는데요? 이럴 때 어찌하나요?
구글신님3 : 그거는 간단하다. 메모리 용량 더 큰 걸로 사다가 바꿔 끼워라!
메모리 부족남 : 넹! 구글신님 감사하와요. ㅠㅠ


메모리를 최적화해 준다는 프로그램들은 한마디로 말하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겁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답은 나옵니다.
만일 진짜로, 참말로, 진실로 실시간으로 메모리 반환이 되고 부팅 후 처음으로 프로그램을 돌렸을 때 처럼 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그 프로그램을 왜 M$의 빌 게이츠 황제님께서 여태껏 안 사들일까요? 혹은 왜 자신의 프로그래머 군단에게 왜 비슷하게 개발하라는 칙령을 안 내렸을까요? 빌 황제님의 생각의 속도는 거의 광속이라던데... 돈 벌이에 관한 한...

메모리 최적화, 한마디로 그런 건 없다는 겁니다.
기계 부품 조합형의 현재의 꼼뿌따 시스템(현재의 2진수 데이터 단위로 구동되는 시스템)에서는 꿈(≒환상)속 이야기라는 겁니다.
양자 컴퓨터 시스템(먼 미래의 큐비트 qubit 데이터 단위로 구동되는 시스템)이 구축되는 먼 미래에나 가능한 이야기일 겁니다.

'설명은 단순한 것일수록 뛰어나다' 『오캄의 면도날』이란 진리를 잊지마시길...

메모리 최적화 보다는 우리들 생각의 최적화가 먼저 필요한 시대입니다.
 
온갖 쓰레기로 난잡한 웹 세계에서 자신에게 진짜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는 방법이 정말로 있다면

  1. 남의 글과 의미를 귀여겨 잘 듣는 것입니다.
  2. 그 정보가 진정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인가 재검정한다.
  3. 정보들을 조합하고 가공한 후엔 꼭 자기화의 과정을 거친다. (아무리 잘 정리된 정보라도 자신의 생각이 스며들지 않으면 자신의 지식이 안된다.)
  4. 시류에 맞추어 정보를 주기별로 업데이트 한다.
  5. 더 이상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득보다는 해로운 점이 많은 정보라고 판단되는 시점이 되면 그 정보는 쓰레기통으로 옮긴다.
  6. 생각의 쓰레기통에 넣은 정보를 전(全) 시대에 쓰이는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본다.(경험에 의하면 생각의 쓰레기통엔 그냥 쓰레기만 있는 건 아니더라!)

새로움이란 항시 옛 것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잊지 않는다. (온고이지신)
우주의 최초 3분간에서 우주의 최후 3분간까지 그 중간 시간대에 존재하는 우주의 모든 정보는 재가공품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질이건 사념이건 이 우주 내의 모든 물상들은 가공의 순환 사이클에 의해 되풀이되는 것이다.

 『우주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움은 없다.』

그 이유는 神이라는 절대존재가 새롭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신은 퇴물일지도 모른다. -.-;
나는 신을 모른다. 다만, 신을 만나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그 분을 만나서 묻고 싶을 뿐이다. 이딴 세상 왜 만들었어요? 변하지 않는 세상 따위 왜 만들었는지 묻고 싶을 뿐! 불만 없는 것이 아니라 담배도 없다(담배 떨어졌다). ^^ㅋ

신은 진정 자신이 할 일을 안 하고 있는 것 같다.
신이 할 일은 그의 전지전능을 실시간으로 양자암호화해서 인간의 머리 속으로 실시간 양자복제해주는 일이다. 신이 그런 일을 한다면 인간이 항시 실시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고, 그러한 거듭남은 神 자신의 거듭남도 되는 것 아닐까?

대체 신은 왜 그런 중요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일까?
혹여,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데, 필자 같은 메모리 딸리는 청맹과니들은 이해를 못해서 못 받아들이거나, 버퍼링 중이거나, 렉 걸려서 버벅대고 있는 건 아닐까?

신이시여!
당신의 능력이 진정 전지전능이라면 제 생각의 메모리 좀 증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고맙다의 어원 ←클릭)

그분 : 네가 진정 나를 믿느냐?
필자 : 네~엥! 믿는다니깐요?
그분 : 이 넘아! 네가 진정 나를 믿는다면 메모리는 자동으로 증설되게 해뒀다.
필자 : 넹? 그게 무신 말씀이신지??? ㅠㅠ

양자 컴퓨터

양자 컴퓨터 : quantum computer

양자 컴퓨터는 원자 이하의 차원에서, 입자의 움직임에 기반을 두고 계산이 수행되는 컴퓨터이다. 이러한 컴퓨터가 개발된다면, 이전의 그 어느 컴퓨터보다 더 빠르게 연산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처리 능력의 가파른 상승은 양자 컴퓨터 내의 데이터 단위가 기존의 이진수 기반의 컴퓨터와는 달리, 한번에 하나 이상의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사상에서는 컴퓨터가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각각의 생각들은 비록 그것들이 동일한 입자에서 일어나더라도 서로에게 독립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엔지니어들은 양자 컴퓨터 내의 기본적인 데이터 단위를 표현하기 위하여 큐비트(qubit)라는 용어를 고안해 냈다. 큐비트는 기본적으로 동시에 여러 개의 값들을 갖는 비트이다. 이 배경에 있는 이론은 개별 입자들이 여러 개의 장소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양자 역학 이론만큼이나 이상야릇한 것이다. 큐비트가 어떻게 여러 개의 상태에서 존재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하나의 방편으로, 큐비트는 각각이 고(논리 1) 또는 저(논리 0)가 될 수 있는 두 개 이상의 상 또는 차원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큐비트가 두 개의 상을 가지고 있다면 동시에 4개의 서로 다른 상태, 즉 00, 01, 10, 그리고 11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만약 세 개의 상을 가지고 있다면 000에서 111에 이르는 8개의 서로 다른 상태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양자 컴퓨터는 특히 다음과 같은 분야에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호의 해독
통계 분석
큰 수의 인수 분해
이론 물리학 문제의 해결
많은 변수들이 개입된 최적화 문제의 해결
 
이 분야의 연구개발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상당 시간동안 적절한 방법에 반응하는 입자를 얻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아주 근소한 장애만 있어도 양자 방식으로 일하던 컴퓨터가 작동을 멈추고 "한번에 단 한가지의 생각만을 하는" 일반적인 컴퓨터의 상태로 되돌아가 버리게 된다. 약간 벗어난 전자기장이나 물리적 움직임 또는 아주 작은 방전조차도, 이러한 과정을 분열시키기에 충분하다.
 

Stanford-Berkeley-MIT-IBM NMR 양자 컴퓨터 프로젝트 웹사이트에 좀더 자세한 내용이 제공됩니다.

[출처] 텀즈 http://www.terms.co.kr/quantumcomputer.htm

고맙다의 어원

고맙다의 어원
‘고맙다’의 어원 ‘고마’는 ‘신’ 또는 ‘신령’을 지칭하는데. 즉 ‘고마’의 형용사인 ‘고맙다’는 사람 이상의 존재에 대한 외경의 표현이며, 동사형 ‘고마워하다’는 ‘공경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글쓴이 : 천소영 교수(수원대 국문과, 〈우리말의 속살〉에서)

오캄의 면도날

오캄의 면도날 (Ockham's razor, 오캄의 면도칼)
'불필요한 다수성(Plurality)을 가정해서는 안된다(Pluralitas non est ponenda sine neccesitate)'. 이것은 중세 영국의 철학자이자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수도사였던, 윌리엄 오브 오캄(William of Ockham, ca.1285-1349)의 말이다.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다른 많은 수도사 처럼, 윌리엄은 청빈주의자(minimalist)로서 청빈한 인생을 보냈고, 또 성프란시스코와 같이,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교황과 논쟁을 시도했다. 윌리엄은 교황 요한12세에 의해 파문되었다. 그는 교황 요한을 이단이라는 논문을 써서 반론했다. (역주 : Plurality를 정확하게 번역할 수 없어서 다수성이라고 번역했습니다. )

중세 철학의 일반적인 원리인, 오캄의 면도칼은, 오캄 오브 윌리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원리를 윌리엄이 빈번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영원히 붙게 되었다. 현대의 우리들이 그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을 수도사인 윌리엄이 기뻐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무신론자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 반론을 할 때, 신의 존재를 가정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오캄의 면도칼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어떤 일이든 간에 형이상학적 존재를 추가로 논의에 개입시키지 않고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윌리엄이 '불필요한 다수성의 원리(the principle of unnecessary plurality)'를 사용한것은, 중세판 초능력(psi)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면, 피에르 아벨라르(Peter Abelard, 역주 : 프랑스의 철학가이며 신학자로 11세기 말에서 12세기에 활약했다.)의 '명제집 해설(Commentary on the Sentences)'의 제2권에서, 그는 '높은 등급의 천사는 낮은 등급의 천사보다 더 적을 것을 통해서 지식을 얻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깊은 고찰을 하고 있다. (역주 : 천사는 모두 9단계로 이루어져 있다.)그는 '불필요하게 다수성을 제시해서는 안된다'는 원리에 맞추어, 이 문제의 답이 '그렇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자연이 완전하면 할수록' 자연이 움직이는데 필요한 것들도 적어진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을 인용하고 있다. 이 원리는, 무신론자가 진화론을 선호하고 신-창조주의 가정을 부정하는데 지금까지 사용되어왔다. 즉, 만약 전능한 신이 우주를 창조하였다면, 우주와 그 구성요소는, 더욱 단순해야 한다. 하지만 윌리엄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연 신학(自然神學 natural theology)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자연신학은, 신을 이해하는데 오직 추론만을 사용하며, 계시신학은 이것과 반대로 성서학적인 계시에 기초하고 있다. 오캄 오브 윌리암에 의하면, 신이라는 개념은 명백한 경험이나 추론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이 신에 대해서 아는 것은 모두 계시에 기초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신학의 근거는 신앙에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오캄의 면도칼을 정신세계 전부를 제거하는데 사용했지만, 오캄은 신앙고백서까지 '절약의 원리(principle of parsimony)'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힐 필요가있을 것 같다. 만약 그가 신앙고백까지 오캄의 면도칼을 사용했다면, 그는 존 톨랜드(神秘가 없는 기독교(Christianity not mysterious),1696)와 같은 소시니안(Socinian)이 되어, 삼위일체론이나 그리스도의 양면성(역주 : 신이면서 인간임)을 하나로 정리했을 지도 모른다.

오캄은 철학의 청빈주의자로서, 당시 인기 있던 실재론(realism)에 반대하여, 유명론(nominalism)을 제창했다. 즉, 그는 보편(universals)이 마음의 밖에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즉, 보편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개개의 사람이나 사물의 특성을 가리키는데 사용되는 명칭을 말한다. 실재론자는, 개개의 물체와 그것에 대한 우리들의 개념의 배후에는 보편이라는 것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캄은 이것을 너무 지나친 반복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들은 무엇을 설명하든, 보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유명론과 실재론, 어떠한 입장이든, 소크라테스는 한 사람의 인간존재며, 또 소크라테스에 대한 관념을 나타낸다. 실재론자에 있어는, 또한 소크라테스의 인간성이나 동물성 등이 존재 하는 것이 된다. 즉, 소크라테스에 관한 성격 전부는, 각각 '실재(reality)' ,'보편' 혹은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형이,eidos)가 있는 것이 된다. 윌리엄은 보편론적 세계관이라 불리는 이러한 다의적 세계에 회의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논리나 인식론, 형이상학에도 불필요하다. 그러면 왜 이러한 불필요한 다수성(plurality)을 가정하는가? 물론, 플라톤이나 실재론자가 옳을 지도 모른다. 현실의 각각 물체의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모델의 보편적 실체들, 즉 이데아로 이루어진 세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각의 사상이나 개념이나 지식을 설명하는데, 이러한 것을 전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과잉이며, 형이상학적으로도 인식론적으로도 불필요한 짐인 것이다.

죠지 버클리 주교는 물질적 존재(material substance)를 불피요한 다수성이라고 간주하고 오캄의 면도칼을 사용해서 제거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버클리에 따르면, 무엇을 설명하든 간에,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마음과 개념뿐이다. 그러나 버클리는 이 면도칼을 조금은 선택적으로 사용했다. 그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신의 존재를 가정할 필요성이 있었다. 주관적인 관념론자는, 신을 제거하기 위해서 면도칼을 사용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유아론(唯我論, solipsism)에 귀착한다. 유아론에서는 자기자신과 자기자신의 생각만 존재하거나, 혹은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이 두가지뿐이라고 한다. 이것과는 반대로, 유물론자는 마음을 제거하는데 면도칼을 사용할 것이다. 우리들은 두뇌의 다의성(plurality of brains)과 의식의 다의성(plurality of minds)을 함께 가정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역주 : 죠지 버클리는 관념론자이며 물질주의에 대해서 반대했다. 유심론자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가지이며 하나는 실제론이고 다른 하나는 관념론이다.)

오캄의 면도칼은, 절약의 원리(principle of parsimony)라고도 불려진다. 최근에는 '설명은 단순한 것일수록 뛰어나다', '불필요한 가정을 추가하지 마라' 등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어쨌든, 오캄의 면도칼은 존재론 밖에서도 빈번하게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과학철학자는 정확한 정도가 비슷한 가설이 여러개 있을 경우, 가장 적합한 가설을 골라 내는데 오캄의 면도칼을 사용한다. 어떠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가정을 할 경우, 불필요하게 복잡한 가정을 세워서는 안된다. 폰 데니켄이 옳을지도 모른다. 즉, 지구밖의 생명체가 고대 지구인에게 예술이나 기술을 가르쳐 주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대인의 기술이나 예술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우주인의 방문을 가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왜 불필요한 복잡한 가정을 만드는가? 또, 많은 사람이 하는 것처럼, 꼭 필요한 가정만 만들어야 된다.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는데 에테르를 가정할 수는 있지만, 굳이 에테르가 필요하지는 않다. 그럼, 왜 근거가 희박한 에테르를 일부러 가정하는 것인가?

올리버 호움즈(Oliver W.Holmes)와 제롬 프랭크(Jerome Frank) 는 '법(the Law)'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때 오캄의 면도칼을 사용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세상에는 오직 사법적 판단만 있으며, 각각의 판결과 그 판결을 합쳐서 법률이 형성되는 것 뿐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 유명한 법률가는 혼동스럽게도, 자신들의 관점을 법률 유명론(legal nominalism)이 아니라 법률 존재론(legal realism)이라고 칭하고 있다. 좀 더 문제를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다.

오캄의 면도칼은 단순성의 원리(the principle of simplicity)라고도 불리워지므로, 일부 창조론자 는, 오캄의 면도칼을 이용해서 진화론보다 창조론이 옳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신이 모든것을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복잡한 구조로 설명하는 진화론보다, 훨씬 단순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오캄의 면도칼은 '단순한'  가정이 더 좋은 가정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오캄의 면도칼은, 현명하지 못한 대중에게는 대단히 무딘 면도칼이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예산 삭감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적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더 많은 돈을 들인다면 낭비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오캄의 면도칼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가정"이라는 단어를 제거함으로써, 오캄의 면도칼을 오캄의 면도칼의 원리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것은 숫자가 적다는 말은 양이 적다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오캄은 가정(assumption)을 줄이자는 것이지, 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원래, 이 원리는 완전성이란 것은 곧 간결성이라는 개념과 관련이 있다. 이 개념은, 우리들이 중세나 고대그리스인 등과 공유하는, 형이상학적 편견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들도 그들처럼, 원리 그 자체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물론자에게 있어, 이원론자는 불필요한 다수성을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원론자에게서는, 정신과 육체를 가정하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다. 무신론자에게서는 신과 초자연적 세계를 전제로 하는것은 불필요한 다수성이다. 하지만, 유신론자에게는, 신의존재는 꼭 필요한 것이다. 다른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아마, 폰 데니켄에게는, 아마 사실을 설명하는데 외계인을 가정하는 것이 필수적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우주인은 불필요한 다수성이다. 결국에는, 오캄의 면도칼은, 아마 무신론자에겐 신이 불필요 하고, 유신론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이 원리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편, 오캄의 면도칼이 믿기 어려운 설명과 확실해 보이는 설명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에는 확실해 보이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라면, 이 원리는 불필요하다. 이것은 보통,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원리가 진짜 청빈주의자(minimalist)의 원리라면, 환원론적인 일수록 더욱 좋은 것이 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검약의 원리는 오캄의 전기톱이라고 부르는게 어울린다. 왜냐하면, 이것의 주요한 사용 목적은 실재론을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번역 : toshijun
출처 : http://www.rathinker.co.kr/skeptic/occam.html

2009년 4월 10일 금요일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 본 글은 잘못 받아들이면 기분이 상당히 나빠질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 2040년과 2080년 동아시아 지도라고라? |


얼마 전부터 웹에 떠돌고 있는 2040년의 동아시아 지도이다. 그냥 웃자고 만든 지도인지, 누군가 예언 운운하며 갈겨놓은 지도인지 진위 여부 까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진위가 어떻건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이 지도를 보며 기분 좋다고 웃어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더라! 참 한심하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
중국이란 나라를 몰라도 어쩜 그렇게도 모르냐?
일본이 우리나라에 복속될 만큼 만만한 나란 줄 아냐?
필자도 한국인이라, 역사적인 측면에선 중국과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 감정이 곱지는 않다.
하지만, 저런 건 정말 아니잖냐!
대체 어떤 인간이 어떤 마음으로 휘갈겨놓은 지도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봐도 정신이 올바른 사람 같진 않다.
아니, 인간의 내면 속에 깃든 추잡스런 감성이 역겨울 뿐이다.

|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
국경이 사라진 세상
국가라는 단위가 하나로 통합된 세상
민족관이 없어진 세상
언어가 하나로 통일된 세상
그런 세상이 도래하길 바랄 뿐입니다.

인간의 한심스런 독점욕, 정복욕, 호전적 기질에 똥물을 끼얹고 싶을 뿐!
문명과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감성지수는 아직도 원시인 수준인가 봅니다.
간디가 왜 비폭력으로 명성을 얻었는지 이해가 갑니다. 간디는 정말 대단한 성자이셨던 듯. 예수님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요.
독점, 정복, 호전성 같은 저급한 감성을 고급의 지성으로 승화시킬 줄 아셨던 분들이셨으니.

저딴 지도 나부랭이 그린 화상이나, 저딴 걸 보고 기분 좋다고 므흣해대는 화상들이나 제가 보기엔 오십보백보네요. 유토피아의 도래, 에덴의 부활을 꿈꾸는 필자 같은 부류는 덜 떨어진 정신이 이상한 녀석 취급이나 받고, 저딴 걸 보고도 비판력이 안 생기는 화상들과,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국가관 민족관이 투철하면 좋은 사람 취급 받는 이 웃기지도 않는 세상.

잊지 말라!
국가가 있기 전에
민족이 있기 전에
사람이 먼저다.
인류애 없는 국가관, 민족관은 뒷골목 양아치를 나와바리 싸움질하는 것이랑 똑같은 근성이란 걸 인식하고 살자!

중국도 먹고, 사할린도 먹고, 일본도 복속시키면 저절로 행복해지냐?
그런 세상이 너희들이 바라는 새 세상이더냐?
아~ 왜 그냥 전세계지도를 COREA로 통합해버리지 그랬냐!
아래 지도 어떠냐? 어캐 좋냐? 기분 째지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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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근성을 지닌 화상들을 위해 본좌가 제작해봤다. 어캐 흡족하냐? -.-+]

| 후세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올바른 사고부터 해야한다 |
지금 이 시대는 인육하던 시대도 아니고, 혈맹으로 똘똘 뭉쳐서 약탈질하던 시대도 아니다. 21세기다. 전세계가 일일생활권인 세상이란 말이다.
대체 언제까지 약탈질하던 저급한 옛 기억을 안 버리고 살껴?

결혼해서 자식 낳아 기르면서 '친구하고 사이좋게 지내라', '어려운 사람과 도우며 살라'는 말을 하며 양심의 가책 안 느끼려면 자신부터 그렇게 살아야 한다. 충고를 하려면 자신이 올바른 생각으로 살아야지 충고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저딴 지도 보면서 기분 좋아지고 그러면서, 뭔 자식들에게 인성교육씩이나 하고 그러냐? 안 부끄럽냐? -.-+

대중이 생각한다고 해서 언제나 옳은 생각은 아니라고 본다.
대중의 보편적인 생각은 잘못 풀리면 집단이기주의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내것 지키고 싶다고, 그게 잘못된 거냐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만, 네게 흉기를 들여대고 정당한 네 것을 빼앗으려 들면 당연히 지켜내야한다.(이것도 문제가 많긴 하지만 다음에 다시 풀어보고 일단 넘어가자.)

필자가 말하는 건 국가주의, 민족주의, 호전성 같은 사고방식은 자칫 잘못하면 정신의 흉기가 되기 쉽상이라는 것이다.그런 감성들이 무력과 부합하면 그게 바로 전쟁으로 이어지는 거다. 규모가 커지고 더 잔악무도해진다는 차이만 있지 뒷골목 양아치들 나와바리 싸움질이랑 차이가 없다.

2차세계대전 때 독일, 이태리, 일본이 저지른 만행이 증명하고 있다.
지금에 와선 미국이 자칭 경찰국가라는 미명아래 행하는 짓거리들도 양아치 짓에 지나지 않는다. 경찰국가는 개뿔, 깡패국가다. 힘 있다고 함부로 휘두르며 나와바리 넓히고 싶다는 거지... 힘이란 건 제 꼴릴 때 함부로 휘두르기 위해서 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부족한 사람 돕기 위해 기르는 것 아니더냐?
아마도 우리들 양심의 교과서엔 그렇게 새겨져 있지 싶은데!

역사를 바로 잡는 노력은 해야겠지만,
화풀이식의 저딴 지도는 그리지도 말고 보더라도 기분 좋아질 것도 없다!
저딴 것 보고 기분 좋아라 하는 화상들 보면 같은 한국인으로서 쪽 팔린다.
제발 국가주의, 민족주의에서 벗어나길 기원할 뿐이다.
저딴 말도 안 되는 상상이나 하고 있으면 미래의 역사가 제대로 쓰여지겠냐?


국경이 사라진 세상
국가라는 단위가 하나로 통합된 세상
민족관이 없어진 세상
언어가 하나로 통일된 세상
그런 세상이 도래하길 바랄 뿐입니다.

※ 이 글은 인간 내면 속에 깃든 더럽고 추잡한 근성에게 전하는 글임.

2009년 4월 8일 수요일

영겁의 꿈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인 1986년 영국의 뉴사이언스 과학잡지는 우주의 모든 별자리를 컴퓨터에 입력시키면 사람 모양을 하고 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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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한 화면)

즉, 사람 모습을 그대로 확대하면 우주의 모습이 되는 것이지요. 정말 신기한 일이죠? 물론 그냥 우연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는 일이지만, 과연 우연으로 생각해버리고 말 일일까요?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인간을 소우주라고 불러왔습니다. 인간은 대우주를 가장 많이 닮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간의 몸 속에 존재합니다.

인간을 이루는 물질은 그 기원을 따라 올라가면 우주 창생시의 기억부터 시작해서 현재 '나'라고 이름 짓는 현재까지의 기억까지 전부 누적되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냐고요? 지금 제가 이렇게 새기고 있네요. ^^ㅋ).
물질이 그러하건데, 정신의 세계는 어떨까요? 정신은 과연 진짜로 우리가 죽으면 죽는 당사자와 함께 영원히 소멸되어 버리는 것일까요?
생각이란 무엇일까요? 뇌과학에서 얘기하듯이 과연 생각이란 것이 뇌 속에서 일어나는 전기화학적 신호에 불과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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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천문학계에서 알아낸 바로는 우주엔 우리 은하와 같은 은하가 1천억여개 정도 있다고 합니다. 관측 데이타를 기준으로 한 계산이니 아마 앞으로 더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1천억개의 은하 안에는 우리 태양과 같은 항성(계)가 또 1천억개쯤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항성계는 그 자식격인 행성을 함께 거느리고 있으며, 각 행성은 또 위성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이런 단순 계산을 하다가 보면 우주엔 물질로 넘쳐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실상 우주의 거의 대부분의 공간은 텅비어 있습니다. 밝혀낸 보통 물질의 총질량은 우주의 총 에너지에 대비하여 계산하면 약 4%(4%의 대부분은 수소와 헬륨이며, 나머지 원소들은 미미하다.) 정도 밖엔 안 되며, 나머지 96%는 22%의 암흑물질(dark matter)과 74%의 암흑에너지(dark energy)라고 부르는 관측되지 않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1천억의 은하와 각각의 은하 속에 있는 1천억의 항성(계) 그리고 항성계 속에 있는 행성과 위성, 혜성과 우주 먼지들... 이렇게 터무니 없이 어마어마한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우주 내의 보통 물질의 총질량은 고작 4%랍니다.

그 중의 한 행성인 지구 속에서 당신과 나라고 구분짓는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시세계에서 바라본 인간군상들은 너무나 미미하고 보잘 것 없어서 공중에 떠도는 먼지 하나 만도 못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보고 느끼고 숨쉬며 살아가는 현상 세계는 그렇게 보잘 것 없고, 미미한 세계가 아닙니다.
오늘도 지구 안에서는 어느 곳에서는 전쟁을 하고 있고, 아마존 밀림의 수 많은 나무들은 반대편에서 전쟁으로 인해 숲이 파괴되고 사람과 생물이 죽어가고 있는 것과는 아무 관계없이 산소를 방출하고 있습니다.
바다 속, 강물 속, 숲 속의 생태계는 인간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짓을 하건 아무 관계없이 먹고 싸우며 생태계의 그 거대한 흐름을 유지해나가고 있습니다.
오래전 그 생태계의 바깥쪽으로 벗어난 인류는 생태계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고 착각하며 환경을 파괴, 개조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길을 걷기 시작한 걸까요?
대체 무엇이 인류를 생태계 밖으로 쫓아낸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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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거시계로 생각을 되돌려봅니다.
우주의 모습이 인간 형상을 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정말 신이라는 절대자가 있어서 그분이 인류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우주 전체의 조감도를 인간형상으로 꾸며 놓은 것이라면 어떨까요?
그렇게 사랑하는 인류가 지금 자행하고 있는 생태계 파괴를 절대자는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사랑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어쩌면 절대자의 눈으로 바라본 인류의 존재감은 먼지와도 같이 부질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언제든 꺼뜨릴 수 있는 존재이기에 그냥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진정 우리 머리 속에서 느껴지는 전지전능한 존재인 神이 계시다면 우리는 정말 조심조심 살아가야 합니다.
한순간 그 신이 입김 한 번 내뿜으면 우리는 일순간에 없었던 존재가 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바람 앞의 등불이 그러하듯이 한 순간 언제 피어올랐는지도 모르게 꺼져버릴 수도 있는 생명이라면, 방종은 그만두고 신이 만들어 둔 '생태계'라는 거대 순환 시스템 속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을 믿으며 살라는 것도 아니고, 신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으니 알아서 기어라는 말도 아닙니다.

어쩌면 신이 자신의 존재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사고시스템을 주입시켜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성을 머리 속 저 깊은 곳에 심어두셨는지도 모릅니다. 만일 제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인간은 어쩌면 멸종은 피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방종스럽게 생활하며 신을 거역하고 신을 부정하는 짓은 그만둬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에 그냥 저절로 존재하게 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신은 하늘에서 어느날 갑자기 뚝 떨어진 존재인 듯 안하무인격으로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그대들은 그대들의 부모님이 안 계셨다면 이 세상에 없는 존재입니다.
부모님도 부모님의 부모님이 안 계셨다면 역시 이 세상에 없는 존재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시초엔 인류의 부모는 남자와 여자 딱 두 사람만이 남습니다.
그 남자와 그 여자를 기독교에선 '아담과 이브'라고 호명하며,
진화론에선 '암수 원숭이* 주1) 한쌍'이랍니다.
(창조, 진화 중 어느 쪽을 믿건 당신 마음입니다. 지금은 창조, 진화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또다시 시간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 여기에 단세포 생물 하나가 갑자기 나타납니다.

다시 시침을 반시계 방향으로 한참을 돌립니다.
저 멀리 눈에 보일 듯 말듯한 한 점 빛이 보입니다.

다시 시침을 반시계 방향으로 조금 더 돌립니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아무것도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물질이 사라지고 세상이 사라지고, 이 우주 자체가 사라진 곳. 시간이 정지된 곳.
그 때 신은 깊디 깊은 영겁의 시간을 잠 속에 빠져들어 있었습니다.

갑자기 신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램수면 상태인가 봅니다.
아하! 신이 영겁의 시간 속에서 이제 막 꿈을 꾸기 시작했나 봅니다.
그 순간
저 멀리 눈에 보일 듯 말듯 한 한 점 빛이 보입니다.
.
.
.
신의 꿈 속에서 어떤 한 사내가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타이핑을 하려는지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은 모습입니다.
영겁의 잠 속에 빠진 신은 마치 자신이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일순간 듭니다.
신이 꾸는 꿈 속의 그 사내는 신이 자신에게 이렇게 타이핑하게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인 1986년 영국의 뉴사이언스 과학잡지는 우주의 모든 별자리를 컴퓨터에 입력시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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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 SF를 꾸며보며…….
신이 영겁의 꿈을 깨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신이 꿈에서 깬 그 세상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신이 꿈에서 깨어나면 어떤 일부터 먼저 시작할까요?

| 너스레 |
기사에서 시작해서 에세이로 그리고 소설적 플롯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런 식의 소설 형식도 있기는 했었죠.
별스럽게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지만, 글을 타이핑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여기까지 쓰게 되네요.
좀 이상스럽기는 하지만 한 편의 짧은 엽편 SF라고 우기기로 합니다. ^^
계속 이어질지 아이디어로 남겨둘지는 아직은 모르겠네요. 작정하고 쓴 게 아니라, 끄적대다보니 플롯이 떠올라서....

| 주석 | (보충 : 오후 2:23 2009-04-21)
* 주1) 원숭이 : 통상 유인원류(Apes) 중 하나라고 두리뭉실하게 표현하지만, 표현만 다를 뿐 원숭이죠.

아래의 삽화는 분자진화적 방법으로 작성한 꼬리없는 원숭이들(Apes 혹은 유인원)의 진화분지도(evolution tree) 입니다. 영장류 연구자들과 인류의 기원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식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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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오랑우탄, 고릴라, 사람, 보노보, 침팬지 입니다.
+ 위쪽 삽화와 삽화에 관한 설명글 출처 : http://hosunson.egloos.com/2270714
원 출처: http://www.nature.com/nature/journal/v421/n6921/full/nature01400.html

[영상 추가] (오후 5:11 2009-04-19)
'우주는 사람의 모습이다' 동영상으로 보기 [새창]

2009년 4월 7일 화요일

은하 11만개, 상세 은하 지도 완성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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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으로 보이는 하나하나가 우리은하와 같은 은하임.)


호주에 위치한 앵글로 오스트레일리아 천문대(AAO)의 1.2 미터 슈미트 망원경을 이용해, 영국 호주 미국의 천문학자들이 완성해낸 우리 은하 주변 11만개의 지도이다.

4일 해외 과학 매체들에 소개된 위 그림에서 점 하나 하나는 은하를 나타낸다. 우리 은하는 지도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500 곳의 보이드(void, 우주 속의 빈 공간)도 지도에 나타나 있다.

AAO의 천문학자들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정밀한 은하 지도라는 자평한다. 이번 은하 지도에는 남쪽 하늘에서 볼 수 있는 은하의 80%를 담았고 가장 먼 은하의 거리는 20억 광년이다.
(사진 : 호주 스윈번공대의 보도자료)
2009-04-06 10:40

| 관련 사이트 |
정보 : http://www.aao.gov.au/AAO/press/6dfgs/
이미지 : http://astronomy.swin.edu.au/~cfluke/6dF/0001.tga.jpg

| 너스레 |
11만개의 은하 : 약 1천억개의 은하≒1 : 909090.91
이건 뭐 비교가 안 되는 천문학자분들 좀더 분발을 ^^ㆀ

2009년 4월 3일 금요일

망상자매에 소재로 나오는 소설의 작가 소개

망상자매에 소재로 나오는 소설의 작가 소개
2009년 1분기 라인업 중, 망상자매 ~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라는 일본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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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줄거리의 큰 맥락만 짚어 봅니다.
자살한 소설가인 아버지가 20년전에 보낸 편지가 세 자매에게 배달된다.
그 편지 속엔 책이 보관되어있는 비밀금고의 열쇠가 들어있는데, 세 자매가 그 금고에 있는 책을 보며 그 책의 관능적인 부분에 초첨을 두고, 각자의 해석으로 망상을 해 나간다는 줄거리.
이 드라마는 각 화의 줄거리를 짧게라도 얘기하면 볼 필요조차 없어질지도 모르겠더군요. (총 11화 완결)

| 감상 중에 |
※ 아쉽게도 저는 6화의 소재인 사카구치 안고의 『백치』와 10화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덤불 속(藪の中)』 두 작품만 읽어봤더군요. 다른 작품은 모르겠지만『백치』와 『덤불 속(藪の中)』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작품 『덤불 속』을 영화화한 작품은 사실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덤불 속』과 『라쇼몽(나생문)』 두 작품을 짜집기한 시나리오로 하여 만든 작품이고, 영화 제목은 『라쇼몽(羅生門 나생문, 구로사와 아키라)』으로 발표했으며, 『라쇼몽(나생문)』은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 영화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1951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두 작품 모두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

저희 집에 있는 장서 중에 일본 문학 작품이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읽었다해도 현대 작가의 작품이 거의 전부더군요. 짐작하기에 아마도 일본 문학 작품을 웬만큼 섭렵하지 않았고서는 이 드라마에 나오는 작품들은 찾기도 힘들 것 같더군요. 아직 국내에 일본 문학이 그렇게 많이 번역된 것도 아니구요. 바로 옆에 있는 나라임에도 역사적,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일본문화 개방이 늦었던 점이 있어서 이리라 여겨집니다. 저희 집에 폐간한 고려원에서 출판한 일본대표단편선 시리즈(전3권)에 혹시 한 두 작품은 있을까 싶어서 살펴봤는데, 이 드라마에 소재로 쓰인 작품은 하나도 없더군요. 이 드라마에 나오는 작가 분 중 나쓰메 소세키, 사카구치 안고, 다자이 오사무, 세 분들의 다른 작품은 일본대표단편선 시리즈에 실려 있네요. 아마도 제가 짐작하기에 이 드라마에서 선정한 작품은 그렇게 유명세가 있는 작품을 선정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시간내어 시립도서관에 가서 작품을 찾아봐야겠어요.

근데, 이 드라마가 야밤물;; 이라서 그런지 아직 많은 분이 보시진 않는 것 같더군요. 원작 읽어본 6화 『백치』와 『덤불 속(藪の中)』 두 작품으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연출을 너무 관능적인 면만을 돋보이게 해서 드라마 선호도가 좀 떨어진 면도 없잖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알아주는 문인들의 작품이 원작인 작품이니 근성근성 봐서는 작품을 이해하는데 좀 무리가 있을 걸로 여겨지기도 하더라구요. 다른 화의 원작들도 읽어봤다면, 연출적인 의도였는지, 아니면 원작 자체가 전부 관능적인 면을 강조한 작품인지 알수 있을텐데...

1화
『헝클어진 머리』

요사노 아키코(擧謝野晶子, Yosano Aki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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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여류작가. 메이지부터 쇼와 시대까지 활약한 단가(短歌) 작가. 일본의 시인.
1878. 12. 7. 일본 오사카[大阪] 근처 사카이[堺]~1942. 5. 29 도쿄[東京].
본명은 호쇼[鳳晶]. 그녀의 새로운 시풍은 일본 문단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학창시절부터 시에 흥미를 가지고 친구들과 함께 개인 시 잡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1900년에는 요사노 뎃칸[擧謝野鐵幹]이 중심이 된 신시샤[新詩社]에 가입하여 동인지 〈묘조 明星〉의 발간을 도왔다. 같은 해 뎃칸을 만났으며 이듬해 가족을 떠나 도쿄로 가서 그와 결혼했다. 참신하면서도 인습에 구애받지 않는 시풍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1901년에 나온 시집 〈헝클어진 머리 みだれ髮〉로 스타가 되었다. 〈꿈의 꽃 夢の華〉(1906)은 그녀의 예술적인 발전을 보여 주었다. 1912년에는 남편을 따라 프랑스로 가서 1년 동안 지냈는데, 〈여름에서 가을로 夏より秋ヘ〉(1914)는 그 시기에 씌어진 시집이다.


2화
『우미인초(虞美人草)』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Natsume Sōse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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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소설가 겸 영문학자. 우미인초는 개양귀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
1867. 1. 5 에도[江戶]~1916. 12. 9 도쿄[東京].
본명은 긴노스케[金之助]. 근대 일본의 소외된 지식인들이 처한 곤경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명료하고 설득력있는 문장으로 그려낸 최초의 소설가였다.

[어린시절]
토지를 소유·관리하는 묘슈[名主]인 나쓰메 고효에 나오카쓰[夏目小兵衛直克]의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집은 비교적 유복했다. 그러나 생후 1년 만에 시오바라 마사노스케[鹽原昌之助]의 양자로 보내졌는데 양부모는 그를 무척 귀여워했으나, 어린시절은 보통 아이들에 비하면 매우 고독했다. 10세 때 양부모가 이혼하자 소세키는 시오바라 가의 호적을 지닌 채 생가로 돌아왔다. 생가에 대한 귀속감을 느끼지 못했던 소세키는 학교성적은 매우 우수하여 1878년 이치가야[市谷] 학교 상급반 재학중에 쓴 작문 〈정성론 正成論〉을 보더라도 한문(漢文) 소양이 보통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후년에 쓴 〈문학론 文學論〉(1907)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는 우선 한문학을 통해서 문학에 대한 취미를 가지게 된 듯하며 한문학 소양은 사립 한학교인 니쇼가쿠샤[二松學舍] 입학으로 더욱 깊어졌다.


3화
『바람이 일다』

호리 다쓰오(堀辰雄, Hori Tatsu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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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소설가, 비평가, 시인
1904. 12. 28 도쿄[東京]~1953. 5. 28 나가노 현[長野縣] 오이와케[追分].
제1고등학교를 거쳐 1929년 도쿄대학[東京大學]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23년 무로 사이세이[室生犀星]를 통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와 알게 되어 깊은 영향을 받았다. 아쿠타가와의 자살에 대한 충격을 졸업논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론〉(1929), 〈성가족 聖家族〉(1930)에 결정(結晶)시켜 서구 심리주의의 수법에 의해 지성과 감성의 통일을 꾀하는 근대적 스타일로 작가로서의 기반을 굳혔다. 이후 각혈하여 나가노 현의 요양원에 들어가 가루이자와[輕井澤]와 도쿄를 왕복하면서 〈회복기 恢復期〉(1931)·〈불타는 볼 燃ゆる頰〉(1932) 등의 소품과 연작(連作) 〈아름다운 마을 美しい村〉(1933), 〈모노가타리의 여인 物語の女〉(1934), 연작 〈바람이 일다 風立ちぬ〉, 〈나호코 菜穗子〉(1941) 등


4화
『외과실』

이즈미 교카(泉鏡花, Izumi Kyō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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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작가.
1873. 11. 4 일본 가나자와[金澤]~1939. 9. 7 도쿄[東京].
단편소설을 주로 썼다. 본명은 이즈미 교타로[泉鏡太郞]. 로맨틱하고 신비로운 독특한 세계를 창조하여 등장인물로 하여금 교카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도덕적 가치를 대표하게 했다. 예술가이자 장인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선조로부터 신비로운 힘에 대해 실제적인 믿음을 갖게 하는 깊은 신앙과, 예술적인 자질을 물려받았다. 그는 1890년 당시 문단의 지도자였던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 도쿄로 갔다. 1년 후 고요의 문하에 들어가서 다른 문하생들과 함께 1894년까지 기거했다. 〈야행 순사 夜行巡査〉(1895)·〈외과실 外科室〉(1895)은 지켜야 할 본분과 인간적인 감정이라는 갈등 속에서 교카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가치를 제시했다. 〈고야히지리 高野聖〉(1900)는 기이하고 신비로운 세계에 매혹된 작가의 심경을 표현한 것이다.


5화
『치에코쇼』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郞, Takamura Kōtar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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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조각가이자 시인.
1883. 3. 13 일본 도쿄~1956. 4. 2 도쿄.
쇠퇴해가는 목조각의 전통을 완고하게 지켜나간 조각가 다카무라 고운[高村光雲]의 장남이며 공예가 다카무라 도요치카[高村豊周]의 형이다.
1897년 도쿄 미술학교에 입학했으며 요사노 뎃칸[與謝野鐵幹]이 주재하는 신시샤[新詩社]에 들어가〈묘조 明星〉에 단카[短歌], 희곡 등을 기고했다. 1906년 미국에 건너가 조각공부를 하고 이듬해 런던으로 가 B. 리치, 오기와라 모리에[荻原守衛]와 알게 되었으며 그 이듬해 파리로 이주했다. 여기서 로댕의 조각에 깊이 심취하는 한편 프랑스의 시인 베를렌, 보들레르의 시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1909년 이탈리아를 거쳐 귀국한 그는 아버지를 포함한 기성 미술계의 속물성, 파벌주의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비평을 다수 발표했다. 그뒤 해외미술의 소개나 수필에 주력하게 되었으며 논문 〈녹색의 태양 綠色の太陽〉(1910)은 일본 근대미술사에 전기를 마련한 대표적 미술론이다. 또한 판노카이[パソの會:목양회]에 들어가 시작(詩作)활동을 시작했다. 1911년 화가 지망생인 나가누마 지에코[長沼智惠子]와 만나 1914년 결혼했으며 같은해 유명한 시집 〈도정 道程〉을 발표했다.〈도정〉은 일본근대시사에 일획을 긋는 중요한 시집으로 구어체를 구사하여 인도주의적인 격렬한 정열과 힘찬 가락의 독자적 시풍을 제시했다. 그후 궁핍한 생활 속에서 조각 소품이나 시·번역·수필 등을 발표했지만 엄격한 창작정신을 지켜 작품수는 적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이제까지의 시와 전혀 다른 반(反)서양, 충군애국(忠君愛國)사상을 고무하는 시를 발표했으나 전후에 이를 깊이 반성하고 이와테 현[岩手縣] 근교에서 7년 동안 힘겨운 농사일과 자취생활을 하며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주요저서로 〈로댕의 말 ロダンの言葉〉(1916), 〈조형미론 造型美論〉(1942)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지에코쇼 智惠子抄〉(1941)·〈전형 典型〉(1950)이 있다. 조각품에는 <사자후 獅子吼>(1902, 도쿄예술대학 소장),<지에코의 머리 智惠子の首>(1916)〈손 手〉(1918,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소장) 등이 있다.


6화
『백치』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 Sakaguchi A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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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소설가.
1906. 10. 20 일본 니가타[新潟]~1955. 2. 17 기류[桐生].
본명은 헤이고[炳五]. 1930년 도요대학[東洋大學] 인도철학과를 졸업했다. 1931년 〈바람 박사 風博士〉·〈구로타니 마을 黑谷村〉 등이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 마키노 신이치[牧野信一], 우노 고지[宇野浩二] 등에게 극찬을 받으며 문단에 등장했다. 1932년 신진 여류 작가 야다 쓰세코[矢田津世子]와 사랑에 빠져 창작활동을 중단했으나 1938년 〈후부키모노가타리 吹雪物語〉를 발표함으로써 전기를 맞이했다. 1942년 〈일본문화사관 日本文化私觀〉·〈청춘론 靑春論〉 등의 수필을 써서 본격적으로 문단에 복귀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살라, 타락하라'라는 역설적 모랄을 평론 〈타락론 墮落論〉(1946)에서 설파했으며 소설 〈백치 白痴〉(1946) 등을 발표해 전후 사회의 혼란과 퇴폐를 반영한 독자적 작풍을 수립했다. 이들 문학활동은 전후의 일본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7화
『오세이의 등장』

에도가와 란포(江戶川亂步, Edogawa Ram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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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1894. 10. 21 미에 현[三重縣] 나바리[名張]~1965. 7. 28 도쿄[東京].
본명은 히라이 다로[平井太郞]. 1916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경학부 졸업 후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 추리소설 〈동전2전 二錢銅貨〉을 발표하여 근대 일본 추리소설의 선구자가 되었다. 필명인 에도가와 란포는 에드거 앨런 포를 본뜬 것이다. 완전범죄 계획을 정신분석적 방법으로 꿰뚫은 〈심리시험 心理試驗〉(1925) 등을 통해 트릭의 묘를 발휘한 본격적 단편 수법을 확립했다. 그후 장편 〈파노라마 섬의 기담 パノラマ島奇譚〉(1926~27)을 비롯해 기괴한 분위기가 감도는 〈음수 陰獸〉(1928), 〈오시에와 여행하는 사나이 押繪と旅する男〉(1929),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거미사나이 蜘蛛男〉(1929~30) 등 추리소설의 다양한 형식을 개척했으며 아동물을 써서 갈채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탐정작가 클럽(뒤에 일본추리작가협회)을 설립했다.


8화
『여학생』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Dazai Os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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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소설가.
1909. 6. 19 일본 아오모리 현[靑森縣] 가나기[金木]~1948. 6. 13 도쿄.
본명은 쓰시마 규지[津島修治].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 문단의 대변자로 떠올랐다. 어둡고 뒤틀린 작품 분위기로, 전통적인 가치가 불신당하고 젊은 세대는 허무주의에 사로잡혀 과거의 것을 송두리째 거부하던 전후(戰後) 일본의 혼란을 완벽하게 그려냈다. 일본 북부에서 부유한 대지주이자 정치가의 6째 아들로 자랐으며, 자신의 이러한 성장배경을 종종 소설의 소재로 택하곤 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을 지배하는 분위기는 어두운 편이지만 때로는 익살에 가까운 유머를 구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첫 단편집 〈만년 晩年〉(1936)은 그가 여러 가지 문체와 주제를 다룰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다재다능한 작가임을 보여주었으나 점차 1인칭 소설양식인 사소설(私小說)을 주로 쓰면서 소설 속의 등장인물에 자화상을 투영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9화
『흐린 강』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 Higuchi Ichi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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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시인, 소설가.
1872. 3. 2 도쿄[東京]~1896. 11. 23 도쿄.
본명은 히구치 나쓰[樋口一葉]히구치 나쓰코[樋口夏子]라고도 함. 19세기말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여류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도쿄 서민층의 정서와 유곽의 풍경 등을 소재로 다루었다. 하급관리의 딸로 태어나 안락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1889년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와 여동생을 돌보아야 했으며 그로 인해 2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고통과 가난의 역경 속에 살아가야 했다. 히구치는 몇 년 간 하기노야[萩の舍]라는 비교적 유명한 와카[和歌] 학원에 다니며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이때 그녀는 소설 출판업에 종사하는 한 급우가 성공하는 것을 보고 생계 수단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1891년 〈도쿄아사히신문 東京朝日新聞〉의 소설 기자였던 나카라이 도스이[半井桃水]를 소개받아 그 제자가 되었다.


10화
『덤불 속(藪の中)』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Akutagawa Ryūnos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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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소설가.
1892. 3. 1 도쿄[東京]~1927. 7. 24 도쿄.
초기의 필명은 야나가와 류노스케[柳川隆之介]. 하이쿠[俳句] 시인으로서의 호는 가키[我鬼]. 도쿄 교바시[京橋]의 이리후네 정[入船町]에서 니바라 도시조[新原敏三]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용띠 해, 용의 달, 용의 날(辰年辰月辰時)에 태어났다고 하여 류노스케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생후 8개월경 어머니가 미쳤기 때문에 어머니의 친정 오빠인 아쿠타가와 미치아키[芥川道章]의 양자로 가게 되었다. 어머니의 광기가 유전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은 평생 그를 괴롭혔고 결국 그를 자살로 몰고간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양자로 간 집은 생활은 윤택하지 못했으나 문예를 사랑하는 분위기의 가정이었다. 덕분에 아쿠타가와는 어린시절부터 책이나 그림, 골동품을 친숙히 대할 수 있어 감수성 예민한 소년으로 자라게 되었다. 1913년 제1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여 1916년 졸업했다.


11화
『병조림의 지옥』

유메노 큐사쿠 (夢野久作, Yumeno Kyusa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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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을 대표하는 SF작가, 탐정소설가, 환상문학 작가.
1889년 후쿠오카 출생. 근래에는 '유메노', '유메Q' 등으로 부르며 칭송하는 이들도 적잖다. 본명은 스기야마 타이도, 어릴적 이름은 나오키였다. 친부는 일본 후쿠오카계 우익정치집단 <겐요샤>의 거두 스기야마 시게마루로 아버지와의 관계가 유메노의 유니크한 작품세계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소녀지옥>, <오시에의 기적>, <견신박사>, <병에 담긴 지옥> 등 괴기적이고 환상성이 짙은 작품을 다수 발표하였으며 이들 작품은 일본의 영화, 만화, 게임 등에 시대를 초월한 영향을 끼쳤다. 그 중 구상에서 탈고까지 10년 이상이 걸린 <도구라마구라>는 읽는 동안 한번쯤은 정신이상을 불러일으킨다는 저자의 대표작으로 일본본격탐정소설 3대 기서로 불린다. 유메노는 <도구라마구라>를 발표한 이듬해(1936) 뇌출혈로 사망하여 작품과 더불어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이동민 - 한양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서양화 감상 모임 'Breeze'를 창단했다. 삼원 동화 애니메이터로 활동했으며, 단편 애니메이션 '마로니에 공원' 제작에 참가했다. 1998년에는 케이블 방송 다큐멘터리 '한국 만화 40년사' 제작에 참여했고, 출판기획팀 '아니메 드라이브'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하기도 했다. 2007년 현재 사설 연구소 '알렉산드리아'에서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알폰스 무하와 사라 베르나르>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동양화를 배우다> 등이 있다.


【참고】
브리태니커 Britannica 온라인 백과사전
엠파스 Empas 온라인 백과사전
http://blog.daum.net/gnflwldk02/17037444
구글 이미지 검색


| 너스레 |
+ 완감 후에…… 누가 봐도 마이너 드라마인 작품을 소개하는 짧은 이유

이 드라마엔 관능적인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사실 '관능'이 드라마를 이끌어나가는 플롯의 한 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의 관능은 남성적 관점에서 바라본 관능이 아니라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본 '관능'입니다. 같은 사람이지만 남성과 여성이 바라보는 관능은 차이점이 많은 걸로 압니다. 실상 그 시점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많은 문학가들이 고래로부터 얘기해왔죠.
참고로 주연인 세 자매는 물론이거니와 이 드라마의 [감독/연출/각본]을 맡은 스텝이 모두 여성들이랍니다.

일본 드라마를 정말 많이 봐 오고 있지만 드라마 소개를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별히 소개해야 할만한 이유도 없거니와 일본드라마/영화 관련 사이트와 클럽에 리뷰가 즐비하고,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으면 영화와 드라마 리뷰는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짧게나마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면, 이 드라마가 분명히 저예산의 마이너 드라마이고, 심야에 방송하는 어른들을 위한 드라마라는 점 때문인지, 일드 클럽에서의 평점을 보니 정말 절망 수준이라서입니다. 편견의 눈으로 지레짐작만으로 평가를 내리고 제대로 보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들더라구요.

드라마 형식이 연작단편물이고 각 화의 이야기가 특별히 재밌는 이야기도 아니고, 드라마 전체를 보기 전엔 이 드라마의 스텝진이 의도한 진정한 가치를 평가하기 힘든 형식이기도 합니다.

저예산 마이너(세 자매가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질 않습니다. ^^ㅋ)에, 야밤물(;;)이라는 편견 때문에 혹시 안 보고 계신 분들을 위해 각 화의 소재로 나온 소설의 원저자 소개라도 해두면 그 편견의 막이 한꺼풀이라도 벗겨지지;; 않을까 싶어서 새겨둡니다.

2009년 3월 29일 일요일

아무도 모른다2

[자살한 연예인들]


착각하기 싶지만 삶의 다음에 순차적으로 죽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생명은 죽음이란 거대한 틀 속에서 삶이라는 찰나를 만끽하는 것이다.
삶이란 그렇게 찰나에 불과하기에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찰나에 불과한 삶이기에 자살을 선택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삶은 그렇게 긴 것도 아니고, 즐겁기만 한 것도 아니지만 살아 있는 한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피곤하다고, 지친다고, 지겹다고, 삶에 의미가 사라졌다고 해서, 자신의 생명이라고 해서 스스로 죽음의 강에 발을 넣으면 안되는 것이다.

신이 있거나 말거나,
죽음의 다음에 또 다른 삶이 있거나 말거나,
천국과 지옥이 있거나 말거나 그건 살아서는 아무도 모른다.

만일 생명이란 것이 단 한 번 뿐이고,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라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아무리 피곤하고 지치는 삶이더라도 찾아보면 틀림없이 재미 있는 일 한두 가지 정도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당신도 살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어때!
때로 꼴지가 되면 어때!
사는 게 좀 허무하면 어때!
돈이 좀 궁핍하면 어때!
사람들이 나를 몰라주면 어때!
왕따 좀 당하면 어때!
사람에게 실망 좀 하면 어때! 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의미를 찾아가는 삶.
삶의 의미 따위, 설령 죽는 순간까지 찾지 못하더라도 어때! 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어차피 죽음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있는데,
그래서 우린 죽음이라는 그물망에서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잖아.
죽음은 만민평등이잖아! 뭘 그렇게 서둘러…….
그러니 스스로 선택하지마! 죽음 따위.

17세 때 이미 자살을 꿈꿨던 자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나 자신에게 채찍질한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살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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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의미없는 삶일지도 모른다.
아니,
삶에 특별한 의미 따위 붙힐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자신의 삶에서 내일이라는 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통고를 받는다면,
그래도 오늘 하루가 그렇게 무의미하게 흘러갈까?
그래도 정말 한 순간 스쳐지나가는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게만 느껴질까?

삶 따위 어떻게 되던 관계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아니, 지금의 내면 어딘가엔 분명히 아직도 그 의식이 잔뜩 웅크리고 있다.
그리고 그 의식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내면 저 깊숙한 곳에 숨어서 가끔 나를 괴롭힐 것이다.

삶에 의미 따위 아무것도 없는 것이며,
하루하루가 지옥일지라도,
스스로 죽고 싶지는 않다.
죽음 따위 무서워서가 아니다.
살고 싶은 이유 따위 없듯이
죽고 싶은 특별한 이유 따위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즐거우면 더욱 더 즐거울 꺼리를 찾듯이
괴로우면 괴로움을 즐기면 된다.
슬픔과 고통을 감내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떤 바보가 슬픔과 고통을 감내하겠는가.

이 세상은 어떻게 돼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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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찰나에 불과한 낙(樂)과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고(苦)의 연속이다.
우린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신의 잘못은 더욱 아닐 것이다.
다만, 그렇게 이어져왔고,
틀림없이 영원히 세상은 유토피아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계속 달려갈 것이다.
어쩌면 삶이란
신이 인간을 위해 준비해놓은 유토피아(천국 혹은 극락, 뭐라고 이름 붙히던...)로 가기 위한 관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너와 닮은 거울상인 또다른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간다.
뉴욕에서, 도쿄에서, 런던에서, 파리에서,
그리고 서울의 한 모퉁이에서…….

| 너스레 |
삶 따위 의미가 있건 없건 괘념치 않고 살아가기로 결심한, 사람 여기 있다.
네 바로 곁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너를 꼭 빼 닮은 사람이 있다.
그러니 자살 따위 생각하지 말고 당신도 살아.
열심히 살기 싫으면 게으름도 피우며 살아.
네가 게으름 피우고 싶은 만큼 피우고 살아.
그런다고 세상이 어떻게 되는 것도 네 삶 전체가 어떻게 변하는 건 아니니까.
세상에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할 만큼 해봐.
게으름도 언젠가는 지겨워질 날이 분명히 있으니.
세상에 태어나 뭐 한 가지 원하는 만큼 해보지 못한 인간이 뭔들 제대로 할 수 있겠니.
설령 그것이 게으름이라도 피울려면 제대로 피워봐!
그리고 하늘이 부르는 날 까지
당신도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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