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8일 일요일

캐비닛 [김언수 작]:내 머리 속의 심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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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ㆍ지은이:김언수
ㆍ출판사:문학동네
ㆍ책정가:9,800원
ㆍ페이지:392쪽
ㆍ출간일:2006년 12월 21일
ㆍ책양식:반양장본 | 223*152mm (A5신)
ㆍISBN(13):9788954602594
ㆍ일러스트레이터:박하


| 책 소개 |
2006년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 출간됐다. 2002년 가을문예공모, 2003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 김언수의 장편소설 <캐비닛>. 이 세상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담는 '13호 캐비닛'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스무 편이 넘는 에피소드가 옴니버스로 구성되어 완성도 높은 형식미를 보여준다.

작품의 화자는 178일 동안 캔맥주를 마셔대고 하릴없이 캐비닛 속 파일들을 정리하는 삼십대 직장인. 평범하기 그지 없는 그의 낡은 캐비닛은 온갖 기이한 존재들로 가득하다. 172일 동안 자고 일어난 토포러들, 잃어버린 손가락 대신 만들어넣은 나무손가락에 살이 붙고 피가 돌아 육질화되어가는 피노키오 아저씨,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가지고 태어나 스스로 임신까지 하는 네오헤르마프로... 작가는 이들을 '심토머'라 부른다.

소설 『캐빗닛』은 심토머들의 기록과 이를 정리하는 화자의 이야기이다. 심사 당시 '새롭지 않은 새로움(김윤식)', '돌연변이들의 박물지(류보선)', '정밀하고 세련된 작품(은희경)', '유창한 서술, 익살맞은 재담, 날카로운 아포리즘(황종연)', '불량한 서술자(전경린)'이라는 평을 받으며, 일곱 명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를 이끌어냈다.

| 상세 소개 |
+ 문학동네 편집자 리뷰
‘제13호 캐비닛’속에는……

파일 No.1
“이번 달에는 꽤 많이 자랐어요. 보이시죠? 뿌리가 살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잖아요. (……) 정말 굉장해요. 이번 달에도 엄청나게 자랐어요. 똥을 썩힌 거름을 바른 게 효과가 있나봐요. 냄새가 좀 나긴 하지만요, 하하. (……)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요. 햇빛은 어느 정도 받아야 하는 건지,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교배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팔을 벌리고 있으면 알아서 교배를 해주는 건지, 아니라면 벌이나 나비가 해주는 건지. 저는 벌을 싫어하는데 어떻게 하죠? 하지만 괜찮아요. 나비는 좋아하니까요.”--새끼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남자

파일 No.2
문득 내가 곧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라고 설명은 못 하겠지만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학교 운동장에서 빠져나왔어요. 학교 운동장에 시체를 두면 안 되니까요. (……) 분리된 몸이 죽는 주말에는 항상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남해로 갔어요. 처음엔 무섭고 떨려서 그냥 산에 묻었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아는 스님이 있어서 암자에서 몰래 화장을 합니다. (……) 저에게는 일곱 번의 죽음이 있었어요. 그때마다 죽은 제 몸을 처리해야 했어요. (……) 재에서 나온 제 뼈들은 무척 뜨거워요. 뜨거운 뼈를 만지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죠. 아름답고 행복한 나는 모두 죽어버리고 이 밀리미터 나사를 돌리는 나만 지겹고도 지겹게 오래 사는구나.

파일 No.3
시간이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지하철을 타고 있다가, 무심하게 책장을 넘기다가,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다가, 혹은 멍하니 시계를 보고 있다가 그들은 짧게는 십 분에서 두세 시간을, 길게는 며칠에서 몇 년에 이르는 시간을 한꺼번에 잃어버린다. 자신은 불과 몇 초가 지났을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터무니없이 많은 시간이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이다.

“저의 사라진 시간들은 지금 어디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는 걸까요. 그걸 생각하면 참 가슴이 아파요.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누군가를 위해 아름다운 일을 할 수도 있는 시간이잖아요. 사라진 시간 속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낭비도, 폐허도, 후회도, 상처도, 그리고 그 시절을 살았다는 느낌도 없죠.”

파일 No.4
고개를 돌리는 남자의 얼굴이 바로 나였어요.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죠. 분명히 나 자신이었어요. 진짜 나 말이에요. (……) 다가가서 나도 모르게 그를 안았어요. 마치 자기 신체의 일부를 만지는 것같이 자연스러운 느낌이었어요. (……) 우리는 모텔로 갔어요. 섹스를 했죠. 즐겁고 기묘한 섹스였어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내가 이 사람과 왜 섹스를 하고 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그런 섹스 말이에요. (……) 우리는 한 침대에서 같이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제가 먼저 일어나게 되었어요. 그래서 잠든 제 모습을, 아니 잠든 그의 모습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봤죠. 잠들어 있는 제 모습은 뭐랄까, 아주 사랑스러웠어요.

파일 No.5
_그녀는 일기를 읽는다.
_그녀는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 과거를 고친다.
_시간이 지나 그녀는 자신이 일기를 고쳤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_그녀는 다시 일기를 읽는다.
_이제 수정된 과거가 그녀의 기억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 ‘인류 최후의 혹은 인류 최초의 인간, 심토머
172일 동안을 자고 일어난 토포러(toporer)들, 잃어버린 손가락 대신 만들어넣은 나무손가락에 살이 붙고 피가 돌아 육질화(肉質化)되어가는 피노키오 아저씨, 남성성(기)과 여성성(기)을 모두 가지고 태어나, 자신의 정액을 자신의 질 속에 집어넣어 스스로 임신을 하기까지 하는 네오헤르마프로디토스…….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낡은 캐비닛 안에는 온갖 기이하고 특이한, 눈이 휘둥그레지고 잠시 역겨움을 느끼고, 분노케 하고, 또 가슴 한켠을 아리게 하는, 특별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정작 이 이야기를 전하는 ‘평범한’ 화자 역시 백칠십팔일 동안 캔맥주를 마셔대고 하릴없이 캐비닛 속 파일들을 정리하는 그야말로 ‘평범한’ 삼십대 직장인이며 그의 동료 손정은씨는 초밥을 너무 좋아해 한 번에 백 개가 넘는 “특대” 초밥을 먹어치우며 월급을 모두 밥값으로 날려버리는 아가씨다.

작가는 이들을 심토머(symptomer)라 부른다. “변화된 종의 징후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마땅한 정의가 학계에 나와 있지 않아 우리는 그들을 ‘징후를 가진 사람들’ 혹은 ‘심토머’라 부른다. 심토머들은 생물학과 인류학이 규정한 인간의 정의에서 조금씩 벗어나 있다. 그들은 현재의 인간과 새로 태어날 미래의 인간 사이, 즉 종의 중간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쩌면 최후의 인간일 수도 있고 어쩌면 최초의 인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캐비닛』은 이 심토머들의 기록과 이를 정리하는 화자의 이야기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은 어느새 믿지 못할 일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기억을 부정하며 스스로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사람들이 어디 소설 속에만 있겠으며, 사람이기보다 차라리 고양이가 되고 싶고 차라리 나무인형이 되고 싶은 고통스런 인간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다른 누구에게도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를 혹은 자신의 분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 또 얼마나 많은가.

이 소설에서‘캐비닛’은 이 세상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담아두는 하나의 용기이다. 작가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캐비닛 안에 넣은 다음 탄탄한 필력과 구성진 입심을 이용, 적정 온도와 습기를 유지해 이들이 상하지 않도록 한다. 부패되지 않은 싱싱한 ‘진짜 이야기’가 보고 싶다면 우리는 가만히 이 캐비닛만 열어보면 되는 것이다.

| 책 뒷표지 글 |
화려한 이야기들의 신천지!
이제까지의 소설세계를 폭파시켜버릴 메머드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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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주의 비평가들이 말하는 ‘낯설게 하기론’을 두고 “곰탕 뚝배기에 냉면을 담아오면 그것은 냉면이 아니다. 그것은 잘못 만들어진 곰탕일 뿐이다”라고 우리말로 옮길 수 있는 능력 속에 이 작가의 자질이 감추어져 있어 보인다. 김윤식(문학평론가)

상상력의 기발함과 대담함, 이제까지의 소설세계를 폭파시켜버릴 매머드급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기꺼이 이 소설을 그 첫머리에 놓을 수밖에 없다. 멋지다, 『캐비닛』! 신수정(문학평론가)

파격적인 형식을 갖고 있지만 구성적 필연성을 갖고 정밀하게 잘 짜인 소설이며 능청스러운 ‘구라’가 일품이었다. 은희경(소설가)

이 장편은 인간이 만든 질서하에서 멸종의 위기를 만난 인간적인 것, 그것의 진실에 대한 애정 어린 기억의 예술이 되었다. 황종연(문학평론가)

『캐비닛』은 신기한 이야기들과 신선한 화법으로 시선을 끌었다. 이 작가의 캐비닛 속에 들어 있는 다른 소설들이 읽고 싶어졌다. 이승우(소설가)

재기 넘치는 작품이다. 세상의 진실이 새로운 은유의 산도를 통과해 삶의 실체에 접근할 때, 예기치 못한 환기가 불러일으키는 낯선 조짐에서 정적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 작품은 그런 특이한 정적을 품고 있다. 전경린(소설가)

『캐비닛』과 더불어 한국문학은 이제 또 한 명의 괴물 같은 작가를 갖게 되었다. 류보선(문학평론가)

| 책 속에서 |
13호 캐비닛을 뒤적거리며 이토록 이상한 사람들과 섞이기 전까지 솔직히 나는 다른 종류의 삶의 방식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다.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고, 굳이 이해하지 않고도 잘 살아올 수 있었다. 나의 상식과 인간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 하지만 우리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이 어느 날 삶의 중심으로 치고 들어와서 정면으로 우리를 노려볼 때가 있다. 우리가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이질적이고 이종적인 것들은 우리 곁에 어슬렁거리고 있다. 우리는 세계라는 복잡한 플라스크 용기 속에서 그들과 같이 버무려져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 연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우리의 조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 본문 202쪽에서

저의 사라진 시간들은 지금 어디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는 걸까요. 그걸 생각하면 참 가슴이 아파요.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누군가를 위해 아름다운 일을 할 수도 있는 시간이잖아요. 사라진 시간 속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낭비도, 폐허도, 후회도, 상처도, 그리고 그 시절을 살았다는 느낌도 없죠.

불행은 결코 할부로 오지 않아. 불행은 반드시 일시불로 오지. 그래서 항상 처리하기가 곤란한 거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삶이 있지. 일기를 쓰는 삶과 일기를 쓰지 않는 삶. 그것은 역사를 가진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만큼이나 삶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단다. 수잔, 너는 어떤 삶을 택하겠니?"

| 지은이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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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수 작가
김언수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문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 「진주신문」 가을문예공모에 단편 '참 쉽게 배우는 글짓기 교실'과 '단발장 스트리트'가,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프라이데이와 결별하다'가 당선되었다. 2006년 장편소설 『캐빗닛』으로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다.

+ 작가의 말
'13호 캐비닛'에 대해 굉장한 상상을 할 필요는 없다.
혹시라도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볼 생각이라면
'13호 캐비닛'에 대해 우아하고 낭만적인 상상을 떠올리는 짓은 일찌감치 집어치우기를 권한다.
그런 상상을 한다면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 - 김언수

| 추천글 |
은희경, 전경린, 천명관, 박진규 등 대형신인의 뒤를 이을 2006년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자는 김언수. 2002년 진주신문 가을문예공모,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부문을 통해 이미 등단한 작가의 장편소설 『캐비닛』은 일곱 명의 심사위원이 만장일치로 뽑은 작품이다.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아니 책장을 이미 넘겼다면 독자들은 이 칭찬일색의 심사평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황당하고 이상해 보이지만 실은 각자의 캐비닛 안에 하나씩은 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 이야기들은 작가의 만만찮은 필력에 힘입어 생명력을 얻는다.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된 각각의 에피소드와 화자의 이야기들은 제자리에 꼭 맞춰진 레고조각처럼 완성된 형식미를 보여준다.

“『캐비닛』은 이야기란 스토리가 아니라 그것의 조립방식, 즉 플롯에 있음을 웅변한다. 혹 그것은 대서사가 소멸된 시대의 새로운 서사의 존재를 암시하는 것은아닐까. 어떤 기이한 이야기도 일상 속으로 흡수해버리는 이 무시무시한 판타지 같은 현실 속에서 이야기가 스스로의 고유성을 유지하는 방법은 배치를 뒤바꾸는 것, 그리하여 매번 전혀 다른 이야기를 생산해내는 것, 그것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신수정)

마법은 오랫동안 서서히 일어나는 거야. 사실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게 다 마법이고 자연이란 게 다 마법이야. 갓 태어났을 때의 그토록 조그만 아이가 이 사람처럼 덩치 큰 장정이 되고, 다시 작아져서 꼬부랑 노인이 되고, 다시 흙이 되고, 바람이 되는 거.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기적적인 일이지 않나? 저 나무들을 봐. 봄이면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한정없이 울창해지고, 가을이면 풍요로워지고, 겨울에는 그 많은 잎과 열매를 다 떨어뜨리고 한철의 죽음을 넘기지 않나. 참 신비로운 일이지. 이런 게 다 마법이야.

특이하고 기이하고 섬뜩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며 작가는 끊임없이 이것은 ‘평범한’ 이야기라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라고 이야기한다.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눈이 오는 것처럼. 자, 이제 책장을 모두 덮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다. 내 안의 캐비닛 속에는 어떤 기이한 이야기들이 꿈틀거리고 있는가. 앞으로 김언수라는 작가는 화수분과도 같은 자신의 캐비닛 속에서 또 무엇을 꺼내 보여줄 것인가.

| 차례 |
제1부 캐비닛¤009
루저 실바리스는 왜? | 심토머 | 은행나무 | 전화를 받으세요 | 하프문과 프린스 | 윌리엄이여, 말해다오 붕붕거리는 이 오후의 무료함을 | 토포러 | 도플갱어 | 권박사 | 메모리모자이커 | 피노키오 | 금요일, 블라인드를 내리다 | 고양이가 되고 싶어요 | 마법사 | 병실 | 캔맥주를 마시다

제2부 천국의 도시¤173
타임스키퍼 | 네오헤르마프로디토스 | 바벨의 시계 | 외계인 무선통신 | 그녀가 먼지 날리는 환풍기 아래서 밥을 먹다 | 저도 여기 있어요 | 다중소속자 | 프락치, 거래 그리고 캐비닛 앞의 암고양이 | 나는 인간이라는 종이 수치스러워 | 샴쌍둥이 | 블러퍼 | 그녀와 저녁을 먹다 | 저도 심토머인가요?

제3부 부비트랩¤295
부비트랩 | 유언집행주식회사 | 푸른 리트머스 종이 | 도시가 낯설어지다 | 악어가 있다 | 섬

* 주의사항¤354

심사평¤357
수상작가 인터뷰¤371
수상소감¤388


| 책을 읽은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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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라는 이름을 가진 캐비닛이 하나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그 캐비닛 속엔 서류뭉치가 쌓여 있다.
그 서류 중 하나를 집어들고 읽기 시작한다.
서류의 내용은 갖가지 이상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당신이 그 서류를 읽게 된다면, 당신은 어쩌면
'~라 카더라 통신'에서나 들어 봤음직한 이야기거나, 괴물딴지에서 읽어 본 것 같거나, 어린시절의 읽을꺼리였던 소년XX일보의 한 지면에서 봤던 해외통신 이야기 중의 하나를 접했을 때의 황당함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쩌면 당신은
그 한 대목에서 당신의 형이나 동생, 혹은 오빠나 누이, 엄마나 아버지, 혹은 삼촌, 사촌이나 먼 친척, 혹은 이웃사촌의 얼굴을 떠올리거나 또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혹시 게임기 속의 캐릭터가 떠오르는가?

작가 김언수는 현실에 있을 수 없는 괴기스럽고, 해괴망측한 괴물 같은 모습을 한 사람들에게 '심토머'란 가상의 이름을 만들어 지어주고, 인간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내고 있다. 과연 우리는 우리가 믿는 '인간'이란 정의의 틀대로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대체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인가? 수차례 통독한 후에 가슴 속에 떠오르는 건 느낌표가 아니라 막연한 물음표 뿐이다.

'인간 = 사고'일까?
그래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한 것인지도…….
나는 어떤 유형의 심토머일까??? 궁금해하며…….
자신은 어떤 유형의 심토머인지 궁금한 분들에게 일독을 권하며…….

길을 가다,
뉴스에 나와서는 해괴하고 기이한 행동과 말을 아무렇지도 심심파적으로 해대는 인물을 접했을 때,
내 주변의 평범했던 지인이 어느 날 갑자기 전혀 다른 인격체처럼 행동할 때,
스스로도 놀랄 만큼 나 자신이 아닌 사고나 행위를 할 때,
그럴 때면 소설 『캐빗닛』속의 심토머가 오버랩되며, 짧은 환상을 보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어쩌면 심연 저 깊숙히 심토머를 하나씩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어떤 이는 가끔 그 본성을 내 비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이란 감옥 속에 꼭꼭 숨겨놓고 있을 뿐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네 진짜 모습을 보여봐!」


| 너스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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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
『책 읽어주는 여자, 밑줄 긋는 남자 (51회 방송)』에서 소설 '캐비닛' 편을 방송한지 한참이 지난 작년 12월 말경 사촌 동생 결혼식에 참석한 후 귀가하는 KTX 열차 안에서 우연히 봤다. 무성영화 보듯이 가끔 나오는 자막과 소리없이…….
귀가 후, 다시 한 번 자세히 보고 싶어서 EBS에 접속해서 살펴봤더니 유료더라! 쩝! 쩝! 입맛만 다시다가 나와버렸다. 우짜자고 이런 교양 프로그램까지 유료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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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끝
책을 처음 접하고 단숨에 읽은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여운이 남아서 그 후에도 재차 읽었다. 어린시절 우리집에는 장농 만한 크기의 캐비닛이 장농이라는 이름으로 방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마 그 시절 서민 가정에 하나씩은 있었던 것 같다. 동생들이랑 집안에서 술래잡기 놀이를 할 때면 그 캐비닛에 숨기를 좋아했었다. 어느 날은 그 캐비닛에 아무 이유도 없이 들어갔다가 잠이 든 적도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어린시절엔 어두운 곳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여름 날 뒷산 나무 그루터기 아래에 덤불을 끄집어 모아 아지트를 만들고는 굳이 그렇게 햇빛을 차단하고 일부러 어둡게 만든 것도 그렇고, 동네 불알친구들과 뒷산 언덕배기에 자그마한 동굴을 파서 아지트를 만들어 놓고 지낸 것도 그렇고……. 나의 유년기의 여름날은 그렇게 어둠을 쫓아 다녔던 것 같다. 어린시절에 어두운 환경을 쫓아다닌 이유가 자궁으로의 회귀 본능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궁에서의 그 아늑하고 안전이 보장된 환경이 아직 머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행동으로 표출된 것이었을까? 깊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둠을 쫓아다니던 그때 그 시절이 지금 생각하면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사실만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 시절 무슨 걱정이 있었겠는가?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자마자 책가방은 마루에 던져두고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걸릴 때까지 온 뒷산들을 천방지축 뛰어다니고, 개울가에서 가재, 개구리, 올챙이, 이름도 모르는 작은 민물고기를 잡으며 놀던 그 시절. 내 인생의 황금기는 유년기였다. 그 유년기의 찬란한 여름날의 태양은 다시는 뜨지 않는다…….

과학 물질 문명이라는 이름의 심토머
요즘 도시에서 게임기와 컴퓨터와 학원을 놀이터와 놀이 삼는 어린 조카들을 보면 괜시리 눈물이 난다. 물론 조카들이야 재밌다고 깔깔때며 놀지만, 그 아이들이 나 만큼 장성해서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유년기를 그리워하고 눈시울을 지을까? 과학이란 괴물 딴지가 양산해놓은 전자문명이 추억마저도 변질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어린 조카들이 훗날 김언수의 '캐비닛'이라는 소설을 이해할 나이가 되어 우연히 읽게 된다면 그 아이들은 소설 속의 심토머들을 게임 속의 괴물 정도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히 죽여야 할 괴물들. 한마리 죽이면 점수를 따고, 아이템도 얻게 되는 괴물. 그네들이 보고 자라난 환경에 비추어진 심토머는 우리 세대가 머리 속에서 그리는 우리의 모습을 닮은 심토머가 아니라, 게임 속에 등장하는 괴물 캐릭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만일 나의 이 우려가 먼 훗날 기정 사실화 된다면 이 또한 과학문명이 양산해놓은 폐해의 하나가 아닐까. 진정 폐해가 된다면 정신세계 마저도 변질시켜놓은 과학물질문명이라는 것 자체가 심토머라고 단정내리는 내 우매함이 우매함만은 아닐 것이다. 전자문명이 양산해놓은 변질된 추억을 추억이라고 떠올리는 세대가 현실로 나타난다면 말이다. 내 부모 세대가 그리워하는 유년기의 여름날은 어떤 이미지일까? 분명 나의 유년기의 여름날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차이가 시대적인 차이임은 다음 세대와 같겠지만 느낌은 같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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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언수는
【변화된 종의 징후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마땅한 정의가 학계에 나와 있지 않아 우리는 그들을 ‘징후를 가진 사람들’혹은 ‘심토머(symptomer)'라고 부른다. 심토머들은 생물학과 인류학이 규정한 인간의 정의에서 조금씩 벗어나 있다. 그들은 현재의 인간과 새로 태어날 미래의 인간 사이, 즉 종의 중간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쩌면 최후의 인간일 수도 있고 어쩌면 최초의 인간일 수도 있다.】라고 심토머를 정의 내렸는데, 어쩌면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우리 내면의 모습을 투영한 심토머는 우리 세대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세대들이 장년이 된 후, 소설 '캐비닛'을 읽고서 우리가 지금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을 그대로 느끼게 될까? 어쩌면 SF나 판타지 정도로 여기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오버액션일까?

다음 세대인 내 조카들의 유년기의 여름이 끝날 즈음, 그 여름날의 찬란한 이미지들을 장년이 된 후, 그 아이들은 어떤 이미지로 그려낼까? 정말로 게임기, 캐릭터, 점수, 아이템으로 연상되는 여름이 되지는 않길 간절히 정말 간절히 바란다.

과학과 종교가 빚어놓은 내 머리 속의 심토머
요즘 내 머리 속의 제 13호 캐비닛에는 과학이란 이름의, 종교라는 이름의 심토머들이 뒤섞여 있다. 그 심토머의 형상은 도무지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 이미지는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 화가인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로테스크한 고깃덩어리 인물상과는 도저히 견줄 수 없는 형상이다. 나는 앞으로 나의 13호 캐비닛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과학과 종교가 융합된 이 기이한 심토머를 어떻게 풀어 놓을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저도 심토머인가요?"

"아뇨, 당신은 심토머가 아닙니다.
걱정 마세요. 당신은 아직 이 도시에서 견딜 만합니다."

라고 대답해주는 듯하다.



아래는 | EBS 방송 책 소개 - 김언수의 '캐비닛' | - 누구 파일 갖고 계신 분 안 계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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