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3일 금요일

망상자매에 소재로 나오는 소설의 작가 소개

망상자매에 소재로 나오는 소설의 작가 소개
2009년 1분기 라인업 중, 망상자매 ~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라는 일본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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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줄거리의 큰 맥락만 짚어 봅니다.
자살한 소설가인 아버지가 20년전에 보낸 편지가 세 자매에게 배달된다.
그 편지 속엔 책이 보관되어있는 비밀금고의 열쇠가 들어있는데, 세 자매가 그 금고에 있는 책을 보며 그 책의 관능적인 부분에 초첨을 두고, 각자의 해석으로 망상을 해 나간다는 줄거리.
이 드라마는 각 화의 줄거리를 짧게라도 얘기하면 볼 필요조차 없어질지도 모르겠더군요. (총 11화 완결)

| 감상 중에 |
※ 아쉽게도 저는 6화의 소재인 사카구치 안고의 『백치』와 10화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덤불 속(藪の中)』 두 작품만 읽어봤더군요. 다른 작품은 모르겠지만『백치』와 『덤불 속(藪の中)』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작품 『덤불 속』을 영화화한 작품은 사실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덤불 속』과 『라쇼몽(나생문)』 두 작품을 짜집기한 시나리오로 하여 만든 작품이고, 영화 제목은 『라쇼몽(羅生門 나생문, 구로사와 아키라)』으로 발표했으며, 『라쇼몽(나생문)』은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 영화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1951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두 작품 모두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

저희 집에 있는 장서 중에 일본 문학 작품이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읽었다해도 현대 작가의 작품이 거의 전부더군요. 짐작하기에 아마도 일본 문학 작품을 웬만큼 섭렵하지 않았고서는 이 드라마에 나오는 작품들은 찾기도 힘들 것 같더군요. 아직 국내에 일본 문학이 그렇게 많이 번역된 것도 아니구요. 바로 옆에 있는 나라임에도 역사적,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일본문화 개방이 늦었던 점이 있어서 이리라 여겨집니다. 저희 집에 폐간한 고려원에서 출판한 일본대표단편선 시리즈(전3권)에 혹시 한 두 작품은 있을까 싶어서 살펴봤는데, 이 드라마에 소재로 쓰인 작품은 하나도 없더군요. 이 드라마에 나오는 작가 분 중 나쓰메 소세키, 사카구치 안고, 다자이 오사무, 세 분들의 다른 작품은 일본대표단편선 시리즈에 실려 있네요. 아마도 제가 짐작하기에 이 드라마에서 선정한 작품은 그렇게 유명세가 있는 작품을 선정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시간내어 시립도서관에 가서 작품을 찾아봐야겠어요.

근데, 이 드라마가 야밤물;; 이라서 그런지 아직 많은 분이 보시진 않는 것 같더군요. 원작 읽어본 6화 『백치』와 『덤불 속(藪の中)』 두 작품으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연출을 너무 관능적인 면만을 돋보이게 해서 드라마 선호도가 좀 떨어진 면도 없잖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알아주는 문인들의 작품이 원작인 작품이니 근성근성 봐서는 작품을 이해하는데 좀 무리가 있을 걸로 여겨지기도 하더라구요. 다른 화의 원작들도 읽어봤다면, 연출적인 의도였는지, 아니면 원작 자체가 전부 관능적인 면을 강조한 작품인지 알수 있을텐데...

1화
『헝클어진 머리』

요사노 아키코(擧謝野晶子, Yosano Aki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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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여류작가. 메이지부터 쇼와 시대까지 활약한 단가(短歌) 작가. 일본의 시인.
1878. 12. 7. 일본 오사카[大阪] 근처 사카이[堺]~1942. 5. 29 도쿄[東京].
본명은 호쇼[鳳晶]. 그녀의 새로운 시풍은 일본 문단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학창시절부터 시에 흥미를 가지고 친구들과 함께 개인 시 잡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1900년에는 요사노 뎃칸[擧謝野鐵幹]이 중심이 된 신시샤[新詩社]에 가입하여 동인지 〈묘조 明星〉의 발간을 도왔다. 같은 해 뎃칸을 만났으며 이듬해 가족을 떠나 도쿄로 가서 그와 결혼했다. 참신하면서도 인습에 구애받지 않는 시풍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1901년에 나온 시집 〈헝클어진 머리 みだれ髮〉로 스타가 되었다. 〈꿈의 꽃 夢の華〉(1906)은 그녀의 예술적인 발전을 보여 주었다. 1912년에는 남편을 따라 프랑스로 가서 1년 동안 지냈는데, 〈여름에서 가을로 夏より秋ヘ〉(1914)는 그 시기에 씌어진 시집이다.


2화
『우미인초(虞美人草)』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Natsume Sōse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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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소설가 겸 영문학자. 우미인초는 개양귀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
1867. 1. 5 에도[江戶]~1916. 12. 9 도쿄[東京].
본명은 긴노스케[金之助]. 근대 일본의 소외된 지식인들이 처한 곤경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명료하고 설득력있는 문장으로 그려낸 최초의 소설가였다.

[어린시절]
토지를 소유·관리하는 묘슈[名主]인 나쓰메 고효에 나오카쓰[夏目小兵衛直克]의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집은 비교적 유복했다. 그러나 생후 1년 만에 시오바라 마사노스케[鹽原昌之助]의 양자로 보내졌는데 양부모는 그를 무척 귀여워했으나, 어린시절은 보통 아이들에 비하면 매우 고독했다. 10세 때 양부모가 이혼하자 소세키는 시오바라 가의 호적을 지닌 채 생가로 돌아왔다. 생가에 대한 귀속감을 느끼지 못했던 소세키는 학교성적은 매우 우수하여 1878년 이치가야[市谷] 학교 상급반 재학중에 쓴 작문 〈정성론 正成論〉을 보더라도 한문(漢文) 소양이 보통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후년에 쓴 〈문학론 文學論〉(1907)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는 우선 한문학을 통해서 문학에 대한 취미를 가지게 된 듯하며 한문학 소양은 사립 한학교인 니쇼가쿠샤[二松學舍] 입학으로 더욱 깊어졌다.


3화
『바람이 일다』

호리 다쓰오(堀辰雄, Hori Tatsu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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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소설가, 비평가, 시인
1904. 12. 28 도쿄[東京]~1953. 5. 28 나가노 현[長野縣] 오이와케[追分].
제1고등학교를 거쳐 1929년 도쿄대학[東京大學]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23년 무로 사이세이[室生犀星]를 통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와 알게 되어 깊은 영향을 받았다. 아쿠타가와의 자살에 대한 충격을 졸업논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론〉(1929), 〈성가족 聖家族〉(1930)에 결정(結晶)시켜 서구 심리주의의 수법에 의해 지성과 감성의 통일을 꾀하는 근대적 스타일로 작가로서의 기반을 굳혔다. 이후 각혈하여 나가노 현의 요양원에 들어가 가루이자와[輕井澤]와 도쿄를 왕복하면서 〈회복기 恢復期〉(1931)·〈불타는 볼 燃ゆる頰〉(1932) 등의 소품과 연작(連作) 〈아름다운 마을 美しい村〉(1933), 〈모노가타리의 여인 物語の女〉(1934), 연작 〈바람이 일다 風立ちぬ〉, 〈나호코 菜穗子〉(1941) 등


4화
『외과실』

이즈미 교카(泉鏡花, Izumi Kyō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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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작가.
1873. 11. 4 일본 가나자와[金澤]~1939. 9. 7 도쿄[東京].
단편소설을 주로 썼다. 본명은 이즈미 교타로[泉鏡太郞]. 로맨틱하고 신비로운 독특한 세계를 창조하여 등장인물로 하여금 교카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도덕적 가치를 대표하게 했다. 예술가이자 장인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선조로부터 신비로운 힘에 대해 실제적인 믿음을 갖게 하는 깊은 신앙과, 예술적인 자질을 물려받았다. 그는 1890년 당시 문단의 지도자였던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 도쿄로 갔다. 1년 후 고요의 문하에 들어가서 다른 문하생들과 함께 1894년까지 기거했다. 〈야행 순사 夜行巡査〉(1895)·〈외과실 外科室〉(1895)은 지켜야 할 본분과 인간적인 감정이라는 갈등 속에서 교카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가치를 제시했다. 〈고야히지리 高野聖〉(1900)는 기이하고 신비로운 세계에 매혹된 작가의 심경을 표현한 것이다.


5화
『치에코쇼』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郞, Takamura Kōtar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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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조각가이자 시인.
1883. 3. 13 일본 도쿄~1956. 4. 2 도쿄.
쇠퇴해가는 목조각의 전통을 완고하게 지켜나간 조각가 다카무라 고운[高村光雲]의 장남이며 공예가 다카무라 도요치카[高村豊周]의 형이다.
1897년 도쿄 미술학교에 입학했으며 요사노 뎃칸[與謝野鐵幹]이 주재하는 신시샤[新詩社]에 들어가〈묘조 明星〉에 단카[短歌], 희곡 등을 기고했다. 1906년 미국에 건너가 조각공부를 하고 이듬해 런던으로 가 B. 리치, 오기와라 모리에[荻原守衛]와 알게 되었으며 그 이듬해 파리로 이주했다. 여기서 로댕의 조각에 깊이 심취하는 한편 프랑스의 시인 베를렌, 보들레르의 시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1909년 이탈리아를 거쳐 귀국한 그는 아버지를 포함한 기성 미술계의 속물성, 파벌주의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비평을 다수 발표했다. 그뒤 해외미술의 소개나 수필에 주력하게 되었으며 논문 〈녹색의 태양 綠色の太陽〉(1910)은 일본 근대미술사에 전기를 마련한 대표적 미술론이다. 또한 판노카이[パソの會:목양회]에 들어가 시작(詩作)활동을 시작했다. 1911년 화가 지망생인 나가누마 지에코[長沼智惠子]와 만나 1914년 결혼했으며 같은해 유명한 시집 〈도정 道程〉을 발표했다.〈도정〉은 일본근대시사에 일획을 긋는 중요한 시집으로 구어체를 구사하여 인도주의적인 격렬한 정열과 힘찬 가락의 독자적 시풍을 제시했다. 그후 궁핍한 생활 속에서 조각 소품이나 시·번역·수필 등을 발표했지만 엄격한 창작정신을 지켜 작품수는 적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이제까지의 시와 전혀 다른 반(反)서양, 충군애국(忠君愛國)사상을 고무하는 시를 발표했으나 전후에 이를 깊이 반성하고 이와테 현[岩手縣] 근교에서 7년 동안 힘겨운 농사일과 자취생활을 하며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주요저서로 〈로댕의 말 ロダンの言葉〉(1916), 〈조형미론 造型美論〉(1942)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지에코쇼 智惠子抄〉(1941)·〈전형 典型〉(1950)이 있다. 조각품에는 <사자후 獅子吼>(1902, 도쿄예술대학 소장),<지에코의 머리 智惠子の首>(1916)〈손 手〉(1918,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소장) 등이 있다.


6화
『백치』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 Sakaguchi A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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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소설가.
1906. 10. 20 일본 니가타[新潟]~1955. 2. 17 기류[桐生].
본명은 헤이고[炳五]. 1930년 도요대학[東洋大學] 인도철학과를 졸업했다. 1931년 〈바람 박사 風博士〉·〈구로타니 마을 黑谷村〉 등이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 마키노 신이치[牧野信一], 우노 고지[宇野浩二] 등에게 극찬을 받으며 문단에 등장했다. 1932년 신진 여류 작가 야다 쓰세코[矢田津世子]와 사랑에 빠져 창작활동을 중단했으나 1938년 〈후부키모노가타리 吹雪物語〉를 발표함으로써 전기를 맞이했다. 1942년 〈일본문화사관 日本文化私觀〉·〈청춘론 靑春論〉 등의 수필을 써서 본격적으로 문단에 복귀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살라, 타락하라'라는 역설적 모랄을 평론 〈타락론 墮落論〉(1946)에서 설파했으며 소설 〈백치 白痴〉(1946) 등을 발표해 전후 사회의 혼란과 퇴폐를 반영한 독자적 작풍을 수립했다. 이들 문학활동은 전후의 일본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7화
『오세이의 등장』

에도가와 란포(江戶川亂步, Edogawa Ram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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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1894. 10. 21 미에 현[三重縣] 나바리[名張]~1965. 7. 28 도쿄[東京].
본명은 히라이 다로[平井太郞]. 1916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경학부 졸업 후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 추리소설 〈동전2전 二錢銅貨〉을 발표하여 근대 일본 추리소설의 선구자가 되었다. 필명인 에도가와 란포는 에드거 앨런 포를 본뜬 것이다. 완전범죄 계획을 정신분석적 방법으로 꿰뚫은 〈심리시험 心理試驗〉(1925) 등을 통해 트릭의 묘를 발휘한 본격적 단편 수법을 확립했다. 그후 장편 〈파노라마 섬의 기담 パノラマ島奇譚〉(1926~27)을 비롯해 기괴한 분위기가 감도는 〈음수 陰獸〉(1928), 〈오시에와 여행하는 사나이 押繪と旅する男〉(1929),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거미사나이 蜘蛛男〉(1929~30) 등 추리소설의 다양한 형식을 개척했으며 아동물을 써서 갈채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탐정작가 클럽(뒤에 일본추리작가협회)을 설립했다.


8화
『여학생』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Dazai Os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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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소설가.
1909. 6. 19 일본 아오모리 현[靑森縣] 가나기[金木]~1948. 6. 13 도쿄.
본명은 쓰시마 규지[津島修治].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 문단의 대변자로 떠올랐다. 어둡고 뒤틀린 작품 분위기로, 전통적인 가치가 불신당하고 젊은 세대는 허무주의에 사로잡혀 과거의 것을 송두리째 거부하던 전후(戰後) 일본의 혼란을 완벽하게 그려냈다. 일본 북부에서 부유한 대지주이자 정치가의 6째 아들로 자랐으며, 자신의 이러한 성장배경을 종종 소설의 소재로 택하곤 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을 지배하는 분위기는 어두운 편이지만 때로는 익살에 가까운 유머를 구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첫 단편집 〈만년 晩年〉(1936)은 그가 여러 가지 문체와 주제를 다룰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다재다능한 작가임을 보여주었으나 점차 1인칭 소설양식인 사소설(私小說)을 주로 쓰면서 소설 속의 등장인물에 자화상을 투영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9화
『흐린 강』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 Higuchi Ichi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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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시인, 소설가.
1872. 3. 2 도쿄[東京]~1896. 11. 23 도쿄.
본명은 히구치 나쓰[樋口一葉]히구치 나쓰코[樋口夏子]라고도 함. 19세기말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여류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도쿄 서민층의 정서와 유곽의 풍경 등을 소재로 다루었다. 하급관리의 딸로 태어나 안락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1889년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와 여동생을 돌보아야 했으며 그로 인해 2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고통과 가난의 역경 속에 살아가야 했다. 히구치는 몇 년 간 하기노야[萩の舍]라는 비교적 유명한 와카[和歌] 학원에 다니며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이때 그녀는 소설 출판업에 종사하는 한 급우가 성공하는 것을 보고 생계 수단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1891년 〈도쿄아사히신문 東京朝日新聞〉의 소설 기자였던 나카라이 도스이[半井桃水]를 소개받아 그 제자가 되었다.


10화
『덤불 속(藪の中)』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Akutagawa Ryūnos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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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소설가.
1892. 3. 1 도쿄[東京]~1927. 7. 24 도쿄.
초기의 필명은 야나가와 류노스케[柳川隆之介]. 하이쿠[俳句] 시인으로서의 호는 가키[我鬼]. 도쿄 교바시[京橋]의 이리후네 정[入船町]에서 니바라 도시조[新原敏三]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용띠 해, 용의 달, 용의 날(辰年辰月辰時)에 태어났다고 하여 류노스케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생후 8개월경 어머니가 미쳤기 때문에 어머니의 친정 오빠인 아쿠타가와 미치아키[芥川道章]의 양자로 가게 되었다. 어머니의 광기가 유전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은 평생 그를 괴롭혔고 결국 그를 자살로 몰고간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양자로 간 집은 생활은 윤택하지 못했으나 문예를 사랑하는 분위기의 가정이었다. 덕분에 아쿠타가와는 어린시절부터 책이나 그림, 골동품을 친숙히 대할 수 있어 감수성 예민한 소년으로 자라게 되었다. 1913년 제1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여 1916년 졸업했다.


11화
『병조림의 지옥』

유메노 큐사쿠 (夢野久作, Yumeno Kyusa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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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을 대표하는 SF작가, 탐정소설가, 환상문학 작가.
1889년 후쿠오카 출생. 근래에는 '유메노', '유메Q' 등으로 부르며 칭송하는 이들도 적잖다. 본명은 스기야마 타이도, 어릴적 이름은 나오키였다. 친부는 일본 후쿠오카계 우익정치집단 <겐요샤>의 거두 스기야마 시게마루로 아버지와의 관계가 유메노의 유니크한 작품세계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소녀지옥>, <오시에의 기적>, <견신박사>, <병에 담긴 지옥> 등 괴기적이고 환상성이 짙은 작품을 다수 발표하였으며 이들 작품은 일본의 영화, 만화, 게임 등에 시대를 초월한 영향을 끼쳤다. 그 중 구상에서 탈고까지 10년 이상이 걸린 <도구라마구라>는 읽는 동안 한번쯤은 정신이상을 불러일으킨다는 저자의 대표작으로 일본본격탐정소설 3대 기서로 불린다. 유메노는 <도구라마구라>를 발표한 이듬해(1936) 뇌출혈로 사망하여 작품과 더불어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이동민 - 한양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서양화 감상 모임 'Breeze'를 창단했다. 삼원 동화 애니메이터로 활동했으며, 단편 애니메이션 '마로니에 공원' 제작에 참가했다. 1998년에는 케이블 방송 다큐멘터리 '한국 만화 40년사' 제작에 참여했고, 출판기획팀 '아니메 드라이브'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하기도 했다. 2007년 현재 사설 연구소 '알렉산드리아'에서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알폰스 무하와 사라 베르나르>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동양화를 배우다> 등이 있다.


【참고】
브리태니커 Britannica 온라인 백과사전
엠파스 Empas 온라인 백과사전
http://blog.daum.net/gnflwldk02/17037444
구글 이미지 검색


| 너스레 |
+ 완감 후에…… 누가 봐도 마이너 드라마인 작품을 소개하는 짧은 이유

이 드라마엔 관능적인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사실 '관능'이 드라마를 이끌어나가는 플롯의 한 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의 관능은 남성적 관점에서 바라본 관능이 아니라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본 '관능'입니다. 같은 사람이지만 남성과 여성이 바라보는 관능은 차이점이 많은 걸로 압니다. 실상 그 시점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많은 문학가들이 고래로부터 얘기해왔죠.
참고로 주연인 세 자매는 물론이거니와 이 드라마의 [감독/연출/각본]을 맡은 스텝이 모두 여성들이랍니다.

일본 드라마를 정말 많이 봐 오고 있지만 드라마 소개를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별히 소개해야 할만한 이유도 없거니와 일본드라마/영화 관련 사이트와 클럽에 리뷰가 즐비하고,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으면 영화와 드라마 리뷰는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짧게나마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면, 이 드라마가 분명히 저예산의 마이너 드라마이고, 심야에 방송하는 어른들을 위한 드라마라는 점 때문인지, 일드 클럽에서의 평점을 보니 정말 절망 수준이라서입니다. 편견의 눈으로 지레짐작만으로 평가를 내리고 제대로 보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들더라구요.

드라마 형식이 연작단편물이고 각 화의 이야기가 특별히 재밌는 이야기도 아니고, 드라마 전체를 보기 전엔 이 드라마의 스텝진이 의도한 진정한 가치를 평가하기 힘든 형식이기도 합니다.

저예산 마이너(세 자매가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질 않습니다. ^^ㅋ)에, 야밤물(;;)이라는 편견 때문에 혹시 안 보고 계신 분들을 위해 각 화의 소재로 나온 소설의 원저자 소개라도 해두면 그 편견의 막이 한꺼풀이라도 벗겨지지;; 않을까 싶어서 새겨둡니다.

댓글 2개:

  1.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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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Anonymous - 2009/04/04 06:09
    네. 방문 고맙습니다. ^^

    나중에 원작들을 찾아 읽고 내용을 좀더 보충해볼까 합니다. 11화를 완감하고 나니 연출의 전체적인 틀이 보이더군요. 드라마 전체를 완감하지 않으면 각 화에 나온 소설의 줄거리가 공중에 뜬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겠더군요. 실상 연작단편물의 형식적 특성 때문에 중도에 내리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더군요. 각화에 추리 혹은 스릴러적인 면을 좀더 살렸다면, 재미가 좀 있었을텐데... 추리, 스릴러적인 요소가 너무 약해서 끌어주는 면이 적었던 작품인 것 같습니다. 저명한 소설가의 원작이 바탕임에도 왜 저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했을까? 아무래도 극본의 전체적인 플롯이 느슨한 플롯이라고 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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