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4일 금요일

불사신 완보동물과 트레할로오스 연구

불사신 완보동물과 트레할로오스 연구


'인스턴트 생물'이 꿈틀대다
2008년 04월 04일(금)

지난해 9월 유럽우주국이 쏘아올린 무인우주선 ‘타디스’에는 행동이 매우 굼뜬 완보동물의 하나인 곰벌레가 타고 있었다. 타디스의 발사 목적은 우주에 노출된 유기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내는 것.

그런데 왜 하필이면 퇴적물 속의 유기물이 풍부한 액체나 동식물의 체액을 빨아먹고 사는 하잘것없는 동물인 곰벌레가 선택된 것일까. 곰벌레는 신체 길이가 약 50㎛~1.7㎜밖에 되지 않지만 놀라운 생존능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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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딸막한 다리로 천천히 걷는 완보동물은 모양이 곰을 닮아서 곰벌레로 불린다 
펄펄 끓는 물은 물론이고 151℃나 되는 높은 온도에서도 죽지 않는다. 또 영하 273℃(절대영도)에서도 수일 동안 살 수 있으며, 진공 상태와 수십 기압의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는다. 인간의 치사 방사선량보다 1천배 더 강한 방사선에서도 살아남는다니 가히 불사신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밀라노자연사박물관의 이끼표본 안에서 말라비틀어진 상태로 120년 동안이나 보존되어 있던 어느 곰벌레는 물을 만나자 부활해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는 기록도 있다.



:: 추위의 최강자
곤충이 추위를 견뎌내는 능력은 얼마나 될까. 1960년 힌턴은 더운 지방에 사는 아프리카 깔따구(Polypedilum vanderplanki)의 애벌레가 영하 2백70℃에서 살아남았다고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그는 실험실에서 깔따구 애벌레의 수분 함량을 8%로 낮춘 다음 액체질소(2백70℃)로 냉각시켰다. 그리고 5분 후 다시 온도를 높이고 수분을 보충했더니 애벌레는 모두 되살아났다. 그러나 1962년 리더가 수분을 제거하지 않고 같은 방법으로 실험했을 때 애벌레는 모두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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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깔따구(Polypedilum vanderplanki)의 성체
학자들은 물이 있을 경우 영하로 내려가면 세포가 파괴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온도가 내려갔을 때 몸속의 수분 함량이 생존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1969년 밀러는 딱정벌레에 부동액을 넣어 실험한 바 있다. 이때 딱정벌레는 영하 87℃의 극심한 추위에서 살아남았다.

실험실과 달리 자연상태의 낮은 온도에서 곤충이 평소대로 활동했다는 연구 보고는 없다. 이러한 사실은 낮은 온도에서 생존할 수 있는 열대곤충들이 왜 극지방에서 발견되지 않는가 하는 점을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렇다면 곤충은 열에 대해서 얼마나 저항력을 가지고 있을까. 1990년 슈미트-닐센은 50 C가 넘는 곳에서 일생을 보내는 동물은 없다고 발표했다. 자연환경 속에서 온도가 가장 높은 곳은 사하라, 나미비아, 호주 등에 있는 사막이다. 이 사막의 표면온도는 60 C에 이른다. 이러한 사막에 사는 곤충들 중에 가장 열에 강한 것은 청소개미(scavenger ant)로 알려지고 있다.

사막의 개미들은 주로 35-45 C에서 생활한다. 그러나 표면온도가 이보다 높아지면 굴에 들어가 숨는다. 그러나 청소개미는 46.5-53.6 C에서도 활동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뜨거운 땅에서 살아가는 호열성 개미들을 관찰하면 3가지 주요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이들은 매우 빠르다. 태양 노출을 줄이고 대류를 이용해 몸을 식히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호열성 개미들은 1초에 1m를 움직이며, 표면온도에 따라 움직이는 속도도 달라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두번째 이들은 다리가 길다. 지상으로부터 4mm 정도 몸이 떨어져 있을 때 개미가 느끼는 표면온도는 6-7 C 정도 낮아진다고 한다. 세번째 이들은 독특한 먹이사냥 습관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먹이를 찾아다닐 때 자주 쉼으로써 체온이 높아지는 것을 막고 있다. 대개 이들은 먹이를 구할 때 75%의 시간을 몸을 식히는데 사용한다고 한다.

곤충이 얼마나 더위를 견뎌내는지 실험실에서 측정한 결과는 이보다 높다. 1960년 힌턴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나이지리아나 우간다에 사는 어떤 파리는 1백2 C에서 1분 동안 견뎌냈다. 그러나 자연상태에서 이처럼 높은 온도에서 살아가는 곤충은 없다.

[박스(Box) 기사 출처] - 경북대 해충분류학 실험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에 있어서 물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탈수 상태가 되면 목숨을 잃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프리카 깔따구 애벌레의 경우 거의 완전히 탈수해도 죽지 않고 견딘다. 모든 대사활동을 정지하여 마치 물질과 같은 상태로 있다가 물을 빨아들이면 다시 살아난다.

즉, 아프리카 깔따구 애벌레가 매우 낮은 극한 온도에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탈수 상태에서도 생명을 유지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만약 수분을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프리카 깔따구 애벌레를 영하 270℃로 냉각시켰다면 모두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럼 아프리카 깔따구 애벌레가 몸속의 수분이 없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정답은 바로 트레할로오스라는 이당류 덕분이다. 곤충이나 식물, 버섯류, 효모, 세균 등에 존재하는 천연 당분인 트레할로오스는 세포를 건조한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생리 활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 깔따구 애벌레는 건조한 환경에 처했을 시 사라져가는 수분을 대신해 우선 트레할로오소를 체내에서 대량 합성해 축적한다. 불사신으로 알려진 곰벌레도 주위 환경이 건조해지면 체내의 글루코오스를 트레할로오스로 변화시켜 극한 상태에 대비한다. 이로 인해 체중의 85%가 수분인 곰벌레는 수분이 0.05%로 줄어도 죽지 않고 물만 만나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최근 일본 연구팀이 이 트레할로오스의 작용과 관련한 연구 성과를 잇달아 내놓고 있어 주목된다. 도쿄공업대학과 일본농업생물자원연구소의 공동연구팀은 이번에 아프리카 깔따구 애벌레의 건조 내성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그 연구결과에 의하면, 상온에서 천천히 건조시킨 아프리카 깔따구 애벌레의 체내에는 트레할로오스가 골고루 분포해 물의 대체물질로 작용함으로써 세포막을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일본농업생물자원연구소는 지난해 아프리카 깔따구 애벌레로부터 트레할로오스를 세포 내로 유입하는 유전자를 세계 최초로 발견하기도 했다. 인간이나 포유류는 트레할로오스를 체내에서 직접 합성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유전자를 마우스 세포에 삽입한 결과 실제로 트레할로오스가 세포 내로 유입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마른 표고버섯의 경우 몇 개월을 둔 다음에도 물에 담그면 생생한 원 상태로 돌아온다. 그것은 트레할로오스가 버섯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앞으로는 생물을 산 채로 건조시켜 냉장고에서 보관한 다음 필요할 때 물에 담그면 원래의 모습대로 복구되는 ‘인스턴트 생물’의 등장도 가능할까. 120년 동안이나 박물관의 이끼 표본에 끼어 있다가 불쑥 다시 꿈틀댄 곰벌레처럼 말이다.

이성규 기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08.04.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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