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이었던 황규덕 감독의 「별빛속으로(For Eternal Hearts, 2007)」를 봤다. 판타지를 통해 풀어내는 아리아리한 사랑의 기억… 현실과 상상력이 교차하는 경계지대를 아스라히 묘사한 황규덕 감독에게 갈채의 박수를 보낸다.
단 한 번 보고 미사여구를 나열하기엔 아까운 영화일 것 같아서 속 깊은 얘기는 다음에 예닐곱 번쯤 본 후로 미뤄두기로 한다. 명작의 반열에 들 가치가 충분하다고 느껴져서이다. 순전히 내 느낌의 기준이지만…
- 흐름을 미리 알아두고 보실 분들은 아래의 스포일러 만땅의 리뷰를 읽어보시길...
| 리뷰 |
<별빛속으로>, 현재형의 상상력
글쓴이 : 김영진 (FILM 2.0 편집위원, 2007.08.04)
- 앞부분에 이 영화와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영화와 비교한 부분은 가위질 했다. 괜시리 불편한 얘기를 왜 집어넣어 둔 건지...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이었던 황규덕의 <별빛속으로>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별빛속으로>는 아마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한국영화 대작들에 견줄 만한 관심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황규덕의 영화는 우리가 영화로 꿈을 꾼다는 것의 본질을 캐 보여준다.
<별빛속으로>는 독문과 대학교수 수영이 휴일에 자기 연구실에서 일을 하다가 뭔가에 홀린 듯이 빠져나와 나비의 몸짓을 따라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연히 비어 있어야 할 강의실에는 뜻밖에도 학생들이 모여 기다리고 있다. 교수의 입담을 바라는 아이들의 성황에 못 이겨 정진영이 연기하는 대학교수 수영의 과거 회상이 이어진다. 그가 독문과 학생이었던 80년대 대학가에서 수업시간에 독어시를 유창하게 해석하는 여선배를 알게 되지만, 황당하게도 그녀는 조금 친해졌다고 느끼는 순간 학교 건물 옥상에서 시위하며 투신자살한다. 그런데 죽은 줄만 알았던 그녀는 곧잘 교정에 나타나 수영에게 말을 걸고 스스럼없이 일상적으로 친한 척 군다. 그녀의 남자친구로부터 과외 아르바이트를 소개받은 수영은 동굴 같은 저택에 들어가 한 청순한 소녀를 가르치는데, 수지라는 이름의 그녀 역시 유령들이 사는 것 같은 집에서 때로 알 수 없는 행동을 한다.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이 영화의 내용은 축약해놓으면 무슨 괴담 같지만 서정적인 톤으로 전개된다. 정경호가 연기하는 수영이 자기 앞에 펼쳐진 현실이 도대체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려하며 현재와 과거,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반전의 강박에 매달릴 경우 자칫 내러티브의 기교적 차원에 갇힐 우려가 있었다. 황규덕 감독은 대범하게 그 강박을 무시하고 뚝심 있게 밀어붙인다. 그가 묘사하는 판타지는 현재에서 본 과거라는, 실제 있었던 일일지도 모르지만 뇌리 속에서 사라질 듯 아른거리는 그런 회상의 색깔로 칠해진 판타지다. 1차 편집본에서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점을 굳이 구분하지 않은 것은 이 영화의 그런 주제와도 관계가 있으나 더 친절한 이야기를 원하는 관객들의 요구를 감안해 편집 완성본에서는 젊은 시절 수영의 내레이션이 딱 한 번 깔린다. 내가 지금 겪은 것이 꿈인가, 생시인가를 가늠하게 해주는 이 내레이션의 기능을 업고 영화의 내러티브는 더 명확해졌다. 그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현실의 우리 마음속에는 판타지를 원하는 만큼이나 현실로 돌아오려는 활시위의 화살 같은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획 지어놓았는데도 <별빛속으로>는 몇 차례의 반전을 더 이어간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수영이 교수에게 질문하는 것처럼 작가의 상상력이 현실에 대한 일루전에서 시작된다는 철학자의 말은 영화의 주제가 된다. 교수는 일루전의 현실성에 대해 대답해주려는 눈치지만 학생들은 관심이 없고 수업이 끝나는 벨소리와 함께 서둘러 강의실을 빠져나간다. 그 대답을 영화의 중반 이후에 우리는 보게 된다. 우리가 보는 것은 꿈인가, 꿈속의 꿈인 것인가, 라는 질문은 이명세의 데뷔작 <개그맨>에서도 나왔고 장자의 나비의 꿈에서도 거론되는 상투적인 질문이지만 황규덕은 그 질문의 정체를 상투형에 갇히지 않는 생생한 물질적 재료의 결정체로 우리 앞에 내놓는다.
현실의 어리석은 면면만큼이나 우리는 지나간 과거가 정말 그랬던가에 대해 가끔 믿기지 않는 순간을 경험할 때가 있다. 지나가지 않으면 그게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모른다. 동시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임하는 우리의 태도도 때로 얼마나 미련한지를 모른다. 그렇지만 마냥 현명하게만 살 수도 없고 적당히 어리석음을 발휘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게 언제나 부정될 수 없는 현실이자 과거라는 것은, 그래도 우리는 다른 탈출구를 찾아 필사적으로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수영이 몽유병자처럼 현실인지 환상인지 헷갈리는 경계 속에서 삶을 산 것은 그가 꿈을 꿀 수 있는 청춘이었기 때문이다. 대학가에 투신자살이 끊이지 않았던 격동의 80년대는 아름다운 시대도 아니었고 숭고한 시대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제 그 시대를 제대로 기억하지도 않는다. 억압적인 그 시대를 버텨내며 항거하려던 젊음이 있었고 무심한 이들도 있었다. 바깥에서는 정치적 구호가 집단의 기세로 외쳐지는데 강의실에서는 시인의 한가로운 상상력을 논하는 게 사치스럽다고 여겨지기도 하던 그런 시대였다. 어느 쪽에도 낄 수 없었던 수영은 황규덕 감독의 자아이자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엔 그들 자신도 열병을 앓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황규덕은 이것을 노스탤지어로 바라본 시대로 재현하거나 개인적인 체험으로 요약하거나 백일몽으로 달아나는 대신, 현실의 짜인 구속 속에서 꿈꾸는 것을 열병처럼 앓았던 젊은이의 심상을 그려내는 쪽으로 나아간다. 지난 FILM2.0 341호 인터뷰에서 황규덕이 밝힌 대로 그가 대학 시절을 보냈던 1970년대에 도심의 밤하늘에서도 일상적으로 볼 수 있었던 서치라이트 불빛은 엄연한 현실이었지만, 그게 꿈처럼 다가오는 느낌을 영화 스크린에 물리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대공 파수를 자임하며 밤하늘을 감시한다는 그 서치라이트의 기능은 어떤 이들에게는 같은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제약하는 정치적 상황의 상징처럼 보여 갑갑했을 것이다. 그것에 대해 심상하게 회상하는 대신 거기에 판타지의 통로 입구를 만들어놓는다. 꿈을 꾸듯이 그들 세대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순수와 이상의 대입창구로서 풋사랑을 응결해놓은 듯한 그 서치라이트의 불빛 속에서 젊은 시절의 수영과 수지는 짧고 간절한 사랑과 공감과 열정을 나눈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매혹적인 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다.
황규덕은 그로부터 놀라운 선택을 한다. 그 꿈이 현재화돼 중년의 대학교수가 된 오늘에도 이어지는 경험을 관객에게 안겨준다. 과거가 괜찮았다고 말하는 ‘꼰대’들은 우리 주변에 숱하게 있지만 표 나지 않게 그 꿈을 현재화시켜 어떤 형태로든 간직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아름다운 것이다. 현실의 어떤 무시무시한 억압이나 장애물에 대해서도 다른 비전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초월적인 시선의 존재가 이 영화에서는 느껴진다. 이것이 한낮의 백일몽이며 그걸 얼마나 제대로 영화적으로 구현했는가라는 것에서 나아가 이 영화는 그 백일몽의 현재화, 끊임없이 꿈꾸고 마음속의 다른 망명정부를 세울 수 있는 건강하고 왕성한 상상력의 자아를 내러티브와 이미지에 세워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중반에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일차적으로 밝혀주는 순간에도 그 경계를 축으로 조성돼 있던 긴장은 깨지지 않는다. 그것이 종료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라는 것을 관객이 알게 되기 때문이다. ‘별빛속으로’라는 직설적인 제목이 함축하는 것은 삼라만상에 희로애락의 심상을 투영할 수 있는 시인의 마음을 잃어버린 시대에, 어리고 젊은 시절에는 희미하게라도 가능했을지 모를 그 꿈꾸는 능력을 잃어버린 시대에, 일관되게 꿈꾸는 인간의 능력을 잃지 않은 부드러운 예술적 자아가 어떻게 거칠고 투박하며 번거로운 영화라는 물질적 매체의 힘을 빌려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 <별빛속으로>는 영화로 꿈꾸는 이들에게 어떤 전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앞에 놓고 제작비와의 대차대조표나 유명세를 따지는 혼탁한 시장바닥에서 이 영화는 이런 것도 있어요, 라고 좌판을 벌인 무공해 상상력의 징표다. 영화를 만들 때 이것을 대중이라 불리는 고객들이 사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보다는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즐기며 만든 영화의 원형질을 <별빛 속으로>에서 보게 될 것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옛날이야기를 나누며 문득 보게 되는 밤하늘의 별빛에서 느끼는 경외감과 같은 맑고 투명한 체험을 이 영화는 전해준다.
trackback from: [10.13,10.18,10.20] 민병훈, 황규덕, 전수일 감독을 만나요!
답글삭제오늘부터 민병훈, 황규덕, 전수일 세 분 감독님의 작품들이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됩니다. 아침 11시 10분에 첫 상영작품인 민병훈 감독님의 <괜찮아 울지마>가 영사되었답니다. 인디스페이스에서는 세 감독님들의 영화 상영에 맞춰, 감독님들의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기 위한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특별히 마련했습니다. 무려 8번의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진행된답니다. 감독과의 대화 시간은 감독님 별로 하루씩 날짜를 정해서 상영되는 작품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