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29일 일요일

지독하고 특별한 상열지사 - 부운 浮雲 (1955, 나루세 미키오)

지독하고 특별한 상열지사
나루세 미키오 <부운 浮雲>

The Floating Cloud | PIFF가 추천하는 아시아 걸작선ㅣ일본ㅣ1955ㅣ124분ㅣ35mmㅣ감독 나루세 미키오ㅣ출연 다카미네 히데코, 모리 마사유키ㅣ10.09 프리머스6관 20:00

일본 고전 영화를 이야기할 때 당장 떠오르는 이름은 '다다미방에 단정하게 앉은' 샷의 오즈 야스지로 감독과 그의 히로인 하라 세츠코일 것이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거리를 서성거리는’ 샷의 나루세 미키오와 그의 히로인 다카미네 히데코가 있다.

아직까지 낯설게만 느껴지는 이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리가 아는 이름들을 경유해 더듬어야 할 것이다. 허우 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 왕가위는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을 아시아 최고의 걸작으로 꼽았고(심지어 <화양연화>에서 밤거리를 배회하는 양조위와 장만옥 커플은 <부운>의 불운한 연인들의 끝없는 산책을 연상시킨다), <부운>이 개봉했을 당시 라이벌이었던 오즈 야스지로조차 “지금까지의 일본영화 중 최고 걸작”이라고 격찬할 수밖에 없었다 한다.

[줄거리]
2차대전이 끝난 직후, 유키코는 필리핀에서 함께 근무했던 연인 도미오카를 찾아온다. 유부남인 도미오카는 애절하게 매달리는 유키코를 차마 뿌리치지 못한다. 그들은 끝없이 걷고 목욕하고 술 마시고 공허한 이야기를 나눈다. 남자는 여자를 ‘어느 정도’ 사랑한다. 여자는 자존심을 다친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를 포기할 수 없다. 그건 어떤 숭고한 사랑의 감정이 아니다. 혼자이고 싶지 않다는 절박감, 실존 자체에 대한 위기의식, 마지막까지 결코 버릴 수 없는 자존심의 거래다. 순정의 외피를 둘러싼 헛된 소망의 좌절, 스스로의 방향을 결정하지 못하는 극도의 불안은 사람을 흔들리게 하며 사랑을 흔들리게 한다. 나루세 미키오는 더할 나위 없는 연민과 공감을 담아 남녀상열지사를 그려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사랑을 변하게 하는 현실에 대한 지독할 만큼 냉철한 인식이 깃들어 있다. 이런 식의 멜로 드라마를 본다는 건 결코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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