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28일 금요일

부제 서품식을 다녀와서…

거룩한 사제직을 위한 첫 관문을 통과하는 부제로 서품되는 조카를 위해 나름 정성껏 기도를 올리고서 잠자리에 누웠는데,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들다보니 새벽 2시가 넘어서 잠에 들었다.
새벽 5시에 잠에서 깨어 이른 식사를 하고서 서품식이 있는 성당으로 향했다.

천주교의 성직은 고난의 길이란 건 이미 사촌 조카 두 분이 먼저 사제가 되어서 그 거룩하고 힘든 직무를 수행중이기에  예전부터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터이지만, 피가 조금이나마 더 땡겨서 그런지, 조카가 이제 부제 서품을 받는다고 하니, 마치 내가 부제 서품을 받는 듯이 기쁨에 들떠기도 하고, 한편으론 마음이 아리아리하기도 했다.

큰누님이나 큰매형께서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고, 조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크게 걱정은 되지 않지만, 험난한 가시밭길 걷는 조카의 인생길이 조금이나마 수월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리라.

집안 사람들 어느 누구에게도 내색하진 않았지만, 나 또한 젊은 시절 한때 내 처지를 비관하며 방탕한 세월을 보내다, 한동안 평수사의 길을 걸을까 하는 고민의 시간을 거쳤던 적이 있다.

비록 그 생각은 집안과 나 자신의 위치 등 이런 저런 이유를 붙혀서 스스로 접어버렸지만, 오늘 따라 웬지 사제, 부제 서품식을 보고 있자니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랄까 아쉬움이랄까 하는 게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큰누님이 내게 냉담자라고 꾸짖던 시절에도 난 항상 성경을 읽고 있었고, 성경 속에 스며있는 인간 사랑에 대한 예수님의 그 말씀을 나름대로 실천하며 살았었다.
먼 후일, 지금 보단 좀더 나이가 들어 누님과 내가 같이 늙어가는 시간이 되면, 그땐 TV 연속극 얘기를 주고 받듯이 편한 마음으로 신앙에 대해서 두런두런 얘기할 날이 올 것이다.

큰누님이나 조카나 집안 사람 모두들 내가 믿음과 종교 대해서 이렇게 고민의 시간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진보적인 성향의 종교관을 갖고 있기에 지금은 내색하지 않지만, 언젠가 내 신앙의 나무에 열매가 무르익을 때 즈음엔 가슴의 문을 열고, 조카 사제님들과 큰누님과 허심탄회하게 신앙에 대해 얘기하게 될 날도 있으리라 믿는다.

내가 온라인이건 실생활에서건 종교에 대해서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으려는 것은 어차피 나 자신이 설익은 감일 것이 분명하고, 또 기존 기독교 교리와 정면 충돌하는 면이 있는 등, 내 신앙관을 얘기했다간 틀림없이 삐져나온 돌이 정 맞는다고 된서리를 맞을 것 같은 생각이 중첩적으로 들어서이다. 집안에 괜한 분란 일으킬 것도 같은 우려도 든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했던가!
고교 1학년 때부터 성경을 거의 끼고 살아왔지만, 나는 아직도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의 메세지와 현실 세계의 괴리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스스로를 설익은 감이라거나, 나름대로 세워 온 신앙체계 때문에 꿀딴지 숨켜두듯이 종교에 대한 나의 정체성을 집안 분들에게 숨겨온 것이 아니라, 성경과 현실의 괴리감을 어찌하지 못하여, 나를 숨기고서 나 스스로 냉담자 아닌 냉담자로 오인 받기를 바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근데 오늘 술도 안 취했는데 줄줄이 마음 속의 에러코드들을 왜 이렇게 주절주절대는 건지 모르겠다.

어려운 길에 첫 발을 디딘 조카의 앞 길에 가시덩굴이 많겠지만, 종교의 특질이 박해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그 힘이 커지는 것처럼, 가시덩굴도 또다른 힘을 주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조카가 1년의 부제직 수행 중에도 이제 껏 그러했듯이 흔들리지 않는 신심으로 잘 버텨낼 것을 믿으며…….

내가 설익은 감이 아니었다면 사실 이런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냥 축하한다! 딸랑 이 한마디에 내마음을 모두 담아 얘기할 수 밖에 없었다.
조카, 누님 두 분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만 가득합니다.

사진을 몇 장 찍어오긴 했지만,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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