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15일 월요일

SF 칼럼 [1]:가능성의 한계(1)-SF(에스에프)에서의 공상과학

SF 칼럼 [1]:가능성의 한계(1)

공상 과학소설(SF)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몇 가지 아이디어는 실생활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의 법칙에 의해 금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빠져나갈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1. SF(에스에프, 과학소설; 이하 SF로 통일)에서의 공상과학
SF적인 미래로서 상상되고 있는 놀랄만한 과학기술과, 기적적인 새로운 생활 형태의 대부분은, 현재의 우리가 지니고 있는 지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실현가능성의 검토라는 무미건조한 책임을 떠맡게 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SF 작가도 많다. 자연의 법칙이, 가장 극적이고도 흥미로운 줄거리에 불가능이라는 딱지를 붙이게 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작가들로 하여금 폐쇄공포증에 빠지게 한다. 만약 빛보다도 빠른 속도의 여행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라면, 도대체 은하계로 이민한다든지, 또는 한 세대에 이쪽 별에서 저쪽 별로 옮겨 갈 수도 없지 않은가? 만약 타임머신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라면, 도대체 과거나 미래를 찾아갈 수도 없지 않은가?

현실과 상반되는 공상과학이 이야기의 주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되어 있다고 해서, 그 이야기 전체가 터무니없는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설령 작가가 과학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고찰함으로써 설정을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거기에 공상과학을 도입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필요한 경우는 많은 것이다.

좋은 예로서 H. G. 웰즈의 유명한 소설 <타임머신(The Time Machine)>이 있다. 이 타임머신의 아이디어는 공상과학에서 착상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이같은 타임머신을 사용하지 않은 채, 웰즈가 인류의 미래의 진화-이 작품에서 호소하고 싶었던 주제-에 대하여 얘기한다면, 무미건조한, 추상적인 수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공상과학적인 궁리 덕으로, 웰즈는 이야기에 필요한 선명함과 긴박감을 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는 많다. 「제임스 블리쉬」*의 장편 <우주 도시(Cities in Flight:공중도시)>는, 떠돌이 노동자가 일거리를 찾아 우주를 방황하는 이야기인데, 이 소설에도 초 광속 여행과 반중력이라는 두 가지 종류의 공상과학이 나온다. 이 책은 인류학에서 물리학 분야에 이르는 창조적이고도 매력적인 실제의 과학으로 넘쳐 있으나, 그 뼈대에는 공상과학이 필요했던 것이다.
* 제임스 블리쉬 James (Benjamin) Blish (1921 ~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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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블리쉬는 1942년 microbiology에서 학사를 받았다. 세계 2차 대전이 터지자 블리쉬는 졸업 후 참전하여 1944년까지 medical technician으로 종군하였다. 전쟁 후 콜롬비아 대학에서 2년 있었는데, 이 시기에 Futurians에 가입했다. 그의 아내이자 에이전트인 Virginia Kidd도 Futurians의 멤버였었다. 학업을 끝낸 뒤 블리쉬는 문학계에 뛰어들었으나 시간이 나면 언제든지 SF의 나래를 펼쳤다고 한다.

A Case of Conscience로 1959년 휴고상 장편부문 수상. 동명의 단편 소설은 뒤늦게 1953년 레트로휴고상 (2004년 시상)을 탔음.

블리쉬는 1968년 영국으로 이주했으며, StarTrek 11 서문에 그의 주소를 영국으로 쓰기 시작했다. 말년에 그는 StarTrek 각본과 단편 모두에 있어서 중심 작가였었다. 그의 다른 취미는 고양이, 음악 콘서트, 아마추어 연극, 비행이었다.

Earthman Come Home
· Cities in Flight (1955-62)
← · Earthman Come Home 1955
· They Shall Have Stars 1956
· The Triumph of Time 1959
· A Life for the Stars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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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아이디어에 의해 작가는 자유자재로 무대를 만들어낼 수가 있다. 그같은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것으로서 인간은 어떤 시간과 공간에서도, 그리고 현실적인 역사와 병행되는 길을 걸을 수 있는 '평행 우주 Parallel Universes'에 까지 손을 뻗칠 수가 있는 것이다.

20여년 전 까지만 해도 이 같은 네 가지 종류의 아이디어가 과학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은 불과 몇몇의 독자와 소수의 작가들 뿐이었다. 그러나 현재 이론물리학에는 빠져나갈 수 있는 어떤 종류의 돌파구가 주어지고 있는 측면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자연의 법칙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러나 매우 색다른 상황에서라면 법칙을 바꾸거나 우회로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는지도 모른다. 다만 실생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의 여부는 별개 문제이다. 자연의 법칙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어떤 극단적인 상황하에서이며, 이같은 상황을 현대의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부터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제 우주론(우주의 물리적 성질)을 기초로 한 공상과학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의 우주를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같은 법칙을 현재의 우리는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과학자가 자신들이 그리는 우주상을 만들어 내기 위해 측정하는 세 가지 기본사항은 질량, 거리, 그리고 시간이다. 우주구조의 기초가 되는 이같은 요소는 지난날의 기계론적인 고전 물리학(아이작 뉴턴이라든가, 17세기, 또는 그 뒤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에서는 자명한 것(불변량)으로서 다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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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명확해진 것이지만(아인슈타인의 공적에 의한 것이 많다), 이들 뉴턴 물리학의 법칙은 어떤 것이든 통상적인 측정에 있어서는 이의없이 통용되지만, 어떤 극단적인 상태가 되면 무너져 버린다. 그리고 상대론적 물리학이 이를 대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론적 물리학이 최종적인 것이라는 것은 아니며, 우리는 이미 아인슈타인을 넘어서기 시작하고 있다. 양자물리학이라는 분야가 있으나 아인슈타인은 이를 무척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같은 이론은 우리의 우주상에 대해 특히 소립자의 레벨에서 마치 도박과도 같은 불확정 요소를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양자 역학을 아인슈타인은 경멸하는 투로 공격했다-<신(神)은 주사위를 흔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라고.

이상 세 가지 종류의 물리학 세계(고전물리학, 상대론적 물리학, 양자물리학)에 관한 고찰은 각기 독자적인 법칙을 가져오고 있으며, 이들 법칙은 각기 여러가지 실험에 의해 뒷바침되고 있다. 즉 나름의 틀 안에서 유효한 것이다. 뉴턴의 물리학은 통상적인 규모의 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통용된다. 자동차와 비행기, 그리고 행성까지가 꼭 들어맞게 그같은 법칙을 따르고 있으며, 이같은 세계에서 뉴턴 물리학에 의한 속도와 질량의 예측치로부터의 '어긋남'을 발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상대론적 물리학은 초고속도와 방대한 질량을 동반하는 우주 규모의 현상에서 본래의 특색을 발휘한다. 또 상대론적 물리학은 소립자 레벨에서도 충분히 효과적인 것이지만(원자폭탄을 생각하라), 그 같은 미세한 존재 레벨에서 물질과 에너지가 어떻게 반응하는 것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세번째에 해당하는 양자물리학이 다루는 무작위적인 불확정성과 통계예측도 필요해진다.

최근까지 양자물리학은 소립자 레벨의 사상에만 한정되어 있으나, 이를테면 블랙홀에서의 거동을 어떤 종류의 이론적 관점에서 보건데 거시적인 레벨에서도 양자물리학은 필요한 것 같다. 이처럼 양자역학의 고찰이 상당히 큰 영역에까지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최근의 일이며, 양자물리학과 상대성물리학과의 조화는 오늘의 물리학작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자극적인 도전으로 되어 있다.

SF 작가가 새로운 물리학을 상상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환상을 쓰는 것이 아닌 한 멋대로 옛날 물리학을 버릴 수는 없다. 제 아무리 새로운 물리학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옛것에 약간의 수정을 가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옛날 물리학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물리학이 매우 적응성에 뛰어나며, 물질의 법칙이 움직이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으로부터 갖가지 흥분할 수 있는 상황을 뺏어버리게 될는지도 모른다고 우려할 필요는 없다. 현재 물리학자 자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몇 가지 상황에 대해 놀라와 하고 있는 것이다.-그 상황은 평범한 SF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앞지르고 있는 것이 많다. 물리학자중에는 존재 가능한 것은 현실적으로 어느 곳인가에 존재한다고 낙관하는자까지도 있다.

현대의 물리학과 공상과학을 다룰 앞으로의 장에서는 더욱 이야기를 진전시켜 과학자와 철학자가 개척한, 그리고 상상을 초월한 것들에 대해 언제든지 싸울 준비를 갖춘 광기어린 작가들의 대군(大軍)이 열심히 이민할 매우 색다른 심상풍경의 즐거운 여행을 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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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우주: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2001, A Space Odyssey)>의 주인공이 차원의 문을 거쳐 여행하여, 호화로운 침대에 누워 있는 늙은 또 한 사람의 자신을 만나는 장면.
반중력:영화 <제2의 지구>. 지구에서 소년이 공중에 떠 있는 장면인데, 만일 무중력이라면 왜 탁상 위에 있는 물건은 그대로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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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트래블:텔레비전 시리즈 <닥터 후 Dr. Who>. 전화박스로 위장한 타임머신이 보이는 장면.
초 광속 여행:영화 <스타 트랙 Star Trek:The Motion Picture>의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
[출처]
·세계백과 대도전 (1985년 3월 3일 발행판) VISION 1권(290p ~ 291p)
·인터넷 이곳저곳
다음 SF 칼럼 [2] 가능성의 한계(2):'초 광속(超光速)과 상대성이론'의 상관 관계에 대한 소고


+ 본 SF 칼럼은 40여회 분량으로 실을 예정입니다.
+ 짜투리 시간 쪼개서 작성하는 것이라서 주기적으로 올리지는 못할 겁니다. 되는 대로 쓰고 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 전문적인 SF 칼럼니스트 만큼의 깊이는 없겠지만, 나름대로 기획해서 성심성의껏 올려보겠습니다. 많은 격려바랍니다. ^^
※ 이 칼럼은 퍼다 나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엮인 글 |
2008/08/17 - [SF 칼럼] - SF 칼럼 [3]:가능성의 한계(3)-하이퍼스페이스(초공간)과 투명인간
2008/07/22 - [SF 칼럼] - SF 칼럼 [2]:가능성의 한계(2)-초광속(超光速)과 상대성이론의 상관 관계에 대한 소고

댓글 7개:

  1. SF의 바탕을 이루는 4가지 공상외에 다른 이야기 거리들이 많이 있을듯한데요? 흔히 로봇공학3원칙을 주제로 쓴 아지모프영감님 로봇시리즈는 그 범주로 못묶을듯한데. 이를테면 근미래의 과학적 발전상등도 있을수있겠고요.. 4가지 공상은 SF의 소제적 분류와는 상관없는 건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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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단 - 2008/10/19 23:41
    반갑습니다. ^^

    제가 연재중인 SF 칼럼은 몇 개의 카테고리로 나눠서 연재할 예정입니다. 현재 연재중인 카테고리는 "가능성의 세계"라고 정해서 진행중이고요.



    이단님께서 말씀하신 '로봇'을 비롯하여 사이보그, 안드로이드, 생명공학 등은 『미래의 인간 (Future Mankind)』이라는 카테고리를 연재할 때 다룰 예정입니다.



    방대한 SF의 역사를 전부 훑으려니 신경쓸게 많아서 틈틈이 분류해가며 글을 찾아 읽고 개요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한 두달에 끝낼 칼럼이 아니고, 몇 년 간에 걸쳐서 조금씩 내놓을 글이라 읽으시는 분들은 지루해하실 수도 있겠지만... 제가 글로 밥벌이하는 전문 작가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입지요.

    언젠가 40여개의 칼럼이 완성되면, 직접 전자책(PDF, HWP)형식으로 재정리해서 무료로 배포할 예정입니다.



    관심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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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 정말 기대되는 프로젝트네요^^ 계속 들러보겠습니다~ 척박한 SF환경의 거름같은 존제시네요;; 비유가 좀그런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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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단 - 2008/10/20 09:43
    네! 관심 고맙구요. SF 칼럼은 친구에게 주절대는 수준 그 이상은 안 되는구만요. 무슨 거름씩이나요;; 좋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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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잘읽었습니다. 제임스블리쉬 두번째 문단 2004년 시상-> 수상 이 적절한 표현같아요.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일부러 아인시타인이라고 쓰신건가요? (저는 단지 높은 완성도를 위해 알려드릴려는 목적이니 기분나빠하시거나 노여워마시고,. 이 댓글은 확인하시고 걍 삭제해 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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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암흑에너지 - 2009/06/03 16:50
    알려주셔서 고맙구요. 아인시타인이라고 적어둔 건 제가 개정 전 한글표기법 세대라서 저도 모르게 예전 표기법이 불쑥 나오곤 한답니다. ^^ 양해하시길... 저도 한글맞춤법 표기 신경 쓰고 있는데도, 간혹 틀리는 경우가 많더군요. 오자나 틀린 표기는 발견할 때마다 수시로 수정하곤 한답니다. 방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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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암흑에너지 - 2009/06/03 16:50
    (2004년 시상)은 제대로 된 표현일 겁니다. 2004년에 주최측에서 시상했다는 의미일 겁니다. 제임스 블리쉬에 대한 박스 안의 정보는 영문 사이트 번역한 부분이라서 번역 도중에 어쩌면 제가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차후에 사이트를 다시 들러서 찬찬히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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