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29일 화요일

없는 것과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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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봤던 구절인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력도 이젠 나이를 먹어가나보다 ㅜㅜ


없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것?
있는 것은 실체적인 것?

내가 나라고 인식하는 '나'라는 것은 실체적인 것인가?
아니면
다만 있다고 상상하고 있는 것인가?

이젠 정말로 미쳐가고 있나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실험이 떠올라서 덧붙혀둔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 관찰자는 자기가 관찰하는 것을 변화시킨다. 어떤 사건들은 단지 그것들이 관찰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것을 볼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 사건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실험이 지닌 의미다.

고양이 한 마리가 밀폐된 불투명 상자 안에 갖혀 있다. 어떤 장치를 이용해 고양이를 죽일 만큼 강력한 전기를 우연에 맡기는 방식으로 내보낸다. 자, 이제 기계를 작동시키다가 멎게 한다. 그 장치에서 치명적인 전기가 방출되었을까? 고양이는 아직 살아 있을까?

고전 물리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아는 방법은 상자를 열어서 보는 것이다. 양자 물리학자의 입장에서는 고양이가 50%는 죽어 있고, 50%는 살아 있다고 말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상자의 뚜껑이 열리지 않는 한, 고양이는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양자 물리학에 관한 그런 토론과는 별도로, ⓑ고양이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를 아는 피조물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고양이 자신이다.

출처 : 쥐의 똥구멍을 꿰맨 여공 (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47page)

인간인 '나'를 고양이와 대치시키고, 나를 관찰하는 관찰자로는 '신이라는 절대자'를 대치시켜서 생각해보면,

만일 신이 나를 관찰하고 있지 않다면 '나'라는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나'라는 존재의 삶은 사건일 것이다.)

하지만 상자 안에 갖혀 있는 '나'라는 존재는 신이 나를 관찰하건 말건 '나' 스스로는 자존하고 있는 것인가?

위 박스 안의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적힌 베르베르의 논리는 전후가 정반대의 답을 내고 있다.
박스 안의 글의 의미를 풀어서 단순화해서 생각하면 아래와 같은 의미인데...
ⓐ에서는 '관찰자가 없다면 사건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명기했는데, 다시
ⓑ에서는 '관찰자가 있거나 말거나 피조물 자신은 스스로의 존재여부를 알수 있다.'고 한다.

내가 베르베르의 글을 이해를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베르베르의 논리의 오류일까? 아니면 번역상의 오류 때문일까?
이도저도 아니면 (나 - 고양이, 관찰자 - 신)이라는 대치가 안 되는 것일까?
생각을 좀더 깊이 해봐야 할 것 같다.
(만일 '나'라는 존재가 없는 것이라면 이런 잡스런 생각들을 글로 적고 있는 '나'는 뭐란 말인가? 지금 이 생각의 편린들이 말장난에 지나지 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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