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9일 수요일

대선 유감 -.-+

어제(18일) 아버님 제삿날이어서 성당에서 평일 미사를 드렸습니다.
제 조카가 며칠 후면 부제품을 받을 예정이라 누님에게 끌려서 성당에 갔습니다. 끌려갔다는 건 농담이고요 ^^;

요즘 제가 신앙관에 좀 변화가 생겨서 미사드리는 걸 많이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조카가 부제품을 받고 내년엔 사제품을 받아서 천주교 신부님이 될 것이니, 제 신앙관과는 관계없이 형식적으로라도 미사 참여는 꼭 해야하는데, 자꾸 제 내면의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성당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묵상기도를 드리는 바로 그 장소(그곳이 어디건)에 계신다는 암시를 주시더군요. ^^ 뭐 별스럽게 저 혼자서만 이런 느낌이 드는 것도 아닐 것이고, 저와 비슷한 신앙관을 갖고 사는 종교인들이 의외로 세상엔 많을 것이라는 것도 느낌으로 알고 있고요. 요즘은 미사를 드리고 신부님의 설교를 듣는 시간에도 도대체 내가 지금 왜 이곳에 앉아 있는가?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꾸 들어서 신부님 설교도 귀에 잘 들어오질 않습니다. 분명히 그 시간은 축복된 시간임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죠….

아무튼 누님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집으로 오는 길에 대선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하게 됐습니다.
대화 도중에 "내가 생각하는 대통령상은 '깨끗하고 맑은 사람'이어야 한다. 어차피 대통령이 할일을 내더라도 실제 일은 밑에 사람들이 다 하는 것인데, 할일을 정하는 대통령이 맑지 못한 마음으로 낸 안건을 밑에 사람이라고 제대로 할 것 같지도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그 인물의 됨됨이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대충 이런 얘기를 하며, 이번 대선이 아니라 다음 대선을 내다보고 '문국현 후보'를 찍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누님도 비슷한 생각이시더군요.

누님이나 저나 어차피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국민들 거의 대부분이 속으로는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한 일이지요. 비록 표면적으로 나타내지는 않더라도 속으로는 전부 그렇게 알고 있죠. 그리고 대통령은 역시 예상대로 그렇게 됐습니다.

제가 안타까운 건 투표율이 해가 갈수록 저조하다는 것도 아니고, 국민들의 정치인 불신의식 문제도 아닙니다. 서민경제를 파탄낸 열린우리당을 욕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잘못된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그 잘못된 불씨를 꺼지 못하고 오히려 불을 붙혀서 잘못된 불이 되살아나도록 하는 이 나라 국민들의 정서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나라 서민들 지금 먹고 살기 힘든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자신이 서민의 아들로 태어났고, 지금 그 서민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으니까요. 서민으로 살고 있는 게 자랑도 그렇다고 해서 한탄도 아닙니다. 서민으로 어렵게 사는 것이 돈 버는 방법을 몰라서도 아니고, 돈이 흐르는 루트를 몰라서도 아닙니다. 돈이란 것 벌려고 맘만 먹으면 남부럽지 않게 벌수 있습니다. 하지만 돈을 쫓다가는 인생에서 잃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젊은 날에 너무나 일찍 깨달아버린 탓에 스스로 가난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살고 있지만, 가난해도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왔고, 살고 있고, 앞으로도 이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제각각입니다. 사회가 어려울수록 물질만능, 황금만능주의가 득세할 수 밖엔 없겠지만, 이번 대선 개표방송을 바라보면서 정말 눈물이 나더군요. '힘들 수록 돌아가라'는 선현들의 말씀이 가슴을 치더군요.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만, 아닌 건 아닌 것 아닐까 싶습니다. '경제대통령'이란 구호 한마디에 혹해서, 한 때 거대그룹을 이끌었던 인물이라고 해서 한나라의 대통령으로 몰아가는 이 나라 국민의 민심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또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면 이번 대선의 결과는 우리나라 국민의 '빨리빨리' 병이 초래한 결과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힘드니깐 빨리빨리 잘 살고 싶다. 이 지긋지긋한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싶다. 물론 수긍은 갑니다. 하지만, 회사를 이끄는 것과 나라를 이끄는 것은 근원적으로 다른 일입니다. 지난 대선 때 어떤 마음으로 현 대통령을 뽑았습니까? 대체 이 나라 국민의 근시안적인 사고방식은 언제 쯤 고쳐질지…….

소설가 이외수씨의 플레이 톡에 올라온 글이 눈에 띄어 갔다 붙혀둡니다.
5년 후에 이 나라가 '경제대통령'을 외치던 그 분의 공약대로 되길 기원합니다.
잘 살고 싶다는 게 잘못된 건 아니겠죠.
하지만 인생이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면 그걸로 다 된 걸까요?
물론 답은 각자의 몫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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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의 플레이 톡 주소 : http://playtalk.net/oi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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