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1일 금요일

꿈 · 실재 · 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략… 꿈은 그것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현실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즉시 꿈의 비실재적인 성질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깨어 있는 현실을 꿈의 현실보다 더 높은 단계의 실재로 간주한다. 명백히 더 실재적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백일몽이나 여러 가지 환각 상태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들은 그것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매우 실재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끝나고 나서 그것을 정상적인 ‘기준’현실과 비교해보면서 우리는 그것을 덜 실재적인 것으로 무시해버린다.…후략… 』
빈스 라우즈, 앤드류 뉴버그, 유진 다킬리(공저)「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Why GOD Won't Go Away)」p221 중에서



윗 글을 유추해보면 꿈이란 시간의 연속선이 영속되지 않고, 한정된 시간 안에서만 현실로 느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어떤 한 사람이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끝없는 잠 속에서 끝없이 꿈을 꾼다면 그 사람에겐 ‘꿈=현실’이란 등식이 성립한다고 봐도 무방한 것 아닐까?

꿈이라는 것을 현실이라는 시간의 연속성이 깨어진 상태라고 가정한다면, 꿈에서 깨어난 상태인 현실이란 것도 어쩌면 시간의 연속성일 뿐인 것은 아닐까?
연속적인 경험을 우리의 뇌는 ‘실재’(한다)라고 결정 짓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실재와 비실재의 차이가 ‘시간’이란 인자뿐이라면 우리의 뇌가 결정한 실재라는 것도 더 넓은 영역(차원)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흔히 깨달았다는 선승이나, 신비체헙을 얘기하는 영지주의자들이 본 ‘실재’라는 개념이 어쩌면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테두리를 한단계 넘어선 또다른 ‘실재’를 경험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일상적인 관념의 세계와는 무관하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틀 안에서는 ‘우주의 끝’이란 개념은 착각에 불과하듯이 우리의 뇌는 현실이라는 틀 안에 갖혀서 ‘실재’를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神이란 물리적 실재계를 넘어선 세계의 존재이다. 우리의 뇌가 인지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내면에 깃들어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존재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불교의 깨닫는 방식 중에 ‘돈오’라는 것이 있다. ‘돈오(頓悟)’란 갑자기 깨닫는다는 뜻이다.

“찾으려하면 찾지 못할 것이요, 찾으려는 노력 조차 끊긴 찰나, 그 부지불식간에 깨달음이 오듯이”
우리 내면의 神이란 절대자도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내면에서 그 빛을 발하는 것이리라.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