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15일 화요일

이성, 진리, 역사:힐러리 퍼트넘

이성 진리 역사 표지
이성, 진리, 역사 - 현대사상의 모험 9
원제목 : REASON, TRUTH AND HISTORY
지은이 : 힐러리 퍼트넘
옮긴이 : 김효명
출판사 : 민음사
책정가 : 18,000원
책정보 : 2002-08-08 | 374쪽 | 양장 | ISBN 8937416093



| 리뷰 |
현대 영미 철학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 철학자 힐러리 퍼트넘의 주저. 수학, 물리학, 언어학 등 기초 학문들을 오가며 철학의 근본 문제를 파헤치는, 분석 철학의 고전이며, 합리성의 정체를 다양한 철학적 논변을 통해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데이비드슨D. Davidson, 크립키S. Kripke, 설J. Searle, 김재권*, 더밋M. Dummett과 함께 현대 영미 철학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철학자로 손꼽히는 힐러리 퍼트넘의 주저『이성ㆍ진리ㆍ역사』로, 옥스퍼드 출판부와의 정식 계약을 거쳐 새로이 편집, 교정하여 출간된 것이다.

수학, 물리학, 언어학 등 기초 학문들을 오가며 철학의 근본 문제를 파헤치는, 분석 철학의 고전 이 책의 저자 퍼트넘은 일찍이 과학 철학자 라이헨바흐H. Reichenbach로부터 물리학과 과학 철학을 배웠고, 20세기 미국의 대표적 철학자인 콰인W. V. O. Quine으로부터 수리 논리, 수학 기초론 등을 배웠다. 그리고 MIT의 촘스키N. Chomsky, UCLA의 카르납R. Carnap, 몬터규R. Montague 등과 같은 미국의 지도급 언어 철학자 내지는 분석 철학자들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이처럼 수학, 물리학, 언어학 등의 기초 학문 분야에서의 기본 훈련을 거쳤기 때문에 저자의 철학적 시야는 남달리 깊고 넓다고 할 수 있으며, 전통적인 여러 철학적 문제들에 접근하는 방식과 시각도 새롭다. 예를 들면 심리 철학 분야에서의 기능주의functionalism, 언어 철학 분야에서의 직접 지시direct reference 이론, 양자론에 대한 양자 논리적 접근 방법 등의 이론적 깊이를 통해 저자는 <합리성>에서 비롯되는 서구 철학의 근본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이론적 관심을 도덕, 정치, 역사 등의 실천과 관련된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킨다.

<내재적 실재론>을 통한 현대 철학의 위기 타개
이 책에서 저자는 합리성의 정체를 다양한 철학적 논변을 통해 밝히고 있다. <합리성>은 철학의 근본 문제들을 설정하고 해결하는 데 있어서 서구인들이 전통적으로 하나의 보편적 기준으로 삼아온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서양 철학은 합리성에 연관된 문제들을 항상 대립적, 이분법적 방식으로 다루어왔다. 이런 사고의 경직화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철학적 대화나 토의는 불가능했고, 심지어 철학 자체의 존립마저 위협받게 되었다. 서양 철학에 있어서, 철학의 존립에 대한 위협은 바로 합리성에 대한 위협과 통한다.

저자는 바로 이 점을 현대 철학의 위기로 간주하고 있다. 고전적 회의주의나 현대의 문화적 상대주의가 출현하게 된 역사적 동기를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결코 그들과 운명을 같이할 수 없었던 저자는 이 위기가 어떻게든 극복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인간의 고질적인 이분법적 사고의 뿌리부터 파헤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철학적 문제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고, 합리성의 정체를 묻는 근본적인 문제도 새로운 시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저자가 <형이상학적 실재론 아니면 전체적 상대주의>라는 이분법에 만족하지 않고 제3의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이 이른바 <내재적 실재론> 또는 <내재적 상대주의>라는 입장이다. 내재적 실재론에 의하면 진리란 실재 또는 사실과의 대응으로 간주될 수 없다. 오히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판가름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이른바 <합리적 수용 가능성rational acceptability>의 기준이다. 즉 합리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진리가 결정된다. 그렇다고 해서 합리적 수용 가능성이라는 기준이 진리를 단순히 상대적인 것으로 전락시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합리적 수용 가능성이라는 기준은 비상대적인 진리의 개념을 합리적 탐구의 이상(理想)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내재적 실재론의 입장은 말하자면 합리적 탐구를 위한 모종의 기준이 있다는 뜻이지 <어떤 것이든 좋다>는 식의 무기준적 상대주의와는 다르다는 뜻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형이상학적 실재론에서 말하는 단일한 세계, 즉 우리들의 믿음들이 참이라면 그 믿음들에 그대로 일치될 통일된 세계를 설정하지 않고서도 진리를 합리적 탐구의 이상으로 삼을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믿을 필요가 있는 세계는 우리의 합리적 탐구에 대하여 <외적으로 externally> 있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으로internally> 있는 세계이다. 따라서 단 하나의 세계, 단 하나의 진리만 있다는 생각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여러 가지 다양한 탐구가 있을 수 있고, 다양한 탐구에서 사물을 바라다보는 우리의 시각도 다양함에 따라 세계도 다양하고 진리도 다양하다는 것이 내재적 실재론의 기본 입장이다.

퍼트넘은 이러한 논의를 또한 도덕과 가치의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시키고 있다. 그는 합리성이라는 것이 과학에만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라고 본다. 도덕적 진리도 과학적 진리와 마찬가지로 합리성에 바탕을 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퍼트넘에 의하면 합리성의 개념이 그 근원에 있어서는 인간의 번영, 즉 도덕과 가치라는 전체적인 개념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 따라서 퍼트넘은 과연 무엇이 인간의 번영을 가져다줄지를 규정해 주는 초역사적이고 범문화적인 도덕 원리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시인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도덕과 가치의 문제도 단순히 각 문화에 상대적으로 생긴 현상에 불과하고 따라서 극히 우연적이고 인습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상대주의적 도덕관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에서 추구하는 진리가 합리적인 과학적 탐구의 이상이라고 한다면, 합리적인 도덕적 탐구에 있어서도 이상이 있다고 가정할 수 있으며, 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는 도덕적 진리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퍼트넘의 입장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이성과 진리의 초역사성만 강조하는 것도, 그리고 그 정반대로 이성과 진리의 역사성만 강조하는 것도 사물과 세계를 정확하게 보지 못한다는 것이 퍼트넘의 주장의 요지이다. 퍼트넘이 본 인간의 이성과 진리는 초월적 의미와 내재적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퍼트넘은 만약 이성과 진리의 초월성, 즉 초역사성을 간과한다면 푸코M. Foucault의 문화적 상대주의, 쿤T. S. Kuhn이나 파이어아벤트P. Feyerabend의 상대주의적 과학관, 벤담J. Bentham의 도덕적 상대주의 등과 같은 잘못된 이론에 빠지기 쉬우며, 또 그 정반대로 이성과 진리의 내재성을 망각한다면, 즉 이성과 진리가 항상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과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이상 언어, 검증 원리 등과 같은 고정된 기준에 얽매여 있는 실증주의자들의 철학적 환상에 빠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 통 속의 뇌 Brains in a vat |
힐러리 퍼트넘의 '통 속의 뇌' 는 현상계에 대한 회의론을 부각시킴으로써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을 현대적으로 검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영화 매트릭스의 사상적 버팀목이 되기도 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나무 - 완전한 은둔자 장을 읽어보세요.
어떤 사악한 과학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는 한 사람의 뇌를 육체에서 분리하여 이 뇌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줄 영양액이 담긴 통 속에 옮겨 담았다. 뇌의 각 신경 조직은 초과학적 컴퓨터에 연결되고, 이 컴퓨터는 뇌에 전기적 자극을 주어 우리의 감각 경험과 똑같은 질적 정보를 준다. 그 사람(뇌)의 입장에선 환경, 각종 사물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존재하고 또한 완벽히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모든 것은 컴퓨터와 신경 세포 간의 전기적 자극의 결과일 뿐이다.

통 속의 뇌
컴퓨터는 그 사람이 손을 들어 올리려 한다면 손이 올려지는 느낌을 줄 수도, 그리고 이를 시각 정보를 통해 보이도록 할 수도 있다. 게다가 그 사악한 과학자는 프로그램을 변형시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과학자가 원하는 어떠한 상황이나 사건을 경험하도록 할 수도 있으며, 뇌수술을 하였다는 기억을 삭제하여 그 사람이 원래는 이런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 자체를 깨닫지 못하도록 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의자에 앉아 '어떤 사악한 과학자가 사람들의 뇌를 떼네어 뇌를 계속 살아 움직이게 할 영양분이 담긴 통 속에 집어 넣고 이런저런 조작을 한다' 는 재미있으면서도 불합리한 가정을 기술한 글을 읽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제 우리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사실은 통 속에 들어 있는 두뇌라고 가정해 보자. 어쩌면, 사악한 과학자조차도 존재하지 않고 단지 통을 생산하고 두뇌들을 관리하는 기계가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이 기계는 우리로 하여금 개별적이지 않고 집단적인 환각을 일으키도록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사람에게 이야기를 한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나의 말이 상대의 귀에 음파로써 다다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입과 혀가 없고 상대에게는 귀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말을 내뱉을 때 나의 뇌에서 발생한 전기 신호가 컴퓨터로 전달되고 컴퓨터는 이를 인식하여 나의 뇌에는 나 자신의 음성과 입의 움직임 같은 '말을 한다는 느낌' 을, 상대의 뇌에는 음성 신호와 말을 하는 나의 모습 같은 '말을 듣는다는 느낌' 을 전달하게 된다.

이런 경우 어떤 의미에서는 상대와 나는 실제로 의사 소통을 한다고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의사 소통의 메커니즘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 지라도, 결과적으론 내가 상대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상대에게 전달되고 있으며 상대는 나의 말을 듣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 속의 뇌' 의 인식론적, 존재론적 위상은 어떻게 되는가.
나는 통 속의 뇌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자신에게 몸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이 세계가 실재하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내가 알고 있는 진리들은 진정 참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나 자신은, 실제로 '존재' 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 저자 소개 |
힐러리 퍼트넘
힐러리 퍼트넘 Hilary Putnam
지은이 힐러리 퍼트넘은 1926년에 태어났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촘스키와 우정을 나누며 독일 문학과 어학 및 언어학에 열중했고, 하버드 대학 철학과 대학원으로 진학해 그곳에서 1년 동안 머물면서 콰인W.V.O.Quine으로부터 현대 논리학을 배웠다. 그후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로스앤젤레스)으로 옮겨가서 지도 교수 라이헨바흐H.Reichenbach로부터 과학 철학을 배웠으며, 1951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노스웨스턴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에서 강의했으며, MIT에서 과학 철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미국철학회 동부 지구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1965년 이후엔 하버드 대학 철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 저서 -
Philospohy of Logic(1971), Mathematics, Matter and Method(1975), Mind, Language and Reality(1975), Meaning and the Moral Science(1978), Realism and Reason(1983), The Many Faces of Realism(1987), Representation and Reality(1988), Realsim With a Human Face(1990), Renewing Philosophy(1992), Words and Life(1994), Pragmatism: An Open Question(1995), The Threefold Cord: Mind, Body and World(2000) 등의 저서가 있다.

| 목차 |
- 옮긴이 서문
- 저자 서문

1장 통속의 두뇌
2장 지시의 문제
3장 두 개의 철학적 관점
4장 정신과 신체
5장 합리성의 두 개념
6장 사실과 가치
7장 이성과 역사
8장 합리성의 현대적 해석에 끼친 과학의 영향
9장 가치, 사실 그리고 인식

- 부록
- 옮긴이 해제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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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권
수반이론(심물 수반론, Psychophysical Supervenience - 심적인 속성과 물리적 속성과의 관계를 해석하는데 새로운 지평을 연 이론)으로 유명하신 세계가 인정한 분석철학자이십니다. 이전의 현대 분석철학의 흐름이었던 ‘심신 동일론’, ‘기능주의’ 등을 비판하며 나온 것이 심물(혹은 신) 수반론이라는 겁니다. 자세한 소개는 현대 분석철학쪽 공부를 좀 깊이 있게 해봐야 알 수 있는 내용이라 이 정도로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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