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30일 일요일

의사과학(pseudoscience)의 특징

의사과학(pseudoscience)의 특징

의사과학적 주장들이 과학적 주장과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보자. 의사과학자(crank)의 주장은 정상적인 과학자들의 주장과 다른 점이 있다. 물론 과학자와 의사과학자 사이에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직 의사과학자에게서만 발견되는 특징들이 있다. 이 특징들을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의사과학을 과학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사과학적 주장이 어떤 특징들을 갖고 있는가를 면밀히 검토해 보자.

(1) 무정부주의적 사고(anachronistic thinking) : 대부분의 의사과학자들은 현재 과학의 체계와 깊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혹은 무시한 채) 제멋대로 옛날의 이론이나 주장들을 가져다가 그럴듯한 이론인 것처럼 주장한다.

가끔 의사과학적 주장이 매우 신선하고 독창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의 주장이 획기적인 것이며 과학사에 신기원을 이룩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이러한 주장들은 과거의 케케묵은 세계관에 그럴듯한 덧칠을 한 것인 경우가 많다. 현재 과학의 복잡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그들은 이미 과학자들이 포기해 버린 예전의 이론을(대부분이 오늘날의 복잡한 과학적 지식이 없이도 이해하기 쉬운) 가져다가 대단한 발견인 것처럼 포장한다.

단적인 예가 "평평한 지구" 주장이다. 어떻게 지구가 둥근데도 불구하고 반대 쪽에 있는 사람들이 떨어지지 않고 서 있는가? 또 지구가 그처럼 빠른 속도로 돌고 있는데 우리 눈에는 전혀 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가?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의 사고로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 주장은 오래 전에 틀린 것으로 입증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이들의 주장을 반박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어쨌든' 지구는 평평하다는 식의 무정부주의적 입장을 고수할 뿐이다.

창조론(creationism)자들의 주장도 이와 유사하다. 진화론에 따르면 생명체는 오랜 기간동안 진화를 해오면서 점진적으로 변화해 왔다. 그런데 어떤 화석을 분석해 보면 특정 시기의 매우 짧은 기간에 생명체의 구조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경우가 있다. 또한 생명체의 진화과정이 점진적으로 일어났다면 화석이 연속적으로 발견되어야 하는데 특정 시기의 화석이 발견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바탕으로 창조론자들은 인간이 단순 생명체에서 점진적으로 진화해 왔다는 진화론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어떤 시기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서(예를 들면 신이 만물을 한 순간에 창조) 오늘날의 모든 생명체가 한순간에 동시에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과학적으로 수긍하기에는 이론이 너무나 단순하고 증거도 매우 빈약하다. 오히려 돌연변이나 지각변동 등을 진화론과 연계시켜 설명하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하다.

(2) 신비찾기(Looking for Mysteries) : 과학자들은 연구할 때, 기존의 이론적 틀 내에서 작업한다. 이 이론틀은 과학자 세계에서 그 타당성이 어느 정도 입증된 것이다. 그 안에서 문제를 풀고, 문제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예측한 상태에서 작업을 수행한다(Kuhn의 주장 참조). 그런데 가끔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를 변칙, 혹은 예외적 결과(anomally)라 한다. 이 경우 과학자는 기존의 이론틀에서 이를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이를 설명할 수 없을 경우도 있다. 이것은 설명할 수 없는 현상(unexplainable)으로 간주한다. 억지로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이론이 있다면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새로운 이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새로운 이론이 변칙적인 경우 외에도 이전의 이론이 설명하던 다른 현상들도 모두 설명할 수 있을 때만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과학자의 자세이다. 파스퇴르아인슈타인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이론은 기존 이론들(자연발생론, 뉴튼 물리학)에 의해 설명할 수 없는 예외적 현상 뿐 아니라 기존 이론들이 설명할 수 있었던 다른 현상들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었기에 과학자 사회에서 받아들여진 것이다. 대륙이동설(continental drift)을 주장한 베게너(Wegener)도 대륙의 이동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대충 짜맞춘 이론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이를 자기 이론의 가장 약한 부분이라고 인정하면서 언젠가는 새로운 이론이 이를 설명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오늘 날 그의 주장은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의사과학자들은 이와는 사뭇 다른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일반적인 현상보다는 괴상하고 신비스러운 현상(mysteries)에 집착한다. 그리고 자기들의 이론이 기존 이론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UFO, ESP, 버뮤다 삼각지대, 고대의 우주인, 설인(雪人 Bigfoot) 등이 그것이다. 기존 과학이론이 설명할 수 없는 이 현상들을 자기들은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같은 신비한 현상들은 기존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반 현상인데 마치 신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인 경우가 많다. 또한 그들의 설명을 자세히 보면 과학적 근거가 매우 약한 것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앞에서 말한 것 처럼 실제로 아직 설명되지 않은(unexplained) 현상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 설명되기를 기다리는 현상이다. 현재 설명되지 않았다고 해서 해괴한 이론을 만들어 내서 대충 설명하고 이를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3) 신화로의 회귀와 자의적 문서 해석 : 대니켄(von Daniken)의 고대의 우주인, 벨리코프스키의 혜성충돌론, 창조론, 제인스(Jaynes)의 분리된 두뇌 주장 등을 보면 모두 비슷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고문서나 설화에 나오는 각종 신화를 섭렵한다. 그리고 그 중 구미에 맞는 것을 선택한다. 예를 들면, 모세가 홍해를 갈라놓은 것, 성경의 창세기, 호머의 일리아드에서 신들이 아킬레스에게 지시하는 것 등이다. 이것들을 실제로 있었던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 다음에는 그 당시에만 발생했던 사실을 바탕으로 이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만들어 낸다 : 외계인의 지구방문, 혜성과의 접촉, 급작스런 생명체의 등장 등. 그리고 앞의 신화들이 이러한 주장에 대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가설이 신화 뿐 아니라 지질학적, 고고학적, 고생물학적 증거에 의해 확증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과학적 연구에서는 이런 식의 추론을 찾기 힘들다. 고대의 기록들이 가끔 어떤 연구에 대한 힌트를 제공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오직 자신들이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과 일치할 때만 받아들이는 것이다.

고대 중국의 문헌을 보면 일식이나 태양의 흑점(sunspot)을 관찰했다는 종종 기록이 나온다. 현재도 일식이나 흑점은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록은 사실로 인정된다. 반면에 현재 그러한 현상을 관찰할 수 없다면 문서에 나온 기록들은 신뢰성이 없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태양이 정지했었다는 성경의 기록도 과학적 신뢰성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리코프스키는 혜성과의 접촉으로 지구의 자전이 일시 정지되면서 태양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이러한 접촉이 지구의 자전을 정지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매우 빈약하다.

과학자들도 연구할 때, 기존의 문헌(literature)을 참조한다. 이것은 오랜 기간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의 집합체이다. 그러나 과학적 문헌은 소설, 시 등과 같은 문학작품과는 다르다. 또한 종교 문서와도 다르다.

예를 들어 보자. 김소월의 시는 매우 독특한 정서를 담고 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는 우리 민족 고유의 한과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이 구절을 다른 나라 말, 예를 들어 영어로 번역해 보자. 'If you don't want to see me any more, I will just let you go.' 어떤가. 필(feel)이 오는가. 성문종합영어에나 나올 법한 평범한 표현이 되고 만다. 따라서 문학적 표현들은 다른 용어로 바꿔지면 그 내용은 전달할 지 몰라도 미학적 가치는 대부분 상실하고 만다.

문학이나 종교적 문헌은 해석이 매우 중요하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의 국화, 누님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두고 수많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예수가 그의 추종자들에게 '내 피를 마시고 내 살을 먹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했을 때 진짜 그의 피와 살을 먹으라는 의미는 아니다. 피와 살이라는 단어에 담겨있는 의미가 중요한 것이다.

폰 대니켄은 고대 우주인의 지구방문을 입증하기 위해 성경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왜 신은 '내가'라고 하지 않고 '우리들'이라고 했을까? 또 노아(Noah)를 지칭할 때 왜 '사람을 닮지 않고 하늘의 아들을 닮은 아기'라고 했을까? 이를 보면 신은 유일신이 아니며, 노아는 지구상의 인간이 아닌 외계인이 분명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피와 살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또 예수의 부활(resurrection)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폰 대니켄에게 한번 물어볼 일이다. 과연 고대의 기록이나 종교문서의 토씨 하나 하나 모두 꼬투리를 잡아 자의적으로 마구 해석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이와는 달리 과학적 문헌은 표현보다는 그 내용을 중시한다. 자료와 이론의 내용이 중요하지 개인적 표현양식은 별 문제가 안된다. 연구의 내용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따라서 과학적 문헌은 타국어로 번역되더라도 왜곡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과학적 문헌에서는 단어 자체의 의미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표현에 담겨있는 사실과 논리가 중요할 뿐이다.

의사과학자들은 종종 자신들의 이론이 과학적 문헌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과학적 문헌을 마치 문학이나 종교 문헌 취급하듯이 한다. 즉, 사실과 논리보다는 단어의 해석에 집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유명한 과학자가 이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신비한 힘이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면 이것이야 말로 의사과학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일 것이다. 그래, 그 과학자는 바로 초자연적 힘, 즉 싸이(psi)의 존재를 믿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는 간접적으로나마 우리가 옳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라는 식으로.

(4) 마구잡이식 증거 찾기(Grab-Bag Approach to Evidence) : 과학적으로 인정받은 가설들은 그 타당성을 입증해 줄만한 경험적 증거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증거가 많을수록 가설(혹은 이론)의 신뢰도가 높아지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이미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어 있다면 더 이상의 증거를 찾아내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뉴튼의 운동의 법칙은 이미 많은 증거가 쌓여있는 상태다. 그런데 여기다가 또 다른 증거를 확보한다 하더라도 뉴튼 법칙의 신뢰도가 더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증거가 많다고 해서 이론이 확증되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포퍼 Popper검증verification과 반증falsification을 상기할 것!). 여기에 덧붙여서 각 증거들은 기존 학자들이 수긍할 수 있을 만큼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위의 주장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의사과학자들의 연구태도를 보기로 하자. 의사과학자들은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해주는 증거가 많기만 하면 된다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신들의 주장에 걸맞는 증거만 마구잡이식으로 주머니(grab-bag)에 주워담는 데 열중하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바로 UFO다. UFO를 목격했다는 기록이 얼마나 많은가(그나마도 대부분이 개인적 체험담이거가, 흐릿한 영상 또는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애매모호한 사진들이지만). 버뮤다 삼각지에 대해서도 수많은 배와 비행기의 실종기록이 있다. 폰 대니켄은 어떤가. 고대의 우주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도 없이 많은 고대의 기록들을 열거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 모든 증거라는 것들이 정확한 관측이나 과학적 연구를 통해 나온 것들이 아니다. 대부분이 조작된 것이거나 왜곡된 것들이다. 즉, 불건전한 증거들인 것이다. 이러한 증거들이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저자의 무지와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기 주장과 일치하는 것들은 무조건 주워 모은다. 그런 식의 증거 쌓기가 결코 이론의 타당성을 확보해주는 것이 아님을 모른 채...

초심리학의 예를 들어보자. 의사과학 중 가장 세련된 분야라 할 수 있다. 타분야처럼 단순히 개인적 체험담을 듣거나 일시적인 초자연현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초자연적 힘의 근원인 싸이(psi)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직접 실험실에서 연구를 수행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은 이제 싸이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미 1930년에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싸이의 존재를 결정적으로 입증했다는 Pearce-Pratt의 실험은 1960년대에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당시의 실험환경에서는 피험자(Pearce)가 얼마든지 사기를 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유리 겔러가 순전히 사기로 자신의 초능력을 과시했던 것처럼. 그럼에도 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은 채, 싸이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연구한다고 떠들어 대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연구결과가 연일 발표되고 있다. 그야말로 주워담고 있는 셈이다.

(5) 반증할 수 없는 주장(Irrefutable Hypotheses) : 포퍼에 의하면 모든 과학적 주장은 반증(틀렸다는 것을 입증) 가능해야 한다. 반증이 되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반증이 가능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어떤 주장에 대해 무엇인가를 제시하면 틀렸다고 입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갈릴레오의 주장을 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의 낙하속도는 무게에 비례한다고 주장한 반면, 갈릴레오는 속도가 무게와 상관없다고 주장하였다. 두 이론의 진위를 판단하기 위해 실험을 해보자. 무거운 공과 가벼운 공을 떨어뜨렸을 때(공기의 저항이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무거운 공이 먼저 떨어지면 갈릴레오의 이론이 틀린 것이 되고, 그 반대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틀린 것이 된다. 즉, 두 이론은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지만 모두 반증가능한 것이다(물론 실험의 결과는 두 이론 중 하나만 반증하게 될 것이다.) 모든 과학적 주장은 이처럼 반증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의사과학적 주장들은 반증이 불가능한 것이 대부분이다. 창조론을 예로 들어보자.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한 순간에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는데 어떻게 서로 다른 연대의 화석들이 발견되는가? 이에 대해 19세기 창조론자 고세(Philip Gosse)의 대답은 간단하다. 화석들도 신의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창조할 능력을 갖고 있는 신이 그까짓 화석 몇 개 못만들었겠냐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무슨 수로 반증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런 주장도 가능하다. 실제로 신은 1분 전에 세상을 창조했다고! 아니 그런 억지가? 억지가 아니다. 그는 현세의 모든 것, 모든 역사적 유물, 모든 기록, 우리의 모든 기억 등을 동시에 창조했다면 그만 아닌가? 이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그건 말도 안된다고 여러분은 말하고 싶을 것이다. 바로 그렇다. 그들의 주장은 말도 안되는 논리다. 그래서 반증가능하지 않은 주장은 비과학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른 예로 초심리학을 보자. 그들은 수많은 연구에서 다양한 피험자들을 대상으로 투시(clairvoyance), 사전인지(precognition), 염력(psychokinesis) 등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실험을 하였다. 만일 이 실험들의 결과가 기대 수준(확률)보다 높게 나오면 psi의 존재가 입증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실험의 결과가 확률보다 낮게 나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많은 피험자들이 psi의 존재를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 psi의 존재가 반증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초심리학에는 이를 설명하는 용어가 있다. psi-missing(피험자가 틀리도록 작용하는 psi 능력)이 그것이다! 쉽게 말해서 많이 맞추면 psi가 정상적으로 작동한 것이고, 너무 적게 맞추면 psi가 반대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결과가 나와도 psi는 존재한다는 식이다. 이런 주장을 어떻게 반증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심리학자들은 psi의 존재를 입증한 실험들에만 관심이 있다. psi-missing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psi-missing은 psi의 작용이 나타나지 않을 때만 자신들의 주장을 방어할 목적으로 사용된다. 초심리학회지(Journal of Parapsychology)의 공식 정책을 보면 psi의 존재를 부정하는 연구결과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psi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한 것은 연구자의 실수(failure)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psi 현상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즉, 반증)할 수는 없다는 식이다. 얼마나 황당한가?

(6) 위조된 유사성(Arguments from Spurious Similarity) : 많은 의사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원리의 대부분이 이미 정통 과학에서 입증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과학적 주장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통 과학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몇몇 점성술가들은 하늘의 천체들이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달이 지구의 조수 간만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은가? 또한 태양의 흑점이 북극의 오로라(aurora) 현상과 연관이 있고, 나무의 나이테 성장과도 관계가 있다는 연구도 있다. 점성술은 이러한 지구와 다른 천체와의 관계를 보다 광범위하게 세련화시킨 것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바이오리듬(biorhythm)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생물학자들은 이미 굴(석화)의 식생활 패턴, 인체 혈류 내의 호르몬 수치, 각종 동식물의 생명활동에 일정한 리듬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바 있다. 바이로리듬 신봉자들은 23일, 28일, 33일 주기도 이와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의 주장은 이같은 과학적 발견을 더 확장한 것일 뿐이며, 앞으로 보다 많은 연구가 축적되면 더 긴 생체리듬을 발견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은 이러한 표면적 유사성, 혹은 단순 유추를 통해서 정립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점성술과 바이오리듬은 어떤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탄생하는 시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가 언제 태어났느냐에 따라 나의 일상생활과 평생이 좌우된다. 이것이 어떻게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발견하는 흑점과 오로라의 관계, 동식물의 리듬이나 생활패턴과 유사하다는 말인가? 거기에는 훨씬 더 복잡하고 세련된 메카니즘이 놓여있고, 과학자들은 이를 기존의 이론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반면에 의사과학자들은 겉으로 보이는 유사성만 발견하면 그것으로 오케이다. 비슷하니까 자기들도 과학적이라는 것이다.

(7) 시나리오식 설명 : 과학에는 일반성(generality)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함은 그것이 일반 법칙으로부터 어떻게 파생되는 가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사건을 설명하는 것과 미래의 사건을 예측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동일한 일이다. 즉, 과거에 A라는 현상이 B라는 현상의 원인이었다면, 미래에 A가 나타날 때 B가 나타나리라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학적 이론의 일반성이다. 그리고 "A이면 B이다"는 일반 법칙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반 법칙에 의존하지 않고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단순한 이야기거나 창작된 각본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시나리오(scenario)일 뿐인 것이다. 시나리오는 그것이 과학의 일반 이론에 의해서 뒷받침 될 때만 정당한 이론으로 간주된다. 우리가 의사과학을 시나리오식 설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과학적 근거가 없는 단순한 시나리오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의사과학자들은 기존 과학이론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들은 X가 Y를 일으킨다고 주장하면서도 왜(how) X가 Y를 일으키는가에 대한 이론은 제시하지 않는다. 벨리코프스키는 금성(원래는 목성에서 떨어져 나온 혜성)이 지구와 접촉함으로써 지구의 남북이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태양이 서쪽이 아니라 동쪽에서 떠오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가 뒤집히게 된 이론적 메카니즘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 벨리코프스키는 마치 번개가 자석을 치면 극이 바뀌는 것과 같다고만 설명한다. 과연 이것이 지구가 뒤집힌 데에 관한 과학적 설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어디에도 일반적 과학법칙에 의존하고 있는 곳은 없는 것이다. 즉, 결과를 상정하고 적당한 원인을 만들어내서 그저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제인스(Jaynes)도 시나리오에 의존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예전에는 인간의 두뇌가 둘로 나뉘어져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두 개가 합쳐져서 오늘날 우리의 두뇌처럼 되면서 인간에게 의식이라는 것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그는 현대인들도 정신분열증처럼 의식이 분리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인용한다. 그러나 그의 저서 어디에도 인간의 두뇌가 통합되는 메카니즘을 설명하는 신경학적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벨리코프스키와 마찬가지로 그의 이론은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는 시나리오일 뿐이다.

(8) 비판을 받아도 수정하지 않는다 : 과학은 비판을 통해 발전한다. 포퍼가 말한 반증의 원리는 이러한 과학의 본질을 파해친 것이다. 비판을 받고, 이론을 수정하고, 또 문제점이 생기면 수정하면서 과학은 발전한다.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의사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이 틀린 적이 없다고 자랑한다. 1972년 하버드대학 강연에서 벨리코프스키는 1950년대에 출판된 과학책들은 틀린 곳이 너무 많아 읽을 필요조차 없지만, 당시 출판된 자신의 저서는 2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옳다고 자랑하였다! 그는 마치 과학적 이론이 자주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그가 생각하는 이 과학의 단점이야 말로 과학의 최대 장점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과학은 수시로 자기를 수정하는 작업이다. 그 어떤 과학이론이 영원히 옳다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실수를 고치기 위해서는 비판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비판을 받지 않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쉬운 길은 공허한 소리를 지껄여 대는 것이다. 아무런 내용이 없으니 비판받을 일도 없다. "정상적이 아닌 현상(즉, 초자연 현상)은 모두 psi 현상 때문이다"와 같은 주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psi가 무언데? 그것은 초자연적 힘이다. 그렇다면 비정상적인 현상은 초자연적이다라는 말 밖에 더 되는가? 결국 아무런 말도 아니다. 누가 이 말이 틀렸다고 비판할 수 있겠는가.

비판을 받지 않는 두 번째 방법은 아주 모호한 표현을 쓰는 것이다. 벨리코프스키는 금성이 뜨겁다고 예측하였다. 그리고 금성의 표면 온도가 어느 정도 알려졌을 때 과연 자기의 예측이 적중하였다고 자랑하였다. 그러나 도대체 얼마나 뜨거운 것이 뜨거운 것인가? 그런 정도는 누구나 말할 수 있다. 지구보다 태양에 가깝게 있으니 당연히 뜨거울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화성은 차갑다고 말해도 된다. 어느 정도 차가운지는 말하지 않은 채...

세 번째는 아예 비판을 무시하는 것이다. 의사과학자들은 비판의 소리를 경청하는 척 한다. 그러나 듣기만 할 뿐, 자신들의 주장을 고치는 법이 절대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창조론이다. 창조론연구소(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의 연구자들은 항상 창조론이 진화론보다 월등한 이론이라고 주장하면서 세상을 돌아 다닌다. 그리고 여러 사람과 토론회를 열기도 한다. 그러나 토론회 이후 자신들의 입장을 수정했다는 보고는 아직 없다. 그들의 토론회를 보면 마치 말장난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흔히 TV에서 보는 토론회와 비슷하다. 토론자들이 토론 후에 중시하는 것은 단 한가지는 "내가 이겼나?"하는 것이다. 자기의 주장이 틀렸다거나 혹은 입장을 수정해야 하느냐가 아니다.

반면, 과학적 토론은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토론회를 통해 이론의 진위가 판단되었는가, 혹은 지적된 문제점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이론을 어느 정도 수정해야 하는가가 주요 관건이다. 흔히 TV의 시사토론장을 보면 토론자들이 저마다 자기 입장을 주장하고 남의 입장은 아예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애당초 출연할 때부터 '무조건 이겨야지!'하는 각오로 나오지 토론을 통해 건전한 방향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수정하려는 생각은 아예 없는 것이다. 그러니 토론의 결과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보는 사람은 짜증만 나고. 의사과학자들도 하나 다를 것이 없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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